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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터 캐리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6
시어도어 드라이저 지음, 송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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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채워지지 않는 꿈. 정신을 갉아먹고 유혹하는 이 허망한 환상은 우리를 손짓하며 부르고, 손짓하고 또 부르다가 마침내는 죽음과 소멸이 그 힘을 녹여버리고 눈먼 우리를 자연의 품으로 되돌려보낸다. (383쪽)


이 작품의 미덕은 일단 아주 재미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19세기 말, 20세기 초 도시화되는 미국을 그대로 재현해냈다. 케이크를 한 조각 깨끗이 잘라 접시에 올려 내듯이, 아주 예리한 시선으로 사람들의 욕망과 허위를 포착해낸 그야말로 칼날 같은 소설이다. 당시엔 ‘저속하고 문란한 책’이라는 악평을 받았으며, 그 여파로 인해 드라이저의 두 번째 소설은 십년이 지나고 출간된다. 그러나 지금은 미국의 자연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이니, 역사의 승리자라 할 것이다. 반발이 거세 사장되기를 기다렸던 초판은 1008부가 제본되었다고 하는데 왠지 중국인들이 좋아할 숫자라는 생각을 좀 했더랬다.


주인공은 열여덟 소녀 캐리. 고향마을을 떠나 시카고에 도착해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하지만 생활비를 보태야 할 언니네 집의 검약적 분위기에 곧 주눅이 든다. 겨우 구한 일자리는 집세를 내고 나면 교통비도 모자라는데 그마저도 비를 맞고 앓아누워 잘리고 만다. 귀향해야 할 상황에 만난 드루에는 캐리를 데려다 인형 놀이를 시작한다. 그의 집에서 가장 반짝이는 가구가 되어, 그의 욕망을 채워주는 캐리. 그녀는 똑똑하지는 않지만 감성이 풍부했고, ‘쾌락을 좇는 강한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 드루에는 경제적 원조와 환경을 통해 문화를 제공함으로써, 그녀에게 우아한 몸짓과 태도를 학습시킨다.


한편 시카고의 성공한 이들이 모이는 술집 지배인 허스트우드는 처자식을 속물처럼 여기지만, 자신의 삶에 대체로 만족하고 있다. 드루에의 초대로 캐리를 만난 그는 딸뻘인 그녀를 유혹하려 애쓴다. 언제나 더 나은 것을 지향하는 캐리는 허스트우드의 노련한 매너에 끌린다. 우연히 출연한 연극에서 뛰어난 연기를 보여준 캐리를 보고 드루에는 그녀를 재평가하며, 결혼할 마음을 먹는다. 허스트우드 역시 그녀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지만 아내의 의심이 한껏 깊어진 상태였다. 결국 그는 캐리를 거짓으로 불러내 뉴욕으로 데려가 새로운 시작을 희망하지만 삶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캐리는 예쁘고 감성적이며 성공 후에도 친절함과 고운 심성을 잃지 않는다. 혼전동거를 하게 된 것에는 캐리의 욕망도 작용하였지만, 그녀와 결혼하겠다던 남자들의 기만 때문이기도 했다. 아직 어려 경험이 부족한 여성을 손에 넣은 후, 불성실해진 남성들의 변화는 캐리의 젊음과 열정과 대비되며 그녀가 이 관계를 종료하는데 힘을 실어준다. 결국 캐리를 ‘준비’시켜 인생이라는 무대로 내보낸 선생은 드루에와 허스트우드였던 것이다. 두 남자에게서 얻은 교훈으로 캐리는 성공한 여배우가 된 이후 찾아오는 어리석은 유혹들에 반응하지 않는다. 또한 에임스를 통해 그녀가 갖지 못한 것,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을 받아들이고 욕망하게 된다.


시카고에서의 캐리가 저임금 노동자의 현실을 보여주었다면, 뉴욕의 허스트우드는 성공했던 삶이 어디까지 추락하는지를 보여준다. 이혼은 경제적 몰락을, 범죄는 사회적 몰락을 가져온다. 인생의 절정기, 장년을 넘긴 허스트우드의 변화는 서서히 이루어진다. 그 나름대로 분투하나 옛 광영에는 이르지 못하며, 분명한 위기에 대처하기보다는 회피하는 모습을 보인다. 일자리를 구하려던 노력은 경제 불황으로 인한 노동쟁의와 맞물려 그를 좌절시킨다. 결국 허스트우드는 현실을 부정하며 과거에 취해 낮에도 백일몽을 꾸며, 무기력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그가 궁핍과 비참의 세계에 들어서는 과정은 너무도 생생하며, 캐리의 성공과 대비되어 비극성을 더한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욕망에 이끌리는 삶을 산다. 해외여행과 경마장 정기권으로 상류층이 되고픈 욕망을 드러내는 허스트우드의 가족들, 아름다운 여성을 유혹하고 만족을 얻는 드루에, 젊고 아름다운 여성을 욕망하며 사회적 지위를 팽개치게 되는 허스트우드, 더 나은 삶을 찾기 위해 감성에 안주하는 캐리에 이르기까지... 욕망에 따라 행동한 누구는 부와 명예를 누리고, 누구는 몰락하는 이유는 설명되지 않는다. 이 세계관에서 인간은 결정적인 운명에 저항할 수 없기 때문인데, 사회상을 충분히 녹였기에 설득력을 얻는다. 그리고 수동적인 캐리, 욕망에 충실한 캐리가 성공의 길에 이르는 장면에서 고개 돌려 비난하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그녀의 성장을 지켜봐온 데서 오는 연민도 있을 테지만, 그러한 욕망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정직한 노동이 보수가 적고 견디기 힘든 것이라면, 그 길이 너무나도 멀고 멀어서 발과 마음만 지칠 뿐 아름다움에는 결코 닿을 수 없다면, 아름다움을 좇는 끌림이 너무나 강렬하여 칭찬받는 길을 버렸다면, 그래서 자신의 꿈에 빨리 닿을 수 있는 멸시받는 길을 택했다면, 그 누가 먼저 돌을 던질 것인가? 악이 아니라 더 나은 것에 대한 갈망이 그릇된 길로 이끄는 경우가 더 많다. 악이 아니라 선이, 이성적인 사고에는 익숙지 않고 느낄 줄만 아는 정신을 유혹하는 일이 더 많은 것이다. (651쪽)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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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BBP 2016-03-24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막 끝냈어요. 초 중반에는 좀 지루했는데, 반 넘어가서는 너무 재밌어서 밤새도록 읽었다는. 인터넷 치면 원문 Audiobook 이 있어요. 가끔 그거 들으면서 들었어요.

에이바 2016-03-25 12:33   좋아요 0 | URL
방대한 분량임에도 힘들이지 않고 읽었어요. 별 다섯 주려다 참았다는... 이번 리뷰도 부족함이 많군요. 쓰고 싶은 이야기를 제대로 못 쓴 듯... 리뷰 읽으러 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