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꽃미남을 찾아서 – 삼국지 편

벌써 남쪽에서는 꽃 축제가 한창이다. 일주일 내내 흐리고 비가 내리던 하늘이 주말을 맞아 화사한 햇살을 뿜어낸다. 올해 5월에는 손미나 아나운서가 화촉을 밝힌다는 소식이 신문과 인터넷을 도배하고 있다. 바야흐로 결혼 시즌이 코 앞이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생소했던 결혼정보회사는 이제 탄탄한 시장을 갖춘 사업분야로 자리잡았다. 어디까지나 조건에 맞는, 운명적인 만남을 주선해준다는 메시지를 전했던 초기 광고와 달리 요즘 결혼정보회사들의 가장 큰 화두는 바로 재혼이다. 초혼이던 재혼이던 이제 곧 황금돼지 해의 설레는 결혼시즌이 다가온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는 삼국지에서 가장 일등 신랑감을 찾아보기로 하자.

21세기 결혼정보회사의 VIP, 명품 중의 명품 신랑감 원소(袁紹)

너무 명문 집안에서 태어난 덕분에 안타깝게도 등장할 때 이미 유부남이었던 원소는 현대에 태어났다면 정말 최고의 신랑감이다. 부와 권력, 명예를 모두 가진 원소의 집안은 하루아침에 이룩된 것이 아니라 네 명의 황제가 바뀌는 동안 세 명의 정승을 배출하며 이룩한 거대한 명문가였으며 원소는 그러한 집안의 적자였고, 출세가도를 달리는 젊은 무장이었다. 아마도 좋은 혼처가 즐비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원 씨 집안의 여인들은 원 씨 집안의 격에 맞는 아름다움과 고상함, 품위를 모두 갖춘 요조숙녀들이었다. 다양한 로맨스로 가득한 삼국지에서도 가장 많은 사람들을 사로잡는 여인, 견 황후가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

원씨 집안이 낳은 최후의 승리(?), 견 황후

원소의 차남, 원희의 아내였던 미모의 견 씨는 원소가 조조와의 대전에서 대패한 후 조조의 아들 조비의 아내가 된다. 조비는 연상에, 한번 결혼했던 그녀를 정식 아내로 삼았고, 그녀는 조비가 조조의 뒤를 이어 위나라의 황제로 즉위한 후 황후가 되었다. 초혼은 명문가의 둘째 며느리로, 재혼은 위나라 시조의 맏며느리로 화려한 삶을 살았던 견 황후. 같은 여자로써, 한 사람으로써 정말 남는 것 많은 인생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살아서나 죽어서나, 지금까지도 그녀는 남편들의 유명세에 기대지 않고 본인의 매력을 대중에게 어필하고 있다. 아름다웠기에 원 씨 집안의 여인이 되었고, 아름다웠기에 조 씨 집안에서도 가장 높은 지위에 오른 여인이 되었다. 원씨 집안 출신의 유일한 승리자, 견 황후. 너무도 쓸쓸한 원소를 위해, 견 황후의 첫 남편이 원소의 차남이었다는 것이 원 씨 집안이 조 씨 집안에게 거둔 작고 승리라고 문득 원소를 위로하고 싶어진다. 시대를 5000년쯤 앞서간 파격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 조조라면 이러한 초라한 뒷북에 비웃음을 날릴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원소, 슈퍼스타로 태어났지만 대중의 사랑을 받지 못한 슬픈 아이돌

삼국지 초반을 보면 ‘원소’라는 인물이 아주 중요하게 등장한다. 삼국지에서 마르고 닳도록 원소를 따라다니는 수식어, 바로 ‘4대에 걸쳐 삼공(三公)의 지위에 있던 명문 귀족’의 직계 장손이기 때문이다. 어지간한 야심만 있으면 툭하면 모여서 나라를 걱정하는 ‘척’하면서 서로의 그릇을 재고, 또 재보던 삼국지 초반에 원소는 자신이 원하던 원하지 않던 간에 무조건 주인공일 수 밖에 없었다. 어떤 일을 하고자 할 때는 항상 원소를 먼저 설득하고 동참하게 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미션이었다. 한나라에서 일을 진행함에 있어서 원소의 배경은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이다. 원소 집안의 재력과 권력은 행동의 기반이 되고, 원소가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어떠한 성명 없이도 대의명분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대중에게 사랑도, 관심도 받지 못한 스타의 쓸쓸하고 슬픈 퇴장

매번 선거인단의 압도적인 지지로 너무도 당연하게 주인공이기만 했던 원소의 행적은 주인공임에도 너무 심심하다. 그저 합당하기만 한 원소의 행적에는 가슴이 뜨거워질만한 패기도, 드라마틱한 반전도,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을 만한 스캔들이 없었다. 아마도 그것이 별다른 지지도, 별다른 배신도 당하지 않은 이유일 것이다. 극적인 요소라고는 전혀 없이 탄탄한 자본력으로 시작한 사업에서 원소는 그저 자신이 가졌던 재산만을 고스란히 까먹고, 까먹기만 하다가 결국 삼국지에서 가장 존재감 없이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원소의 슬픈 퇴장은 8할인 난세의 책임이다. 아마 난세가 아니었다면, 원소는 정말 최고의 신랑감이 아닐 수 없다.

글 : 컬럼니스트 조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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