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쟁이의 상상력으로 고전(古典) 읽기 1-10회
매체 : 세계닷컴

1회 2007-03-02 22:03 |최종수정2007-03-02 22:03

사회에 나와서 순수 문학을 접할 기회는 거의 없다. 특히 현실에 두 발을 딛고 서서 클라이언트에 맞는 가장 효과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해야 하는 광고회사에서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현실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상상력이 더욱 필요한 법이다. 종합 커뮤니케이션 컨설팅 전문가 그룹 컴온애드에서는 마케팅 전문 자료 외에도 매달 직원들에게 고전문학을 한 권 이상을 의무적으로 읽도록 하고 있다. 꽃피는 3월, 컴온애드에서 필독서로 선정된 작품은 바로 고전 중의 고전인 김유정의 <동백꽃>이다.

카피라이터 조민기가 말하는 <동백꽃>의 새로운 매력

개화기의 마름과 소작농이라는 적당한 신분차이가 있는 소년 소녀의 첫사랑이 시작되는 과정을 투박하지만 위트 넘치게 담아냈다는 점에서 <동백꽃>은 누가 읽더라도 재미있게 읽을 만한 작품이다. <동백꽃>의 매력은 무엇보다 소작농의 아들로 등장하는 ‘나’의 외모를 마음껏 상상할 수 있다는 점이다. 본인은 아직 자각하지 못하고 있으나 (아마도) ‘나’는 순수하고 맑은 눈망울을 지닌 미소년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점순이는 비록 한번 거절 당한 아픔이 있음에도 몇 번이고 다시 맹렬하게 대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상대의 마음을 얻는데 성공한 용감한 점순이식 연애의 법칙은 각별히 참고할 만하다.

첫째! 일단 마음에 드는 인물이 주변에 있다면 거침없이 찍어라!

<동백꽃>에서 점순이와 ‘나’의 나이는 사춘기가 시작될 무렵이다. 점순이가 ‘나’보다 살짝 먼저 이성에 눈을 떴다는 설정은 <동백꽃> 최고의 감상 포인트이다. 마름의 딸인 점순이는 가까운 곳에서 마음에 드는 남자를 찾다가 (훈훈한 미모를 지닌) 소작농의 아들인 ‘나’를 발견한다. 영문도 모르게 점순이에게 ‘찜’을 당한 ‘나’는 점순이가 자신의 마음을 담아 전해준 ‘삶은 감자’를 눈치 없이 거절한다.

둘째! 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공통 관심사를 만들어라!

당시 ‘나’의 당시 관심사는 오로지 닭이었다. 그것을 눈치 챈 점순이는 정말 신선하게도 ‘닭싸움’으로 ‘나’에게 접근을 시도한다. 점순이는 매번 일부러 ‘내’가 없는 때를 공략해, 닭들에게 싸움을 시켜놓고는 느긋하게 지켜보다가 ‘내’가 등장하면 약을 올리기 시작한다. 점순이에게 아무 관심도 없던 ‘내’가 ‘닭싸움’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점순이를 확실하게 인식하게 된다.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자주 나타나고, 좋아하는 사람의 관심사에 참견을 하고, 좋아하는 사람을 일부러 괴롭히면서 차츰 자신을 인식하게 만들기 위한 점순이의 치밀함에 새삼 감탄한다.

셋째! 때로는 스킨쉽을 리드하고 때로는 수줍은 여성의 모습을 보여줄 것!

작품의 마지막, ‘나’는 결국 우리 닭이 일방적으로 당하는 닭싸움을 목격하고 홧김에 점순이네 닭을 때려서 죽게 만들고 만다. 덜컥 겁에 질려버린 ‘나’에게 점순이는 “다음엔 절대 그러지 말 것”을 약속하면 용서해 주겠다며 승자의 아량을 베풀어 ‘나’의 환심을 산다. 잔뜩 위축되었던 ‘나’의 긴장이 풀린 순간, 점순이는 용감하게 먼저 스킨쉽을 시도한다. 알싸한 동백꽃 내음으로 기억되는 첫 사랑의 추억. 다음 순간 점순이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자 얼른 아무렇지 않은 척 일어나서 도망을 간다. 이 순간, 드디어 ‘나’의 마음 속에 점순이는 특별한 사람이 된다.

상상력을 조민만 발휘한다면 고전을 읽는 즐거움은 훨씬 더 커질 것이다. 상상 속에서 ‘점순이’는 전지현, 송혜교와 같은 미인이 되고 ‘나’는 강원도가 고향인 ‘원빈’이나 ‘김래원’, ‘김희철’을 닮은 꽃미남이 된다. 달달한 연애를 시작하기 좋은 봄, <동백꽃>에서 우리 모두 연애의 법칙을 배워보자!

글 : 칼럼니스트 조민기

칼럼니스트 조민기는 한양대학교에서 문화인류학을 전공하였으며 종합 커뮤니케이션 컨설팅 전문가 그룹 컴온애드(http://comeonad.com)에서 카피라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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