6장.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페미니스트 교회 언니로 산다는 것

[1기 근대화]
전도부인
나혜석(1896-1948)
최용신(1909-1935) - 농촌교육
최덕지(1901-1956) - 한국 첫 여성목사

[2기 산업화]
농촌여성 도시빈민 여성노동자

[3기 21세기]
믿는페미 갓페미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p.264

••• ‘전업주부’는 근대사회가 만든 직업군이면서 동시에 근현대적 업적을 평가받지 못하는 유일한 영역이라는 점이에요. 사실 근대적 인간은 ‘개인‘ (individual)이죠. 더 나뉠(divide)게 없을 만큼 자신 의 단독 영역을 가지는 주체입니다. 그런데 이런 인간형으로 평가받을 수 없는 근대인이 ‘전업주부‘예요. ••• 아무개의 아내 아무개의 어머니로 평가받죠. 하지만 관계 안에서만 내 자리가 평가되는 것은 전근대적 방식이에요. 적어도 근대적 주체는 자기로서 평가받아야 하니까요. 그런 기회를 신적 질서라는 이름으로 아예 박탈해 버린 것이 개신교 가정의 담론이었습니다.

p.286 갓페미

교회는 ‘영적 권위’의 위계가 확고한 집단이라서, 공동체의 답과 다른 것을 질문하는 것은 두려움이 생기는 법이죠. 그래서 많은 경우 신앙심이 깊은 오늘날의 자매들은 마치 ‘21세기와 19세기를 번갈아 살아가는 것‘처럼 살아요. 밖에서는 ‘탈성적 전문가 개인‘으로서 경쟁력을 가진 주체로 살다가, 교회나 선교 단체에 오면 개신교가 ‘정통‘이라고 담론화한 여성의 역할을 요구받죠. ••• 그런데 신앙 공동체 안에서 머물기를 선택하면서 그 안의 전제들을 바꾸겠다는 제3의 결정을 했다는 것이 멋집니다. 응원해요.

p.286-287 페미니시트 시각

페미니스트는 권위를 독점하면 안 돼요. 페미니스트 ‘시각‘이 제대로 페미니스트적이려면 수평적 관계성이 확보되어야 하죠. 어쩌면 페미니즘보다 중요한 것이 페미니스트 시각일지도 몰라요. ‘이즘‘은 여전히 다양하게 만들어지고 있죠. 상황에 따라 과제가 다르고 보는 입장에 따라 주장하는 바가 다르니까요. 콘텐츠가 달라진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페미니스트 시각’은 적어도 한 가지 면에서는 모두 동의해야 해요. ‘절대로’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시각이면 안 돼요. ••• 남근 중심적인, 높이 올려 쌓는 시스템에 저항하는 것리 페미니스트들의 공통 과제니까요.

p.292

제가 이해하는 페미니즘은, 여성 주체로서 내가 가장 잘하고, 하면 기쁨 일을 하면서 사는 거예요.

p.296

스스로 결정하지 않은 사회적 배치에서 남성들에게 ‘타자‘로 응시되었던 여성의 경험은 공적으로 발화되어야 할 사명이 있어요. "힝, 나는 가부장제 5천 년에 책임이 없는데. 그냥 태어나 보니 지금인데…억울해요." 젊은 남성들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어요. 하지만, 할 수 없어요. 늘 말하기를 훈련받은 남성이 한 명이라도 끼게 되면 여성 경험의 공적발화는 그만큼 지연되기 쉽거든요.

p.297

아직도 남아서 작동하는 가부장적 전제에 대해서는 여성 연대로 저항해야 하지만, 적어도 신자유주의 시스템에 대해서는 청년들이 연대를 해야 해요. 그때 청년 남성들은 여러분의 동지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연선 현희
소요리모임

p.29 푸블리우스

"이제 예배가 시작되는 건가?" 글레멘드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는 나를 의아하게 쳐다보면서 입가에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집으로 들어오면서 실제로 예배는 시작 되었지."

p.36

내가 판단하기로는 모든 일이 바로 삶의 자리에서 이루어졌고, 또 평범한 목소리로 진행되었다.

p.49-50

바울은 대체로 현 상태에 만족하고 그것을 바꾸지 말라고 조언했다. 종으로 있는 사람은 자신의 종 됨을 남을 섬길 기회로 여기라는 것이다. 우리의 위치가 어떠하든, 그것이 바로 우리 모두의 기본 책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유를 얻을 기회가 생기거든, 다른 사람들처럼 자유인 되기를 주저하지 말라고 했다. 새로운 상황에 바르게 접근한다면, 실제로는 남들을 도울 새로운 방법을 발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주인들 자신도 실제로는 그리스도에게 종이며, 종들도 본질적인 면에서는 실제로 자유인임을 기억하라고 말했다.

p.54 아리스도불로

자기 종에게는 모임에 나오도록 설득했으면서도, 자기 아내에게는 이 모임이 뭔가 다르다는 확신을 주지 못했다.

p.61 새로운 손님 두로

••• 두로의 머리에 손을 얹고, 그가 그들의 공동체에 온 것을 환영하면서 앞으로도 계속 돌보겠다는 서약을 했다.

p.63-64 아굴라가 은사에 대해 말하다

이 모두는 다른 사람들과 공유해야지 이기적으로 숨겨두거나 자기 혼자만 누려서는 안 된다고 했다. 모든 은사가 합력하여 삶의 모든 면에서 참석자 각각은 물론 모임 전체의 성장을 위한 자원을 제공한다고 했다. 바로 이것이 모든 사람이 어떤 능력을 받았는지를 발견하고, 그 능력을 언제 어떻게 행사하는 지를 분별하며, 다른 사람의 은사를 받아들일 때 그것이 얼마나 참인지 아니면 단순히 개인의 의견인지를 신중하게 재는 것이 중요한 이유라고 했다.
아굴라는 역설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모든 은사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은사를 발휘하기를 열망하십시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서로에게 도움이 되도록 적실하게 말하는 것입니다. 또 서로를 참 사랑으로 돌보는,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자질을 드러내도록 합시다."

p.67

하나님은 우리에게 서로 나눌 것을 더 많이 주시리라는 것과, 우리가 지금 경험하는 것들을 더 유용하게 하시리라는 것을 알기 원하십니다. 이런 일은 우리가 은사 그 자체를 구하기보다는 서로를 섬기는 일에 집중할 때 일어날 것입니다. 만일 기꺼이 그렇게 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모임 바깥에서 그리고 우리가 주를 위해 영향을 미치고 싶은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의 은사를 사용할 영역을 더 많이 발견하게 될것입니다.

p.75 역자 후기

우리는 교회를 믿는다. 교회는 나가거나 안 나가는 곳이 아니라 매 순간 갱신하며 새롭게 태어나는 생명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팀장님 추천도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밤의 양들 2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용정리/인물정리/서평

p.156-157

마리아는 반박하지 못했다. 세상이 손가락질하는 죄를 범한 것이 사실이니까. 지금껏 그녀는 죄를 고백할 수 있을 때까지 고백하고 용서를 구해 기도할 수 있을 때까지 기도했다. 그녀는 신의 용서를 받았다고 믿게 되었지만 스스로를 용서하지는 못했다.

p.162 말 이름이 요나라니 작가님 요나라는 이름 쓰고 싶었나보다

사물의 윤곽이 어렴풋이 드러났다. 덩치 큰 사내 하나가 태연하게 다가와 말 목을 쓰다듬었다.
"요나! 이 말썽꾸러기 녀석! 다른 애들은 벌써 돌아왔는데 농땡이를 피웠구나."

p.174 마티아스와 피슈카르

그에게는 그럴 자격이 없었다. 죄를 짓는 건 인간이지만 그 죄를 용서하는 건 인간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p.211

마티아스는 두려움과 증오가 불러온 소문과 억측에 가린 예수의 면모를 지켜보았다. 그는 살인자가 아니라 죽음에 몰린 여인을 구한 보호자였다. 사기꾼이 아니라 자신을 공격하던 회당장의 딸을 살린 치유자였다. 그리고 살인 집단의 수괴가 아니라 자신을 불신하는 제자들의 지친 발을 씻어주는 스승이었다.

p.211-212 죽음을 선택한 마티아스

"그래요. 난 죽을 수밖에 없고 다시 살아날 수도 없는 사람의 아들이에요. 하지만 적어도 제가 믿는 진실을 위해 죽을 수는 있어요. 그를 증언하려는 건 그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예요. 제가 찾아낸 진실이 제 죽음의 근거가 될 수 있다면 구차했던 제 삶도 아주 의미가 없지는 않을 테니까요."

p.255 유월절 날 마리아

"두려워하는 것도 인간이지만 두려움을 이기는 것도 인간이에요. 여호와는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셨지만 두려움을 이길 힘도 주셨어요."

p.248-249

그래 이곳은 지옥이야. 하지만 천국을 꿈꾸는 지옥이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p.50 티투스와 수베니우스

"티투스님은 자기 관할의 회당장과 장로들에게 내 병을고쳐달라는 청을 그분께 넣어줄 것을 간곡히 부탁했어. 그분은 집으로 직접 와서 내 병을 고쳐주겠다고 하셨지만 티투스님은 주님께서 누추한 집까지 올 필요가 없다고 전했어. 군인이었던 그는 한마디 명령이 지닌 힘을 누구보다 잘알았어. 그분이 한마디 말씀만 하시면 내가 나을 것으로 믿었던 거지."

p.79 예수와 마티아스의 만남

"살인죄도……… 사함 받을 수 있단 말이오?"
예수는 대답하지 않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예수가 정적을 깨고 입을 열었다.
"죄 짓지 않은 자는 복된 자다. 하지만 죄 짓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도 없지."
터무니없긴 했지만 마티아스는 그 말을 받아들이고 싶었다. 자신에게 용서를 구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할수만 있다면 용서를 빌고 또 용서받고 싶었다.

p.91-92 유다

••• 그가 원망한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스승이었고 자기 자신이었다. 스승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그를 원망할 필요는 결코 없었을 것이다.
그는 제자 중의 다른 누구보다 스승을 잘 알았다. 그렇기때문에 한쪽 눈으로는 스승을 사랑하면서도 다른 눈으로는 스승을 경멸할 수밖에 없었다. 증오가 섞인 사랑, 경멸이 섞인 존경. 원망하는 만큼 스승을 사랑하고 사랑하는 만큼 그를 원망하는 자신을 책망하며 그는 어둠 속으로 발길을 옮겼다.
시간이 형틀이 되어 그를 옥죄었다.

p.92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길은 하얀 띠처럼 구불거리며 어둠 속으로 이어졌다. 더러운 빨랫감처럼 우중충한 구름 사이로 새어나온 달빛에 세상은 하얗게 표백되었다.

p.98 사건정리

"그들은 십계명을 어기기도 했지만 동시에 예수에 관한 놀라운 소문의 주인공들이기도 했어. 헬레나는 바리새인들의 돌팔매에 죽을 뻔했고 야이로의 딸은 병으로 죽었다가 예수의 도움으로 살아났지. 벤자민은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 명을 먹인 기적을 목격했으며 백인대장 역시 종을 통해 치유의 기적을 체험했어. 그들 모두가 예수의 기적을 체험한 주인공이거나 목격자였던 거야."

p.100

마티아스는 이제 선택해야 했다.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고 다시 사건의 진실을 찾든가, 아니면 계속 예수를 살인자로 몰든가. 그것이 마티아스가 처한 곤경의 본질이었다. 예수를 살리고자 하면 자신이 죽어야 하고 자신이 살려면 죄없는 예수를 죽여야 하는 이율배반, 올가미에 걸린 사람은 예수가 아닌 자신이었다.

p.103 마태복음을 읽는 마티아스

과도하게 흥분하지도, 그렇다고 모호하지도 않은 필치로 마치 자신이 직접 본 것처럼 명확한 묘사였다. 마티아스는 생각했다. 이 글을 쓸 때 마태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는 진실로 이 글의 내용을 믿었을까? 아니면 그랬으면 좋겠다고 상상한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사람들이 믿을 거라고 생각되는 방식대로 썼을 뿐일까? 믿을 수 없는 스승의 믿을 수 없는 행위를 쓰면서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결코 믿을 수 없는 것을 믿어야 하는 절망적인 상황을 그는 어떻게 견뎠을까? 마티아스는 희미한 불빛이 새어드는 창살 가까이로 다가가 두루마리의 마지막 구절을 다시 읽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