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증 1
박은아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1년 5월
평점 :
품절


 

새콤달콤한 작품을 주로 해온 박은아의 불면증은
도저히 그녀의 작품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색다르다.
길쭉한 그림은 같은데 내용과 분위기가 너무 달라서...
불면증은 각각 홀로된 아빠와 엄마를 둔 두 주인공이
부모님의 재혼으로 남매가 된 이후의 이야기이다.
부모님의 사랑은 이해와 포용의 결합이며 불같은 정열과 사랑이
아니었는지 모르지만 두 아이들은 너무도 젊다 못해 어리다.
고등학생이며 동갑인 그들은 다시 찾은 가정의 소소한 행복을 위해
이미 생겨버린 동생을 위해 서로를 향해 이끌리는 감정에 대해
주의하고 배려하고 노력하지만 결국에는 사랑하고 만다.
차갑고 이지적인 여자와 순수하고 활달한 남자아이.

그들이 가족이 된 그 해,
여자 아이는 여름 내내 불면증에 시달린다.
그러다 어느날 푸르스름한 여명도 밝기 전 혼자라고 생각했던 거실에서
남자 아이를 만난다.
같이 등교를 하면서 지하철에 자리가 생기자 여자아이를 앉게 하고 빤히 바라보는 남자아이.
이러한 사소한 감정과 조용한 사건들이 하나씩 이어지면서
사랑하고 재채기는 감출 수 없는지 노력하고 노력해서 마음먹은 벽은
차츰 허물어지고 그들은 서로의 사랑을 인정한다.
사랑을 인정하기까지가 아무리 힘든 감정의 소모였더라고 사랑한다고 갑자기 바뀌는 것은 없었다.
지속되는 평범한 일상들...

같이 살고 있다 뿐, 서로에게 준 것도 받은 것도 없는 것이 아쉬운
여자아이는 남자아이에게 사진을 한 장 달라고 부탁한다.
바닷가에서 찍은 남자아이의 어린시절 사진.
사진 속에 남자아이는 활짝 웃으며 무언가를 신기하게 보고 있다.
그게 무엇이냐고 묻는 여자아이에게 남자아이는 대답한다.
세상에서 하나뿐인 투명한 초록색 돌인 줄 알고 너무 예뻐서 좋아했는데
알고 보니 사이다 병 조각이 마모된 것이었다고.
여자아이는 그 말을 듣고 작게 웃는다.

파국은 예정되어 있었고 둘의 관계를 새엄마에게 들킨 여자아이는
보다 이성적이면서도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추궁과
냉랭한 대우를 받으며 지방으로 갈 것을 종용받는다.
믿을 수 없게도 이 도도했던 여자아이는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고
새엄마에게 사정을 한다.
자신을 내보내지 말아 달라고..
하지만 만삭의 새엄마는 두 아이의 감정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어 자신의 아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간다.
한시라도 서로가 보고 싶은 이들은 잠깐이라도 얼굴을 보기 위해 만날 것을 약속하고 역으로 향한다.
그러나 역으로 달려가던 남자아이는 다리 밑에서 놀던 사촌동생이 물에 빠지자
동생을 구하기 위해 물에 뛰어들고 결국 숨지도 만다.

낯설고 낯설어 인정하기 싫은 영안실에서
새엄마의 금속성 짙은 통곡소리를 들으며 여자아이의 마음은 다시 차가운 벽 안으로 꽁꽁 닫혀 간다.
남자아이를 만나 열리고 따뜻해졌던 감정 한 구석은 이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이 되어 버린 것이다.
아들을 보낸 새엄마는 딸을 낳았다.
여자아이의 피가 섞인 동생이다.
여자아이는 그래도 동생임에 분명한 그 애기가 남보다 더 싫다.

시간이 흘러 여자아이는 학교를 마치고 담담하게 살아간다.
다른 사람이 느끼기에는 정말 아무렇지 않고 아무 상처도 없는 듯이.
하지만 어느해 여름, 바닷가에 놀러간 여자아이는 모래 사장에서
파도에 마모되어 돌멩이처럼 반질거리는 사이다 병 조각을 발견하고 미친듯이 울음을 터트린다.
한번 열린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는 슬픔이 되어 터져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그녀는 일상으로 돌아간다.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차가운 마음을 가진 일상으로.

2권짜리 중편 <불면증>
잠이 오지 않은 밤, 혼자서 깨어 있을 때 읽을 만한 책으로 추천~
여기 어울리는 음악 있으면 추천 바라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