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쟁이의 상상력으로 고전(古典) 읽기 1-10회
매체 : 세계닷컴

2회 2007-03-16 21:09 |최종수정2007-03-16 21:09


잃어버린 꽃미남을 찾아서 – 삼국지 편

꽃 피는 봄이다. 3월은 1년 중에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다. 만물이 소생하는 3월에 신학기를 최소한 9번 이상 경험하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1월에 이루지 못한 계획을, 음력 설 이후로 또 개학 이후로 미뤘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기원 전, 중국 대륙에서도 긴 겨울을 보낸 뒤 꽃피는 봄에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사람들이 있다. 친(親) 형제는 아니지만 그 누구보다 유명한 남자들, 멋진 액션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의리에 죽고, 의리에 살기를 맹세했던 유비, 관우, 장비가 바로 그들이다.

소설, 만화, 게임 등 삼국지는 우리 생활 곳곳에 자연스럽게 들어와 있다. 굳이 소설을 읽지 않았더라도 만화로, 만화를 읽지 않았더라도 게임으로, 그 외 수없이 많은 채널로 우리는 삼국지를 접한다. 오우삼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한,중,일 최고의 스타들이 모였다는 영화 <적벽>이 그 모습을 드러내면 <삼국지>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질 것이다. 수없이 많은 영웅과 수없이 많은 명 장면으로 가득한 삼국지에서 가장 먼저 독자를 사로잡는 것은 바로 유비, 관우, 장비가 의형제의 연을 맺는 도원결의이다. 봄의 시작을 알리는 복숭아 꽃이 가득 핀 동산에서 한 시대를 풍미한 영웅 셋이 모여 형제의 연을 맺는 장면은 상상만 해도 마음이 훈훈해진다. 비록 소설이지만 주인공들의 만남이 이루어진 배경을 꽃밭으로 설정한 것은 탁월한 연출이 아닐 수 없다.

겸손한 얼굴 덕분에 간과되는 장비의 매력, 부동산

민음사에서 출판한 이문열의 삼국지를 보면 “마침 내 집 뒤에는 복숭아밭이 있는 작은 동산이 있는데 꽃이 한창 만발하였소. 내일 그 복숭아 밭에서 하늘과 땅에 제사를 지내 세 사람이 사생을 같이할 의를 맺은 뒤 큰일을 시작하는 게 어떻겠소?”라는 말로 유비와 관우에게 도원결의를 제안한 인물이 장비이다. 시작은 초라했으나 결국 대장이 된 유비나 등장부터 아름다운 수염을 자랑하는 묘사로 중후한 매력이 돋보이는 미남으로 아직까지도 삼국지를 통틀어 손꼽히는 인기 캐릭터로 자리잡은 관우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력이 부족하게 느껴졌던 장비지만 사실 그는 셋 중에 가장 부유했다. 현대에 태어났다면, 아니 현대극으로 각색한다면 현실적으로 유비와 관우에 비해 훨씬 인기가 많았을 인물이 바로 장비일지 모른다. 조조와 원소, 손씨 집안 같은 재벌은 아니어도 나름대로 집 뿐만 아니라 복숭아밭이 딸린 동산까지 있는 부동산 알부자 장비가 새롭게 보인다.

2000년을 가뿐하게 뛰어넘는 관우의 매력, 중후함의 카리스마

반면 관우의 매력은 삼국지연의를 쓴 작가 나관중을 사로잡을 정도로 강력하다. 나관중은 10권에 거쳐 기회만 있으면 구구 절절하게 관우의 매력을 소개한다. 그 중에서도 관우의 가장 큰 미덕은 외모의 아름다움이다. 조조와 손씨 집안에 비해 정말 서민적으로 거사를 시작한 유비에게 넘치는 것은 명분, 부족한 것은 인지도, 경제력, 인재 등등이었지만 제갈공명과 조자룡이 등장하기 전까지 ‘관우’라는 인물이 이 모든 부족함을 메워낸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수많은 영웅과 미인들은 세월이 흐를수록 새로운 시각으로 다양한 해석을 거듭하지만, 유독 관우만큼은 삼국지연의가 세상에 빛을 보았던 14세기 원나라 시대의 독자들과 현재 삼국지를 읽고 있는 21세기 독자들에게 시간을 초월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게임 속에서도, 만화 속에도 관우는 남성다우면서도 우아함을 잃지 않는 깊은 눈빛과 빼어난 무술 실력을 겸비한 모습으로 우리를 사로잡는다.

이러한 관우의 지나친 매력 덕분에 우리는 자주 장비의 존재감을 놓쳐버린다. 정독을 하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장비가 가진 재력의 의외성에 대해 발견하지 못했을지 모른다. 때때로 강력하게 각인된 기억은 객관적 설득력을 무력화시킨다. 하지만 그 무력화 된 설득력을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비할 수 없는 즐거움이다. 그래서 고전은 늘 새롭다. 아직 <삼국지>를 읽지 않았다면 올 봄, 도원결의의 세 남자를 자신만의 상상 속에 꽃미남으로 그려보는 것을 시작으로 즐거운 독서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

글 : 컬럼니스트 조민기

컬럼니스트 조민기는 한양대학교에서 문화인류학을 전공하였으며 종합 커뮤니케이션 컨설팅 전문가 그룹 컴온애드(http://comeonad.com)에서 카피라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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