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 퍼플 Real Purple 1
박소희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1년 5월
평점 :
품절


<리얼 퍼플>
박소희의 작품으로 3권짜리 중편이다.
박소희의 그림은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진지 컷과 코믹컷의 다이나믹한 조화!

리얼 퍼플의 소개 역시 <불면증>과 같다. 그런데 조금 다르다.
<불면증>의 부모는 사고와 병으로 각기 배우자를 잃고 재혼을 하지만
<리얼퍼플>에서는 여자 아이의 부모는 이혼을 한다. 아빠가 바람을 피워서.
순한 아줌마의 전형이던 여자아이의 엄마는 남편을 바람을 알아채자 이혼을 하고
여자아이와 함께 재혼한 집으로 들어온다. 여자아이의 남동생은 아빠와 함께 산다.
그 아줌마가 남편을 용서하지 않고 이혼을 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냥 아줌마였으니까.  


하지만 삶은 때로 알 수 없는 부분도 있는 것이며 예상되로 살아지지 않는다.

비록 부부는 원수가 되었어도 남매의 사이는 각별한다.
여자아이는 단 둘이 살고 있는 아빠와 남동생의 아파트에 종종 찾아간다.
음식도 해 먹고, 아빠의 어깨를 주무르기도 하고,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기도 한다.
부부는 헤어지면 남남이어도 부모와 형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에피소드들.
하지만 여자아이보다 어린 남자아이는 엄마에게 매정하고 모진 말을 던진다.
엄마가 싫어 보다 훨씬 더한 말.
남자아이가 일으킨 문제로 학교에 찾아간 엄마.
모자만 걸어 나오는데 엄마가 묻는다.

"김치 떨어지지 않았니? 이번에..."
"엄마, 그집 살더니 입맛도 변했나봐. 젓갈이 너무 들어가 비려서 먹을 수가 없었어.  저번 것도 곰팡이 나서 버렸으니까 이제 김치 해주지 마"

그 말을 들은 엄마는 아무말도 못하고 돌아서 운다.
사실 그 전날 남자아이는 식탁에서 아버지에게 김치 아껴 먹으라는 말을 듣는다. 그러면서

"마지막이니까 김치 아껴 먹어. 니 엄마가 김치 하나는 잘 담구었는데..."

라고 말한다.
그 말을 하는 아버지의 초라함이 싫어 엄마의 김치를 바닥이 보이도록 아껴 먹으면서도 모질게 말을 하는 남자아이는 엄마가 돌아간 뒤 가슴아파 한다. 이제 엄마는 남이라는 사실에....

여자아이가 들어간 집, 엄마가 재혼한 남편의 가족은 좀 많다.
남자의 자식만 셋이니까. 남자는 좀 사는 사람이다.
독립한 큰딸, 붙임성 있는 둘째딸 - 둘 다 성인이다.
그리고 세번째인 여자아이, 여자아이와 동갑이나 생일이 늦은 남자아이.
상황과 환경을 스스로 결정해서 살아갈 수 있는 자식은 별로 없다.
더구나 경제능력이 없는 학생이라면...엄마와 함께 살기는 하지만
'남'들이 득실거리는 집에서 알게 모르게 주고 받는 타인의 눈치를 받으며 살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두 가정은 모두 상처가 있는 사람들이며 서로 상처를 주는 사람들이다.

주인공은 이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다.
사진 찍기를 좋아해 대학에 들어가 사진동아리에 들어간 남자아이는 이렇게 말한다.

"사진이란 참 독특해서 산을 찍으면 그 산이 내것이 되고 하늘을 찍으면 그 하늘이 내것이 된다.
하지만 수천번을 찍어도 내 것이 될 수 없는 게 있다."

마지막 나레이션에 등장한 사진은 여자아이가 담겨있다.
고백하지 않는다. 말하지 않는다. 정말 담담하게 살아간다. 사이가 나쁘지 않다.
하지만 정적이면서 우울한 분위기 속에 그들의 숨겨진 욕망이 있다.
서로 사랑하고 싶어하는 욕망이.
그리고 그들은 서로 알고 있다. 자신들이 서로를 의식하고 있음을.

장면 내내 여자아이는 만화 주인공 같지 않게 긴 머리를 늘어뜨리거나 묶고 나온다.
-영화가 머리 그냥 길렀을 때를 생각하면 될 듯. 만화 주인공이라면 보다
화사한 머리를 해야 하는데...-
그리고 아줌마스럽게 긴 치마만 줄창 입는다. 독자는 짜증이 난다.
2권에서 그 의상과 스타일의 비밀이 풀린다.
남자아이가 누워있는 침대에 걸터앉은 여자아이가 고백한다.

"넌 기억하니? 니가 텔레비전 보면서 머리 긴 여자가 좋다고 했던거?
그리고 바지 입은 여자보다 치마 입은 여자가 보기 좋다고 했던거?
안경 쓴 여자는 왠지 차가워 보여 싫다고 했던거? 난 하나도 잊어버리지 않았다.
그 때부터 난 머리를 기르고 치마만 입었어...넌 알고 있니?"

결국엔 줄줄 흘려버릴 눈물을 방울방울 지으며 고백하는 여자아이...
여하간 그들도 종국에는 각자의 마음을 고백하고 받아들인다.

하지만 여기서 또 다른 각도의 시선이 나온다.
여자아이의 아버지가 피운 바람의 대상이 바로 엄마가 재혼한 남자의 큰딸이었던 것,
그것은 엄마와 큰딸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었다.
그래서 두 사람의 사이는 항상 미묘하고 좋지 않았다.
엄마는 계획적으로 남편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 재혼을 한 것이었다.
아빠도, 남동생도, 여자아이도, 엄마의 남편도 그 사실만은 몰랐다.
하지만 남동생이 그 사실을 눈치챈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엄마를 찾아가던 남동생은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엄마보다, 아빠보다 미친듯이 절규하는 여자아이.
시신의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게 망가진 모습에 절망하며 쓰러진다.

그런데, 이 작품의 의의는 해피엔딩이라는 것이다.
남동생의 죽음 이후 여자아이는 아버지와 함께 살 것을 결심하고 집을 나간다.
그리고 남자아이는 여행을 떠난다.
역으로 갈까 말까를 망설이던 여자아이는 참을 수 없는 시간의 압박에
마침내 맨발, 잠옷차림에 짝짝이 슬리퍼를 신고 역으로 뛰어간다.
남자아이가 간 곳은 여자아이의 시골이었다.
남자아이가 그곳을 찾을 줄 모르고 여자아이는 홀로 그곳을 찾았다가 남자아이와 재회한다.
모든 것이 느리게 흘러가는 시골에서...
여자아이는 묻는다.

"너 내가 방귀 뀌는 거 본 적 있어?"
"아니"

등등 각종 추잡한 '일상'을 본 적 있는지 묻는다.
남자아이는 모두 "아니"라고 대답한다.
여자아이는 자신도 남자아이의 그런 '일상'은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둘 다 안 보는 곳에서만 그런 '일상'을 했던 것이다.
서로 좋아하니까...

여자는 말한다.

"우리 지금 이 감정을 그대로 놓아 두자.
지금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시간이 지나서 내가 니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방귀끼는 날이 올거야.그러니 지금 이 감정은 그대로 두자~"

이렇게 그들은 그들만의 해피엔딩을 한다.
쉬운 일도 아니고 극한의 반대와 역경이 있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그들의 결정과 행동이 너무 자연스러워서...그 마지막 엔딩이 너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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