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이 아닌 날들 - 가족사진으로 보는 재일조선인, 피차별부락, 아이누, 오키나와, 필리핀, 베트남 여성의 삶
미리내 지음, 양지연 옮김, 조경희 감수 / 사계절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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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릴적부터 일본에 알게모르게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한다.

내가 TV를 통해 즐겨봤었던 더빙된 만화영화가 나중에 일본애니메이션임을 알게되고 한국의 애니와 일본의 애니의 격차를 실감했을 떄  

그리고 그 때 당시 서울에 계신 이모집에 샤프 텔레비젼을 보았을때, 아버지께서 일본출장을 다녀오며 사온 일제 사인펜세트를 받고 좋아했던 그런 날들을 지나며 그런 일본을 동경 했었다. 그리고 중고등학교때도 특유의 시니컬함이나 철학적인 의미를 지닌 일본 만화나 일본 영화를 보며 철학적인 부분을 어설프게나마 그곳에서 배웠고 괜히 어른스러워졌음을 느끼며 뿌듯했었다. 그와 동시에 근현대사를 공부하면서 민족투사가 되어 일본욕을 마음속으로 했던 적도 있듯 과거의 일본은 싫어했고 현대의 일본을 좋아했다. 그리고 일본 관련 책을 읽으며 뉴스를 보며 와 양국이 비슷하면서도 뭔가 다른 느낌을 받았었다.


예전에 대학에서 일본정치 수업을 수강했었는데 그땐 뭐 민족성에 대한 주제였던것 같다. 그 수업에서 한국이나 일본이 비슷한 점이 유독 단일민족임을 강조한다는 것이라고 했었던 게 생각이 난다. 그래 나도 그때 속으로 뭐가 한국이 단일민족이냐. 한반도에서 얼마나 많이 침략을 받기도.. 새로운 나라가 새워지기도 했는데 그 속에서 유일한 민족의 피로만 이어져 있을까? 인종적으로 몽골계 동양인이 매우 다수이기에 흡사 그렇게 느껴지고 뭔가 국가적으로 단결하기 위해 이런걸 이용하는거지 라고 생각했었다. 한국은 강한 배타성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아직 여러민족이 이루어진 형태에 대해서 진지하게 논의 되본 적이 없다. 이웃나라인 일본도 비슷하다. 일본도 예전부터 단일민족임을 주장하며 강한 배타성을 가진 나란데 이 나라엔 아직도 깊게 내재된 차별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일본내 마이너리티라고 볼 수 있는 재일조선인, 피차별부락, 아이누족, 오키나와인, 이주민들 등 이다.


이 책 『보통이 아닌 날들』은 가족사진을 통해 이러한 일본내 마이너리티 여성들의 삶을 보여준다. 왜 가족사진일까? 재일조선인의 집에는 가족사진이 많았다. 다른 피차별부락, 아이누족, 오키나와인, 이주민들도 비슷했다. 


사진은 모순을 갖고 있고 가족사진 또한 모순덩어리 같은 것 아닐까요? 물론 개인의 초상에도 참과 거짓의 모순이 가득 차 있습니다. 요즘의 셀카도 거짓이 가득하다는 점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셀카는 한 개인을 대상으로 합니다. 그에 비해 가족사진은 다수가 찍으니까 더욱 거짓이 확대된다고나 할까요. 가족사진에 사람과의 이상적인 관계를 담으려는 욕망이 있습니다. 얽히고설킨 현실의 관계를 숨기고 사이좋은 가족이기를 바라는 욕망을 찍으려 하기 때문에 더욱 복잡해지지요.

(p. 271) 


출신으로서 사회적·경제적 차별받았고 동시에 여성으로서 받았던 이중적 차별을 겪고 있는 그들이 좋든, 싫든 가족과 커뮤니티는 자신의 삶을 지탱하는(동시에 구속하는) 곳이였다. 현실이 아무리 혹독했더라도 그곳에서 꿈꾸는 이상적인 모습을 바라며 가족사진으로 남겼다. 


1993년 어머니는 쉰일곱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때 나는 서른여섯이었다. 어머니의 앨범을 정리하는데 잊고 있던 사진이 나왔다. 친구 어머니들과 나란히 서서 웃고 있는, 어딜 보나 일본인인 기모노 차림의 어머니 사진이었다. 나는 그 사진을 찢어서 버렸다. 재일조선인의 장녀로 교토에서 나고 자란 어머니, 일본 사회의 혹독한 차별 속에서 형제들을 돌보느라 학교도 가지 못하고 늘 누군가를 위한 인생을 살아온 어머니, 그런 어머니에게 나는 어머니를 멸시하는 일본인처럼 되라고 강요했다. 부끄러웠다. 지나간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p. 40) (황보강자)


한국에 머무는 동안 할머니가 점심으로 북엇국을 끓여주셨다.

 투명한 국물 속에서 황금빛이 도는 말린 생선과 콩나물이 너울너울 춤추었다. 한 입 떠먹는데 눈물이 떨어졌다. 할머니가 끓여주신 국은 엄마가 만들어주던, 내가 너무나도 싫어했던 바로 그 국과 똑같은 맛이었다. 나는 엄마가 할머니에게 전수받은 집안의 맛을 엄마의 병을 이유로 거부하며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일본 사회에 동화되어 평범하게 살아가라고 그 누구보다 세차게 엄마를 몰아붙였던 사람이 엄마의 딸인 나이지 않았을까. 나는 내 앞에 놓인 차별에 저항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편협한 시각에 사로잡혀 엄마를 궁지로 몰아갔다.

(p. 116) (최리영)


엄마의 삶 속에 '젠더적 관점'은 손톱만큼도 없었다. 엄마에게 일이란 '성역할의 분담'같은 단어 너머에 있었다. 엄마는 일터에서 접하는 부당한 대우, 이를테면 '남자 일을 하는 여자', '여자 주제에'같은 멸시의 시선을 어떻게 느꼈을까. 나는 잘 모르겠다. 엄마는 딸인 나와 여동생을 정말 아끼고 사랑했지만 어른이 된 뒤 엄마와 여자로서 마주않아 이야기를 나눠 본 적은 없다. 분명 엄마도 나와 여동생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지 않았을까. 뒤 돌아보니 자꾸 마음에 걸린다. 

 늘 싱글싱글 웃으면서 땀을 훔치던 엄마는 딸과 속마음 한 번 나누어보지 못한 채 1999년 2월 19일 고통 속에서 생을 마감했다. 향년 62세였다.

(p. 207) (야마자키 마유)


평소처럼 둘이서 저녁식사 뒷정리를 하는데 엄마가 괴로운 표정으로 비밀을 얘기하듯이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참관일에 갈 테니까, 미리 참석자 확인 명당에 엄마 이름을 한자로 써놔. 꼭 적어놓아야 해."


그때 엄마가 지은 표정이 지금도 뇌리에 또렷하다. 아니 잊어서는 안되는 기억으로 내 마음속에 새겨졌다.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쓸쓸해 보이기도 했고, 부끄러운 듯도 햇다. 지금 생각해보면 10살 남짓한 딸에게 지어 보일 표정은 아니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그 표정을 본 순간, 엄마가 참관일에 오지 않았던 진짜 이유를 비로소 깨달았다. 딸에게 조차, 아니 딸이기 때문에 더욱 말할 수 없는 절박한 이유. 엄마는 글을 쓸 줄 몰랐던 것이다. 아마 나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생각만 하다보니 엄마의 사정 따위는 전혀 신경 쓸겨를이 없었다. 그렇게 사람은 누군가에게 쉽게 상처를 준다. 10살인 내 안에도 남을 차별하는 사람들의 자기중심적인 변명이 들어 있었다. 어린애가 뭘 아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상황을 이해하게 되었을 때 나는 정말 엄마에게 미안했다. 자식에게 이런 부탁을 해야만 했던 엄마를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쓰리다.

(p. 208~209) (야마자키 마유)


재일조선인3세로 살아온 황보강자씨, 부락민과 한국인사이에서 태어난 최리영씨, 피차별부락출신의 야마자키 마유씨.

그들 모두 일본내에서 마이러니티의 정체성을 가지고 태어나 자라며 어릴적부터 '일반적'인 일본인과 다름을 느끼기 시작했고 더 일본인이 되기 위해 노력했던 적도 있었다. 어머니에게 학교졸업식때 저고리가 아닌 기모노를 입어달라고 부탁해 실제 기모노를 입고온 어머니의 모습에 기뻐했었고.(황보강자) 어머니가 늘 해주신 그 일본음식 같지 않은 북엇국을 싫어해 어머니에게 제발 일본사회에 동화되어 살라고 모질게 다그친 적도 있었고(최리영) 다들 오는 학부모 참관일에 늘 오지 않던 어머니에게 왜 안오냐고 한번 오는게 힘든거냐고 크게 화를 낸적도 있었다.(야마자키 마유) 하지만 그들 또한 단지 일본인처럼 '평범'하게 사는 것을 결국 국가는 사회적으로 허용하지 않았다. 이 후 그녀의 어머니들이 겪었을 지독한 차별로 인해 자신의 학교도 온전히 마치지 못한채 가족을 부양하고 자식들을 양육해야 했을 상황을 이해했을때 그들은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이 책은 일본내의 마이너리티의 삶을 산 이들이 다음세대로 이어진 이야기로서만이 아닌 마이너리티 여성의 이야기기도 하다. 출신과 성이라는 이중의 차별 속에서 우리에게 말해주는 그들 일생의 이야기는 울림이 크다. 일본뿐만의 이야기일까? 한국이라고 다를까? 한국내 다문화가정의 여성의 삶, 매매혼으로 한국으로 건너온 여성들의 삶을 보다 더 관심을 가지고 신경써야될 이유를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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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10-24 16: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좋은 책을 알고 갑니다, 블랙겟타님.

블랙겟타 2019-10-24 23:19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합니다 ㅎㅎ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