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禁하다 - 금제와 욕망의 한국 대중문화사 1945-2004
김성민 지음 / 글항아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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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시절 많은 과목 중에 특히 근·현대사를 좋아했었다. 

고려나 조선시대의 왕 순서나 왕의 업적을 외우는 국사파트보다 조선이 끝나고 일제강점기때 일어난 독립운동의 연도는 더 잘 외웠다. 이 과목에서 배울 수 있었던 크고 작은 전투도 많이 나오는 독립운동사를 배우며 뭔가 국뽕(?)에 취해 이야 우리나라 대단하네 라며 감탄하며 신나게 공부했었다. 당연히 이 부분을 좋아했으니 그 당시 적국인 일본에 대한 감정은 좋지 않았다. 일본의 횡포에 부글부글 민족적 감정이 끓어오르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와 함께 어릴때 부터 나에게 영향을 많이 준 것은 아이러니하게 일본문화였다. 특히 만화(망가)라던가 일본에니메이션(아니메메)였는데 당시엔 일본국적의 만화/애니메이션인지도 모르고 보았기 때문에 당연히 한국 것 인지 알고 봤던게 대부분이었다. 당연히 공식적인 일본문화개방이 있기 전이였기에 등장인물에 대한 이름도 현지화해서 한국이름이었으니 말이다. 예를 들면 슬램덩크의 주인공이 '사쿠라기 하나미치'가 아니라 '강백호'거나 피구왕 통키(불꽃의 투구아, 돗지 단페이)의 주인공이 '이치게키 단페이'가 아니라 '나통키'였던 것 처럼.  


역사과목을 통해 일본을 미워했으면서도 (몇몇은 일본문화인지도 모른채)일본문화에 영향을 받은 이런 나의 이중성은 무엇에 기인한 것일까?


이러한 물음에 어느정도 설명해준 것이 이 책『일본을 禁하다』였다. 

이 책은 일본문화 개방의 역사를 통해 한국의 문화사를 설명하고 있다.


일본 대중문화는 '금지'담론을 생산하는 정치 영역에서는 접촉이 허용되지 않는 '위험한 손님'이었지만, 실제 대중문화를 둘러싼 경제적·문화적 현장에서는 매우 복잡한 시선과 욕망이 중층적으로 투영된 대상이었다. 한국사회에서 일본 대중문화에 대한 금지와 월경이 동시에 작동했던 근저에는 경제 발전과 근대화의 상징의 척도였던 자본주의 문화와 그것이 생산하는 현대성을 둘러싼 욕망이 강하게 작용했던 것이다.

(p. 43)


광복 후 친일의 역사를 제대로 끊어내지 못한 탓일까 아니면 광복 후 대한민국의 운명에 대한 주도권을 잡은 미국의 전략적인 무시인지는 모르지만 생각보다 일본 대중문화가 비공식적으로 한국에 전파가 되고 있는 중이였다. 공식적으론 일본 문화를 금지하고 정치적으로도 반일을 외쳤던 시대였지만 특히 한국의 상층부나 정권을 잡고 있는 쪽에선 (가장 가까운 나라이자 우리보다 앞서 경제 고성장 중인 나라인) 일본을 내심 부러워한 것을 넘어 일본 문화를 늘 향유하고 있었다. 


그러던 가운데 박정희 군부독재정권은 시작을 반일민족주의로 시작했으나 그 본인도 일본 메이지유신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었기도 하고 우리나라보다 앞서 경제 고성장 중인 이웃나라 일본에 대한 로망(이 것은 단순하게 친일정권이였나를 넘어 당시 북한보다도 못 살았던 한국의 처지를 볼때 고위층에서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우리의 미래는 일본이다라던지 가장가까운나라인 일본의 도움을 받아야만이 성장할 수 있겠다라는 현실적인 전략과  동아시아에서의 반공블럭의 축인 일본과 하루빨리 외교관계가 복귀하는 것이 나쁠 것이 없는 미국의 암묵적 동의등 여러 복합적인 이유가 존재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 믿음이 있다고 하더라도 반일에 대한 전체적인 국가 분위기를 시민들과의 합의로부터 출발한 것이 아닌 아무것도 준비되어있지 않은채 위로부터의 강압적인 정책 추진은 비난 받아 마땅하다)를 바탕으로 (지금도 한-일관계에서 중요한 사건인) 1965년에  한일 국교화 정상화를 우여곡절 끝에 성사시켰다. 하지만 아직 시민들은 '반일'을 갑자기 머리 속에서 지워버리기엔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기에 공식적으로는 왜색이라며 비난하면서도 일본문화는 비공식적이거나 교묘하게 수입하는 방향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흐름은 97년 공식적인 일본문화개방 전 까지 유지가 되었는데 특히 수입된 일본애니메이션에서 '왜색'이라는 이유로 기모노라던가 신사가 나오는 장면은 아예 통편집되거나 극중에 나오는 일장기는 어설프게 태극기로 그려넣는다거나 하는 장면들이 있었던 이유다.


한국 대중문화 산업이 성장하면서 일본 대중문화는 단순한 식민지 시대의 잔재가 아니라 새로운 문화적 침략으로 인식되었으나 ('문화 제국주의 비판'으로서의 정당성), 동시에 일본 대중문화를 미국 대중문화로부터 얻고자 했던 것과 같이 자본주의 문화의 하나의 모델로 인식했던 것과 같이 자본주의 문화의 하나의 모델로 인식했던 한국 대중문화 산업은 일본 대중문화를 배제하는 대신 국적을 지우고 적극적 모방, 표절하는 방법으로 산업적 성장을 피했다('산업적 근대화'로서의 정당성).

(p. 231)


97년 일본문화개방전까지 한국에서 트랜디한 드라마나 예능프로그램은 대개 일본 드라마나 프로그램의 형태와 매우 유사한 형태였는데 좋게봐주면 모방이겠지만 표절이라고 볼 수 있는 사례도 상당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도 이 시기를 지나 나중에 일본문화를 정식으로 접했을 때 한국문화와 전혀 위화감을 갖지 못했을 때의 충격은 한국 프로그램 포맷이 일본 포맷에서 자유롭지 않았기 때문일 지도 모르겠다. 


어찌됬건 이러한 과정들이 결국은 한국문화의 성장도 이끌어와 내가 어렸던 시절과는 다르게 지금 자라고 있는 어린세대들은 일본 문화는 일본 문화인채로 받아들이고 있기도 하거니와 k-적인(?) 대중문화를 더 쉽고, 많이 접하고 있고 심지어 일본문화보다 더 좋다고 느끼고 있으니 한국의 대중문화의 위치가 변했긴 했나보다.


해방 이후 한국에서 일본이라는 타자가 '과잉된 존재'였다면, 전후 일본에서 한국이라는 타자는 자이니치在日나 북한, 다른 아시아 국가와 마찬가지로 줄곧 '부재'해온 것이다.

(…)

냉전이라는 거대한 프레임 속에서 함께 미국을 욕망하고, 고도성장과 발전주의를 경험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상호의 '현대'가 갖는 다양한 문제를 공감하고 공유하기를 꺼려한 두 나라의 억압된 포스트콜로니얼한 문화적 관계는, 그렇기 때문에 '65년 체제'로 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p. 235)


일본문화를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 중엔 예전 박근혜 정부때 한-일 관계가 좋았었는데 말이지라고 회상하기도 하는데 나는 그 시절이 결코 좋았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 당시가 일본 쪽에서 볼 때 우리를 다루기 쉽다고 생각(?)했을지는 몰라도 한-일관계가 좋았다고 하기엔 한국이 정치적으로 피해를 많이 봤다. 지금의 일본의 아베정권을 보고 있자면 한숨만 나오는데 언젠가 합리적인 정치세력의 대표가 총리가 되는 날이 오길 바랄 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나라이면서도 (생각보다) 문화적으로 영향력을 끼친 나라이면서도 알면 알수록 어려운 나라인 일본과 언젠가는 역사적으로 정치적으로 얽힌 문제들을 진지하게 논의해볼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도 되면서 진짜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 걱정이 되기도 하면서 이 책의 독서를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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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0-05-31 21: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본의 대중문화(일드, 일본영화, 음악, 만화까지)를 정말 청소년기에 아주 열심히 섭취하면서 자란 저로서도 흥미로운 주제예요. 의식은 반일이었지만, 정말 문화는 일본 문화 좋아했었더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