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 귀신 도감 - 전설과 민담에서 찾아낸
강민구 지음 / 북오션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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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의 귀신들은 단순히 공포의 존재가 아니라, 자연과 인간의 관계, 그리고 그들의 문화적 가치관을 반영한 존재처럼 느껴졌다.
피 브라에드처럼 가족 간의 유대와 죄책감을 상징하는 귀신, 피 딥친처럼 죽음과 재생의 경계를 오가는 귀신, 피 풀락처럼 나무와 숲을 지키는 정령들은 모두 인간의 삶과 자연이 긴밀히 맞닿아 있는 동남아시아 문화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귀신들이 ‘한’과 ‘억울함’, ‘그리움’ 같은 감정에 뿌리를 두고 있다면, 동남아시아의 귀신들은 이와 비슷한 면도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더 생활적이고 자연친화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중국의 귀신문화와 서구식 영혼의 이미지가 함께 녹아 있어, 아시아와 유럽의 귀신상이 절묘하게 혼재된 독특한 세계를 엿볼 수 있었다.

곤충이나 나무, 혼령이 뒤섞인 정령과 귀신들의 세계는 자연에 대한 두려움이자 동시에 경외심의 표현처럼 느껴졌다.
생생한 그림들과 귀신에 대한 흥미로운 설명은 읽는 즐거움을 더해주었다.

그림들이 너무나 생생해서 마치 귀신들이 책 속에서 튀어나올 듯한 느낌을 주었다. 피와 살, 벌레와 혼령이 뒤섞인 장면들이 잔인하고 섬뜩했지만, 그만큼 동남아시아 귀신들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림들의 강렬하고 생명력 넘치는 표현들이 동남아시아 귀신의 인상을 더욱 강화시켰다.

인간과 자연,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피어나는 생생한 귀신 도감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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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g.kang.11 에게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bookocean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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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의 실수
강지영 지음 / STORY.B(스토리비)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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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첫 문장,
’아무리 생각해도 생명은 싸다.‘ 라는 문장은 양의 자신의 생명에 대한 표현이었다. 우리가 너무 쉽게 사고파는 생명, 너무 쉽게 잊혀지는 죽음.
병아리, 구피, 햄스터처럼 작고 약한 존재들...그 생명이 교환 가능한 상품으로 취급되는 현실을 적나라 하게 보여주었다.

하지만 중반부로 가면 문장은 뒤집힌다.
‘죽은 것은 비싸다.’ 악어가죽 가방, 송아지 부츠, 열대우림의 목재 테이블
살아 있을 땐 하찮게 여겨졌던 존재들이 죽음을 통해 비로소 가치를 부여받은 것이다.

이 두 문장은 삶과 죽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너무나도 절묘한 표현이었다.

살아 있는 것은 싸고, 죽은 것은 비싸다...
우리가 만들어 놓은 비정한 현실이자 질서이지 않을까...

생명에게 값을 매기는 것이 과연 정답일까...

소설을 읽으며 삶의 가치가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지,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얼마나 위태롭고 소중한 일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시작부터 빠른 전개로 긴장감과 몰입감을 더해주었다. 주인공이 점차 본능적으로 변해갈수록 이 소설의 끝이 어떻게 될 것인지 기대가 되었다.
인간의 본성과 죄의식, 그리고 살아 있는 것의 의미를 계속해서 생각하게 하는 철학이 가미된 스릴러 소설이었다.

소설은 주인공 유양이 살해당하고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유양은 죽고나서야 진정한 자아, 뒤틀린 괴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유양은 자신을 죽인 단화에게 자신을 죽인 이유를 알려달라고 하며,그 이유를 알면 자신의 남은 인생을 모두 내주겠다고 제안한다. 그리고 시작되는 기괴한 복수극들...

읽는 내내 잔인한 장면들이 불편하기도 했지만,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고, 우리가 저지르는 사소한 죄들이 어떻게 부메랑이 되어서 돌아올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잔혹하지만 멈출 수 없는, 철학적 스릴러의 진수.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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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스타그램_우주 @woojoos_story 모집, 스토리비(STORY.B) 도서 지원으로 우주서평단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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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 문체부 제작지원 선정작
복일경 지음 / 세종마루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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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된 시어머니와 친정엄마를 찾았다는 경찰의 연락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남편의 갑작스러운 사망 이후, 윤주는 어린 딸 예린과 단둘이 남겨진다. 남겨진 빚과 생활비를 감당하기 위해 학원 강사로 다시 일하게 된 윤주. 하지만 저녁 늦게까지 이어지는 수업 때문에 예린을 맡길 곳이 필요했다. 친정엄마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냉정하게 거절당한다. 그때 윤주를 걱정한 시어머니가 집과 땅을 팔아 도시로 올라와, 살림과 아이 돌봄을 도맡게 된다.

그렇게 세 사람의 삶은 서서히 안정을 되찾는다.

예린이 중학생이 되면서도 일상은 평온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인가 시어머니가 깜빡깜빡 물건을 잃어버리고, 화장실을 찾지 못해 실수를 하는 일이 잦아진다. 불안함을 느낀 윤주는 시어머니를 병원으로 모시고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시어머니가 중증 치매 진단을 받게 된다.

윤주와 예린은 어떻게든 시어머니를 함께 돌보려 하지만, 일상은 점점 무너져 내린다. 결국 요양원에 모시게 되지만, 시어머니의 몸 여기저기에 멍이 들어 있는 것을 보고 윤주는 큰 충격을 받는다. 제대로 된 돌봄이 이뤄지지 않았음을 깨달은 윤주는 시어머니를 다시 집으로 데려온다.

딸과 손녀딸의 상황이 어려운 걸 알게 된 윤주의 친정 엄마가 도시로 올라와 시어머니를 돌보며 다시 살림을 맡는다. 잠시나마 세 사람의 일상은 안정을 되찾는 듯 보인다. 하지만 이번엔 친정엄마가 위암 말기 판정을 받는다. 딸 윤주에게는 그 사실을 숨긴 채, 친정엄마는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와 함께 집을 나선다.

그리고 얼마 후, 두 사람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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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니까 당연히 돌봐야 한다’는 의무감...
그 과정에서 사랑은 원망으로, 책임은 죄책감으로, 희망은 어느새 절망으로 변해간다.

가족 돌봄은 여전히 여성의 몫으로 치부되고, 공적 제도는 턱없이 부족하다. 공동체의 시선과 관심은 멀리서 머물 뿐이다. 결국 누군가는 감당할 수 없는 절망의 끝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이런 비극적인 소식은 이제 낯설지 않다. 치매에 걸린 부모나 장애가 있는 자녀를 돌보던 가족이 함께 생을 마감했다는 뉴스가 거의 매일처럼 들려온다.

이 소설은 특정 가족의 비극이 아니라, 누구나 맞닥뜨릴 수 있는 우리의 미래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더욱 시급히 해결해야 할 사회적 과제가 무엇인지 묻게 만든다.

소설의 마지막 p.286
이제부터라도 조금씩 돌봄이란 이름으로 자신을 잃지 않는 법과, 책임과 존재 사이에서 자신을 놓치지 않는 법을. 자신을 살피는 일은 결코 이기심이 아니었다. 그것은 두 어머니가 남긴 삶의 방식에 대한 응답이자, 예린에게 대물림하지 않기 위한 조용한 약속이었다.

이 문장을 읽으며 가족 간 돌봄이 얼마나 고되고 외로운 일인지, 그리고 그 고통이 세대를 넘어 반복되지 않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돌봄은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지만, 그 사랑이 누군가의 희생 위에만 세워진다면 결국 모두를 병들게 하는 단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는 개인의 헌신에만 의존하는 돌봄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짊어지는 구조적 돌봄이 필요하다는 걸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윤주의 조용한 다짐처럼, 우리 모두가 자신을 지키며 타인을 돌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돌봄의 이름 아래 잃어버린 자신을 되찾고,
그 고통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지 않으려는 한 여성의 조용한 다짐..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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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황제
셀마 라겔뢰프 지음, 안종현 옮김 / 다반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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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 안델슨, 그리고 그의 사랑스러운 딸 클라라 피나 굴레보리.

빚을 갚지 못해 집을 잃을 위기에 처한 얀은, 늙은 부모를 대신해 돈을 벌어오겠다는 딸 클라라의 결심을 막지 못한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딸을 떠나보내며, 얀은 매일같이 선착장에 나가 그녀의 귀환을 기다린다. 그러나 약속한 10월 1일이 되어도 클라라는 돌아오지 않고, 기다림에 지쳐간 얀은 점점 현실과 멀어져 스스로를 ‘포르투갈의 황제’라 부르기 시작한다.

18년 후, 마침내 클라라가 돌아오지만, 아버지 얀은 이미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버린 상태였다. 그런 아버지를 두고 떠나려는 클라라를 향해 얀은 끝까지 그녀를 걱정하며, 배를 붙잡으려 바다로 뛰어들고 그대로 가라앉고 만다. 이후 클라라는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매일 선착장에 나가, 그의 시신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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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버지의 끝없는 기다림과 헌신이 그려진 이 소설은 아름답고도 슬프다픈 이야기였다. 얀의 기다림은 단순한 집착이 아닌, 세상 그 어떤 믿음보다 순수한 부성애의 표현이었다고 느껴졌고, 딸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고, 끝내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잃어가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얀의 모습은 애처로우면서도 숭고했다.

딸이 위험에 처했다고 믿고 망설임 없이 바다로 뛰어드는 장면은, 아버지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깊은 사랑이자 끊을 수 없는 기다림의 완성처럼 다가왔다. 그리고 다시 선착장에 서 있는 클라라의 모습은, 아버지의 사랑이 단절되지 않고 시간을 넘어 이어지는 부녀의 슬픈 유대로 느껴져 더욱 가슴 아팠다.

비록 내가 기대했던 해피엔딩은 아니었지만, 이 이야기는 그 어떤 사랑보다도 아름다운 형태의 사랑으로 남았다. 얀과 클라라의 관계는 생이 끝날 때까지 이어지는 순수한 믿음과 헌신의 서사였고, 그 믿음은 비극 속에서도 따뜻하게 빛났다. 함께하지 못했지만 서로의 마음속에 영원히 존재하는 사랑, 슬프지만 따스하고, 끝났지만 여전히 살아 있는 사랑이 느껴지는 이야기였다.

비극속에서도 오랫동안 마음에 남을 부성애가 담긴 소설
잘 읽었습니다.

#채성모의손에잡히는독서 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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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남긴 365일
유이하 지음, 김지연 옮김 / 모모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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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천적으로 색을 보지 못하는 유고.
언제나 밝고 긍정적인 가에데는 어린 시절부터 그런 유고를 편견 없이 대하는 유일한 친구였다.

그런데 가에데가 병으로 세상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유고는 ‘무채병’이라는 진단을 받는다.

무채병은 원인도, 치료법도 밝혀지지 않은 병이다. 다만 발병 후 1년 안에 환자가 죽음에 이른다는 사실만은 확실했다.
죽음이 다가올수록 시야 속 색이 하나둘 사라지고, 결국 모든 것이 무채색으로 변한다 하여 ‘무채병’이라 불린다.

하지만 유고의 경우는 달랐다.
처음부터 색을 볼 수 없었던 그에게, 오히려 하나씩 ‘색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 세상이 이렇게나 아름다운 색으로 가득 차 있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닫게 된다.

유고는 자신에게 남은 1년을, 가에데가 남긴 ‘건강해지면 하고 싶은 일 리스트’를 완성하는 데 쓰기로 결심한다.

리스트를 하나씩 채워가는 과정에서 유고는 아라타, 야자와, 미카미라는 친구들을 만나고, 그들의 도움 속에 냉소적이고 비관적이던 자신이 점점 변해감을 느낀다. 새로운 색을 보고, 함께 웃고, 때로는 울고, 질투하며, 유고의 세상은 서서히 따뜻한 빛으로 물들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유고는 그 리스트가 사실 가에데가 유고를 위해 준비한 ‘내가 죽은 뒤 유고가 행복해지기 위한 365가지 리스트’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제야 유고는 자신이 가에데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진실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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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개의 리스트를 채워가는 시간은 유고에게 남은 1년의 유예이자,
가에데의 부재 속에서도 삶이 얼마나 찬란할 수 있는지 알려주는 여정이었다.
아라타, 야자와, 미카미와 함께 보낸 그 시간은 죽음의 그림자를 잠시 잊을 만큼 따뜻했고, 서로에 대한 편견이 허물어지고 진심으로 웃고, 울며, 성장해가는 그들의 우정은 읽는 내내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 리스트가, 가에데가 혼자 남을 유고를 위해 미리 준비해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죽음을 앞둔 가에데가 어떤 마음으로 그것을 만들었을지, 그리고 그 진실을 알게 된 유고의 마음이 어떠했을지를 생각하니 저절로 눈물이 차올랐다.

단순히 이별과 죽음을 다루는 슬픈 서사가 아니라, 남겨진 사람에게 건네는 가장 따뜻한 형태의 사랑을 보여준 소설이었다. 가에데는 자신의 마지막을 예감하면서도, 유고가 자신 없이도 살아갈 수 있도록 삶의 이유를 남겼다. 그리고 유고는 그 사랑을 통해 비로소 세상의 색을, 삶의 소중함을 배워갔다. 슬픔 속에서도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로와 기적이 되는지를 잔잔하게 일깨워주는 소설이었다.

이별의 슬픔 속에서도 끝내 희망의 색을 잃지 않는 사랑의 기록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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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anhouse.official 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momo.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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