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힐 신고 독서하기 - 그녀들처럼 성공하는 지적인 자기계발 독서법
윤정은 지음 / 애플북스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하이힐 신고 독서하기. 제목이 너무나 끌리는 책을 만났다. 표지부터 뭔가 신여성을 말하는 듯한 포스가 느껴진다. 왜 이렇게 거대한 책 더미에 기대 앉았는고 하니, 그녀는 책을 읽는 지적인 여성이니까. 지성을 잘 담아낸 일러스트가 마음에 쏙 든다.

 

이 채은 자기계발 독서법에 대해 말한다. 그 내용은 격려와 일침과 회유와 알찬 독서법 등으로 다양하지만 결국 저자가 의도하는 것은 독서를 해라,가 되겠다. 외국은 독서가 일반화되어 어색하지 않다. 여행을 갈 때도, 이동할 때도, 잠시 휴식을 취할 때도 모두 책이 함께 한다. 하지만 한국에선 그렇지 않다. 이 점이 많이 아쉽다. 일반적으로 취미가 뭐냐고 물었을 때, 독서라고 말하면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니 말이다. 대부분의 반응은 안 믿는 눈치거나, 공부벌레, 책 벌레라는 인식때문에 멀리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나 역시 학창시절엔 책을 멀리했고(;) 책 벌레라는 인식으로 다독만 하는 사람들을 멀리했던 과거가 있음을 밝히는 바다. 그것은 누구의 잘못이라기 보다 사회적 병폐가 아닐까 조심스레 말해볼까 한다.

 

사회 전반적으로 외모지상주의가 과열된지 오래.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라고 자부하고 살았건만 나 역시 다르지 않았음을 자꾸만 발견하게 된다. 텔레비전에 나온 연예인의 외모는 유.무명을 막론하고 기대 이상이다. (몇몇의 개그맨이나 취향이 다른 사람을 빼고 말이다.) 그런데 미모의 그들도 밝혀지는 진실앞에 곤란을 겪곤 한다. '성격괴팍설, 무싹수설, 숨겨진 애인의 직업 논란, 음주후 개가 된다는 설, 마약애호가 설, 스폰서 자식 설' 등등의 아니 땐 굴뚝을 타고, 애정은 허공으로 흩어져 다른 이에게 가는 것 같다. 하지만, 사건이 잊혀질 쯤 되서 컴백한 스타는 또다른 매력을 발산하고 팬들은 과거를 점점 잊게 된다. 다시 열광하며 팬으로서 흠모하게 되는 일련의 과정. 많이들 직.간접적으로 겪어봤으리라.

 

그런데 그런 루머와 사건 등으로 풍파를 겪고도 오래 가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독서, 공부 등으로 자신의 스펙을 다진 이들이 그러하다. 이렇게 주장하기에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면, 이렇게 가정해보면 어떨까. 재기의 발판으로 멋진 외모뿐 아니라 새로운 매력의 하나로 '지성'이 더해진다면? 대부분은 팔색조답다고 느끼며 과거를 용서해주지 않을까.

가까운 예를 들자면, 연기자 오xx 씨는 업소에서 일하는 애인의 자살로 한 동안 잠수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신인이지만 드라마의 성공으로 무명에서 단숨에 스타로 거듭난 직 후였다. 그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시상식장에서 수상할 수 있었지만 조용히 뭍혔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다시 컴백하여 좋은 연기력으로 호평을 받고, 드라마 역시 성공했다. 그가 재기에 성공하게 된 것은 연기력과 호남형의 미모 덕분이 크다. 하지만 그런 외모는 꽃미남 가득한 연예계에서 비장의 카드로 쓰이긴 힘든 것도 사실. 대부분 알겠지만 재기의 발판이 된 것은 예능에서 보여준 활약 덕분이었다. 명석한 두뇌, 강인한 힘.

사람들은 늘 새로움을 추구한다. 아무리 뛰어난 가창력이라도 음성이 지루해지면 외면받는 가수, 항상 같은 패턴의 연기에 질려 채널을 돌려버리는 시청자. 이것과 같은 이치다. 그의 무기는 뛰어난 지적능력, 그리고 남성다움 때문이 아니었을까? 지적능력은 명석한 두뇌를 지녔다면 더 없이 좋겠지만, 실제로 그런 이가 몇이나 될까. 후천적인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노력의 성과가 잘 나타나도록 그에 걸맞는 멘토도 필요하다. 그렇다면 책 만큼 좋은 것이 있을까? 잔소리 하지 않는, 군더더기 없는 멘토가 바로 책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식인이 되는 바람. '일정 부분 쓰지 않는 두뇌도 쓰이도록 하는 독서'를 통해 매력적인 인물로 거듭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독서를 거부하고 겁나하는 사람이 많은 걸 알고 있다. 내가 그랬고, 내 주변인들이 그러는 걸 많이 봐왔다. 하지만 성공하는 이들은 책을 읽었다. 독서를 함으로 인해 이루 말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경험한다. 독서의 중요성은 아무리 많이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것 같다. 노래 가삿말에도 '미'와 '지'를 겸비한 여인으로 거듭나려는 노력이 담겨 있다. '나와 맞는 옷에 또 받쳐주는 말투 센스있는 포즈 그냥 되지는 않죠. 생활 상식은 기본. 시사 상식은 선택. 다 끊임 없는 노력이죠.' 프리티 걸의 가사를 발췌해봤다. 현대의 생활상을 잘 반영한 노래가 아닌가 싶다. 이처럼 좀 더 산뜻한 여성, 좀 더 매력적인 여성이 되기 위한 노력은 끝도 없이 이어진다. 그것을 아느냐, 모르는 척 하느냐에 따라 인생은 조금씩 달라지지 않을까 고심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중세의 가을에서 거닐다 - 보스에서 렘브란트까지 그림 속 중세 이야기, 그림으로 읽는 세상 중세편
이택광 지음 / 아트북스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그림 속 중세 이야기, <중세의 가을에서 거닐다>!

 

중세시대의 문화라든가, 작품에 대해 무지한 나는 중세 이야기를 좀 더 사실적으로 알 수 있는 이 책을 선택했다. "르네상스 시대엔 이랬다~ 저랬다~" 식의 카더라는 많이 들어봤다. 하지만 그 중 사실은 몇 개나 될지 의문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디자인은 혁명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모든 마케팅에서 디자인을 재껴놓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모든 것에는 그림이 들어간다. 하나의 선도 여러 번 겹치면 그림이 되고, 그것이 바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 것, 즉 디자인이 된다. 하지만 그 옛날, 그림의 진가를 알아주는 이 몇이나 되었을까 생각해본다.

 

실제로 그 시작은 미약했을지 모른다. 그림쟁이라는 호칭이나 아래로 보는 괄시의 눈빛은 오래 전 화가의 아픔을 고스란히 나타낸다. 돈 못 벌고, 재료비로 돈이 나가고 불면의 고통을 참고 인내해야하는 직업으로 많은 이들이 꺼리는 직업 화가. 우리나라 과거의 그림쟁이는 멀리 내다보면 바람의 화원에 나오는 인물들을 들 수 있지만, 그보다 더 현대에 가까운 사람으로 기억해보면, 영화관 포스터를 그리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인물화를 자세히 밀도있게 그려내는 화가를 꼽는다면 말이다.

 

나는 작품에도 고급과 저급이 있다고 본다. 저급은 어떤 것이다, 라고 정의하긴 어렵다. 하지만 고급이라고 보는 작품은 몇 가지 정해져 있다. 벽에 걸어놓았을 때, 주위 환경에 비해 존재감이 있는 작품. 그것이 고급이라고 느껴진다. 내게 있어 고급의 그림이란 편대의 작품보단 먼 중세시대에 탄생된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취향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그리고 저평가된 현대의 그림도 분명 있겠지만 경이로움이나 고결함, 그리고 시대상을 잘 나타낸 작품을 보면 신비롭다. 뭔가 태마가 있고, 이야기가 있는 작품을 선호한다.  아크릴 물감으로 범벅된 인물화나 풍경화를 보고 있으면 경이로움을 느기곤 한다. 유럽 왕실의 유전병을 잘 나타내는 그림도 근친상간의 단점을 드러내는 멋진 작품이다. 그리고 바토리에 관한 무수한 괴담을 담은 그림들도 공포에 비례하게 멋진 작품이라 생각한다.

 

이 책에서는 큐피드와 푸시케가 단연 돋보인다. 성모 마리아와 예수에 관련된 그림 역시 빠뜨릴 수 없는 작품들이다. 이야기가 존재하는 그림은 많은 상상력과 재미를 안겨준다. 그래서 그 그림 속에 빠져들게 되면 문화 역시 그림으로 각인되며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는 것 같다. 중세 시대의 그림은 대부분 전라가 많이 등장한다. 그래서 어떤 그림은 움찔하게 만들 정도로 사실적으로 여자의 몸을 드러낸 것도 있다. 나체의 인간의 모습을 조금의 부끄러움도 못느끼는 듯 그려낸 걸 보면 혀를 내두르게 된다. 올 누드가 화폭에 가득한 그림이 오히려 시선이 분산되어 덜 민망할 정도로 말이다.

 

전신을 그린 작품을 계속 보면서 점점 익숙해짐을 느낀다. 그리고 동시에 아름답다는 찬사의 말이 쏟아져 나온다. 경박하거나 음란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게 신기하다. 그리고 그 당시 문화 역시 힘을 갖는다. 램브란트의 그림엔 인간의 이중성, 예수의 슬픔 또한 발견할 수 있다. 십자가라는 하나의 아이콘은 숭고함까지 지녔다. 이미 십자가는 절대로 대체할 수 없는 희생의 아이콘으로 뿌리깊게 자리하지 않았는가.

 

르네상스의 그림에는 종교와 쾌락과 죽음과 희생, 그리고 사랑을 담은 작품들이 가득하다. <레이디 제인 그레이의 처형>은 반역죄를 뒤집어 쓰고 죽음을 앞둔 그녀의 모습을 잘 담아내고 있다. 이 책엔 카톨릭 교도들이 해도 해도 너무하지 않았나, 라는 저자의 생각도 담겼다. 그도 그럴 것이 눈이 가려진 그녀는 머리가 놓일 참수대를 손으로 찾고, 카톨릭 신부 복장을 한 사람이 참수대로 친절하게 그녀를 에스코트하고 있었다.

 

그 외에도 <승리한 유디트>. 이 작품은 인내를 표현한다고 말한다. 한국으로 따지면 논개에 해당되는 여인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여인은 손에 칼을 들었고 그녀의 왼쪽 모서리 끝에 적장의 수급이 자리한다. 아니, 그녀의 손에 들려있다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다. 이 그림은 오싹하지만 그림이 담고 있는 의미를 알게 되면 또 다른 눈으로 볼 수 있게 된다. 이 것이 그림이 갖는 에너지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 밖에도 많은 중세의 모습이 화폭에 남아있다. 그 당시의 이야기, 그 때의 문화와 메세지가 가득 담긴 그림들이 오래도록 보존되길 바란다.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그림들을 마주하며 여러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마치, 책 속의 작은 미술관을 다녀온 기분이 드는데, 실제로 미술관에서 지금 본 그림들을 마주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궁금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남자, 그 잃어버린 진실
스티브 비덜프 지음, 박미낭 옮김 / GenBook(젠북)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서평을 쓰기 전에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짧게 요약하자면, 이렇다. 이 책을 읽은 당신이 만약 남자라면 공감대가 형성이 될 것이다. 만약 마음이 통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대로 행동해보라. 낡은 역할 모델을 버리고 새로운 롤 모델이 되어줄 이 책을 멘토 삼아보는 건 어떨지. 일부분이라도 긍정적인 실천이 반복된다면, 당신은 당신의 아들에게 또는 또 다른 남자들에게 모범이 될 것 같다. 그로서 새로운 역할 모델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왜 이런 의견이 나오는지는 길게 말하지 않고 책을 보길 권한다. 은밀한 남자의 속내가 담겨 있고, 아버지로서, 가장으로서, 남자들이 문제라고 느끼는 문제제시와 나름의 해결책이 제시된다. '자신의 아내와 맞서는 법', '참된 아버지가 된다는 것', '당신이 좋아하는 직업을 찾아라.' 등 제목만 봐도 느낌이 올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여성독자이기에 '정말 그런가? 왜 그럼 왜곡되도록 그냥 두었을까?' 싶은 부분이 눈에 띈다. 예를 들자면, 성에 관한 사실이 그렇다. 대부분의 남성들은 오르가슴을 느끼는가? 란 질문에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 이 부분에 대해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내가 어떻게 알아? 난 남자가 아닌데. 대부분의 여자들이 알지 못하는 부분이다. 남자귀신에 빙의되어도, 또는 불굴의 지피지기 정신으로도 '진정성'을 알긴 힘들 것이다.

 

하나의 문장에서 남겨지는 진정성. 그 의미는 개개인마다 미묘하게 달라진다. 그런 미묘함을 알아내는데에 진실을 담은 고백과 같은 책들이 도움이 될 것이라 본다. 적어도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는 누드가 된다고 믿는다. 일기를 쓸 때, 편지를 쓸 때에 내면을 숨기려 해도 이내 보이고 마니까. 남에게 글을 보인다는 것은 쑥쓰러운 일이다. 그것도 공공의 비밀이나 자신에 관한 것이라면 더더욱. 하지만 알고 싶은 마음에 돈을 들이는 독자에게 있어, 저자는 '벌거벗은 임금님'이 되어도 좋다고 본다. 적어도 책 안에서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이 책안에서 반라. 그 이상은 보인 것이다. 전라라고 하기엔 약간의 의문점이 드니까. 나는 반라 이상이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속독했기에, 놓친 것도 많으리라 생각한다. 다시 한 번 일독하고 나면 느끼는 점은 분명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내 마음은 이렇게 말한다.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눈에 밟힌다고. 어떤 부분이 마음에 안 드는 것일까? 바로, 페미니즘에 대한 거듭되는 언급이다. 저자는 남자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 이런 시도를 한 것일까? 아니면 진심으로 그것이 옳다고 여기는 걸까. 궁금증을 자아낸다. 물론, 나는 지금 남자도 여자도 아닌 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아니다. 절대 그렇게 되긴 힘들다. 한 가지 좋은 점은, 자기성찰이라고 할까, 반성이라고 할까. 남자에 대해 너무 몰랐구나, 그 밖에도 알고 있다고 여긴 왜곡된 진실이 많겠구나, 등의 생각을 되뇌이게 만든다.

 

저자가 말하고자 했던 '잃어버린 진실'은 내면의 나약함을 숨기고 강한 척 하는 것에서 비롯된 공허함을 말하고자 했던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 원인은 남자들에게 강요되는 남성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평균으로 보여지는 진실이 모두에게 해당된다고 여기는 잘못된 인식 또한 남, 녀에게 무거운 짐을 지어주는 것 같다.

 

아직 남자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그저 여자를 욕정을 풀려는 도구나 상,하급으로 물건처럼 보는 시선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있었다. 친구로 인정하진 않으며 그저 어떤 대상으로 여긴다고 느껴왔다. 그래서 알게 모르게 낯선 남자에게는 적대감이 늘 자리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대화가 통하는 친구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으로 남자와 소통하고 싶다. 적 아니면 동지, 이렇게 극단적이고 싶진 않으니까. 아직 오해와 진실을 구별하는 눈이 되기엔 미완성이다. 그렇기에 잘난척하지 않는 책이나 겸손한 경험자의 조언을 듣고 싶다. 다른 여자들의 마음을 다 알 순 없지만, 나는 그렇다. 여자와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긴 너무 어렵지만 노력해 보겠다고 하루 하루 다시금 마음을 다 잡는다. 그래서 이 책도 '진정성'이 있다는 걸 발견하고는 살펴보게 되었다. 이 책을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대중적이지도 않고, 여자들이 공감하기엔 다소 거리감이 있지만, 일독하면 꼭 도움이 될 만한 책이 틀림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남자, 그들의 이야기
스티브 비덜프 엮음, 박미낭 옮김 / GenBook(젠북)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스티브 비덜프의 책을 연이어 만나게 되었다. <남자, 그들의 이야기>는 <남자, 그 잃어버린 진실>보다 멀게 느껴진다. 그도 그럴 것이 저자는 남자들의 이야기를 엮었을 뿐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빌 브라이슨의 이야기가 정말 많이 등장한다. 각자 다른 환경의 남자들이 겪은 경험담을 담은 책이기에 남자들의 세계를 질적으로 알기보단 양적으로 알기에 도움이 될 것 같다.

 

그 중 레오 쇼필드의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소제목이 '안 돼요, 신부님'인데, 뭐가 안 된다는 것일까 호기심을 일으켰기에 유심히 읽어보았다. 그런데 그의 이야기의 주인공은 또다른 남자. 그러니까 변태 신부가 저지른 만행이었다. '이치'라고 불리는 신부에게 교육받던 시절이 그가 가끔씩 악몽을 꾸도록 인도했을 것이다. 신부의 만행을 듣기 전에 꼭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다. 1940년대에 일어난 일이며, 공공연히 알더라도 쉬쉬하던 실화라는 것이다. 이치란 명칭은 만화영화 속에 나오는 쥐의 이름에서 가져온 것으로, 그 쥐는 검은 고양이의 사지를 절단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캐릭터라고 한다. 이름만 들어도 끔찍한데, 그의 악행은 치를 떨게 만든다. 그는 어린 소년들을 성적, 육체적 학대를 일삼는 변태였다. 그가 폭력을 행사할 때 자주 쓰던 '소금물에 적신 뒤 얼린 밧줄'은 어린 소년들의 하체를 마구 헤집고 다녔다. 그 도구가 없을 때는 짧은 가죽 띠로 구타하며 비밀리에 학대를 일삼고 있었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그의 악명을 모르는 이가 없었지만 더 큰 보복을 두려워 한 나머지 공공의 비밀이 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레오 쇼필드의 아버지가 아들의 몸을 확인하고 진실을 듣게 된다. 못된 장난과 음란한 말, 그리고 아이들의 성기를 가지고 장난쳤던 일, 엉덩이에 난 상처때문에 책상에 붙어 있는 둥근 의자에 아래 위로 엉덩이를 문질르며 고통을 달래며 수업에 참여하는 소년들의 이야기 들을 말이다. 그의 아버지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노발대발한 채로 이치를 고발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긴다. 교장 선생은 다신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 약속한 후에야 사건을 마무리 시킬 수 있었다. 그 일이 있은 후 그는 안전하게 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후에도 이치는 아무런 제제없이 학교에서 일을 할 수 있었고, 계속해서 은밀하게 학대가 이루어졌을지 모를 일이다. 

 

이런 일화는 참 충격적이다. 그 다음으로 충격적이었던 이야기는 정관수술 후 부작용을 겪은 남자의 이야기였다. 끊임없이 찾아오는 고통과 임신가능성에 대한 악몽은 그에게 끝없는 절망을 선물했을 것이다. 사전에 부작용이나 위험성에 대한 언급이 없었던 의사에게도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고. 하지만 미리 알았더라도 정관수술을 감행했을 것이란 그의 의견도 이해가 간다. 여자들이 성형수술 후 예상치 못했던 부작용으로 고통스러워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될 것 같다.

 

그 외에도 남학교의 여교사에게 주어지는 특권에 관한 이야기, 스포츠에 관한 일화, 여자에게 손찌검한 이야기 등이 이어진다. 이 책을 보고 있으면, 너무나 많은 일들을 남자들이 겪는 것 같다. 하지만 어떤 감동이나 공감은 힘들었다. 그동안 젠북에서 출간한 책을 몇 권 읽었는데 되는 대게 남성상에 관한 책들이 유독 많은 것 같다. 이 책 또한 남자들을 짓누르는 불편한 고정관념을 깨뜨리고자 하는 목적이 뚜렷하다. 저자의 목적이 그러하다면 어느 정도는 달성했다고 본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내 취향은 아니었다, 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읽는 동안, 그리고 서평을 쓰면서도 말이다. 아무래도 사실을 엮은 것이기에, 불편한 진실이 가득해서 결정을 내리기까지 한 몫 한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불멸의 신성가족 - 대한민국 사법 패밀리가 사는 법 희망제작소 프로젝트 우리시대 희망찾기 7
김두식 지음 / 창비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불멸의 신성가족. 사법에 대해선 '사'자도 모르는 독자인 내가 이 책을 선택했다. 창비에서 출간했다는 이유 하나로 말이다. 그런데 처음 덮어놓고 선택할 때와는 사뭇 다르게도 딱딱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맴돌았다. 물론, 저자는 나름 쉽게 풀려고 노력한 것 같다. 때문에 어려운 전문용어가 난무하는 책은 절대 아니다.

 

이 책은 스물세명의 법조계 안팎 사람들이 경험한, 또는 전해들은 사법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저자 김두식은 일전에 책을 출간하고 법조계 사람들에게 은근한 압박을 받았다고 말한다. 집안일을 타인에게 낱낱이 전하는 느낌일까? 그 후로는 다신 이런 책은 출간하지 않겠다 다짐했다고 한다. 그런데 왜 또, 하필 이런 류의 책을 쓴 것인지 궁금해졌다.

 

그가 말하길, 이제까지 법조계에 관한 설문이 이루어져도 질적연구는 처음이기에 그의 결심도 번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질적 연구라고만 말하면 생소할 것이다. 그럼 양적 연구는 들어봤는지. 양적 연구란 단어는 생소할 지 몰라도 많은 이들이 직.간접적으로 경험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보통 리서치 조사기관에서 행하는 설문이 모두 양적 연구에 해당한다. 반대로 소수의 인원으로 좀 더 자세히 응답한 내용을 바탕으로 연구하는 것이 질적 연구라고 할 수 있다.

 

양적 연구는 많은 이들이 참여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왜 그런 결정을 내리게 되었는지 이유나 원인을 알 길이 없다. 그저 예상하는 길 밖에는. 그래서 이 질적 연구에 흥미를 느낀 나머지 이렇게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법조계는 바닥이 좁다고도 말한다. 나름 양심고백처럼 범법행위나 온갖 비리들을 폭로하고,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예전에 행했던 일로, 지금은 그런 불미스러운 일들이 없다고 말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그도 한 번의 경험이 있은 후로는 신중을 기하는 것이 느껴진다. 다소 객관적이지 못한, 그러니까 내부의 불미스러운 일을 살짝 모른 척한다는 느낌도 들긴하지만 질적 연구에 크게 위배되지 않는 선에서 이야기가 잘 이루어졌다고 본다.

 

대부분, 자신의 신분 노출을 꺼리기에 경험담은 최대한 살리면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이야기를 토해내고 있다. 다소 끔찍한 건 사실이다. 정말 대한민국 법조계가 비리로 점철되어 있고, 서로 쉬쉬하며 이젠 깨끗하다고 감싸기에 급급하다면 말이다. 사람들이 권력 앞에서 고개 숙이지 않고 모두가 사람답게 살기를 바랐던 故노무현 전 대통령의 뜻이 다시금 새겨지는 시간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