툰치 소크멘
: 세계적인 발레리나 강수진의 천생연분


 

“이런 남편을 만났으니 하나부터 열까지 저는 운 좋은 여자예요. 자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남편을 위해서는 이 정도로도 충분하지 않아요. 다른 찬사의 낱말이 있으면 그것을 사용했을 거예요. 제가 운이 좋은 여자죠.”  



2006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세계적인 발레리나 강수진이 했던 말이다. 열여섯 살, 어린 나이에 한국을 떠나 유럽에서 발레리나의 꿈을 키웠던 강수진은 현재 그녀가 소속된 발레단이 있는 독일의 슈투트가르트를 또 다른 고향이라고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강수진이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서 25년이라는 긴 세월을 보냈다. 그동안 강수진은 군무와 솔로를 거쳐 슈투트가르트를 대표하는 프리마돈나가 되었고, 세계 정상의 자리에서 치명적인 부상을 알게 되었으며, 2년 동안의 재활을 거쳐 재기에 성공했으며, 발레단 선배인 툰치 소크멘과 결혼을 했다. 툰치는 과연 어떤 남자이기에, 어떤 남편이기에 아내이자 세계 최고의 발레리나인 강수진으로부터 이처럼 ‘팔불출’에 가까운 찬사를 대놓고 듣는 것일까?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서의 첫 만남

툰치는 강수진과 마찬가지로 발레를 전공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서였다. 툰치는 1986년 창단 이래 최연소인 19세의 나이로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입단한 강수진의 선배였다. 툰치의 눈에 비친 강수진은 수줍은 얼굴에 내성적인 동양 여자아이였다. 터키에서 온 툰치는 그런 수진을 눈여겨보았다.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낯선 나라에서 홀로 버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수진에게는 꿈이 있었다. 그녀는 외로움과 절실함을 오직 ‘연습’으로 돌파했다. 얼마나 열심히, 지독하게 연습을 했던지 강수진이 신은 발레슈즈는 하루를 넘기지 못했다. 하루에 발레슈즈 4켤레가 닳아빠질 정도의 혹독한 연습만이 그녀가 외로움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런 강수진과 툰치가 연인이 된 것은 그로부터 8년이 지난 뒤였다. 하지만 툰치는 처음부터 수진과 자신은 함께할 운명이었다고 말한다. 

 

 

 

예술가 집안에서 자란 닮은꼴 부부

발레를 전공했다는 것 외에 강수진과 툰치의 또 다른 공통점은 바로 예술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집안에서 성장했다는 것이다. 잘 알려진 대로 강수진의 외할아버지는 구본웅 화백(1906~1953. 한국의 화가 겸 미술평론가)이며 그녀의 언니와 여동생은 모두 음악을 전공했다. 툰치의 가정 역시 비슷하다. 툰치의 어머니는 대학에서 성악을 가르쳤고, 첼리스트와 결혼한 남동생은 비올라를 전공했다.  

하지만 툰치와 수진의 결혼은 쉽지 않았다. 수진의 부모님은 내심 딸이 한국 남자와 결혼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툰치는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변함없는 자세와 사랑으로 자신이 수진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해 나가며 기다렸다. 


콤플렉스를 자부심으로 바꿔놓은 한 장의 사진 

수진과 연인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툰치는 수진의 아파트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당시 수진은 차근차근 경력을 쌓아가며 주연 발레리나로써 한창 각광을 받고 있을 때였다. 집에 들어선 수진은 신발을 벗고 늘 하던 대로 탁자 위에 다리를 올려놓았다. 그날, 툰치는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서 연습벌레로 통하는 수진의 발을 처음 보았다. 뼈가 뒤틀어지고 마디마디 굳은살이 자리를 잡아 참혹해 보이기까지 하는 수진의 발은 입단 이래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19시간씩 연습을 해온 노력의 결과이기도 했다.

툰치는 말을 잃고 그저 멍하니 수진의 발을 바라보았다. 툰치의 시선을 눈치 챈 수진은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가장 못생긴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생각에 얼굴이 붉어졌다. 수진이 창피해하자 툰치는 “피카소 그림 같아.”라는 재치 넘치는 감상평으로 그녀를 웃게 만든 뒤 카메라를 꺼냈다. 그리고 진지한 표정으로 강수진의 발을 카메라에 담았다. 얼마 후, 다시 수진의 집에 놀러 간 툰치는 수진의 발이 크게 확대된 사진이 담긴 액자를 선물했다. 

자신의 못생긴 발을 위대한 작품처럼 생각해주고, 그녀의 노력을 칭찬해주고 또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봐주는 툰치 덕분에 수진의 콤플렉스는 차츰 자부심으로 바뀌었다. 그날 이후, 툰치가 찍은 사진은 수진의 집에서 가장 잘 보이는 벽에 걸리게 되었고 점차 집의 일부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생활 속에 스며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국의 한 방송사에서 수진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 위해 그녀의 집을 찾았다. 그곳에서 취재를 하던 그들은 벽에 걸린 수진의 발 사진을 발견하고 한동안 멍한 얼굴로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그 한 장의 사진 속에는 세계 최정상의 발레리나의 위대함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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