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트 휘트먼 시선 : 오 캡틴! 마이 캡틴! 아티초크 빈티지 시선 11
월트 휘트먼 지음, 공진호 옮김 / 아티초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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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월트 휘트먼의 시를 접한 것은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명장면에서였다. ‘오 캡틴! 마이 캡틴!’ 곧잘 인생영화로 꼽히는 이 작품을 여태껏 제대로 본 적이 없지만 말이다. 리뷰를 쓰기 앞서 출연진을 찾아보니 낯익은 얼굴이 많다. 로빈 윌리엄스, 에단 호크, 조쉬 찰스, 로버트 션 레너드…. 시선집의 표제작인 「오 함장님! 우리 함장님!」은 링컨 대통령의 서거 이후 휘트먼이 쓴 작품이다. 오 함장님! 끔찍한 항해가 끝났습니다. 항구 쪽에서 종소리가 들려요, 일어나 저 종소리 좀 들어보세요. 오, 가슴이! 함장님의 가슴에 흐르는 붉은 핏방울이! 함장님을 부르는 함성과 꽃다발을….


월트 휘트먼은 1819년 뉴욕 롱아일랜드에서 태어나 브루클린에서 성장했다. 가정형편 상 열한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일을 하며 다양한 계층의 인물들을 만난다. 인쇄공, 교사, 편집자로도 남북 전쟁 이후 미국 내무성 직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휘트먼은 생애 단 한 편의 시집 『풀잎』을 출간하는데, 1855년 초판에서 1892년 마지막 판에 이르기까지 거의 40년 동안 이 시집을 수정하고 증보했다. 자신이 썼던 시를 평생에 걸쳐 돌아보고 다듬고 추가하는 작업, 그 의지와 끈기 그리고 애정을 넌지시 떠올려보는 것만으로도 압도되는 듯하다.


시선을 읽으며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휘트먼의 『풀잎』과 아티초크의 『오 캡틴! 마이 캡틴!』을 여는 시, 「나 자신의 노래」다. 아티초크 시선은 총 52편으로 구성된 이 시에서 1∼6편, 51편, 52편을 골라 실었다. 나는 표지 디자인 A를 가지고 있는데, 표지를 보면 세 개의 말풍선이 있다. 휘트먼은 ‘I celebrate myself’, ‘I sing myself’라 하며, 아티초크 로고 부엉이 아테네의 말풍선은 이를 패러디한 ‘I artichoke myself’이다. 휘트먼의 대사는 이 시의 유명한 첫 소절의 일부이다. ‘나 찬미하노라 나 자신을, 노래하노라 나 자신을, 나를 이루는 모든 원자 그대를 또한 이루고 있음이라.’


『보르헤스의 말』에서 노작가는 휘트먼을 진정한 시인으로 꼽았다. 『풀잎』은 인간 휘트먼, 신화로서의 휘트먼, 독자라는 삼위일체 인물을 등장시킨 거대한 서사시라는 것이다. 번역가 해설을 보니, 「나 자신의 노래」 첫 행은 전통적 영시의 규격인 약강오보로 시작되며 그 아래 행부터는 형식의 파괴가 이어진다고 한다. 초판 출간 당시 시에는 제목이 붙어있지 않았고, 시인의 이름 없이 그의 모습을 그린 삽화가 포함되었다. 벌써부터 범상치 않다….


「나 자신의 노래」는 자연에 대한 찬미가 주를 이룬다. 휘트먼의 자연은 삶, 생명 그 자체이기에 본능 또한 긍정한다. 인간의 성(性)과 육체를 자유로이 풀어놓았기에 외설적이란 평을 받았고 이는 휘트먼이 국무부에서 해고되는 계기로도 작용한다. 인상적이었던 5편의 일부를 옮겨본다.


그토록 투명했던 어느 여름 아침 우리 함께 누웠던 일을 나는 기억한다,

네가 나의 허리를 가로 베고 누워 있다가 천천히 몸을 돌리더니

나의 셔츠를 풀어 헤쳐 가슴뼈를 드러내고는 맨살이 드러난 가슴에 혀를 찌른 뒤,

손을 뻗어 내 수염을 더듬고, 다시 손을 뻗어 내 발을 잡았던 일을 나는 기억한다. (28쪽)


‘가슴에 혀를 찌르다’는 표현이 눈에 들어왔는데 해설을 보니, 이 연인은 뱀파이어의 이미지라 한다. (『드라큘라』의 저자 브램 스토커가 휘트먼의 팬이었다.) 연인의 성별도 궁금하지 않은가? 나는 남성으로 읽혔다. 사랑과 뱀파이어, 연인…. 앞서 간 휘트먼 선생님…. 


이러한 관능은 ‘창포’ 편에 속한 시들에서 드러난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칼라모스(창포)에서 비롯된 이 이미지는 동성애를 떠올리게 하는데 이에 대해, 휘트먼은 부인도 인정도 하지 않았다. 민주주의를 ‘남성적인 사랑’으로 비유하고 ‘동료comrade’라는 시어를 사용하는데서 암시되는, 당시로서는 과격한 내용을 담은 휘트먼의 시. 작품에 흐르는 진보적 성향, 그리고 시인의 인생과 지인들을 더불어 생각하면 휘트먼이 퀴어 문화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한 이유를 알 수 있다. 이성애와 동성애가 혼재하는 꿈 이야기인 「지나가는 낯선 이여」에서는 플라톤의 『향연』중 아리스토파네스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휘트먼의 영향을 받았고, 그를 극찬한 작가들이 상당하다. 50년대 비트닉, 60년대 히피와 현재에 이르기까지 저항을 상징하며 미국을 대표하는 시인으로서, 영문학사에 드리운 거대한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는 이름들. 휘트먼의 가치는 시대를 초월한 영속성에 있다는 서문을 쓴 D. H. 로런스, 뉴저지 캠든을 찾아와 우정을 나눴던 오스카 와일드, 휘트먼에 헌시를 바친 페르난두 페소아와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율리시즈』와 『피네간의 경야』에서 그를 인용한 제임스 조이스, 비트 세대를 대표하는 잭 케루악과 앨런 긴즈버그, 휘트먼을 번역한 정지용과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까지….


「나 자신의 노래」로 돌아와, 이 시야말로 휘트먼을 대표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한다. 자연에 대한 예찬은 구체적이며, 그 아래 호흡하는 모든 것은 긍정적이다. ‘풀잎’에는 우주의 본질이 들어있으며 ‘죽음은 생명이 나타나는 순간 죽는다’. 시를 읽으며 죽음을 긍정하는 데 이르러서는 세계의 확장까지 느껴진다. ‘나’로 시작하여 ‘그대’로 끝맺는 이 시를 비롯하여, 휘트먼 작품들의 화자를 보며 그가 미국을 대표하는 시인인 이유를 알 듯 했다. 미국이라는 역사를 살아가고, 그 앞에 선 개인이기도 하고, 미국을 대표하는 미국인들 그 자체이기도 한- 참여자이고 목격자이자 그 존재 자체인 인물.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한 「나는 세상의 그 모든 불행을」과 「화해」, 링컨 대통령을 그리는 「오 함장님! 우리 함장님」 그리고 미국적 가치와 희망을 노래한 「인도로 가는 항해」. 사라지지 않는 별들보다 더 영원한 게 있다는「밤의 해변에서」. 그리고 이제 영혼의 자유로운 비상을 할 시간이라는 「맑은 한밤중」을 읽노라면 시대와 세대를 넘어, 휘트먼은 시간과 우주의 생살을 시로 썼다는 D. H. 로런스의 말을 알 듯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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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6-06-25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휘트먼만 유일하게 읽은 외국시인이에요 ㅋ 워낙 시는 잘 못 읽고 확 오는 게 없어서요 그의 정신을 참 좋아합니다 자유롭고 강건한 그의 시를 읽으면 어떤 파도도 타고 넘을 용기가 생겨요 이런 책 사람들 별로 안 읽는데 대단하시네요 ㅋ

에이바 2016-06-25 21:15   좋아요 0 | URL
저 역시 시는 잘 읽지 않지만 아티초크에서 소개하는 시들은 덕심을 끓어오르게 하는 요소가 있어요. 소개하는 작가끼리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함께 실린 자료랑 해설 읽다보면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고 할까요? 표지 아트워크도 예술이고요... 저는 용기까진 안 생겼는데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

루쉰P 2016-06-28 20:52   좋아요 0 | URL
흠 아티초크가 덕심을 끓어오르게 하는군요. ㅋ 안 그래도 저도 요즘 덕심을 폭발 시키면서 한 작가에 집중을 하고 있습니다. 너무 많은 책을 얇게 읽다보니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아, 덕심 있게 독서를 해 볼라고 계획 중이거든요 ㅋ

제가 좋아하는 취향의 소유자 이신 듯 싶어요 앞으로도 재미난 리뷰 부탁드려요 ㅋ

에이바 2016-06-29 10:46   좋아요 0 | URL
제 경험상 작가에 집중하면 그 사람의 세계에 빠져들 수 있어 더 좋더라고요. 어떤 경우엔 실망도 하지만... 루쉰P 님도 즐거운 독서하시고 좋은 리뷰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