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꽃미남을 찾아서 – 삼국지 편

가정의 달 5월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외에 부처님의 생일부터 사랑하는 연인들이 만들어낸 ‘로즈데이(2월14일 발렌타인데이의 세 번째 재탕, 5월14일 – 남자가 여자에게 장미꽃을 선물하는 날)’까지 5월은 항상 공인된 기념일로 가득하다. 5월을 가정의 달이라고 하는 이유는 8할이 어버이날 때문이다. 어린 시절에는 그저 색종이로 카네이션을 만들고, 비뚤비뚤한 글씨로 감사 편지를 썼지만, 스무 살이 넘어서도 색종이로 꽃을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형제가 많은 집에서는 오랜만에 형제들이 함께 모여 머리를 맞대고 부모님께 드릴 선물을 고민하며 우애를 돈독하게 쌓는다. 삼국지에서 ‘남동생’이라는 타이틀로 유명한 인물로는 오나라의 손권(孫權)과 위나라의 조식(曹植)이 있다. 손권(孫權)은 형의 뒤를 이어서 오나라의 군주가 되지만 조식(曹植)은 위나라에서 정치적으로 영향력 있는 입지를 갖지 못하고 죽었다. 조식(曹植)에게는 슬픈 일이었지만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조식(曹植)은 삼국지 유일의 ‘남동생 캐릭터’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삼국지 유일의 남동생 캐릭터 - 문학소년 진사왕 조식(陳思王 曹植)

걸출한 남자 조조(曹操)의 아들 중에서 가장 뛰어났다는 평가를 받는 조비(曹丕)와 조식(曹植)은 아비의 능력으로 인해 살아서 주류 사회에서도 최고의 신분을 누릴 수 있었던 행운아들이다. 그러나 조식(曹植)의 삶이 영원히 행복했던 것은 아니다.

콩대를 태워서 콩을 삶으니
가마솥 속에 있는 콩이 우는구나
본디 같은 뿌리에서 태어났건만
어찌하여 이다지도 급히 삶아대는가

이 칠보시(七步詩)는 조조(曹操)의 셋째 아들 조식(曹植)이 형제간의 불화를 빗대어 지은 시이다. 친형이자 황제인 문제 조비(文帝 曹丕)로부터 자신이 일곱 걸음을 걷는 동안 시를 완성하지 않으면 대법(大法)으로 다스리겠다는 말을 듣고 즉석에서 지었다는 유명한 일화를 남긴 시이기도 하다. 결국 집안문제이긴 했지만, 조식(曹植)은 형에게 미움을 받았던 것이다. 그것이 또한 조식(曹植)이라는 한 남자의 좋아하기에 커다란 매력으로 다가온다.

부족함이 없기에 오히려 여인들의 동정을 받은 왕자님

위, 촉, 오 각각 영웅들이 기반을 다지기 위해 몸을 날려서 싸우고, 지략을 겨루던 격동의 시기에 조식(曹植)은 등장하지 않는다. 조식이 등장하는 것은 조조가 위 나라를 세우고 무제로 즉위할 즈음부터이다. 전쟁 대신 잔잔한 평화가 더 길어질 무렵 한참 어린 조식이 왕의 아들로, 왕의 동생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덕분에 일찍부터 적성에 맞는 문학적 재능을 꽃피운 조식(曹植)은 피와 계략으로 얼룩진 삼국지에서 어떤 캐릭터와도 닮지 않은, 유일무이하게 여성의 모성본능을 자극하는 인물이다. 해맑은 얼굴로 붓을 쥔 감수성 예민한 미소년의 이미지는 오직 조식(曹植)뿐이다. 안정된 황실에서 여린 감수성을 가진 시인으로 내내 군가만 울려 퍼지던 삼국지에 부드러운 발라드를 선사한 조식(曹植)은 조비(曹丕)의 철저한 경계 하에 정치적 뜻을 펼치지는 못했다. 조금도 부족함 없는 배경과 환경 더불어 조비(曹丕)라는 매력적인 악역까지 갖춘 조식(曹植) 삶은 과연 연상의 여인들의 동정과 사랑을 독차지하기에 충분하다.

설득력 있는 단 하나의 단어를 만났을 때,

주책스러움은 당당한 현상이 되고 뻔뻔함은 유머러스한 사상이 된다.


끝을 알 수 없는 깊이와 무게를 짐작할 수 없는 가벼운 인터넷 세상에서 비주얼은 간단하게 사상이 되어버린다. 드라마 속에서 연상의 여인을 향해 열심히, 성실하게, 때로 가슴 설레게 들이대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는 순식간에 주가가 상승한다. 팬심과 모성애를 동시에 자극할 때, 아이돌은 비로소 무조건적인 응원 대신 판매량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경제력을 갖춘 든든한 후원자를 갖는다. 20대를 넘어 30대, 40대가 되어서도 열광하고 집중할 수 있는 환상의 대상은 필요하다. 더구나 지금의 20대는 폭풍처럼 격변하는 대중문화의 격동을 온 몸으로 겪어낸 세대이다. 성숙하고 침착해진 그들은 숙소 앞에서 마냥 스타를 기다리는 대신 밤을 새워 키보드를 두드리며 찾아낸 자신들의 마음을 하나의 현상으로 정리해 세상에 공개했고, 그것은 상당한 진지함과 설득력을 가지게 되었다. 자신보다 어린 남성 연예인에게 열중하는 대규모, 대단위의 사람들의 공통된 마음에 헌정된 것은 ‘정신 나간 짓’이라는 비난이 아니라 고상함이 잔뜩 함유된 ‘누나이즘’이라는 단어였다. 단 하나의 단어로 비주류의 중심에서 단박에 주류로의 수직적인 신분 상승을 가능하니, 언어란 얼마나 즐거운 고통인가!

글 : 칼럼니스트 조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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