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의 상인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6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이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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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은 『베니스의 상인』은 소설 형식으로 된 글이었고 그것이 셰익스피어와의 첫 만남이었다. 기억 속의 앤토니오는 선량하며 샤일록의 악독함은 그를 돋보이게 했다. 포오셔는 현명하고 멋졌다. 하지만 희곡을 읽으니 기억 속 이미지가 깨어진다. 앤토니오와 그 친구는 반유대주의자로, 기독교인이지만 그 교리에 따른 베품은 유대인을 비껴간다. 늙은 샤일록은 유대인이며 고리대금업에 종사한다는 이유로 조롱과 모욕을 받는데, 읽다 보면 그가 불쌍하고 복수심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이해되는 구석이 있다.

앤토니오가 친구 바싸니오를 위해 신체포기각서를 작성하여 샤일록에게 돈을 빌리고, 포오셔가 남장하여 판결을 내리고 하는 이야기는 워낙 유명하니 생략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의 관계에 있어 샤일록이 진짜 악인이냐 하는 것이다. 사회구조상 고리대금업이 미치는 영향은 차치하고, 개인으로서 샤일록은 직업정신이 투철한 인물이다. 또 법을 잘 지키는 시민이기도 한데 이는 유대인이기 때문에 받는 페널티 때문이다. 방식이야 어찌됐든 샤일록은 경멸을 감추지 않는 기독교인들에게 나름 예의를 갖춘 모습을 보인다.

샤일록의 발언들은 한스럽기 그지없다. 고리대금업자나 상인이나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건 같은데, 샤일록과 앤토니오가 다를 바 무엇이 있냐는 것이다. 평소 샤일록을 보며 경멸을 감추지 않은 앤토니오의 만행을 보자. 사업을 방해하며 개라고 부르고, 침을 뱉고 발로 걷어차기 일쑤였다. 이제 돈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돈을 빌려달란다. ‘평소라면 너에겐 돈을 빌리지 않았겠지만’ 이라며 목을 뻣뻣이 세우고서 말이다. 상선이 난파됐다는 소식에, 앤토니오 친구들은 샤일록에게 진정 살 1파운드를 취할 것이냐 묻는다.

이에 샤일록은 분통을 터뜨린다. 왜 못할 것이냐. 자신이 유대인이기에 미움을 받고 상거래를 방해하고 민족을 싸잡아 경멸한다. 유대인도 기독교인들도 똑같이 밥 먹고 다치면 피가 나고 병에 걸리면 치료한다. 앤토니오도 동의한 차용증서를 법대로 처리하는 것이며, 이제껏 당한 것을 갚는 것인데 왜 복수를 하면 안 되는가? 유대인이 기독교인에게 해를 끼쳤다면 그들이 가만있겠는가? 복수하지 않겠는가? 시종일관 그를 대하는 앤토니오 무리들의 태도와 재판 과정을 거치고 나면 이제 그의 분노는 정당해 보인다.

재판정에서 대공도, 법학박사로 꾸민 포오셔도 샤일록에게 자비를 베풀 것을 강요한다. 이는 기독교인으로서 너무도 당연한 덕이기 때문이다. 마땅히 옳은 일이니 따라야 한다는 설교 앞에 샤일록의 울분은 무시당한다. 법대로 하자니 그 유명한 ‘피 한 방울 흘리지 말라’는 조건이 붙는다. 그냥 빚을 갚으랬더니, 이젠 시민의 목숨을 앗으려는 불순한 의도 때문에 재산도 몰수당한다. 대공은 ‘자비’를 베풀어 목숨은 살려준다고 한다. 샤일록은 그냥 다 취하라며 망연자실하고 이에 그라쉬아노는 재산이 없어 끈을 살 돈도 없으니 국비로 목 맬 끈을 하나 주자고 조롱한다. 이 얼마나 자비로운 발언인가.

앤토니오와 바싸니오, 포오셔의 관계도 생각해봄 직하다. 일단 바싸니오에 대한 앤토니오의 감정은 진한 우정을 넘어섰다. 누가 사치로 빚더미에 앉은 친구를 위해 사채를 써 돈을 마련해주겠는가. 그것도 바다 건너 상속녀한테 청혼하러 가는 뱃삯과 예물을 준비하기 위한 비용이다. 친구의 생명을 저당잡히고 바싸니오는 벨몬트에 도착해 시험을 치른다. 세 상자 중 옳은 상자를 골라 포오셔를 얻는다. 베니스로 친구를 구하러 가는 남편에게 포오샤는 아내에 대한 사랑과 신실을 상징하는 반지를 준다. 바싸니오는 절대 빼지 않겠노라 맹세한다. 

이 대목이 재밌다. 앤토니오는 빚을 갚지 못해 재판이 열린다며 ‘너를 한 번만 더 봤으면 좋겠어. 나를 사랑한다면 와 줘, 그렇지 않다면 안 와도 돼.’라는 편지를 보낸다. 너그러운 포오셔는 앤토니오의 빚을 두 배, 세 배로 갚고 구하라고 한다. 바싸니오는 아내의 돈을 들고 베니스로 가고, 우유부단한 남편을 믿지 못한 포오셔는 시녀 니리서를 데리고 그를 뒤따른다. 재판이 진행되면서 ‘내 생명도 아내도 이 세상도 앤토니오 너에 비할 순 없지!’라는 바싸니오에게 일침을 가하는 포오셔. 다 된 밥에 재 뿌리는 바싸니오의 성급함과 포오셔가 비교된다….

친구를 살려줘 감사의 인사를 하고싶다는 바싸니오에게 아내의 반지가 갖고 싶다는 (남장한) 포오셔. 바싸니오는 이는 소중한 반지라며 거절한다. 그 말을 듣고 있던 앤토니오는 자신의 목숨값과 공로가 포오셔의 명령에 비견하지 않냐며 반지를 줘 버리라 한다. 그랬더니 바싸니오는 또 반지를 얼른 갖다 준다. 이거 완전 질투 아닌가? 이후 삼자대면에서 포오셔는 그 반지를 앤토니오 손으로 남편에게 건네게끔 한다. 무서운 사람들…. 찌질하고 우유부단하고 씀씀이도 마음가짐도 헤픈 바싸니오가 왜 좋을까? 잘생겼나? 애는 착한 것 같더만….

내 생각에 앤토니오는 게이가 맞고, 바싸니오도 약간 그런 구석이 있다. 이 번역으로는 잘 모르겠지만 어디서 읽은 기억에, 바싸니오가 남장한 포오셔에게 추근대는 느낌이란다. 그렇다면 비슷한 선에서 이해할 수 있겠다. 내노라하는 스펙의 남자들이 무서운 조건(옳은 상자를 고르지 못하면 살아있는 동안 누구에게도 청혼하지 말 것)에 동의하고 얻으려는 아름답고 현명하다는, 돈까지 많은 포오셔. 그녀가 모두를 제치고 바싸니오를 선택한 것은(비록 그 과정은 정반대이지만) 자신이 남편을 컨트롤할 수 있기 때문이었을까? 그가 미덥지 않음을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출간된 이후 반유대주의를 공고히 하고, 나치에게도 이용되었던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사상과 작품 이해에 있어 많은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어찌 되었건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의 말로는 인간적으로 안 됐다. 딸도 자신을 배신하고, 법도 자신의 편이 아니었다. 빈털터리가 된 늙은이는 개종까지 해야 한다. 남은 자산은 아비의 재산을 훔쳐 달아난, 기독교인과 사는 타지에 있는 딸에게 갈 것이다. 제목이 가리키는 주인공 앤토니오의 고결한 우정과 덕을 기리지만 샤일록의 거대한 존재감에 가린다. 샤일록이 극에서 고작 다섯 장면에만 출연한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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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9-05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앤토니오 게이설에 대한 내용이 흥미로웠습니다. 샤일록이 워낙 유명한 캐릭터라서 앤토니오를 진지하게 보지 못했던 것 같아요.

에이바 2016-09-05 21:46   좋아요 0 | URL
희곡으로 보니까 우정을 넘어선 그냥 사랑이더라고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