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레논
: 세계인의 사랑 대신 한 여자의 사랑을 택한 예술가

  

 

 

브라이언 엡스타인과의 만남과 비밀 결혼

1961년 11월, 리버풀 최대의 음반매장 NEMS(North End Music Scores)의 소유주인 젊은 사업가 브라이언 엡스타인이 비틀즈에 대한 소문을 듣고 공연을 보러 왔다. 그는 비틀즈에게서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날것 그대로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브라이언은 비틀즈에게 자신이 그들의 매니저가 되고 싶다며 거래를 제안했다. 이제껏 음반 판매 사업만 해 왔던 브라이언에게도 이런 결정은 하나의 모험이었지만 그는 자신의 안목과 느낌 그리고 비틀즈의 가능성을 믿었다. 

계약은 이루어지자마자 브라이언은 거칠고 반항적인 비틀즈의 이미지를 세련되게 바꾸는 일에 착수했다. 유능한 사업가이자 발이 넓을 뿐 아니라 열정까지 갖춘 브라이언은 또 세계적인 음반회사 EMI의 자회사인 팔로폰과 계약을 성사시켰다. 팔로폰의 프로듀서인 조지 마틴은 계약 조건으로 드럼 주자를 교체할 것을 요구했고 새 드럼 주자로 링고 스타(본명 Richard Starkey)가 영입되었다. 이로써 우리에게 잘 알려진 비틀즈가 탄생했다. 이제까지보다 훨씬 큰 규모에서, 본격적으로 음악을 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모든 것이 순조롭던 어느 날, 존은 신시아로부터 그녀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오랫동안 연애를 하면서도 결혼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던 신시아는 어쩔 줄 몰라 눈물을 흘렸고, 존 역시 두려움으로 새파랗게 질렸다. 브라이언은 매니저로써 현명하게 행동했다. 그는 고조되기 시작한 비틀즈의 인기와 극성맞은 소녀 팬들로부터 신시아를 보호하기 위해 비밀리에 결혼할 것을 추천했고 그의 주선 하에 1962년 8월 23일 존과 신시아는 비밀 결혼식을 올렸다.


빛나는 성공의 나날들

얼마 후인 9월 초, 비틀즈는 생애 첫 녹음을 하고 첫 번째 싱글 〈Love Me Do〉를 발표했다. 〈Love Me Do〉에 대한 반응은 크지 않았지만 1962년 1월 11일 발표된 〈Please Please Me〉는 한 달 뒤 차트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회사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들의 자작곡인〈Please Please Me〉가 1위를 하면서 비틀즈는 그들을 비웃던 EMI 관계자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었다. 두 달 후인 3월 22일, 수록된 14곡이 전부 단 하루 만에 녹음한 전설의 데뷔 앨범 〈Please Please Me〉역시 발표하자마자 1위를 차지했다. 빛나는 성공의 시작이었다.

더불어 존은 아빠가 되는 기쁨을 누렸다. 신시아가 무사히 아들을 낳은 것이었다. 존은 아기에게 어머니 ‘줄리아’의 이름을 따 ‘줄리안’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데뷔 앨범 이후 발표한 싱글 〈From Me to You〉, 〈She Loves You〉 등은 영국을 뒤흔들었고, 비틀즈의 광팬을 지칭하는 ‘비틀매니아’라는 신조어와 함께 신드롬을 낳으며 비틀즈의 인기는 고속 질주를 거듭했다. 두 번째 정규 앨범 〈With the Beatles〉가 발매되었고, 새 싱글 〈I Want to Hold Your Hand〉는 선주문 100만 장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그야말로 비틀즈 열풍이었다. 

영국과 유럽을 완전 정복한 비틀즈는 미국으로 진출했다. 미국에서 비틀즈의 인기는 유럽 이상으로 뜨거웠다. 1964년 3월 16일 미국에서 발표한 싱글 〈Can’t Buy Me Love〉는 단숨에 빌보드 1위를 차지했고, 1964년 4월 4일 빌보드 싱글 차트의 1위에서 5위까지를 모두 비틀즈의 노래가 독식(1위 〈Can’t Buy Me Love〉, 2위 〈Twist and Shout〉, 3위 〈She Loves You〉, 4위 〈I Want to Hold Your Hand〉, 5위 〈Please Please Me〉)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열광하는 비틀매니아들을 위해 비틀즈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까지 만들어졌다. 이제 비틀즈는 단순한 밴드가 아니라 세계적으로 거대한 문화 현상이었다.


진정한 뮤지션으로의 성장과 위기 

하지만 무리한 일정과 혹독한 스케줄은 비틀즈의 육체와 정신을 좀먹기 시작했다. 자신을 치유하는 동시에 세상을 조롱할 수 있는 수단으로 음악을 만들어온 존은 인기에 힘입어 억지로 발표한 곡들이 계속 1위를 차지하자 회의를 느꼈다. 지나친 성공에 대한 고민에 빠져들 무렵 존은 밥 딜런을 만났다. 

밥 딜런을 통해 음악이 세상에 ‘저항’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운 존은 새로운 세계에 빠져들었다. 존의 변화는 비틀즈의 음악과 직결되었고 경쾌하면서고 순수하게 감정을 말하던 비틀즈의 음악은 보다 진지하게 변모했다. 달라진 비틀즈의 음악은 그들을 거품 같은 인기를 몰고 다니는 보이밴드로만 생각하던 비평가들과 동료 뮤지션들로부터 좋은 평가와 인정을 받았다. 팬들은 진정한 뮤지션으로 도약한 비틀즈를 더욱 열렬하게 사랑했다. 

하지만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순조로운 성공에 존은 성취감보다는 공허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멤버들 역시 누적된 피로와 매스컴의 지나친 관심이 계속되자 신경이 예민해졌다. 결국 1966년 극단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미국 순회공연 도중 돌연 샌프란시스코 공연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의 순회공연을 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것이었다. 매니저인 브라이언은 펄쩍 뛰었지만 존은 홀가분함을 느꼈다. 갑자기 갖게 된 돈과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하던 존이 ‘오랫동안 뜨고 싶어 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빚에 허덕이던 예술가’였던 오노 요코를 만난 것은 바로 이 시기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