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 문체부 제작지원 선정작
복일경 지음 / 세종마루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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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된 시어머니와 친정엄마를 찾았다는 경찰의 연락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남편의 갑작스러운 사망 이후, 윤주는 어린 딸 예린과 단둘이 남겨진다. 남겨진 빚과 생활비를 감당하기 위해 학원 강사로 다시 일하게 된 윤주. 하지만 저녁 늦게까지 이어지는 수업 때문에 예린을 맡길 곳이 필요했다. 친정엄마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냉정하게 거절당한다. 그때 윤주를 걱정한 시어머니가 집과 땅을 팔아 도시로 올라와, 살림과 아이 돌봄을 도맡게 된다.

그렇게 세 사람의 삶은 서서히 안정을 되찾는다.

예린이 중학생이 되면서도 일상은 평온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인가 시어머니가 깜빡깜빡 물건을 잃어버리고, 화장실을 찾지 못해 실수를 하는 일이 잦아진다. 불안함을 느낀 윤주는 시어머니를 병원으로 모시고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시어머니가 중증 치매 진단을 받게 된다.

윤주와 예린은 어떻게든 시어머니를 함께 돌보려 하지만, 일상은 점점 무너져 내린다. 결국 요양원에 모시게 되지만, 시어머니의 몸 여기저기에 멍이 들어 있는 것을 보고 윤주는 큰 충격을 받는다. 제대로 된 돌봄이 이뤄지지 않았음을 깨달은 윤주는 시어머니를 다시 집으로 데려온다.

딸과 손녀딸의 상황이 어려운 걸 알게 된 윤주의 친정 엄마가 도시로 올라와 시어머니를 돌보며 다시 살림을 맡는다. 잠시나마 세 사람의 일상은 안정을 되찾는 듯 보인다. 하지만 이번엔 친정엄마가 위암 말기 판정을 받는다. 딸 윤주에게는 그 사실을 숨긴 채, 친정엄마는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와 함께 집을 나선다.

그리고 얼마 후, 두 사람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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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니까 당연히 돌봐야 한다’는 의무감...
그 과정에서 사랑은 원망으로, 책임은 죄책감으로, 희망은 어느새 절망으로 변해간다.

가족 돌봄은 여전히 여성의 몫으로 치부되고, 공적 제도는 턱없이 부족하다. 공동체의 시선과 관심은 멀리서 머물 뿐이다. 결국 누군가는 감당할 수 없는 절망의 끝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이런 비극적인 소식은 이제 낯설지 않다. 치매에 걸린 부모나 장애가 있는 자녀를 돌보던 가족이 함께 생을 마감했다는 뉴스가 거의 매일처럼 들려온다.

이 소설은 특정 가족의 비극이 아니라, 누구나 맞닥뜨릴 수 있는 우리의 미래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더욱 시급히 해결해야 할 사회적 과제가 무엇인지 묻게 만든다.

소설의 마지막 p.286
이제부터라도 조금씩 돌봄이란 이름으로 자신을 잃지 않는 법과, 책임과 존재 사이에서 자신을 놓치지 않는 법을. 자신을 살피는 일은 결코 이기심이 아니었다. 그것은 두 어머니가 남긴 삶의 방식에 대한 응답이자, 예린에게 대물림하지 않기 위한 조용한 약속이었다.

이 문장을 읽으며 가족 간 돌봄이 얼마나 고되고 외로운 일인지, 그리고 그 고통이 세대를 넘어 반복되지 않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돌봄은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지만, 그 사랑이 누군가의 희생 위에만 세워진다면 결국 모두를 병들게 하는 단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는 개인의 헌신에만 의존하는 돌봄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짊어지는 구조적 돌봄이 필요하다는 걸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윤주의 조용한 다짐처럼, 우리 모두가 자신을 지키며 타인을 돌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돌봄의 이름 아래 잃어버린 자신을 되찾고,
그 고통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지 않으려는 한 여성의 조용한 다짐..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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