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소음]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소음
후안 가브리엘 바스케스 지음, 조구호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콜롬비아 보고타. 얌마라는 괜찮은 집안에서 나고 자라 이십대 중반에 벌써 모교 법학과에서 강의를 맡고 있다. 말쑥한 외모와 안정된 직장. 그는 다가오는 유혹을 거절하지도 않고, 취미들로 소일하며 시간을 보낸다. 당구장에서 만난 라베르데라는 남성은 얌마라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 그는 적당히 선을 긋지만 어느 순간 그이의 집을 방문하는 등 어울리게 된다. 한동안 만나지 못한 라베르데는 얌마라에게 카세트를 들을 곳을 알려달라 부탁한다. 함께 간 문화센터, 카세트를 들으며 펑펑 우는 라베르데를 짐짓 외면하던 얌마라가 사라진 그를 찾아 발을 내딛었을 때, 총소리가 들린다. 리카르도가 쓰러진다. 얌마라도 쓰러진다.


얌마라는 회복 중이다. 의사는 말한다. 기능장애는 전부 정상으로 돌아왔어요. 공포는 보고타 사람들의 주요 질병이니 특별한 상황이 아닙니다. 결국 지나갈 겁니다. 얌마라는 거기엔 관심이 없다. 그저 자고 싶다. 그를 둘러싼 소음들로부터 해방되고 싶다. 일상적인 소리, 어떤 특정한 소리들은 불안과 공포를 의미했다. 이유 없이 울음이 터졌다. 자신이 병들어 있다는 생각, 이어지는 수치심은 더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점점 내면으로 침잠하는 얌마라의 사회생활, 가정생활은 최악의 상황에 몰려 있었다. 떨쳐낼 수 없는 PTSD를 안겨준 사건- 그는 라베르데가 살해된 사건, 라베르데라는 남성에 대한 조사를 시작한다. 그리고라베르데의 딸 마야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평화봉사단 활동을 위해 보고타에 온 일레인 프리츠는 하숙집 아들인 리카르도 라베르데와 사랑에 빠진다. 리카르도는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비행기 조종사가 된다. 비행에 대해 이야기할 때 눈을 반짝이던 청년은 이제 마약을 운반하기 시작한다. 몰락한 집안과 아내와 아기를 부양하기 위해서다. 탕. 탕. 리카르도가 왜 집에 오지 않는지 알려주러 온 남자는 권총을 꺼내 하늘을 쏘았다. 두 발이었다. 일레인과 어린 마야는 살아남았다. 남편은 오지 않았다. 아내와 아이는 십 이년간 숨죽여 살았다. 출소한 남편을 만나기 위해 일레인은 비행기를 탄다. 보고타로 향하던 비행기는 착륙하지 못했다. 라베르데가 듣던 카세트는 추락한 비행기 블랙박스에 녹음된 기록이었다.


간헐적인 비명소리 또는 비명소리와 유사한 소리가 들린다. 내가 포착할 수 없는 소음도 들리는데, 그게 무슨 소음인지는 전혀 알 수 없다. 사람 소리가 아닌 소음 또는 바로 그 사람이 내는 소음, 소멸되는 생명들의 소음이지만 깨지는 물질의 소음이기도 하다. 높은 곳에서 물건들이 떨어질 때 나는 소음, 중단되었기 때문에 영원한 소음, 결코 끝나지 않을 소음, 그날 오후부터 내 머리에 계속해서 울리고 있으며 사라지려는 기미를 보이지 않는 소음, 내 기억에 항상 남아 있는 소음, 횃대에 걸린 수건처럼 내 기억에 걸려 있는 소음이다.


그 소음은 965편의 조종실에서 들리는 마지막 소음이다.


소음이 들리고, 그러고는 녹음이 중단된다. (110-111)


중단되었기 때문에 영원하고, 결코 끝나지 않을 소음. 얌마라가 겪는 PTSD, 아니 보고타의 얌마라 세대에게 눌러 붙은 그 진득한 공포의 잔재는 마야가 건네 준 편지 한 줄로도 형상화할 수 있는 것이었다.


보고타가 그렇게 될 거라고 내게 알려준 사람은 없었어요. (184)


콜롬비아의 마약 카르텔, 그 왕국이 심은 공포의 정치. 특별한 시대라 불리는 시기. 미래를 위해 마리화나를 재배하던, 많은 사람들이 순진하던 시기. 폭탄이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몰라 와야 할 사람이 오지 않으면 걱정을 하는, 마치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는 듯 두려워해야 했던 시기. 자신이 안전하다고 알리기 위해 공중전화의 위치를 확인하고, 어느 집에서 전화를 빌려 쓸 수 있는지 알아야 하고, 공공장소엔 나가질 않던 그 시기. “우리 그 때 유행하던 그 노래 있잖아.”가 아니라 “라라 보니야가 살해당했을 때 당신은 어디에 있었나요?”라고 묻는 시기. 얌마라와 마야 세대는 그 무차별적인 폭력에 노출된 채 살아왔다. 얌마라는 소망한다. 자신의 오염된 세계가 딸 레티시아에게 닿지 않기를, 그리고 자신의 가정을 보호할 수 있기를 말이다...


개인은 시대와 환경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일견 평범해 보이던 일상이 실은 공포로 점철되어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나를 구성하는 현재가 실은 외면하고픈 과거를 껴안고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두려움으로 가득 찬 삶은 어떤 의미일까. 다들 그렇게 사니까 나의 공포는 특별하지 않다고 진단받는 것은? 공포와 고통을 떨쳐내지 못해 조롱당하는 것은? 우리는 과연 시대와 환경으로부터 분리될 수 있는 존재일까? 나는 이 소설에서 우리 사회를 본다. 우리를 흔들어 놓은 사건들을 본다. 경중이 너무 무거워 외면하고팠던 진실을 본다. 내 일이 아니라며 결국 고개돌렸던 일들을 본다. 사소한 일들로 치부되었던 일들을 상기한다. 모든 것은 삶이었다. 결국 삶이었다. 떨쳐낼 수 없었던 내가 살아가는, 나를 구성하는 삶이 펼쳐진 배경이었다.


동시에 나는, 우리가 현재 순간에 대한 최억의 심판관이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하고 있는데, 아마도 그 이유는 사실 현재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것은 기억인데, 내가 방금 전에 쓴 이 문장도 이제는 기억이 되고, 독자 여러분이 방금 전에 읽은 이 단어도 기억이 되기 때문이다. (27)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6-06-01 21: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03 09: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REBBP 2016-06-03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문장이 좋았어요. 뭐라고 딱 짚어서 말할 수는 없지만, 약간 한국 문학이랑 비슷한 부분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일상에서 어떤 공포(전쟁, 테러 등등)을 늘 염두에 두고 살면서도 거기에 무감각하게 사는 한국사회랑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구요. 쓰신 글 중 마지막 문단 너무 좋아요

에이바 2016-06-06 11:28   좋아요 0 | URL
남미 문학이 저랑 안 맞나 봐요. 문장을 따라가는 호흡이 좀 힘겨웠어요. 저 역시 한국 문학이 떠올라서 사족을 달았다가 지워버렸는데요. 여러 모로 기시감이 들어 묘하더라고요. 분명 배경도 이름도 다루는 소재 마저도 다른데 결국 이 멀리 한국과 공감할 여지가 많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여지껏 읽어왔던 남성 작가가 쓴 한국 소설 같았어요. 특히 마야와 관계하는 부분에서, 마야라는 캐릭터가 등장했다 퇴장하고 캐릭터의 역할이 부차적으로까지 느껴지는 부분에서요. 자지 마! 자지 말라고! 를 외다 책을 덮었다가 리뷰 안 쓴 거 알아차리고 좀 놀랐었다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