툰치 소크멘
: 세계적인 발레리나 강수진의 천생연분

 

“희귀병을 앓고 있는 사람의 발이 아닙니다. 사람의 발을 닮은 나무뿌리도 아니고, 사람들 놀라게 하자고 조작한 엽기사진 따위도 아닙니다. 명실 공히 세계 발레계의 탑이라는 데 누구도 이견을 제시하지 않을,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입니다. 그 세련되고 아름다운 미소를 가진, 세계 각국의 내로라하는 발레리노들이 파트너가 되기를 열망하는 강수진 말입니다.”


툰치가 찍은, 강수진의 맨발 사진을 본 시인(詩人) 고은의 말이다. 1996년, 강수진은 MBC 문화방송 선정 ‘이달의 예술가’ 상을 수상했다. 동시에 수많은 사람들은 그녀의 맨발을 담은 이 사진을 보게 되었다. 강수진을 아는 사람도, 모르는 사람도, 발레에 대해 아는 사람도, 전혀 모르는 사람도 이 사진 앞에서 먹먹한 감동을 느꼈다. 툰치가 찍은 이 한 장의 사진 속에는 수진이 홀로 머나먼 독일에서 오직 꿈을 이루기 위해 견딘 15년의 세월과 열정 그리고 노력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또한 그가 수진의 발을 보면서 느꼈던 한없는 사랑과 자랑스러움 그리고 애틋함과 안타까움이 담담하면서도 절절하게 담겨 있었다. 

이 사진은 이제까지 발레에 대해 잘 몰랐던 사람들에게조차 강수진의 이름을 강렬하게 각인시켰고 그녀가 대중적으로 알려지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이처럼 툰치는 수진과 연인이었을 시절부터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가치를 대중들에게 매우 명확하면서도 감동적으로 전달했다. 이런 파급효과를 예상하고 의도적으로 찍은 사진이 아니었기 때문에 감동은 더욱 컸다. 다만 툰치는 연인의 특권으로 수진의 발을 다른 사람보다 먼저 볼 수 있었고, 그 순간 자신이 느낀 벅찬 감정을 사진으로 남겼을 뿐이었다.


강수진을 위한 맞춤형 매니저가 되다

발레리노로 활발하게 활동하던 툰치는 1996년, 발레리노의 고질병이라고 할 수 있는 허리 디스크 때문에 현역에서 은퇴했다. 그 후 그는 발레 지도자 과정을 이수, 만하임 발레단 등지에서 발레 마스터로 일하며 동시에 강수진의 매니저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발레리나로서 절정의 위치에 있던 수진에게 매니저는 반드시 필요하던 참이었다. 더구나 툰치와 같이 현실을 직시할 줄 알면서도 수진을 절대적으로 아끼고 사랑하며 항상 곁에서 자상하게 보살펴주는 존재는 매우 훌륭한 매니저가 될 수 있었다. 

자신의 건강을 비롯하여 다른 일을 챙기는 것에는 서툴기 짝이 없던 수진을 위해 툰치는 그녀가 발레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모든 일을 알아서 해결해 주었다. 타국에서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생겼다는 것만으로 수진은 용기가 샘솟았다. 연습이나 무대가 끝나고 녹초가 된 수진은 툰치의 곁에서 자상한 보살핌을 받으며 쉴 수 있었고, 응석이나 투정도 마음껏 부릴 수 있었다. 툰치와의 안정된 사랑을 통해 수진은 오직 발레에만 모든 신경을 집중할 수 있었고 기량과 함께 연기도 더욱 풍부해졌다는 평가를 듣게 되었다. 


부상이라는 절망을 딛고 재기하기까지

1999년은 수진에게 최고의 해였다. 그해 수진은 ‘브누아 드 라 당스’ 최우수 여성 무용수상을 수상하며 발레리나로서 최정상에 올랐고 훈장도 받았다. 그런가 하면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페라가모’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슈투트가르트 어디에나 수진의 얼굴이 붙어 있었고, 슈투트가르트의 난 재배업협회는 신품종 난을 ‘강수진 난’이라고 명명하기까지 했다. 이런 행복 속에서 수진은 ‘더 이상 발레를 계속할 수 없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수년간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아가며 무대에 올랐던 수진이 다리에 심각한 이상을 느끼고 찾아간 병원에서 의사는 뼈에 금이 갔다는 판정을 내렸다. 그저 미련하게 아픔을 참아가며 금이 간 다리를 혹사시켜왔던 것이 원인이었다. 일단 뼈가 완전히 붙을 때까지는 운동을 아예 할 수 없다는 의사의 말에 수진은 좌절했다. 회복을 위해 발레단에 들어온 뒤 하루도 쉬지 않았던 연습은 무기한으로 중단되자 수진의 연습 강도에 맞춰 단단하게 빚어졌던 야무진 근육들은 하루가 다르게 사라지기 시작했다. 모두가 수진이 더 이상 발레를 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제 막 절정을 맞이하고 있던 서른세 살의 수진에게 발레리나로서 사실상 사형선고가 내려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수진에게 발레를 계속할 수 있다고 위로한 사람은 단 한 명, 툰치뿐이었다.

툰치는 조울증처럼 의기소침했다가 활기를 내비치곤 하는 수진을 위해 전담 요리사이자 상담가 겸 심리 치료사가 되었다. 그는 또 마사지와 침술 등을 배우고 재활의학에 대해 공부하며 수진의 뼈가 아물기를 기다렸다. 뼈가 붙자마자 재활을 시작했지만 1년을 꼬박 쉬었던 수진의 몸에는 근육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일반인들이 하는 기초적인 스트레칭부터 시작해야 하는 수진의 심정은 처참했다. 

툰치는 ‘할 수 있다’고 수진을 계속 격려하는 한편 그녀의 빠른 복귀를 위해 요가를 응용한 특별 스트레칭을 고안해 냈다. 발레리노 출신인 그는 발레에 필요한 근육이 어떤 것인지, 어떻게 근육을 풀어주는 것이 효과적인지 잘 알고 있었다. 수진은 툰치의 지도하에  3개월간 꾸준히 스트레칭과 요가 등으로 망가진 근육과 유연성을 다듬으며 연습을 계속했다. 툰치가 개발한 ‘강수진을 위한 맞춤용 스트레칭’은 매우 효과가 뛰어났다. 2001년, 마침내 강수진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으로 화려하게 재기하는 데 성공했다. 


결혼, 발레리나 강수진의 진정한 황금기가 시작되다

수진이 가장 절망에 빠졌던 시기에 어려움을 함께 극복한 툰치는 강수진이 재기에 완벽히 성공한 후인 2002년, 마침내 오랜 연애를 끝내고 결혼에 골인했다. 발레단에서 선후배로 만난 지 15년, 서로 사랑하는 연인이 된 지 7년 만에 이룬 사랑의 결실이었다. 긴 연애 기간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툰치를 선뜻 받아들이지 못했던 수진의 부모님도 결국 두 사람의 결혼을 허락했고, 두 사람은 양쪽 가족들의 축복을 받으며 부부가 되었다.

결혼식 날 아침, 슈투트가르트 시청에서 조촐하게 예식을 마치자 수진은 곧장 발레단으로 출근했다. 매일하던 연습을 거르지 않기 위해서였다. 신혼여행도 당연한 것처럼 생략했다. 툰치는 결혼식을 마치자마자 발레단으로 출근하는 수진을 미소와 포옹으로 배웅했다. 그는 오로지 발레리나로서 살아가는 수진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사랑하는 단 하나뿐인 남자였다. 같은 해, 수진은 입단한 지 15년이 지나야만 자격이 주어진다는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종신회원으로 임명되었다.

부상을 회복하고 인간 승리의 주인공이 된 강수진은 인터뷰를 할 때마다 “발레를 포기해야 할 만큼 심각한 부상을 입었을 때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유일하게 긍정적으로 말해준 사람은 남편밖에 없었다.”라며 남편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고 전했다. 지금도 강수진은 매일 아침마다 툰치가 만든 맞춤용 스트레칭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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