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미남 십대제자 이야기 서문  

  

 

의심할 바 없이 잘 생긴 정우성이 출연하여 화제를 모았던 무협영화 <검우강호>는 무림 최고의 고수가 되기 위해 달마의 시신을 차지하려는 강호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영화 초반, 뜻밖에도 부처님의 제자이자 시자인 ‘아난’의 이야기가 나온다. 익숙한 이름을 만난 반가움도 잠시, ‘아난’의 이야기는 이후 영화가 끝날 때까지 <검우강호>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화두가 된다.

이야기는 이렇다. 조정 대신 일가를 무참하게 살해하고 달마의 시신을 차지한 여자 살수(킬러)가 돌다리 위를 지나다 죽은 줄 알았던 대신의 아들과 맞닥뜨린다. 살수는 표정의 변화 하나 없이 남자의 심장에 칼을 꽂는다. 남자가 다리 위에서 떨어지고 살수가 다시 길을 가려는 순간 난데없이 뒤에서 스님 한 분이 나타난다. 절세의 무공을 지닌 살수는 기척조차 없이 다가온 스님을 보며 깜짝 놀란다.

그 후 두 사람은 폐허가 된 절에서 밤낮으로 무술을 겨루지만 수일이 지나도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는다. 그렇게 3개월 가까이 승부를 겨루던 어느 날, 스님은 살수에게 오늘 이후 그녀를 보지 않을 것이며 자신은 며칠 후 정식으로 출가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출가 후에는 부처님과 경전에 귀의하여 그녀가 모든 고통과 번민을 잊고 피안에 이르기를 빌겠다고 이야기한다. 이에 오기가 난 여자 살수는 만약 이대로 승부를 내지 않고 출가를 한다면 그 절의 개미새끼 한 마리까지 남기지 않고 다 죽여 버리겠다고 협박한다.

그러자 스님은 오늘로 모든 업을 지우겠다는 말과 함께 철로 된 젓가락 한 짝을 들고 살수를 공격하기 시작한다. 빠름을 특기로 하는 살수의 검법은 매서웠지만 4개의 초식에 허점이 있었고, 한 조각의 살의도 없지만 정확하게 허점을 노리는 공격으로 스님은 살수를 이긴다. 처음 겪는 패배에 살수의 얼굴은 굳어졌지만 스님은 승리를 거두고도 기쁜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스님은 훗날 살수가 진정한 고수를 만났을 때 목숨을 잃을 것을 염려한다.

하지만 그 말을 마치자마자 스님은 곧바로 몸을 날려 공격을 하고, 살수는 본능에 따라 망설임 없이 스님의 심장에 칼을 꽂는다. 칼이 꽂히는 순간 살수는 깜짝 놀라지만 스님은 마치 기다렸다는 것처럼 편안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본다. 스님은 도저히 살인을 멈추지 못하는, 살기(殺氣)를 버리지 못하는 살수를 위해 승부와 상관없이 그녀의 검에 맞을 생각이었던 것이다. 다만 칼을 맞기 전, 그녀의 검법이 지닌 허점을 알려주기 위해 승부를 청한 것이었다.

스님은 목에 걸려있던 염주를 풀어 자신을 찌른 살수의 검에 걸어주며 말한다. 오늘 이후 검을 버린다면 자신이 그녀가 죽이는 마지막 사람이 될 것이라고. 자신을 멈추게 하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던진 스님의 자비에 살수는 처음으로 살인을 후회한다. 당황과 후회 속에서 스님이 숨을 거두는 것을 지킨 살수는 그 후 정말로 검과 얼굴을 버리고 평범한 여인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스님의 스승을 찾아가 달마의 시신과 제자의 유품을 전하며 오랫동안 궁금했던 것을 묻는다. 그녀는 아무리 생각해도 스님이 눈을 감기 전 남긴 유언을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스님의 마지막 말은 ‘오백년 동안 바람을 맞고 오백년 동안 비를 맞겠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말을 들은 노스님은 담담하게 대답한다.

부처님의 제자 중에 ‘아난’이 출가 전 길을 가다가 한 소녀를 보고 사랑에 빠졌다. 사랑에 빠진 아난에게 부처님이 물었다. 그녀를 얼마나 사랑하느냐고. 그러자 아난은 자신이 돌다리가 되어 오백년 동안 바람을 맞고 오백년 동안 비를 맞으며 다만 그녀가 다리를 안전하게 건너가기를 바랄 뿐이라고 대답했다. 아난이 생각하는 사랑이란 그러했다. 오백년 동안 바람을 맞고 비를 맞더라도 사랑하는 사람이 무사히 다리를 건널 수 있다면 그것으로 행복한 것이다. <검우강호>에 등장한 스님은 이러한 아난의 말과 마음을 빌려 피와 복수로 얼룩진 살인자를 감화시켰다.

아난은 ‘여시아문(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으로 시작되는 수많은 경전의 화자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해주는 수많은 경전 속에는 아난을 비롯한 십대 제자들의 이름이 언급되고 또 그들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시공을 초월하여 부처님의 제자라는 공통점 때문일까, 십대제자의 이름은 왠지 친근하게 다가온다. 이 친근한 마음을 보다 많은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 각기 다른 출가 사연과 수행 스타일을 지닌 십대 제자들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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