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수 클리볼드 지음, 홍한별 옮김 / 반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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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21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그녀의 어머니>라는 일본 영화를  봤었다.  


주인공 하루미는 자신의 눈앞에 벌어진 사위가 딸을 살해하는것을 겪고 엄청난 충격에 빠진다. 6년뒤 주위의 사람들은 조금씩 딸 미치요의 죽음에대해 순응하게 되고 그녀의 남편, 남동생은 이제 미치요를 놓아주자고 한다. 하지만 그녀는 그 사건에 대한 이해(딸에 대한 의문)와 진실을 전혀모른채로 그냥 놓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이후 복역중인 사위에게 면회를 신청해서 그날의 진실을 끊임없이 묻는다.  그 과정에서 점차 사위를 이해하게 되고 (이것이 용서의 차원인지는 모르겠다.) 이 과정에서 그녀의 남동생과 남편은 그런 그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갈등을 빚게 된다. 하지만 끝내 가해자인 사위에게 진실을, 그의 생각을 듣지 못한채 형이 집행되었다. 

 딸의 죽음으로 인해 마주치게 된 하루미의 심리의 변화를 보여주면서 그 속의 가족간의 갈등을 그린 영화였다. 하루미의 심경변화를 쫒아가면서 나도 점차 그녀의 행동에 이해 되어가고 있었다.


그날의 충격? 혹은 신선함? 을 또 다시 느꼈던것이 프레시안 북스에 올라온 https://goo.gl/7S61ec 기사였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라는 책인데 제목부터 눈길이 갔었다.  그리고 이 책의 주요 사건인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 사건은 나와 인연이 깊었다. 두사건을 다룬 영화 2편을 본 것인데 고등학교 시절 마이클 무어감독의 '볼링포 콜럼바인'이란 영화를 통해 미국의 합법적인 총기소유가 어떤 의미인지 알게해주었던 영화였고 그리고 당시 같은 반에 영화를 무척 좋아하던 친구가 추천해준 영화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엘리펀트'를 보기도 하였으니 이미 이 사건은 어느정도 알고 있었다. 이후 알라딘 이웃님의 리뷰가 올라오고  '그래 읽어보자!' 라고 읽었었다. 


 필자는 콜럼바인 고등학교의 가해자중 한명인 딜런 클리볼드의 엄마로서 나름 애써 사랑으로 잘키웠던 아이가  어째서 미국 역사상 기록 될 최악의 사건의 가해자가 되었는지 끝없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을 책 전체에서 그리고 있다. 


내 정체성이 벗겨지고 나자 내가 평생 얼마나 나 자신에 몰두하고 지냈는지를 알게 되었다. 나는 늘 다른 사람이 나를 좋아하기를 바랐고 공동체에서 쓸모 있는 존재라는 사실에서 기쁨을 느꼈다.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일을 직업으로 택했다. 내 일에서 보람을 느끼는 것이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훨씬 중요했다. 내 아이들과, 톰과 내가 꾸린 가정을 자랑스럽게 여렸고 내가 좋은 엄마라고 자부했다. 콜럼바인 이후에는 이 모든게 허위가 되어버렸다. 나는 그냥 나쁜 엄마가 아니라, 세상 최악의 엄마이고 지역 신문 1면에 증오의 대상으로 실리는 사람이었다. 존경과 사랑은 커녕 그저 주변 사람들이 혐오와 비난 가운데 약간의 공감이라도 느껴주기를 바라는 게 최선이었다. (p.212)


 클리볼드집안은  어떤 문제가 있는 가정이라기 보다 전형적인 중산층의 가정이었다. 중산층 집안이 그러하듯 부모는 양육에도 누구보다 신경을 썼다. 그러나 자식가진 부모의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다. 엄청난 총격 사건의 가해자의 부모로 맞이 하게 된 것이다. 모든 것이 믿을 수 없었다. 다른 한명의 꼬드김에 어쩔 수 없이 넘어갔던 것일 꺼야..하지만 그 마지막 끈 마저 수사결과를 보고 난뒤 무참히 끊어져버린다. 자신이 집에서 알고 있던 딜런이 아니었다. 예전부터 자살을 계획하였고 이 과정에서 이 사건을 치밀히 친구와 계획하고  실제 실행을 옮기고 난뒤 자살해버렸다. 


자살은 아름답지 못하다. 불명예를 쓰고 있다. 한 사람의 삶이 실패로 끝났다고 세상에 외친다. 대부분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는 듣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우리 문화에서는 자살로 죽은 사람은 나약하고, 의지가 빈약하고, ‘비겁자의 길‘을 택했다고 생각한다. 가족, 배우자. 일 등을 소중히 여겼다면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올 방법을 찾아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들 모두 사실이 아니지만 이런 오명을 흔히 덧입고 유족들에게 짐으로 주어진다. 자살자 유족들은 당혹감, 후회, 자기비판과 늘 함께 살아가야 한다. (p.397)


 집안에서 크게 문제없던 아이를 부모는 가해자로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었을까? 필자인 수 클리볼드는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어째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는지 답을 찾는다.  정치가들은 당시 유행했던 <둠>게임을 원인으로 꼽기도 하고 내가 보았던 마이클 무어의 영화에서는 총기 소유를 원인으로 말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모든 결과엔 한가지 원인만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위의 프레시안 기사를 인용하자면 "이 세상 누구보다 이 문제에 매달린 저자는 함부로 이 사건을 단언하지 말라고 한다. 아이들이 게임 중독자였다는 말은 헛소리다. 폭력적인 음악이 사람을 살인마로 만든 게 아님도 명확하다. 총기가 더 큰 피해를 낳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무너지는 아이들의 내면을 붙잡고, 그 신호를 알아채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레인 박사는 고소하다는 듯한 말투로 연구결과를 요약한다. ˝부모는 자기 아이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자기가 낳아 기른 아기라도 전혀 모르기 십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다. 안됐지만 누가 사이코패스, 거짓말쟁이인지 부모도 나만큼이나 오리무중이다. (p.349~350)

 

 자신이 잠정적으로 알게 된 것은 부모마저도 자신의 아이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부모는 아이를 가장 잘 안다고 하지만 가장 모르는 존재일 수 있다. 나도 아직 부모가 되지 않았고 아직 자식으로만 경험하였던 나의 사례를 보더라도 속 깊은 얘기같은 것은 오히려 가족보다 친구와 말할 경우가 훨씬 더 많다. 나의 부모님도 나의 모든 모습? 혹은 많은 부분을 잘 모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식은 부모를 누구보다도 잘 안다. 어릴적부터 부모의 많은 모습을 보면서 커갔고  그 속에서 많은 부분을 배우고 따라하면서 닮아가기도 한다.  부모야 말로 가장 아이를 모르는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불편하고 듣기 싫은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불행과 고통에 대한 공감을 넓힐수록 아이들의 삶은 안전해질 것이다. (옮긴이의 말 중)


 가해자의 엄마라는 특수한 포지션을 가지고 있는 필자는 용기를 내어 자신의 아이를 알아가는 과정을 책을 통해 그려냈다.  명쾌한 해답을 말하지 못하였을 지라도 이 기록은 기록 자체로 의미가 있다. 아이의 잘못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아들인 딜런이 그런 행동을 하기 까지 알지 못한 자신을 진정으로 괴로워했다. 어느 누구에겐 최악의 인간일지 모르는 아이를 이해하고 사랑으로 애도해줄 수 있는 상대는 결국 부모인 수 클리볼드 자신이었다. 


톰은 ‘딜런이 우리도 죽였더라면 좋았을 텐데, 혹은 우리가 아예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하는 말을 자주 했었다. 나는 자면서 죽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잠에서 깨어나는 고통에서 조용히 해방되고 싶었다. 차에 앉아 있다보면 내 목숨을 학교에서 죽은 사람들 목숨 대신 내줄 기회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나 자신을 희생해서 많은 사람들을 구할 기회가 생기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공상을 했다. 죽으면 이 모든 것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고, 다른 사람을 위해 죽을 수 있다면 내 비참한 생에도 의미가 생길 테니까. (p.385~386)


남편 톰이 딜런이 우리도 죽였거나 아예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텐데... 자신도 자면서 죽게 해달라고 기도했었다는 대목이 지금도 너무 슬프게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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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7-07-13 08: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에릭 혼자였어도 이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거고 딜런 혼자였어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텐데, 그들이 서로 함께했기 때문에 일어났다는 것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건 대체 어떤걸까요?

수 클리볼드와 남편 톰도 마찬가지죠. 그토록 사이좋게 오래 함께 살았지만, 아들의 자살을 앞에 두고 견뎌나가는 과정이 둘이 너무나 다르잖아요. 결국 사이는 더 벌어지게 되고요... 역시, 함께한다는 건 어떤걸까, 라는 생각을 했어요.

이래저래 아주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책이었어요. 정말이지,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블랙겟타 2017-07-13 12:41   좋아요 1 | URL
함께한다... 쉬우면서도 어려운 말이네요.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는 인간은 늘 언제나 함께 하고 있지요. 그것이 좋은 결과 혹은 나쁜 결과로 이어지기도 하구요..

다락방님이 말씀하신 수와 톰의 갈등이 제가 봤었는 그녀의 어머니에서도 비슷하게 나와요. 살해당한 딸의 죽음에대해 견뎌나가는 과정이 달라서 가족내의 갈등이 벌어집니다. 그 부부도 결국 이혼을 하구요.

저는 이 책에서 저자가 아들이 살인을 저지르고 난 뒤 그것을 외면하지 않고 책임지는 삶을 살아가는 모습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분명 미국에서 조차 쉽지 않은 선택일텐데.. 그 부분에서 볼때도 읽을 가치가 높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