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 겉 알베르 카뮈 전집 6
알베르 까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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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 키요에 따르면, 『안과 겉』 재판에 붙일 서문은 적어도 1954년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적은 부수의 초판을 절판시킨 뒤 20년 가까이 잠들어 있던 글을 다시 읽고 펴내는 과정에서, 원숙기에 접어든 작가는 초심을 되새긴다. 더 일찍 재판하지 않은 이유는 카뮈에게도 ‘내글구려병’이 있었기 때문이다. 놀랍지 않은가? 그러한 자기 성찰이 있었기 때문에, 그의 세계가 계속해서 팽창하고 발전한 것이리라. 아무튼 이 서문이 정말 좋다. 서문을 거쳐 함께 실린 글을 순서대로 읽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면, 그 특별함을 느낄 수 있다.


빛과 어둠, ‘안과 겉’을 품은 글의 구성은 이야기에서 사유로 발전한다. 에세이들에서 공통적으로 찾을 수 있는 것은 어떤 낯선 체험으로부터, 자신이 살아있음을 인식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낯설다는 것은 세계와 대면하는 것을 가리킨다. 모든 가면을 벗어던지는 여행에서, 혹은 고독에서 ‘우리는 완전히 우리 자신의 표면 위로 노출’된다. 일상적인 ‘이미지 하나하나가 제각기 하나의 상징’이 되고, 모든 산물에 민감해져 ‘명철한’ 도취감, 모순된 도취감을 느낀다. 이러한 체험은 스스로에게서 멀리 떨어지게 하고, 스스로에게 가까이 접근시켜준다.


당연히 두려움이 피어오른다. 그러한 체험은 절망이기도 하고 행복이기도 하다. 눈짓을 까닥하기만 해도 세계의 균형이 깨어져 무너져버릴 것 같은 불안전함, 그러한 단순함의 세계 속에서 스스로가 보잘 것 없이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단순함이야말로 깊은 감동을 준다. 죽음에 대한 의문 앞에 대답을 얻는다. 그렇다. 삶을 그쳐야 할 이유가 없다. 카뮈는 절망에서 삶에 대한 사랑을 찾는다. 그는 태양 아래에서 두려움을 떨쳐낸다. 어두운 절망과 아름다운 풍경들이 대치하는 과정에서 위대함을 발견하는 것이다.


삶은 언제나 죽음을 내포하고 있지만 죽음이 두렵다고 삶에 대한 사랑을 잃어서는 안 된다. 카뮈는 모순에서 나오는 괴로움과 절망도 삶의 일부분이니 받아들여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가면을 벗어던지는 해방이 가져다 줄 감동, 진실의 순간을 마주할 용기를 지녀야 한다고 말이다. 그러려면 명철한 의식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다시 서문으로 돌아와, 카뮈는 말한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더한 절망도 겪었지만 삶에 대한 사랑과 의욕은 전혀 꺾이지 않았다고. 그 서투른 글에 배인 열정은 아름답고 그만큼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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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6-07-06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필립 베송`의 [포기의 순간]이란 책을 읽으면요, 필립 베송이 자신의 책에 독자에게 사인을 해주면서

`틀에 박힌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쩌면 불의의 사건을 겪어야 하는 건 아닐까요?`

라는 글귀를 적어주었다는 구절이 나와요.

에이바님의 이 리뷰를 읽다보니, `에세이들에서 공통적으로 찾을 수 있는 것은 어떤 낯선 체험으로부터, 자신이 살아있음을 인식한다`란 문장에서, 문득 필립 베송의 저 구절이 떠오르네요. 다르지만 비슷한 느낌이 들었어요.

에이바 2016-07-07 10:51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께서 말씀하신 그 문장이 카뮈가 말하는 부조리에 대한 인식, 삶이라는 무대 장치가 붕괴되는 순간인데요. 조금 다르긴 하지만 저는 스토너에서도 저런 향기를 느꼈습니다. 일상에 대한 권태와 낯섬, 이런 것과는 거리가 멀지만 어떤 체험? 그런 것을요. 여기서는 오히려 어떤 의미를 찾았다고 봐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필립 베송의 문장에 더 가까우려나요? 스토너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부분이에요. 그 문단을 인용해볼게요.

***
한번은 저녁강의를 마친 뒤 늦게 연구실로 돌아와 책상에 앉아서 책을 읽어보려고 한 적이 있었다. 겨울이었는데, 낮에 눈이 내려서 바깥 풍경이 하얗고 부드럽게 보였다. 연구실 안은 지나치게 더웠다. 그는 사방이 막힌 연구실 안으로 서늘한 바람이 들어오도록 책상 옆의 창문을 열고 심호흡을 하며 하얗게 변한 캠퍼스를 눈으로 방황했다. 그러다가 충동적으로 책상 위의 불을 끄고는 덥고 어두운 연구실에 앉아 있었다. 차가운 공기가 허파를 가득 채웠다. 열린 창문을 향해 몸을 기울이자 겨울밤의 침묵이 들려왔다. 섬세하고 복잡하며 조직이 성긴 눈(雪)이라는 존재에 흡수된 소리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 하얀 풍경 위에서 움직이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 죽음 같은 풍경이 그를 잡아당기고, 그의 의식을 빨아들이는 것 같았다. 공기 중의 소리를 끌어당겨 차갑고 하얗고 부드러운 눈 밑에 묻어버릴 때처럼. 그는 자신이 그 하얀 풍경을 향해 끌려가는 것을 느꼈다. 눈앞에 한없이 펼쳐진 하얀 풍경은 어둠의 일부가 되어 반짝였다. 그것은 높이도 깊이도 가늠할 수 없는,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의 일부였다. 순간적으로 그는 창가에 꼼짝도 않고 앉아 있는 몸에서 자신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 순간 모든 것이, 그러니까 그 하얗기만 한 풍경과 나무들과 높은 기둥들과 밤과 저 멀리의 별들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작고 멀어 보였다. 마치 그것들이 무(無)를 향해 점차 졸아들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 등 뒤에서 라디에이터가 쩡 하는 소리를 냈다. 그가 몸을 움직이자 풍경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는 이상할 정도로 내키지 않는 안도감을 느끼며 다시 책상 위의 불을 켰다. 그리고 책 한 권과 논문 몇 개를 챙겨서 연구실을 나가 어두운 복도를 걸었다. 제시 홀 뒤편의 널찍한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간 그는 집까지 천천히 걸어갔다. 마른 눈 속에 발을 디딜 때마다 뽀드득 소리가 억눌린 듯 커다랗게 울리는 것을 의식하면서. (스토너 252,25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