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연쇄 살인범 X파일 - 살인범과 사형수, 그 불편한 진실
양원보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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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난 반공교육을 받은 마지막 세대다. '국민학교'를 다니던 시절 교과시간에 도깨비뿔 달린(실재 그림이 그랬다) 무장공비에 저항하다 입 양쪽이 걸려 쭉 찢겨죽은 '이승복 어린이'를 배우며 공포에 떨었다. 그러고 하교하는 길에서 희미한 최루탄 냄새를 맡곤 하던 시절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오면 으례 TV에서 만화를 해야할 시간인데 야속하게도 '청문회'라는 걸 했다. 난 왜 재밌는 만화를 취소하고 죙일 아저씨들이 잔뜩 나와 웅성거리고 소리나 지르는지 이해 못했다. 부모님은 화면 앞에서 무릎을 치고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됐다. 어른들은 기뻐했고, 뉴스 속 할매들은 감격하며 울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라는 기획다큐를 보고 난 충격을 받았다. 정말 저런 거짓된 시절이 있었다고? 그것이 우리 나라라고? 좆 같은 대통령을 욕할 수 없는 나라, 윗놈들이 수틀리면 누구든 간첩이 되어 생죽음을 당하고 불구가 될 수 있던 나라. 그 나라를 난 자랑스러워 했었다!

 

  대학생 때, 윤리학 류의 수업이면 으레 '사형제'에 대한 찬반 토론을 했다. 난 반대했다. 당시 마지막 사형집행이 된지 5~6년이 흐른 후였다. 인권에 대한 논의가 활발했고 선진국에서 대세라 하니 쓸려가기도 했다. 그리고 이 나라의 사법체계를 아직 믿을 수도 없었다. 수업 말미에 정리하며 선생님은 '악인이 교화될 수 있음'과 '인간의 판단이 만에 한 번은 어긋날 수 있음'을 강변했다.

 

  어느날 어떤 묻지마살인이 전국을 뒤흔들었다. 단지 '예수쟁이'가 싫다는 이유로 교회로 가던 여성을 난도질해 죽인 사건이었다. 피해자는 사형제를 반대하던 내 윤리선생의 가족이었고, 고칠 수 없는 악인이 있다고 중얼거리게 된 선생은 스트레스로 암에 걸려 죽었다. 

 

  세상은 변했다. 합리적인 상식을 가진 사람들이 세상을 주도한다고 믿는다. '만에 하나의 오판'을 막을 수많은 제도적 장치가 있다. 신중에 신중을 기해 명확한 증거를 갖고 범인을 가릴 수 있는 과학기술과 전문가가 있다. 

 

  기어이 생명을 우습게 여기는 자들은 그 사상을 존중해줘야 한다. 나는 생명을 매우 중히 여기지만, 나와 달리 죽이기를 즐기는 인간이고 그 죄가 충분히 중하다면 그의 생명도 가벼히 여겨주어야 한다. 

 

  그래서 이 책이 반갑다. 저자의 말대로 사형은 이미 일어난 사건에 대한 단죄이지 앞으로 일어날 사건에 대한 경고가 아니다. 사형제가 강력범죄를 예방하는 효과가 크지 않다는 주장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미 드러난 쓰레기라도 치워달라는 건데. 

 

  살인범들이 '어짜피 버린 인생 되는대로 살지'하며 한가로히 종교도 믿고 잘 먹고 잘 싸는 동안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밥먹는 것도 죄스러워하다 병 걸려 죽어버렸다. 남은 자들이 죽은 가족이나 친구를 잃은 고통 속에서 스스로 죽거나 병들어 죽는다는 사례가 많다.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나서....

 

  제발 죽어마땅한 자는 죽어야 한다. 그들은 감옥에 있으면서도 너무 많은 사람을 죽인다. 그들이 생명을 존중하지 않으니 그의 의사를 존중해줘라. 법이 그를 죽이는 게 아니다. 그들 스스로의 선택이다.

 

  집행하자. 사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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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을 사랑하면 철학자가 된다] 인간 외의 동물은 오랜동안 인간의 식재료나 도구 애완동물 정도의 취급을 받았다. ‘사랑한다‘는 일은 어떤 동물을 주의깊게 들여다 보고 눈 마주치며 많은 시간을 들여 그의 개성과 성격을 알아야 가능하다. 가족, 친구, 나와 친밀한 한 ‘존재‘로 한 동물을 받아들이게 될 때 수많은 의문이 떠오른다. 너는 누군가, 우린 왜 다르고 또는 같은가, 우린 소통하는가, 이 가슴에 느낌은 무언가, 네 뿐 아닌 다른 동물들은 어떨까. 인간 중심에서 벗어나기, 인간 아닌 것 배려하기, 무지해서 행했던 폭력을 그만두기 등을 실천하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다. 철학은 유명 철학자들의 어려운 말 모음이 아니다. 생각하고 곱씹고 정리하고 정립하고, 실천하는 과정이 철학이며 인간 외 동물들은 우리를 철학자로 만들어줄 조력자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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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알고 있다 - 물속에 사는 우리 사촌들의 사생활
조너선 밸컴 지음, 양병찬 옮김 / 에이도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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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에 갔다 바닷물 위에 줄지어 부유하는 전어의 세모난 대가리들과 눈 마주친 적 있다. ‘물고기 먹는 데 죄의식을 느끼지마. 어짜피 고통을 못 느껴!‘라는 면죄부를 뉴스에서 들었다. 세모난 전어 대가리들이 무리지어 날 보며 ‘살고 싶었어‘라며 잘린 모서리로 날 찔러댔다. 이제 그들을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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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들 먼로의 친절한 과학 그림책 - 간단한 단어로 설명하는 복잡한 것들
랜들 먼로 지음, 조은영 옮김 / 시공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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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는 뜨거운 열정으로 오래 공부하고 세상을 해석했겠지. 허나 교과서는 그 노력을 딱딱하고 건조하게 집약해 어서 내 대갈통에 때려넣으라 으름장을 놨다.ㅠ 이 현실을 슬피 여긴 수학자 과학자 철학자들이 자기 공부가 얼마나 씬나고 달콤하고 가까운지 알려주려 애써주어 정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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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사 헤리엇의 개 이야기 수의사 헤리엇의 이야기
제임스 헤리엇 지음, 김석희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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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개를 잃었다. 몇 년 밖에 살다 돌아오니, 다 늙어 병 들어 있었다. 그를 보내기 전, 수의사 앞서 개를 안고 못 생기게 한참 울었다. ˝기껏 개 따위˝라며 한심해 않고, 그를 살피고 돌보는 의사가 고마웠다. 내 벗ㅡ내 개를 함께 염려하고 기억해주는 한 사람의 기록에 감동하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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