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리 알려진 전기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몽테뉴 약전이다.

몽테뉴에 대한 이야기지만 책 제목은 <위로하는 정신>이다. 책의 부제(체념과 물러섬의 대가 몽테뉴)에 몽테뉴가 주인공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는데. 책 제목에 몽테뉴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은 정확한 이유야 나로서는 모를 일이지만 혹 몽테뉴라는 이름이 예비 독자들에게 살짝 고루하게 느껴질까 염려한 출판사측의 고의가 아니었을지 추측해본다.

몽테뉴에 대해서는 ‘중세 때 수상록이라는 수필집을 쓴 인문학자‘ 정도로만 피상적으로 알고 있음에도 나 역시 그에 대해서는 알아보려 노력조차 시도해보지 않았으니, 나와 같은 이들의 몽테뉴에 대한 생각을 모를리 없는 출판사가 책이 더 많이 읽히길 바라는 마음에서 설령 그런 잔머리를 굴렸대도 그리 비난받을 일은 아닐 듯하다.

하여간 몽테뉴에 대해서는 관심이라곤 눈꼽만큼도 없던 내가 <위로하는 정신>을 읽기로 맘 먹은 것은 순전히 저자인 슈테판 츠바이크에 대한 각별한 애정때문이다. 지금껏 나를 실망시켜 본적이 없는 츠바이크가 썼다면 그것이 몽테뉴든 뭐든 상관이 없으니까 말이다. 이런 내 마음을 독심술로 읽은 것마냥 츠바이크는 서문에 이런 말을 남기고 있다.

˝아직은 젊어서 경험이 부족하거나 좌절을 겪은 적이 없는 사람은 그(몽테뉴)를 제대로 평가하거나 존중하기가 어렵다˝

내 마음을 똑 들켰다. 츠바이크는 이어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경험을 해보고 시련을 겪어보아야만 비로소 몽테뉴의 지혜와 위대함을 존중할 수 있는....˝

책 첫 페이지를 열자마자 이 책의 정체성과 목적이 분명해졌고. 더욱이 이 책은 나처럼 몽테뉴를 ‘껌딱지‘로 알고 있는 이를 위한 책이었음이 더욱 명확해졌다.

...

˝몽테뉴가 평생 ‘나는 어떻게 살고 있나?˝라는 질문 말고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에게서 나타나는 놀랍고도 선량한 점은 그가 이 질문을 명령문으로 바꾸려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즉 ‘나는 어떻게 살고 있나?‘를 ‘너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바꾸지 않았다는 것이다. - p.110-

책을 다 읽은 지금에는 책의 제목처럼 <위로하는 정신>으로부터 위로받는 정신이 되었다.

이제는 몽테뉴의 <수상록>을 읽어볼 참이다. 검색을 해보니 철학자 파스칼은 몽테뉴를 우유부단하고 함께 일을 할 수 없는 사람으로 비난했다고 하는데, 이 에피소드를 다룬 책 역시 읽을 책 목록에 올려 놓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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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러스틴의 세계체제 분석 당대총서 20
이매뉴얼 월러스틴 지음, 이광근 옮김 / 당대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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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체제 분석은
이 책의 제목이지만 단지 이 책만을 가리키는 협소한 말은 아니다. ‘세계체제 분석‘ 이라는 단어는 이보다 훨씬 큰 뜻을 담고 있는 사회과학적 용어다.

언뜻 생소할 수 있는 ‘세계체제 분석‘이라는 단어는
1) 분석의 공간적 단위로 개별국가가 아닌 세계체제를,
2) 분석의 시간적 범주로 단기가 아닌 장기를 대상으로 삼아
3) 역사/정치/경제/사회 등 개별학문의 융합적 접근을 지향하는 저술 방법론 혹은 이 방법론을 활용한 저작을 일컫는다.

<월러스틴의 세계체제 분석>은
세계체제 분석이라는 학문 분야를 개척한 월러스틴이 쓴 개론서다. 개론서라고 하면 딱딱하고 재미없다는 선입견을 가질 법한데, 적어도 이 책에 한해서라면 그것은 그야말로 선입견이다.

<월러스틴의 세계체제 분석>은, 쉽!고! 재~미~있~다~.

좋은 책을 고르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그렇지만 좋은 책이 가져야 할 조건으로 1) 사고를 확장하고, 2) 상식과 가치관을 전복하고, 3) 논쟁을 유발하고, 거기에 더해 4) 재미까지 있어야 한다고 여기는 이라면 이 책 <월러스틴의 세계체제 분석>은 책상에 이미 꽂혀있을, 이제라도 꽂혀있어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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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분기 - 중국과 유럽, 그리고 근대 세계 경제의 형성
케네스 포메란츠 지음, 김규태 외 옮김, 김형종 감수 / 에코리브르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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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중심적인 시각에 따르면 종교개혁, 르세상스, 과학기술의 발달, 대항해시대 개막과 지리상의 발견 등이 결국엔 서양의 팽창을 야기한 것으로 본다. 곧 15세기 이후 유럽에 내재했었던 우월함의 표출이 서양이 동양을 지배하게 된 근본원인이라는 것인데, 이는 서양의 동양지배를 정당화한다.

이 책은 이와 같은 유럽 중심주의에 대한 반론이다. (이번에 알았는데 유럽중심주의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는 학자들이 미 캘리포니아주의 여러 대학에 있는 까닭에 ‘캘리포니아 학파‘라고 불린다고 한다).

저자 포메란츠는 유럽의 우월함이 그리 대단했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는 1) 유럽이 동양에 대해 우월한 힘을 가지게 된 시기는 15세기가 아니라 기껏해야 18세기 중반 이후이며, 2) 유럽이 동양에 대해 우월할 수 있었던 이유도 ‘쉽게 캐낼 수 있는 석탄 매장지의 발견‘ 등과 같이 아주 하찮은 행운 섞인 잇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주장한다.

흥미롭고 도발적인 이 책 <대분기>는 이미 2000년 페어뱅크 상을 수상하며 역사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저서로 선정되기도 했으니 학술적으로는 이미 평가를 받은 것으로 볼 수 있겠다. 그러니 호기심 많고 용감한 독자라면 이 책을 덥썩 사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깊은 좌절감, 하염없는 한숨, 뒤늦은 후회와 같은 감정의 낭비를 예방하려면 이 책을 사기 전 아무 페이지라도 펴서 찬찬히 살펴보는 수고로움 정도는 기꺼이 지불해야 한다.

책 어느 부분을 펴더라도 도저히 ‘묵과하기 어렵고 심각한‘ 번역 상의 문제가 있음을 금방 알 수 있다. 아마도 독서에 익숙한 독자라면 우리 글을 읽으면서도 ‘영어 구문‘을 생각하는 이 중의 수고를 할 것이고, 독서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라면 책을 편 후엔 ‘난수표‘를 보는 듯한 착시에 빠져 꿈나라로 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합리적 소비자라면 영어책 혹은 수면제를 구입하는 것이 좋다.

이 책 <대분기>는 다시 번역되어야 한다. 출판사가 그럴 의지가 있다면 반드시 역자는 이 분야의 전공자를 택하라고 권하고 싶다. 전문 번역자가 학생들의 도움을 받아 번역한 것으로 보이는 이 책은 확신컨대 그들 스스로도 무슨 내용인지 이해하지 못한 채 번역을 했다. 또 책을 읽어보지도 않고 추천사를 쓴 것으로 추정되는 모 대학교 교수는 학자로서의 양심을 지키고, 가장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를 가지고 강단에 서는 게 당신의 의무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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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02-10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읽었을 때 문장이 이해하기 힘들었다고 느꼈는데, 번역이 좋지 않았군요. 처음 알았습니다. ^^;;
 

사법부 비리와 일부(가 아닐지도 모를?) 판사들의 판결로 시끄러운 요즘. 창비에서 추천한 읽어볼 만한 책 4권.

김영란 대법관의 <판결을 다시 생각하다> 와 김두식 교수의 <불멸의 신성가족>은 이미 읽었던터라 추천 책 나머지 두 권<법률가들>과 <대법원, 이의 있습니다>는 이 참에 읽어보기로. 마음만 앞서서 여태 못읽었던 한홍구 교수의 책 <사법부>도 같은 주제로 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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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의 시대 - 뉴스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
알랭 드 보통 지음, 최민우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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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뉴스만 봐도 충분했었는데 이제는 뉴스만 보면 바보되기 십상인 세상이다. 뉴스를 생산하는 사람, 소비하는 사람 모두 상대방을 바보라고 생각해선지 서로 무관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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