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틀리
알렉스 플린 지음, 김지원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뉴욕 판타지 미녀와 야수 <비스틀리> / 알렉스 플린 / 북폴리오


그동안 꽤 많은 다양한 미녀와 야수 시리즈를 접했던 우리다.

원작 동화 미녀와 야수에서부터 디즈니 만화영화에, 장콕토 감독의 프랑스 드라마,

그리고 내가 야수에 홀딱 빠졌던 미드 시리즈

린다 해밀턴과 론 펄먼 주연의 미녀와 야수까지,,,

(으,,, 이 미드 정말,, 시간 체크해 놓고 봤는데,,, 진짜 야수에 빠졌더랬어요.

어케 그 털북숭이 야수가 그리 좋아질 있는지,,, - -;;; 하하)

정말 많고 많은 미녀와 야수를 접했지만,,

이번에 등장한 뉴욕판 판타지 미녀와 야수 <비스틀리>가 그 결정판일까?


영화 <비스틀리>의 개봉과 함께 뉴욕 야수 까도남으로 등극한 알렉스 페티퍼!

<아이 엠 넘버 포>의 주인공으로도 유명한 인물이다.

얼마 전 “잘난 외모가 헐리우드 경쟁력”이라는 발언으로

헐리우드 망언 종결자로 떠올랐는데,,, 그가 <비스틀리>의 주인공 야수 카일이다.

샤방합니당~ 여주인공은 바네사 허진스와 마녀 메리 케이트 올슨을 떠올리며,,,

소설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소설 속 카일은 그야말로 신의 축복이라 불릴 정도의

완벽한 외모에, 집안 좋고, 능력 있는 빠방한 인물!

그리고 그 사실을 느무나 잘 알기에 하늘 아래 무서울 게 없었던 것이 화근이었던 것!

아름답지 못한 것을 무시하는 카일의 오만함을 꺾기 위해

마녀 켄드라는 그에게 저주를 내렸고

창백한 피부를 뒤덮은 흉터와 문신 등을 지닌 끔찍한 야수로 변해버린

그는 가족으로부터, 세상으로부터 버림받고 뉴욕의 어두운 그림자 속에 숨어든다.

1년 안에 진정한 사랑을 찾아야 야수로 변하게 된 저주!

그리고 나타난 단 하나의 희망은 같은 학교 여학생 린디,,,

마약에 중독된 아버지와 불우한 환경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

같은 학교 여학생 린디와의 사랑이 어떻게 펼쳐질지는 소설 속에서 확인하시길,, ^^


뭐,,, 이미 알고 있는 ‘미녀와 야수’식 러브 스토리지만,,,

사랑 얘기가 알고 있다고 해서 감흥이 반감되는 것 아니리라,,,

특히 ‘포스트 스테파니 메이어’로 불리는 알렉스 플린 소설 <비스틀리>의 매력은

하얀곰과 인어공주, 마법에 빠진 개구리 왕자, 뉴욕 야수의 인터넷 채팅에서

그 빛을 발한다. 채팅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데,, 신선했다고나 할까?


손에 쥐면 오래 잡아 2시간이면,,, 휘리릭,,,

음,,, 아시죠? 궁금하면 책장이 더 빨리 넘겨진다는 사실! 하하,,,

이젠,, 영화에서,,, 그,,, 헐리우드 망언 종결자,, 알렉스 페티퍼를 만나봐야겠어요.

을메나 믓지구리한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퀴르발 남작의 성
최제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퀴르발 남작의 성> / 최제훈 소설집 / 문학과 지성사


표지부터 독특한 <퀴르발 남작의 성> 
 자세히 들여다보면 꽤나 기괴하면서도 섬뜩하다,,
목 부분에 올라온,, 저 손가락들이며 갈코리 같은 낚시 바늘까지,,,
스멀스멀,, 소름,,,쫙~

최제훈,,,
이 소설집이 첫 소설이었으나,,, 이젠 <일곱개의 고양이 눈>이란 장편소설까지 냈으니,,,
신인이라고 칭할 수 없겠다.
올 1월에 5쇄를 찍었다니,, 대박신인이라 할 수 있겠다.
그렇게 재밌나?
음,, 재밌다,,, 느무느무

발상의 전환, 그리고 흥미로운 추리, 전개의 기발함
퀴르발 남작의 성부터 셜록 홈즈의 숨겨진 사건, 그리고 마녀와 프랑켄슈타인까지,,,
고전에 등장하고 있는 그들을 어쩜 이리도 신선하게 무장시켰을꼬!!!

1697년 어린아이들을 잡아먹고 젊음을 유지한다는 프랑스의 퀴르발 남작에 대한 소문이 다양하게 몸을 바꾸는 과정을 짧은 단편소설로 보여주고 있다. 1897년 프랑스의 한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 얘기는 해피엔드 동화이지만 1932년 이 소재를 소설을 쓴 미국 뉴욕 작가와 출판사 편집장은  자매간의 미묘한 질투를 부각시키고, 1953년과 2004년 소설이 스크린에 옮겨질 때는 관객에게 공포를 주는 호러 영화가 된다. 영화는 1993년 대학 교양과목의 텍스트로, 2000년 한 학생의 리포트로, 2006년 네이버 블로그 컬트소녀의 리뷰기로,그리고 2005년 영화를 본 후 미국에서 엽기적인 모방 범죄로 이어진다..

이야기는 처음 모습을 떠나 계속 왜곡되고 변용되며,,
단순한 이야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광기가 접목되면서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고야 만다.

“퀴르발 남작의 성” 뿐 아니라 “셜록 홈즈의 숨겨진 사건” 역시,   

코난 도일의 죽음을 추적하는 셜록 홈즈라는 가열찬 상상력이란,,, 놀라울 따름이다.

그리고,,, 가장 빛을 발하는 부분은 소설의 마지막 단편
“쉿, 당신이 책장을 덮은 후…”
단편집의 모든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올스타 퍼레이드였다고나 할까?
 

우찬제씨는 그의 글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난장의 글쓰기”
조각조각 맞추고 꿰매는,,, 퍼즐 놀이 같은 그의 다음 작품 <일곱 개의 고양이 눈>
,,, 벌써,,, 난 장바구니 놀이 폭풍 클릭질을 하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베아트리스와 버질
얀 마텔 지음, 강주헌 옮김 / 작가정신 / 201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베아트리스와 버질> / 얀 마텔 / 작가정신

 
홀로코스트 [Holocaust]
일반적으로 인간이나 동물을 대량으로 태워 죽이거나 대학살하는 행위를 총칭하지만, 고유명사로 쓸 때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나치스 독일에 의해 자행된 유대인 대학살을 뜻한다. 특히 1945년 1월 27일 폴란드 아우슈비츠의 유대인 포로수용소가 해방될 때까지 600만 명에 이르는 유대인이 인종청소라는 명목 아래 나치스에 의해 학살되었는데, 인간의 폭력성, 잔인성, 배타성, 광기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20세기 인류 최대의 치욕적인 사건으로 꼽힌다.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파이 이야기> 이후 9년 만에 발표된
얀 마텔의 신작 장편소설 <베아트리스와 버질>
당나귀 베아트리스와 원숭이 버질이 등장하는 우화를 가장한 희곡이 결합된 액자형식의 소설이라 할 수 있겠다.
 

20세기 대학살로 꼽힐 만큼 이 홀로코스트를 주제로 한 영화나 소설, 다큐멘터리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등장했고,  현재에도 인종, 민족, 국가, 종교를 초월해 인권 회복 차원에서 여전히 주목받고 있는 주제이다.

이런 주제를 작가 얀 마텔이 선택한 것이다. 왜?    

유대인도, 독일인도 아닌 그가? 작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작가로서 홀로코스트에 대한 소설을 써야한다는 의무를 느꼈다고,,, 왜?
 

그 의미는 희곡 속에 등장한다.

베아트리스와 버질이 살고 있는 나라는 “셔츠”라는 나라다. 왜? 하필이면?

희곡의 원작자 박제사 헨리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소설 속엔 두 작자가 등장한다. 작가 헨리와 박제사로 희곡 작가를 지망하는 헨리)

“모든 게 상징적인 겁니다. 셔츠는 어느 나라에나 있고, 누구에게나 있고, 언제나 셔츠를 입습니다. 외투, 셔츠, 바지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독일, 폴란드, 헝가리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소설 속 특정 도시를 배경으로 삼지 않고 “셔츠”에 의미를 부여한 것은
어찌 보면 홀로코스트와 같은 극악한 일은
우리 모두에게, 어느 곳에서나, 누구든 일어나고, 행해질 수 있고, 행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소설 속 주인공인 저자 헨리,,, 세 번째 소설 형식을 어떻게 낼 것인지에 대한 고민으로,
독자, 출판사, 평론가들과 머리를 맞대며 고민하지만,,,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플립북(하나는 소설, 하나는 논픽션적 평론으로 따로따로 출간하지 않고 둘을 결합시켜 한권의 책으로 출간하는 책) 형태의 소설을 구상한다.
그리고 그 소설이자 평론의 주제는 “홀로코스트”
하지만,, 독자, 출판사, 평론가 모두,,, 냉담한 반응이 돌아오고,,,
헨리는 휴식과 환경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부인과 캐나다로 이주한다.
하지만 독자와의 대화는 여전히 서신으로 주고받던 중,,,
<베아트리스와 버질>이 주인공인 희곡을 전달받게 되고 그 희곡의 저자 박제사 헨리를 만나게 된다.

퍼즐을 하나하나 끼워 맞춰가듯 읽게 되는 소설은
쉬운 듯 어렵고, 어려운 듯 쉽게 이어져 간다.

하지만,, 소설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작가 헨리와 박제사 헨리를 통해 저자는 인간의 본질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홀로코스트는 거대한 역사적 뿌리를 지녔지만 픽션에서는 간헐적으로 작은 열매만을 맺은 나무에 비교할 수 있을 겁니다.    그 열매에 씨가 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거두어야 할 것은 열매입니다. 열매가 없다는 그 나무는 잊히고 말 겁니다. 우리 모두가 플립북과 같은 존재입니다. 우리 하나하나는 사실과 허구의 복합체입니다. 우리 몸뚱아리 안에는 온갖 이야기가 짜깁기돼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저자는 홀로코스트의 잔혹성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다.
(희곡 속 베아트리스의 고문 경험에 빗대어 약간의 언급이 있긴 하지만)
우리는 이미 등장한 홀로코스트를 주제로 한 수많은 영화나 소설, 다큐멘터리를 봐왔고 그 잔혹성에 대해선 익히 알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 아픔에 대해,, 반대로 그 잔혹한 일을 자행한 이의 심적 상태를 짐작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짐작은 결코 답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어느 것이 빛이고, 어느 것이 그림자인지 우리는 명확히 알고 있지만,,,
그 빛이 빛임을, 그 그림자가 그림자임을 알고 있을 것인가,,에 대한 모호한 혼란 속,,
우린 <구스타프를 위한 게임>에 도달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난 과연 선과 악, 빛과 그림자 중 어디에 속해있는 것일까? 

아직도,,, 난 게임의 해답을 찾지 못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화씨 비가
쑤퉁 지음, 허유영 옮김 / 비채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화씨비가> / 쑤퉁 / 비채

 

흑백의 두 손가락 사이에 걸려있는 빨간 실,,, 
손가락과 손가락 사이에 걸려있는 붉디붉은 빨간 실이 가늘게 움직이는 듯 하다.
왠지 서늘한 느낌이다.

애절하다, 처연하다, 웃음이 난다, 쓰라리다, 현실이다,,,,
쑤퉁만이 그려낼 수 있는 인간 세상의 쓰디쓴 풍경,,,
사실 <쑤퉁>은 이번 작품으로 처음 만난 게 된 작가다.
아시아 부커상이라 불리는 맨 아시아상을 비롯해 상하이 문학상, 소설월보백화상,
장쑤문학예술상, 충칭문학상, 타이완연합보 대륙단편소설추천상, 노신문학상,,,
꽤 많은 수상 경력을 보니 평단에서도 인정을 받은 분위기다...
게다가 대중들의 지지도 열렬이란다.
대중과 평단의 지지를 모두 받고 있다니,,, 어뜰른지,,,
 

1970년대에서 1990년대 사이를 배경으로 누가 봐도 하층민인 화씨 일가의
불우한,,, 정말 비애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일생사가 펼쳐진다.
신메이, 신란, 신주, 신쥐, 두후,,, 네 명의 딸과 막내로 아들 하나를 둔 화진더우,,,
소설은 방화범으로 잡힌 화진더우와 검사의 기묘한 법정 대화로 시작한다.
공장에서 목을 매달고 자살한 마누라를 보고 꼭지 돌아
자신을 향해 ‘불조심’을 경고하고 있는 석유통과 맞장 뜨겠다는 일념 하에   공장에 불을 내 방화범으로 잡힌 화진더우,,,
 

성은 화씨요. 이름은 진더우,,,
결국 무기징역을 받느니 죽여 달라 판사에게 애원하다
징역 도중 감옥에서 자신의 내복 바지에 목매달아 자살의 길을 선택한 화진더우,
무에 이리 생각이 없을꼬,,, 
마누라가 죽었어도,,, 생때같은 자식들이 다섯이나 있는데 말이다.
자살한 화진더우는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한 억울한 원혼들이 모여 있는 제8구역에 들어가게 되고
나귀 한 마리를 얻게 돼 구천에서
세상에 남겨진 자신의 다섯 아이와 누이의 가난하고 비참한 삶을 망령이 돼 떠돌며 지켜보게 된다.
무에 이리 풀리는 일이 없을꼬,,,

자살한 부모를 둔 다섯 남매를 쫓는 세상의 시선은 차갑고 냉정하기만 하다.
가난은 여전하고, 올라갈 길은 보이지 않고, 세상은 죽어라죽어라,,, 이들을 내몰기만 할 뿐,,,
비정한 현실은 여전하고,,, 아이들을 위해 미련스레 희생만 하고 사는 고모의 삶이 그려진다.   

그리고 이를 지켜보고 있는 화진더우는 구천에서도 속만 탈 뿐이다.
마누라 역시 자살한 지라 구천을 떠돌고 있을 터인데,,, 이 눔의 마누라는 가끔 목소리만 들릴 뿐 찾아볼 수 없고,,,
다섯 명의 자식들의 불우한 현실을 속수무책 바라보고만 있는 것이 아버지로서의 역할일 뿐,,,
살아서도, 죽어서도,, 속수무책인 건 마찬가지다.
무에 이리 답답할꼬,,,
하,,, 답답함은 울분으로, 울분은 분노로,,, 분노는 슬픔으로 이어진다.
세상이,,, 그래,,, 더러운 세상은 언제나 돌고돌아 언제나 그 자리다.
우리가 사는 세상 역시 마찬가지란 것이 짜증스러울 뿐이다.
쑤퉁의 소설은 그래,,, 말 그대로 웃다가 울다가, 화딱지가 화르륵 일어났다가,  

나원,,, 혀를 끌끌 차게 되는,,, 그러다,,, 주루륵 한 줄기 눈물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그런 소설이었다.

인생은 결코 돌이킬 수 없다는 것,,,
언제나 돌이키고 싶은 것이 인생이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다시 되돌아갈 수 없음을,,
두 손가락 사이에 걸려있는 빨간 실은 돌고 도는 인생을,,,
결코 바꾸기 힘든 현실을 상징하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또 다시 살아가야한다는 것,,,
작가 쑤퉁은 결코 희망을 논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우리에게 불행한 현실만을 강조하고 있지 않단 사실은
책장을 덮음과 동시에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 인터넷이 우리의 뇌 구조를 바꾸고 있다
니콜라스 카 지음, 최지향 옮김 / 청림출판 / 201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 니콜라스 카 / 청림출판

 

 p11 컴퓨터 스크린은 엄청난 물량과 편리함으로 우리의 의심을 쓸어버린다.
       이 스크린은 하인 노릇도 충실히 하고 있어
        실상 이것이 우리의 주인이기도 하다는 점을 알아차리기가 힘든 것 같다.
 

아침엔 휴대전화에서 울려대는 바우터 하멜의 음악으로 기상을 하고,
전화나 문자는 없었는지,,, 시시각각 통신장비를 확인하고,
출근하자마자 노트북 펼쳐 메일과 블로그(3개 이상), 페이스 북은 기본으로 창을 열어놓고,
시시각각 올라오는 뉴스들 헤드라인부터 체크하고,
새 메일이나 이웃 블로거의 새 글 소식에 쫑긋!
네이트 온 켜 놓고 실시간 대화하면서 인터넷에 올라오는 연예 기사들 힐끗거리고,,,

내가 이렇게 많은 네트워크 속
정보의 늪(책을 읽고나면 이렇게 밖에 표현할 수 없음이다.)에서 허부적 거리고 있었다니,,,
“우리는 컴퓨터를 켤 때마다 방해 기술의 생태계에 빠져든다.”
과학소설 작가 코리 닥터로우의 말에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을 통해  

인터넷이 우리의 뇌 구조를 바꾸고 있다며 역설하고 있는 니콜라스 카는
인터넷 사이트와 서비스에 익숙해지고 의존하게 되면서 독서의 집중이 투쟁이 돼 버렸고,,,
무뎌져가는 기억에, 집중하지 못하는 무능력함을 중년의 비애로 탓했지만,,,
이 모든 것이 바로 우리가 뇌를 잃어버리고 있기 때문이라 잠정적인 결론을 내린다.

웹서핑이 일상화 되면서 우리의 뇌는 점점 굳어져 가고 있다고,,,
용이한 접근, 풍부한 정보, 다양한 혜택, 스타카토 형식의 사고, 핵심만 재빨리 훑는,,,
바로 내 자신의 모습 아닌가?

가장 경악스러웠던 것은 뇌는 살아있는 통로로,  

우리가 사고하는 대로 바뀌지만 지극히 저항력이 약하다는 것이다.
정보를 매우 빨리, 효율적으로 처리하긴 하지만
지속적인 집중은 불가능하며 망각에 익숙해지고 기억에는 미숙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기억의 아웃소싱하면,,, 문화는 시들어간다는 것이다.
문화가 시들어간다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들의 감성이 사라진다는 얘기와 직결될 것이다.

기술의 힘을 지니기 위해 우리가 지불한 것은 무엇일까?
우린 언제부턴가 마음을 비우기 시작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마음을 비우는 것이 아니라 채우고 보충하는 일인데 말이다.

p73 모든 기술은 인간의지의 표현이다.

속도와 방대한 정보 홍수 속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  

그리고 디지털 세상에 잠식돼 가는 우리의 뇌,

조금은 극단적인 구석이 없지 않지만,,  

책을 읽다보면 저자의 말에 흠칫흠칫 놀라며 수긍하는 내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21세기 우린 헤엄치고 있는 광활한 정보의 바다가,,,
푸르른 낙원으로 향하는 빛이 될른지,,, 점점 빠져드는 수렁이 될른 지는,,,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적절히 제어해 가는지에 달려 있을 것이라는 것,,,

그리고 결단코,,,

디지털 세계에 잠식되는 인간이 아닌  

아날로그적 사고로 생각하고, 꿈꾸고, 호흡하는 일을 잊지 말아야겠다는 것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