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아트리스와 버질
얀 마텔 지음, 강주헌 옮김 / 작가정신 / 201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베아트리스와 버질> / 얀 마텔 / 작가정신

 
홀로코스트 [Holocaust]
일반적으로 인간이나 동물을 대량으로 태워 죽이거나 대학살하는 행위를 총칭하지만, 고유명사로 쓸 때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나치스 독일에 의해 자행된 유대인 대학살을 뜻한다. 특히 1945년 1월 27일 폴란드 아우슈비츠의 유대인 포로수용소가 해방될 때까지 600만 명에 이르는 유대인이 인종청소라는 명목 아래 나치스에 의해 학살되었는데, 인간의 폭력성, 잔인성, 배타성, 광기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20세기 인류 최대의 치욕적인 사건으로 꼽힌다.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파이 이야기> 이후 9년 만에 발표된
얀 마텔의 신작 장편소설 <베아트리스와 버질>
당나귀 베아트리스와 원숭이 버질이 등장하는 우화를 가장한 희곡이 결합된 액자형식의 소설이라 할 수 있겠다.
 

20세기 대학살로 꼽힐 만큼 이 홀로코스트를 주제로 한 영화나 소설, 다큐멘터리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등장했고,  현재에도 인종, 민족, 국가, 종교를 초월해 인권 회복 차원에서 여전히 주목받고 있는 주제이다.

이런 주제를 작가 얀 마텔이 선택한 것이다. 왜?    

유대인도, 독일인도 아닌 그가? 작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작가로서 홀로코스트에 대한 소설을 써야한다는 의무를 느꼈다고,,, 왜?
 

그 의미는 희곡 속에 등장한다.

베아트리스와 버질이 살고 있는 나라는 “셔츠”라는 나라다. 왜? 하필이면?

희곡의 원작자 박제사 헨리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소설 속엔 두 작자가 등장한다. 작가 헨리와 박제사로 희곡 작가를 지망하는 헨리)

“모든 게 상징적인 겁니다. 셔츠는 어느 나라에나 있고, 누구에게나 있고, 언제나 셔츠를 입습니다. 외투, 셔츠, 바지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독일, 폴란드, 헝가리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소설 속 특정 도시를 배경으로 삼지 않고 “셔츠”에 의미를 부여한 것은
어찌 보면 홀로코스트와 같은 극악한 일은
우리 모두에게, 어느 곳에서나, 누구든 일어나고, 행해질 수 있고, 행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소설 속 주인공인 저자 헨리,,, 세 번째 소설 형식을 어떻게 낼 것인지에 대한 고민으로,
독자, 출판사, 평론가들과 머리를 맞대며 고민하지만,,,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플립북(하나는 소설, 하나는 논픽션적 평론으로 따로따로 출간하지 않고 둘을 결합시켜 한권의 책으로 출간하는 책) 형태의 소설을 구상한다.
그리고 그 소설이자 평론의 주제는 “홀로코스트”
하지만,, 독자, 출판사, 평론가 모두,,, 냉담한 반응이 돌아오고,,,
헨리는 휴식과 환경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부인과 캐나다로 이주한다.
하지만 독자와의 대화는 여전히 서신으로 주고받던 중,,,
<베아트리스와 버질>이 주인공인 희곡을 전달받게 되고 그 희곡의 저자 박제사 헨리를 만나게 된다.

퍼즐을 하나하나 끼워 맞춰가듯 읽게 되는 소설은
쉬운 듯 어렵고, 어려운 듯 쉽게 이어져 간다.

하지만,, 소설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작가 헨리와 박제사 헨리를 통해 저자는 인간의 본질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홀로코스트는 거대한 역사적 뿌리를 지녔지만 픽션에서는 간헐적으로 작은 열매만을 맺은 나무에 비교할 수 있을 겁니다.    그 열매에 씨가 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거두어야 할 것은 열매입니다. 열매가 없다는 그 나무는 잊히고 말 겁니다. 우리 모두가 플립북과 같은 존재입니다. 우리 하나하나는 사실과 허구의 복합체입니다. 우리 몸뚱아리 안에는 온갖 이야기가 짜깁기돼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저자는 홀로코스트의 잔혹성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다.
(희곡 속 베아트리스의 고문 경험에 빗대어 약간의 언급이 있긴 하지만)
우리는 이미 등장한 홀로코스트를 주제로 한 수많은 영화나 소설, 다큐멘터리를 봐왔고 그 잔혹성에 대해선 익히 알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 아픔에 대해,, 반대로 그 잔혹한 일을 자행한 이의 심적 상태를 짐작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짐작은 결코 답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어느 것이 빛이고, 어느 것이 그림자인지 우리는 명확히 알고 있지만,,,
그 빛이 빛임을, 그 그림자가 그림자임을 알고 있을 것인가,,에 대한 모호한 혼란 속,,
우린 <구스타프를 위한 게임>에 도달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난 과연 선과 악, 빛과 그림자 중 어디에 속해있는 것일까? 

아직도,,, 난 게임의 해답을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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