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당시 인도는 철저한 사성(四姓) 계급 사회였다. 가장 높은 신분은 ‘바라문(婆羅門)’으로 사제와 수행자 같은 종교를 담당하는 지배층이었고 그 다음이 ‘찰제리(刹帝利)’로 부처님과 같은 왕족과 무사 같이 정치를 담당하는 귀족들이 여기에 속했다. 그리고 상업이나 농업에 종사하는 일반 백성들은 ‘비사(毗舍)’에 속했고 가장 천하게 여겨지는 계급은 천민 ‘수다라(首陀羅)’였다. 하지만 부처님은 계급과 상관없이 제자들을 받아들여 교단 내에 평등을 구현시켰다. 실제로 10대 제자 중에는 바라문부터 수다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출신의 제자들이 있다.

10대 제자란 수천 명에 이르는 부처님의 제자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났던 10명의 제자들을 일컫는데 주로 <유마경 維摩經>의 ‘제자품’에 언급된 인물들을 기준으로 10대 제자라고 부른다. <앙굿따라 니까야>의 ‘여래의 제자들 중 으뜸 품’에서 부처님은 제자들의 탁월한 면면을 구체적으로 칭찬해주시는데 부처님이 직접 말씀하셨다는, 이 공신력 넘치는 ‘칭찬’ 덕분에 10대 제자들은 일종의 닉네임, 별명이 생겼다.

바라문 출신의 제자 - 사리불, 목건련, 마하가섭, 수보리, 부루나
부처님의 상수제자이자 절친한 친구인 사리불(舍利弗 Śāriputra)과 목건련(目建連 Maudgalyayāna)은 각각 지혜제일과 신통제일의 별명을 지니고 있다. 부처님께서는 다른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길 사리불을 생모(生母)처럼, 목건련을 양모(養母)처럼 생각하라고 하실 만큼 이 두 제자를 신뢰하고 사랑하셨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생모와 양모의 비유는 부처님 자신이 출가 전 모자(母子)의 인연을 두었던 두 어머니, 부처님이 태어나신 지 일주일 만에 세상을 떠나신 생모 마야부인과 부처님을 친아들처럼 아끼고 사랑했던 이모이자 양모 마하파제파티 두 어머니에 대한 각별한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상수제자답게 사리불은 다양한 경전에서 부처님의 설법 상대자로 등장하는데 갖가지 지식에 해박하고 통찰력도 빼어나 ‘지혜제일’이라는 별명에 잘 어울린다. 사리불의 친구이자 ‘신통제일’이라는 별명을 지닌 목건련 또한 신통력에 대한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가지고 있다. 그 중 세상을 떠난 어머니가 아귀지옥에서 고통에 시달리는 것을 보고 구출하기도 하고, 천신들에게 설법을 하기 위해 도리천에 가신 부처님을 데리러 갔던 것은 가장 유명한 일화로 전해진다. 부처님과 비슷한 나이였던 이 두 제자는 훗날 부처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두타(頭陀)제일의 별명을 지닌 마하가섭가섭(迦葉 Kāśyapa)은 부처님의 의발을 이어받은 제자로 ‘가섭’이라는 이름을 지닌 동명의 제자들 중에서 대가섭·마하가섭이라는 칭호로 불리며 구분된다. 그는 브라만 중에서도 대단한 집안에서 나고 자랐으나 ‘있는 집 자식’ 특유의 거만함이나 사치를 부리지 않았으며 욕심이 적고 고행을 즐겼으며 규율을 엄격히 지켰다고 한다. 부처님이 연꽃을 들었을 때 제자들 중 유일하게 조용히 미소를 지어보이며 이심전심을 확인했다는 '염화시중(拈華示衆)의 미소'로도 유명하다. 그는 또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후, 500명의 장로들을 모아 결집을 주도하고 지도자로써 교단을 이끌어 인도로부터 선종의 계보를 따질 때 초대 조사로 간주된다.

공(空)의 이치를 가장 잘 이해했다하여 대승불교에서 해공(解空)제일이라 불리는 수보리(須菩提 Subhūti)는 부처님과의 대화로 이루어진 ‘금강경’의 대화자로도 유명한데 홀로 고요하게 수행하는 것을 즐겼다하여 은둔제일(隱遁第一)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또 설법제일이라 불리는 부루나(富樓那 Pūrna) 사람들을 교화하고 법을 설함에 있어 가장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

찰제리 출신의 제자 - 마하 가전연, 아나율, 아난, 라훌라
마하 가전연(迦旃延 Kātyāyana)은 서인도의 아반티국 출신으로 왕명을 받들어 부처님을 영접하러 왔다가 출가하였다고 한다. 그는 잘잘못을 가려 논박을 잘했으며 부처님께서 간략하게 설한 것에 대하여 상세하게 그 뜻을 설명하고 외도들과 교의를 논하는데 가장 탁월하여 논의제일이라 불렸다.

10대 제자 중에는 부처님의 속세 친척들도 있는데 석가족 왕자 출신의 아나율(阿那律 Aniruddha), 아난(阿難 Ānanda) 그리고 부처님의 아들인 라훌라(羅睺羅 Rāhula)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들의 별명은 하나같이 너무나 인간적인 에피소드들을 가지고 있다.

부처님의 설법을 듣던 중 졸음을 참지 못해 잠이 들었다가 꾸지람을 듣고 나서 아예 잠을 자지 않겠다는 각오로 수행을 하다가 시력을 잃었던 아나율은 결국 지혜의 눈이 열려 ‘천안(天眼)제일’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스무 살이 되던 해부터 부처님의 시자가 되어 부처님이 열반하실 때까지 그림자처럼 따르며 시중을 들었던 아난은 부처님의 말씀을 가장 많이 들었을 뿐 아니라 설법 듣는 것을 너무나 좋아하여 ‘다문(多聞)제일’이라 불렸다. 부처님의 속세 아내인 야소다라 왕비의 남동생으로 라훌라의 외삼촌이자 부처님의 사촌 동생이기도 한 그는 훗날 부처님이 열반하신 후 마하가섭이 주도한 1차 결집에서 부처님이 하신 말씀들을 전부 암송해 경전이 만들어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어린 나이에 출가하여 교단 최초의 사미가 된 라훌라는 부처님의 속세 아들이다. 주로 사리불에게 가르침을 배웠으며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선행을 많이 하여 밀행(密行) 제일이라 불렸다. 언제 열반했는지는 전해지지 않지만 부처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수다라 출신의 제자 - 우바리
마지막은 석가족의 이발사 출신으로 출가한 우바리(優波離 Upāli)이다. 그는 4성 계급 중 가장 천한, 천민 출신이었던 그는 출가 후 누구보다 교단의 규율에 정통하고 계율을 지키는 데 엄격하여 ‘지계(持戒)제일’이라는 칭호를 듣게 되었다. 후에 부처님이 열반하신 후, 첫 번째 결집에서 그는 계율에 관한 모든 사항을 암송하여 후대의 율장을 성립시켰다.

재미있는 것은 사성(四姓) 계급 사회의 인구는 피라미드 구조로 되어있기 마련인데, 교단 내에서 그 중에서도 손꼽히는 10대 제자 중에서 출신을 살펴보면 역삼각형 구조를 띠고 있다는 것이다. 바라문과 찰제리 대다수를 차지하는 교단에서 우파리 존자처럼 수타라 출신은 희소가치가 매우 높다. 또한 그의 출신은 오히려 다른 어떤 뛰어난 제자들보다도 평등을 추구하던 교단의 성격을 반영하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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