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의 구제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4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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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해의 진실. 그리고 표지에서 느껴지는 아우라가 궁금해서 자꾸만 신경쓰였던 책 <성녀의 구제>.

사실, 히가시노 게이고란 이름 때문에. <용의자 x의 헌신>을 통해 만났던 구사나기 형사와 '괴짜 과학자' 유가와가 다시 등장한다는 소식에 눈길이 간 것이다.

그는 이미 평론하기도 힘든 거성 작가임이 분명하고, 많은 작품들이 스크린으로, 브라운관으로 영상화되어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로 손색이 없는 사람이다. 추리소설을 대표하지만 장르를 뛰어넘는 다는 호평 또한 잇따른다. 예전에 읽었던 <도키오>란 작품 역시 잔잔한 감동과 슬픔이 묻어나는 이유로 드라마로 제작되며 많은 사랑을 받은 바 있었고, <용의자 x의 헌신>으로 나오키상을 수상하며 지칠줄 모르고 굉장한 작품들을 쏟아내며 종행무진한 이력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어쩌면 그의 작품은 처음부터 추리소설이라는 탈을 쓰고 드라마틱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었는 지도 모른다. 범인을 응원하게 만드는, 또는 연민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꿈틀거리고, 방황하는 캐릭터 역시 현실에서 있을 법한 진솔함을 담아내었으며, 상황에 따른 심리묘사 역시 칼날처럼 예리하다. 작품들의 흡인력으로 보나, 범인이 성토하는 장면에서의 공감을 유발하는 마력을 보나, 그는 신랄한 통찰력을 가진 인물임에 틀림이 없다.

무엇보다 군더더기 없는 상황 설정과 간결하다 못해 깔끔한 문체가 언제나 그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에 대해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었고, 씬 사이에 심어넣는 복선이나 사건을 배치하는 두뇌플레이도 누구보다 월등하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은 첫장을 보는 순간부터 어떤 것을 유도하거나 사건에 개연성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그냥 사건의 배경이나 인물의 특징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스치듯 스치지 않으며 그 안에 트랙을 심어놓는 것이다. 보물찾기 하듯, 아니 그보다는 지뢰밭에서 지뢰가 나올까 노심초사하게 만든다고나 할까.

이번 작품에서도 역시나 첫장에 팬지 꽃에 대한 묘사, 요시다카 부부가 손님을 맞이하는 장면, 갈등이 꽃피는 대화, 인물의 눈초리 등 모든 것을 계산한 흔적이 영력했다. 그래서 지뢰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폭탄 제거반처럼 나는 무수히 책장을 넘기면서도 이리 저리 머리를 움직였다. 그렇게 꼼꼼하게 책을 읽다보면 어느 순간 내 추리에 빛을 발하는 순간이 오곤 한다. 그런데 그것도 반만 맞추게 되는 건 왜일까. 이번 작품에서는 트릭을 알아낼 수 있었지만, 그것은 아무 사심없이 책을 읽었을 땐 뒤늦게 두 배로 다가오는 감동을 차단시키는 행동일지 모른다. 트릭을 알아버렸다 할지라도 완벽히 간파할 수 없으며, 더욱이 이번 작품의 묘미는 제목에 있다. <나는 전설이다>란 작품에서 느껴지는 반전처럼 강렬하지 못하지만, 그에 뒤지지 않게 다가오는 감흥이 있기에, 제목에 대한 점수를 후하게 주는 바다. 그러니까 이 작품의 관전포인트는 제목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길 바란다.

 

그의 작품의 특징 중 하나로 꼽자면 스릴러이다. 범인을 전반에 공개하여 살인 방법을 추리하도록 만드는 온전한 스릴러 물. 범인의 범행동기도 뚜렷하다. 그렇기에 독자로 하여금 어떤 방법으로 살인을 완성시켰는지, 또한 어떤 식으로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들며 은폐하는지까지 추리하도록 만든다.

갈릴레오 시리즈 제 4탄이라는 호기심, 마지막 장을 덮을 때 제목이 주는 소름끼치는 경험, 배신자를 처벌하는 대리만족, 그리고 범인을 동정하는 따뜻한 수사관의 감정을 느끼고 싶다면, 이 작품을 봐도 무방하다. 모든 연령대가 볼 수 있으니 누구에게든 추천하고 싶다. 피와 살육이 난무하는 끔찍한 광경이 없기에 추리소설임에도 임산부가 보기에 무리가 없으며, 더구나 범인에게 연민을 느끼게 하는 추리소설로서는 단연 최고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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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눈물
김정현 지음 / 문이당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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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어머니를 말하는 작가가 신경숙이라면, 아버지를 말하는 작가로서는 김정현이 아닐까. 전작 <아버지>를 읽지 않았지만 그 작품으로 300만 독자를 감동시켰다는 이력이 있다. 사실 이번 작품을 손에 들게 된 이유도 <아버지>란 작품의 여파가 크다. 아버지에 관한 책은 읽어본 적도 없으며, 많은 책들이 가족소설을 꺼리는 이유도 한몫했다. 수요와 공급의 원칙을 알기에 출판사를 탓할 수만은 없다. 하지만 출판하지 않는 책을 원하는 독자도 분명 존재한다는 사실! 비주류에 속하는 책이겠지만 아버지란 소재를 다룬 책을 꼭 보고 싶었다. 대박날 작품이라면 더더욱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의 이번 작품 <아버지의 눈물>은 실제로 이 땅에 살고 있을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가식이 섞이지 않은 내용으로 읽는 내내 마치 수필을 보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망할놈의 세상이라 부르짖고 눈물을 삼키며 쓰디쓴 술을 삼키며 하루를 버텨내는 아버지. 여자들의 유혹, 친구들이 자기따라 강남가자는 유혹, 대박에 올인해보고 싶은 유혹들. 내 아버지도 혹시 이런 마음이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더 많이 한 것 같다. 작가는 아버지의 눈물을 읽을 때 독자로 하여금 보기 싫은 진실을 보게 만들었다. 아버지의 몰락, 가족에게 소외되는 현실, 친구의 자살이나 죽음으로 치닫는 아슬아슬한 곡예, 버릇없는 자식, 가난과 외도에 치를 떠는 부인 등. 너무나 판박이인 이 시대 가족의 모습을 그려낸 것이다. 그래서 중반부쯤부터는 몰입이 잘 되었지만, 또 그런 이유로 끝까지 보기는 싫었다. 가족의 치부를 들추고 지켜보는 느낌이 들어서 말이다.

 

주인공 흥기의 처는 내 어머니와 닮거나, 누군가의 부인과 아주 흡사할 것이다. 감정의 칼날을 잔뜩 세운 채 반격할 기회만 포착하려드는 태도가 그러하다. 자신의 컨디션이 안 좋을 땐 잔소리를 하지만, 신주단지 모시 듯 귀한 존재에겐 어떤 대접을 당해도 쩔쩔맨다. 그런 모습이 사실적이라 소설이라기보다 수필 느낌을 더 많이 받은 듯하다.

그 밖에도 한국에서나 있는 진풍경인 상가집에서의 언쟁. 그리고 젊은 층의 형제 자매에게선 찾아보기 힘든 엄마같은 누나도 등장한다. 아마도 중년인 지금의 아버지 어머니 세대엔 공감이 많이 되는 존재일 것이다. 그러나 한이 서린 가족의 책임. 가장의 의무. 가족의 불화 등은 한국에선 넘쳐나는 너무나 흔한 드라마다. 때문에 이런 소재는 호불호가 분명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침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내용인지라 젊은 층은 외면할 것 같고, 그대신 무거운 소재를 보며 마음을 위로할 중년층에게는 환영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내 이야기이거나 내 아버지의 이야기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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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우와 별들의 책 - 제1회 조선일보 판타지문학상 수상작 치우 판타지 시리즈 1
이준일 지음 / 문학수첩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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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조선일보 판타지문학상 1억원 고료 당선작'이란 타이틀 때문에. 표지에서 느껴지는 판타스틱한 느낌 때문에. 평론가들의 호평 때문에. 너무나 큰 기대를 갖고 집어든 책, 치우와 별들의 책이다.

 

이야기에 앞서, 감상평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분량 때문에, 또는 작가의 욕심 때문에 내용이 죽었다,' 말하고 싶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로, 전자는 공모전에 응모하기 위해 정해진 분량이내. 그러니까 한 권안에 결말이 지어져야 하다보니, 급 결말을 지은 느낌이 들기 때문. 후자는 작가가 이것 저것 너무나 많은 것을 나타내려는 의도가 보였지만, 그래서 산만했다. 개인적으로는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고백하건데, 서평을 쓰기 전에 너무나 고민했다. 이 느낌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 지를 말이다. 혹평하고 싶진 않지만 호평하기도 뭐한 이 느낌. 단행본 한 권에 내용이 축약되어서 감정이입을 하기도 전에 빠르게 지나친 건 아닌지. 나와는 너무나 다른 코드로 그려낸 작가의 세계에 내가 이방인이 되어버린 건지 알 수 없었다. 

 

분명히 성장소설의 소재가 다분히 복합적으로 어우러져서 판타지와 성장소설이 절묘하게 결합되었다는 평에 대해 인정한다. 어린 치우가 자신처럼 키가 작은 올리비아를 만나면서, 가이아랜드에서의 모험을 통해서 성장하는 이야기를 읽으며, 십 대의 독자들이 자신도 마법사가 된 듯 꿈을 꿀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내가 메마른 것인지, 가슴 찡한 감동은 없었다. 계속 나로 하여금 질문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나만 이런 생각을 갖는 건가. 은혜갚는 역을 위해 캐릭터를 끼워넣은 듯 억지스러운 느낌도 간혹 받으며, 이 책의 결말이 삼천포로 빠지는 것은 아닌가 조바심을 내면서 말이다.

특히나 후반부에 가면서 점점 실망하게 되었는데, 삭제했으면 하는 부분도 없지 않았다. 예를 들면, 반지의 제왕처럼 절대반지의 운반자는 프로도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는지. 후반부에 나오는 후디 영감과 알렉시아의 전투(?) 장면은 작가의 힘든 집필상황을 가늠케했다. 힘을 가질수록 욕심은 끝이없고 나중엔 메데스티처럼 될 것을 염려하는 교훈 때문이겠지만, 개인적으론 수정하고 싶은 장면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독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궁금증을 유발하는 결말 때문이었다. 장막으로부터의 탈출을 어떻게 연출할 것인가. 작가는 그것을 태양검과 영혼이라는 소재를 이용해서 풀어나갔다. 나쁘지 않은 결말이었으나, 원하는 반전이 아닌지라 내심 서운했다.

 

별점을 세개 이상 준 이유는 초반의 몰입도가 굉장했고, 동화적인 요소를 잘 살렸으며, 2부는 좀 더 탄탄한 스토리로 탄생되기를 기대하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정확하게는 꼭 집어 표현하기 힘들지만 작가의 고된 삶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후기에서의 짠함이 난 더 감동적인 건 왜인지. 아마도 당선 소식을 듣고 아이들과 부인과 함께 기뻐했을 그 모습이 상상이 되어서 일 것이다.

 

실컷 혹평을 해놓고 이제와 짧게 호평을 하면 뭐하나 싶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어서 감상평을 말할 생각이다. 앞서 말했듯이 초반 몰입도가 굉장하다. 실물화시키고 싶은 캐릭터도 등장하는데, 초반에 나오는 파치의 등장이 그러했다.

들어날 진실이 뭘까, 궁금한 장면도 존재한다. 누구의 영혼이 맞는가 라는 상황에서 반전이라면 반전일 것이다. 그때부터 책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분명 코드가 맞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노력이 보였다. 계속해서 소소한 복선이나 반전을 심어 놓았으니.

하지만 결말은 기대에 부응하진 못한 스토리였다. 판타지에 대한 무한 기대심리가 작용했고, 높은 고료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 작용했다. 그렇기에 별점을 짜게 줄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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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30초 - 하루 30초, 새로운 나로 거듭나는 시간
다나카 우루베 미야코 지음, 김현영 옮김 / 이레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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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30초만 투자하면 좀 더 나아진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니.

책이 유혹하는 내용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30초라는 문구가 말이다.

만약 30분이나 소모되는 거라면 어땠을까. 나라면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어떤 방법인지 알기도 전에 책 읽기를 포기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의미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30초란다. 그래, 30초 정도면 해볼만 하지. 이런 생각으로 책을 집어 들었다.

두께도 얇은 편이라 쉽게 읽히는 편이다. 초반에 등장하는 온갖 증상들은 보통의 사람이라면 하나씩은 있음직한, 한번쯤은 경험해봤음직한 것들로 이루어진 책이었다. 그래서 읽으면서도 중간 중간 이런 말을 했더랬지.

어, 나 이런데. 나도 이렇게 소심한 면이 있어. 얼른 해결책을, 그러니까 해결책을... 하고 혼자 궁금해 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해결책이라는 것이... 많이 아쉽다. 물론, 많이 시험해보지 않아 정확성이나 결과물을 말할 순 없어도 호흡법이나 마인드컨트롤 정도는 이미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 외에 방법들도 있지만 실제로 시험해볼 일이 얼마나 있을까. 그래도 책에서 얻은 좋은 실천법을 썩히기 아깝단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책에서 말한 상황에 처하면, 내 스타일에 맞게 실천해볼까 한다. 이 책에 대한 평가는 그때서야 이뤄질 것 같다. 이거 정말 맞네, 또는 에이 나한텐 꽝이야. 그러니까 지금은 판단 보류중이다.

별 점을 매긴다면 세개 반이 적당할 것 같다. 소심한 반응들에 공감했으나 그 해결책이 다소 미흡하단 평가가 전반적이며, 효과는 아직 보지 못했다. 그러나 잘 만들어진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증상들이나 마음을 가라앉히는 방법이 무대뽀식이 아니라 나름의 방식대로 정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인고의 노력 끝에 이 책을 만들어 냈겠지. 그런데 독자는 이 책을 보고 호불호가 나뉠것만 같다. 별점을 줄 때에도, 읽는 입장은 생각해도 편찬해낸 입장을 고려하진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경우는 그점까지 살짝 포함해야 할 것 같다. 창작의 고통을 이해한다고 해야하나. 실천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내용들이 마음에 와닿아서라고 해야하나. 아무튼 저자의 의도대로 언젠가 도움을 얻길 바란다. 나도 다른 독자역시 말이다. 실천서를 읽고 저자의 의도대로 실천해보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싶지만. 성공했다는 서평을 한 번 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래서 대리만족을 얻고 싶다. 1일 30초 투자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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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박지현 옮김 / 살림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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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 이 작품은 표지부터 으시시한 느낌이 강한 작품이다. 처음부터 범인이 누구인지 알려주는 서스펜스물이라 어떻게 범행을 은폐하는가 흥미로웠다. 거기다 풍부한 심리묘사와 사건 전개, 그리고 범행을 추리하는 유카란 여인과의 두뇌싸움도 그 재미를 더하는데 한 몫했다.

잘 만들어진 밀실살인 사건은 아무리 많이 등장해도 지루하지 않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작품 역시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본격 미스터리 대상에서 <용의자 X의 헌신>과 마지막까지 1위 자리를 두고 대격을 벌이던 작품인 만큼 작품성이 대단하다. 와인과 밀실의 구조, 그리고 대화, 또 등장인물들이 적절히 긴장감과 안도감을 넘나들며 보는 이를 옥죄어 온다. 사실, 문이 잠긴 상태에서 상대가 모습을 계속 보이지 않으면 문 밖의 사람들은 걱정하게 되고 이내 잊어버리다가 다시 문을 두드릴 것이다. 그래도 대답이 없으면 화를 내게 되는게 당연하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불안에 휩싸여 문을 따고 들어가거나 다른 이에게 도움을 청하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문이 열리는 시간을 최대한 늦추려는 살인자 '후시미'는 손쉽게 사람들을 주무른다. 자신이 계획한 시간에 맞게 시체를 유기한다. 아무도 안에 있는 니이야마가 죽지 않았다고 믿게끔 만드는 일. 이것은 작가의 뇌세포와 수명을 단축시키고도 남는 과제임이 틀림없다. 저자 이시모치 아사미를 만난 것 이 작품이 처음이다. 그런데 망설임은 없었다. 여름이라 밀실살인 사건이란 소재는 흥미를 갖기에 딱이었고, 일본 소설이라는 점이 망설임을 없애는데 충분했다. 개인적으로 깔끔한 문체를 사랑하는 지라 군더더기 없는 그의 소설을 읽는데 시간은 금세 흘러갔다.

이야기는 계속 문 안의 니이야마의 상태와 문 밖의 사람들의 추리나 행동들로 이끌어 간다. 니이야마가 죽어야만 하는 이유는 계속해서 언급하지 않았다. 그것은 작가의 의도였으니까. 마지막에 왜 그를 죽였으며 그가 식탁에서 무심코 했던 말의 의미가 밝혀지는 부분에선 살짝 오싹하기 까지 하다. 이 부분에선 말도 많았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 라는 토론이었다고 한다. 나는 살인을 할 수 있다에 한 표를 던진다. 살인을 하는데 나름의 이유는 각자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에 따라 경중이 나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후시미는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것을 위해 아끼는 후배를 살해하고 만 것이다. 기묘한 결말과 무죄로 살아갈 후시미를 예상하며 이 소설만의 섬뜩함은 따로 있었다. 항상 타인이 말하는 '정의'는 사람에 따라 정의가 되기도 하고 악의가 되기도 한다. 분명 악의는 없었겠지만 자신의 뜻대로 하지 않아 발생할 피해때문에 미리 악의 근절을 막는 것이 선이 될 수 있을까. 조심스레 생각해 볼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권선징악이 아닌 결말을 내어 이 정도의 작품을 만들기란 쉽지 않을 터. 용의자 X의 헌신과 겨룰 때 심사관들이 고민 꽤나 했을 법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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