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종교가 박해한 '타락한 여자들':아일랜드 ~ 5. 민주화를 외치는 광장에서의 성폭력:이집트)


종교. 정확히 말하면 종교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은 여자들을 가만히 놔두질 않았다.

유럽에서, 중동에서, 아프리카에서, 어디든이며. 기독교, 이슬람 가릴 것 없이.


여성의 성에 대해 성모마리아가 비현실적으로 엄격한 기준을 세운 이래 남성들은 이에 대비되는 '타락한 여자'에 집착해왔다. 초기 기독교의 현자로 통하는 성 예로니모는 4세기에 "여성은 만악의 근원"이라는 글을 남겼다. 13세기에 발의된 교회법Canon Lows은 여성 감금을 정당화했다.

"추악한 육욕으로 인해 결혼의 침상을 내버리고 타락한 여성들은 하느님을 위해서……

종교에 귀의한 여성들이 있는 수녀원에 배속시켜 영구적인 고행을 하도록 해야한다."

19세기 초 아일랜드에서는 이런 사상이 인기를 얻었고 대부분의 대형 세탁소가 이떄 지어졌다.

(P. 134~135)


'막달레나 수녀원사건'이라는 것을 다큐멘터리에서 얼핏 봤던 기억이 났다. 

인권유린의 사례로 당시에 보면서 부산 형제복지원사건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이 막달레나 수녀원에서의 인권.. 

특히 여성의 인권을 철저히 유린한 내용이 이 책 한 파트에 걸쳐 보여주고 있다.


현재에도 가톨릭계의 심각한 흑역사로 기록되는 이 사건은 종교가 '여성'을 어떻게 취급하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태초부터 여성혐오적인 시각을 견지했던 종교인의 말씀은 후대로 내려올 수록 더욱 단단한 법이 되었다. 사람으로도 취급하지 않고 지금보면 철저히 2등 사람쯤으로 여겼던 것 같다. 초기 기독교의 현자로 불리는 분은 여성을 만악의 근원이라고 칭했으며 여성은 가만히 놔두면 안될 사람이었다. 가만히 놔두면 타락하는 존재이니 가정으로 국한한다면 철저히 남편의 그늘에 있어야 했고 넓게는 판단력과 절제력이 있는(?) 남자들의 말을 들어야했다. 


19세기 초 아일랜드에서 많이 볼 수 있었던 대형 세탁공장들은 대부분 군시설이라던가 호텔, 정부시설쪽에서 위탁 받아 사회시설로서의 역할을 했던 가톨릭 수녀회에서 세탁업무를 맡아서 하는 형태였다. 

수녀회에 속했던 많은 젊은 여성들이 이 업무를 맡았는데 이들은 일명 '타락한 여성'들이었다. 대부분 매춘부, 미혼모들이었는데 비현실적인 엄격한 기준으로 여성의 성에 대해 판단해  아무나 막 잡아들였다. 매춘부, 강간으로 인한 임신한 여성, 심지어 '예방'의 차원으로.. 외모가 뺴어나다는 등. 근거도 없이 많은 여성들이 종교라는 이름으로 낙인이 찍혔다. 미혼모들은 아이와 강제로 생이별을 하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아일랜드와 영국에서는 정신없이 바쁜 세탁 일이 영혼을 정화하는 공인된 방법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금지된 성교에 관여한 남자들을 찾아내고 처벌하는 데 이런 에너지를 쏟은 적은 없었다.

(p. 136)


가부장적 사회의 도덕적 질서를 엄격하게 유지해야 할 필요와, 노동자를 공짜로 부려먹으면서 이익을 얻으려는 종교단체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며 이들 세탁소는 그 정당성을 더욱 공고히 확보했다.

(p. 137)


수녀원은 '감금'되어 있던 많은 여성들에게 강제노역을 시켰고 구타, 심지어 신부에 의한 강간도 이루어지는 등 인권유린의 장소였다. 당시 아일랜드, 영국 사회 분위기 자체가 이런 타락한 여자들은 정신없이 노역을 시키는 것만이 영혼을 정화하는 방법이라고 믿었..다. (믿고 싶었던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그럼 이런 기준이라면 타락한 남성이라면?? 

이렇게 여성들을 철저히 솎아내고 처벌하면서 남성들에겐 전혀 그러지 않았다. 

이렇게 자행해왔던 이유가 있다면 사회적으로 볼때 가부장적인 도덕적 질서를 유지해야할 필요성과 노예형태의 무임금 강제노역으로 이득을 취하려는 종교단체의 이해관계가 맞은 지점이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철저히 여성의 인권이 유린되가며 많은 여성들이 죽어갔다.

19세기초라고 해서 옛날얘기가 아니다. 

이 수녀회세탁소는 내가 살고 있었던 20세기 말까지 존속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더욱 놀라웠다. 

안타깝게도 아직도 이 사건은 피해자들이 납득할 만한 사과와 보상이 이루어지질 못했다.


아랍국가라고 한다면 지금도 무턱대고 드는 생각이 종교적으로 여성을 억압하는 곳아니야? 라고 생각이 든다.

많이 변해왔다고 하지만 아직도 많은 아랍권 국가에서는 여성들을 억압을 넘어선 탄압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슬람 종교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대표적인 아랍권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수니파의 와하브파가 자리잡고 있는 곳이다.

와하브파는 특히 근본주의를 엄청 강조하는 분파로서 심각한 여성차별을 하고 있다.

일반적인 무슬림국가에서 히잡(머리와 얼굴을 둘러싼 형태)정도 쓴다면 정숙한 옷차림(어?)으로 여성 혼자서 돌아다니는 것이 허용된다면 사우디아라비아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무슬림 여성복장의 폐쇄적인 형태인 니캅(눈만 들어낸 채 얼굴 전체를 감싸는 형태)와 부르카(머리부터 발끝까지 감싼 형태)를 입어야되고 남성의 보호자(가족 혹은 보호자)의 동행이 아니고서는 절대 돌아다닐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파트의 제목이 가장 큰 여성 감옥이라는 것이 납득이 된다.


와하브주의는 여성을 정신적으로 결함이 있는, 영원히 성숙한 인간이 될 수 없는 존재로 취급한다. 여성은 집을 나서기 전에 반드시 남성의 허락을 받아야 하며, 병원치료를 받거나 은행 계좌를 개설하거나 교육기관에 입학하거나 또 여행을 할 때도 집 밖에서 보내는 매 순간 남성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 남성 보호자는 여성이 몇 살이든 상관없이 결혼시킬 수 있다. 만일 이혼한 여성에게 아버지와 남자형제마저 없다면, 십대 아들에게서 이러한 특권을 누릴 허가를 받아야 할 수도 있다.

(p. 185)


마찬가지다. 앞서 가톨릭도 그렇듯 이슬람계의 와하브파도 여성을 남성과 동일시 보고 있지 않다. 

결함이 있는 형태 미성숙한 인간으로 취급되어 왔다. 그리고 심지어 영원히 성숙하지도 못한다고 판단(!)했다. 

영원히 여성은 남성과 동일 선상으로 같아 질 수 없는 것이다.

모든 행동이 남성의 판단아래 행해야 하고 남성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애초에 이런 종교적 판단이 막장이였기 때문이니 이것의 백미는 만약 이혼여성일 경우 아버지든, 남자 형제가 없다면 무려 아들이 엄마인 여성의 행동권을 가질 수 있다.


젠더 분리의 관습은 엄격히 시행되고 있다. 고위 와하브파 성직자들이 근거로 드는 개념은 크게 두 가지다. 여성을 잠재적 타락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여성의 '능력부족' 때문에, 즉 여성은 너무나 음탕한 성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냥 내버려두면 부정한 짓을 저지르고 말 것이라는 주장이다.

(p. 186)


뭐 이젠 놀랍지도 않다. 앞의 가톨릭의 '타락한 여자'들에게 집착했듯이 와파브파 또한 마찬가지로 타락.. 그것도 '잠재적'인 타락으로부터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란다. 선천적으로 음탕한 기운이 있기 때문에 내버려두면 큰일 난단다.

이쯤 되면 여성으로 태어나는 것 자체가 죄다. 

어째서 어떤 성으로 태어났다는 것이 이렇게 죄가 될 수 있단말인가?

많은 남성들은 떳떳하게 성 권력을 놓치기 싫어서라고 얘기 하지 못한다. 

'어허험...아니.. 하느님께서..알라께서.. 부처께서..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냐...따라야되느니라..' 라는 식으로 

비겁하게도 숭고한 종교 뒤에 숨어버린다. 


딸은 어머니의 인생을 보고 배운다. 나는 여자와 남자는 동등하며, 네가 원하는 무엇이든 성취할 수 있다고 내딸에게 수없이 강조해왔다. 사우디의 소녀들은 자신의 어머니가 마치 어린아이처럼, 모든 활동을 집안의 남자들에게 엄격히 통제받고 그들의 지시에 복종하며 지내는 것을 보면서 자란다. 태어나면서부터 여성의 자존감과 자부심은 땅에 떨어져 있다.

(p. 183)


여기 내용에서 저자 수는 자기 딸에게 수 없이 여자와 남자는 동등하며 무엇이든 성취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는 이 부분은 나중에 다시 마지막 장으로 연결되어서 읽으니 마음 먹먹해진다. 

(다음에 다시 자세히 언급할 기회가 있겠다.)

사우디의 소녀들은 그들의 어머니를 보고 어떻게 자랄까? 철의 장막처럼 공고한 남성상위의 벽앞에 무기력감을 일찍이 배우기 때문에 많은 사우디의 여성은 이러한 것을 어쩔수 없이.. 순응하며 살아간다..


와예하 알후웨이더와 동료 인권운동가들은 사우디 남자들이 이처럼 여자를 고의적으로 '유아화'하는 데 절망하고 있다. "동물에게 갖는 감정과 비슷한 겁니다. 아무런 존중도 없는. 단순한 동정에서 비롯한 친절이에요. 한 여성에 대한 소유권은 한 남성에게서 또 다른 남성에게로 이전될 뿐이죠" 이것은 여성혐오의 궁극이다. 동등한 존재로서 여성이 응당 갖고 있는 지성이나 능력을 부인하고, 그저 먹여주고 보호해줘야 하는 아종亞種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p. 220)


여성을 보호해줘야 할 대상으로 취급하는 것은 배려따위가 아니라 아무런 존중도 없는 자의적 행동이다. 여성의 소유권을 독차지하고 있는 남성은 다른 남성에게만 이전할 수 있다. 

이것이야 말로 뫼비우스의 띠다. 끝이 없다. 항상 제자리로 돌아온다. 달아날 방법은 보이지 않는다.

전혀 동등한 존재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이딴 식으로 여성을 취급하는 이유를 알후웨이더는 사우디 남성은 결국 여성이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기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여타의 일반 국가처럼 정정당당히 여성과 경쟁해서 이길 자신이 없기 때문에 비겁하게 종교의 무기를 내세워 억누를려고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집트의 사례를 보자.

2010년에 시작된 아랍의 봄은 이집트도 피해갈 수 없었다.

무바라크 정권의 퇴진을 위해 많은 이집트의 시민들이 반정부 시위혁명이 일어났다.

아랍권에서도 상징적인 나라인 이집트에서 이러한 혁명이 일어난 것은 하나의 사건이었고 세계의 눈이 주목했다.

중동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사건이기도 했다.

결국 무바라크는 사임을 했고 반정부 시위에 참가했던 많은 이집트 시민들은 환호했다.

그러나 놓친 장면이 있다. 시위대에서 공공연하게 발생한 여성에 대한 성폭력사건들이다.

시위대에 참가한 남성에게서, 군인들에게서.. 이 순간만은 정부군, 반정부시위대는 한마음이다.



아랍대안포럼의 정치 연구원 하비바 모센은 이집트 여성들이 처한 현실을 '일그러진 판단'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집트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세 배는 더한 압박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첫째, 시위대로 참여하며 군사정권에 맞서고, 둘째, 그저 여성으로서 살아간다는 그 자체로 사회와 맞서며, 셋째, 공적 생활에 참여할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모든 것들과 또 싸워야만 해요. 각양각색의 핑곗거리가 주어집니다. 소위 전통, 문화, 심지어 종교의 중요성 같은 것들 말이죠. 한마디로, 언제나 여성의 잘못으로 귀결됩니다. '품위 있고' 정숙한 여성은 시위나 연좌 농성에 참여하려고 집 밖으로 나갈 리가 절대로 없다는 논리예요. 그러니까, 이 여자가 애초에 참여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는 왜 그곳에 갔나?"

(p. 248~249)


시위대에 같이 참여했다고 해서 안타깝게도 남성과 여성이 같은 상황은 아니었다.

여성은 당시 정부와 뿐만 아니라 삼중고와 싸워야 했다. 군사정권과. 사회와. 공적 생활에 참여할 권리와.

이 중에 하나와도 싸우는 게 버거운데 3개의 벽이 가로막고 있다고 생각해보면 아찔하다. 

2011년의 당시 이집트의 여성들은 그랬다. 결국 화살은 '여성'이라는 이유가 포함되어서 날아왔다. 


여자가 여기가 어디라고! 

그렇다면 너희들은 '타락한 여자'들이구나

혼을 내줘야 겠구나.


이런식의 사고흐름이었을까? 


이후 다행히 경찰에서 성폭행 당한 것을 진술하더라도 경찰이나 검찰에서 돌아오는 답은 

"그 여자는 대체 왜 거길 간 겁니까?" 였다.


이 시기에 여성인권에 관한 의제가 중요한 안건으로 취급되지 않않던 게 문제입니다. 집단 강간, 성희롱, FGM과 같은 일들은 그냥 곯아 터지도록 방치됐습니다. 여권신장은 별개의 사안으로, 더욱 화가 치미는 건, 이집트 전체 인권에서 그다지 중요한 부분이 아니라는 인식이 퍼져 있다는 것입니다. 경제와 치안 등 더 중요한 문제가 해결된 뒤에야 처리할 수 잇는 사치품 같은 취급을 받은 거죠. 여성 인권이야말로 경제와 치안에서 중요한 부분이라는 걸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온통 방위 문제에만 집중돼 있습니다. 국경 전반에 걸쳐 임박한 위험으로부터 이집트를 구하는 문제 말입니다. 파시즘에 기울고 있는 민족주의와 음모론에 관란 것들입니다. 결론적으로 여성의 권리는 지금도 그렇고 이제껏 단 한번도, 우선순위에 올랐던 적이 없습니다.

(p. 275~276)


이 시기에 많은 여성들의 희생과 용기는 무엇을 성취했을까라는 저자 수의 질문에 이집트 출신의 BBC 특파원 샤이마 칼릴은 냉정하게 위의 내용으로 답했다.


과연 한국도 이 대답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정도의 차이만 있을뿐 여성의 권리가 우선순위에 올랐던 적이 있었던가?

여성의 권리는 언제? 라는 물음에..

아니야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정치야. 등등의 대답만 들어왔었다.


인류는 역사적으로 '타락한 여자'는 이름으로 수 많은 여성들을 탄압해왔다.

남자인 내가 읽어도 숨이 턱턱막힌다.

세계 곳곳의 사례에 슬퍼지기도 숙연해지기도 숨이 막히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한국은? 이라고 묻는다면 자신있게 대답하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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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05-22 09: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사우디아라비아 읽을 때 너무 어이가 없더라고요. 하나부터 열까지 말이 안되잖아요. 도대체 거기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나 싶고요. 저도 페이퍼로 언급한 기억이 나는데, 여성을 억압한 이 모든 현상에 종교가 단단히 받침이 되고 있는 것 같아요. 힘없고 약한 자들의 의지처가 되어줄 수 있는 게 종교라는 막연한 생각을 갖고 있다가, 오히려 그 반대로 힘없는 자들을 더 억압하는 게 종교라는 걸 알고 나니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싶더라고요. 방법은 있을지, 우리가 앞으로 갈 수는 있을지... 그런 것들에 대해 막막해지기만 해요. 물론 이 책에서도 틈틈이 거기에 맞서고자 하는 여자들이 등장했고 그것을 수 로이드 로버츠가 기록했다는 것은 분명 희망적이긴 하지만요.

블랙겟타 2019-05-22 10:26   좋아요 0 | URL
종교적이지 않은 나라에서도 여성에 대한 억압과 탄압이 있는 상황에서 철저히 종교적인 나라에서는 어느정도일지 가늠이 안되더군요. 이 책에서나 앞서 같이 읽었던 책에서 볼 때 종교가 참...여성에게 나쁜 짓이란 것은 다했고.. 그것이 아직도 유효하긴 하죠..ㅜㅜ

네. 역사적으로 용기있게 맞선 많은 여성들의 희생과 이런 책들이 있기 때문에 그나마 저같은 사람이 문제를 인식하고 있는거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