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
홍승은 지음 / 동녘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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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서 남자로 태어난다는 것은 그 자체로 특권입니다."


- 김두식,「불편해도 괜찮아」중 p94, 창비, 2010.

대한민국 사회가 인식하고 있는 성차별(gender discrimination)에 대한 김두식 교수의 위와 같은 지적에 저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러하기에, ---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것'이 인권감수성의 중요한 출발점"1이란 김두식 교수의 설명을 한번 더 곱씹어 보자면, 


"우리의 사회적 삶은 억압과 함께 시작된다.(p305) 


- 목수정,「야성의 사랑학」중 p305, 웅진지식하우스, 2010.

"평범한 가정이라는 게 얼마나 기울어진 권력을 전제하는지"(p193) 너네 (남녀 모두) 알고는 있느냐라 항변하는 저자 홍승은의 일갈과 더불어 --- 위의 인용구를, 남녀에게 주어지는/허용되는 권력의 차이에 대한 비판적 지적을 목적으로 쓰여진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남성은 지녔으나 여성은 지니지 못한/지녀서는 안 된다고 인식되고 있는 '권리'의 부재에 대한 저항이라 읽어내어도 (남녀 모두에게) 큰 무리가 없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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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가 사이비 냄새를 풍길수록 더 많은 금기를 만들고, 그 금기를 넘어서는 자에게 가혹한 벌을 내리며, 규율의 잣대를 드높이는 것으로 자신의 허술함을 감추듯 …… " 


- 목수정, 위의 책 p15.

여성에 대한 각종 억압과 규제를 덧씌우는 것으로 자신들의 허물과 부족함을 감추려 했던 조선시대 양반들의 정서가, 지금의 대한민국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라 말할 자신이 없기에, 심지어는 지금의 대한민국에서도 여전히 버젓이 아주 잘 작동되고 있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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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서라도 일은 해야 하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였다. 그게 노예의 지혜였다."


- 찰스 부코스키,「우체국」중 p232, 열린책들, 2012. 

(세상을, 좀 더 알기 이전까지만해도 제가 참으로 좋아했었던, 지금도 좋아는 하는 경제학자) 밀튼 프리드만 교수가 주창했던 'Free to choose(선택할 자유)'는, 주어진 platform 자체는 일단 받아들여야만 주어지는/누릴 수 있는 자유였었습니다. 그러하기에 --- 찰스 부코스키가 말했던 '노예의 지혜'란 것은 ① (그 platform으로부터) "빠져나간들 천국일까?"2란 의구심과, 더 나아가 ② (노예의 지위에 대한 불만이나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 따위가 아닌) 누군가 날 지배한다면, "내가 강자의 편이라고 느껴야 안심"3이라도 되는 모습으로 구성될 수 밖에 없었었죠. 그리고/그러나 …… ,


역사란 것이 그렇게 진행되어 왔었듯, 그와 같은 '노예의 지혜'를 거부하는 집단이 예의 짜잔~ 하고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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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는 한국에서 '우연히 살아남은' 20대 여성이 가정·학교·사회·학생운동·연애·우정을 통과하며 일상에서 겪고 느낀 순간을 기록한 책이다. (p16) ……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존재가 스스로 목소리를 낼 때, 세상은 딸국질을 한다. 나는 내가 속한 가족, 학교, 연인 관계, 사회에서 경험하고 느꼈던 이야기를 썼을 뿐인데 어느새 페미니스트라고 불리고 있었다.(p15)

'메갈리아', '82년생 김지영' --- 대한민국에서의 페미니즘을 대표하는 단어로는, 제가 아는 한 가장 유명한 두 가지입니다. '메갈리아'라는 곳의 주장을 제대로 살펴본 적 없습니다만, '82년생 김지영'이 말하고자 했던 바가 정확히 페미니즘의 이야기인지 아닌지의 여부 또한 단언할 수 없습니다만,  


"성적 취향, 장애, 인종 등에 따라 사람을 스테레오타입으로 나누는 것이 위험한 만큼이나, 페미니스트들을 한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는 것도 위험한 일입니다. 다른 학문이나 운동의 조류처럼 페미니즘도 거의 페미니스트 숫자만큼의 다양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 김두식, 위의 책 p112. 

그 두 가지가, 대한민국의 페미니즘 전부 혹은 대부분을 대변한다라는 무지를 떨쳐버릴 수 있다면 --- "과두제를 전제로 투가 통치하느냐의 차이로 '민주주의'의 달성 유무를 가리는 것을 거부한다. 나는 … 더디더라도 개개인의 주체적 삶의 목소리가 정치로 퍼지는 것이 민주주의와 정의의 실현이라고 생각한다"(p279)라는 이 책 속 주장은,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이다"(p14)란 페미니즘의 오래된 명제 뿐만 아니라 일견, 


"내 삶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결정을 내릴 권한이 다른 사람에게 있고 정작 나 자신은 아무런 결정도 내릴 수 없다면 나는 행복할까? … 아나키즘은 그러한 결정들이 반드시 내 동의를 거쳐 내려져야 하고, 내가 살아온 삶의 터전을 그 누구도 강제로 빼앗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 하승우,「아나키즘」중 p16, 책세상, 2008.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아나키즘과도 통하는 부분이 있어 보이기도 합니다. 뭐 그렇다고, 이 책의 저자 홍승은이 적어내고 있는 페미니즘이란 게, 아나키즘이 풍기는 뭔가 살벌한 분위기 같은 걸 지니고 있지는 않아요. 이 책은 그저 --- "내 존재 자체로 자유로워지고 싶고, 소중한 사람들이 함께 자유"(pp111~112)로웠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고 있는, 한 편의 말랑말랑한 (그 어떤 폄하의 의미도 없는) 에세이집이라 표현할 수도 있겠는, 그런 책입니다. 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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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여성성의 기표로 특정되는 비이성 · 비논리 · 나약함"(p202)을 지워버려야 한다라 주장하고 있으나, --- '이성, 논리, 강인함'이란 것이 애초부터 남성의 시각에서 설정된 것들이기에, 과연 (sexuality로 규정되건 gender로 규정되건 상관없이) 그 '남성의 시각에서 설정된 개념들'에 대한 재정립의 논이 없이, 그저 '반(anti)/비(non)' 등의 접두어가 추가되어 여성을 규정해 온 개념들에 저항한다면 이 큰 그림 자체를 어찌 극복해낼 수 있겠으며, 심지어는 그것이 정말 극복을 위한 노력일 수 있겠느냐란 한계도 여전히 넘지 못하는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밖에도, 


gender의 역할을 구분하고 규정하는 것은 어쨌든 사회의 관습일 테고, 그 관습이란 것은 정의상 '과거'의 시점에서부터 만들어진 것일진데, 저자의 지적이 "모든 '여성'은 동일한 젠더를 경험하지 않는다"(p122)라는 점에서 멈춰버린 것은 아무래도 완전한 극복/해결책은 될 수 없지 않겠나 하는 아쉬움도 있지요. 이런 점에선 아무래도 목수정의 주장들이 좀 더 화끈(?)한 듯... ^^;; 


"헤어날 수 없이 겹겹이 둘러쳐진 통제의 틀 속에 자신을 방치하며 살다 보면, 우리는 어느 날 통제할 삶 자체를 잃게 된다.(p33) …… 당신이 받은 억압을 배설하라. 그렇지 않으면 억압이 당신을 배설해 낼 터이니."(p306) 


- 목수정, 위의 책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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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내용에 전부 다 공감한 것은 물론 아닙니다. 그리고 이 책으로부터 페미니즘에 대한 (일종의) '지식'을 얻었다 딱히 말하기도 어렵지요.5 그러하기에/그럼에도 불구하고! --- 평범한 단어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는 다음 구절들이 담고 있는 메시지는, 예의 평범한 것이거늘, 매번 잊혀졌고, 그러했기에 잊혀지는 것이 마치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기까지 했던, 다행이라면 다행스레 이제라도 밖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듯 보이는 우리의 잘못들을 지적해 준 이 책은, 이 책을, 그저 '페미니즘'에 대한 책으로만 소개하고 싶지는 않네요. 


나의 편리함은 누군가의 불편함을 수반한다. 나의 게으름은 누군가의 노동에 기대어 누리는 권력이다. 나는 오늘 얼마나 많은 노동에 기대어 편리함을 누렸을까. 얼마나 많은 차별 속에서 모른 척 편리함을 누렸을까.(p212) …… 하루라도 환경미화원이 없으면 거리가 쓰레기로 덮이는 것처럼, 매우 사소해 보이는 일상적 노동은 우리의 모든 삶을 지탱해주는 근본적 토대다6.(p284) …… 당연히 누려왔기 때문에 사실은 눈치채지 못하는 누군가의 노동. 그 노동의 소중함을 느끼고 감사하는 일은 의미를 전달하는 눈에 띄는 누군가를 칭송하는 일보다 더 중요하다. 세상이 변화되는 건 의미를 창조하는 게 아니라, 곁에 존재하는 사람들을 다시금 발견하고 소중함을 느끼는 과정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p285) …… 나무의 뿌리 같은 근본이기 때문에 굳이 회자되지 않아온 우리들의 사소한 노동을 생각한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자꾸만 존재를 망각하고 놓치는 소중함들. 그래서 계속 사소한 것들을 말해야 하는 필요를 느꼈다. 사소한 것들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 (p286)


※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를 억압하고 구속해왔던 '권력'의 이야기이며, 의심 없이 받아들여온 관습에의 재고()를 권하는 것으로 그렇게, 이 책을 읽어내는 것이 옳지 않을까하는 저의 소견과 함께, 권하여 보는 책들 


-「야성의 사랑학」·「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불편해도 괜찮아·아나키즘


※ 저의 무지를 다시금 일깨워낼 수 있었던, 시의 적절한 내용의 책을 제게 선물해주신 출판사 <동녘>에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금연 306일째 

이 책「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가 제게 준 가장 큰 효용은 아이러니하게도 --- 「82년생 김지영」이란 소설에 '대한민국에서 여자로서 산다는 것'이란 설명을 붙이는 것이 얼마나 '천박'한 것인지를, 그저 어렴풋한 생각으로 머리 속에서 맴돌았던 그 점에 대해 매우 명확한 언어로 제게 알려주었다라는 점입니다. 


"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그 안의 소소한 규칙이나 약속이나 습관들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 조남주,「82년생 김지영」중 p132, 민음사, 2016. 

그러나! 세상이 바뀌기를 원한다면 자신 스스로도/부터 바뀌어야 함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소설 속 김지영C의 '대한민국에서 여자로서 산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는 그리하여 --- "풀을 먹는 소에게 옥수수를 먹여서 뚱뚱해진 소들로 햄버거를 만들어, 저 멀리 잠비아에선 옥수수가 없어 죽어가 잠깐 생각하다가 오늘 저녁은 햄버거"7란 노래의 가사가 꼬집고 있는, 우리 생각의 짧음/앞뒤 없음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일례일 뿐이라 저는 확신합니다. 부디, 그 소설로 대한민국의 페미니즘, 더 나아가 여성의 삶을 이야기하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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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두식, 위의 책 p4.
  2. 찰스 부코스키, 위의 책 p236.
  3. 에티엔 드 라 보에시,「자발적 복종」중 목수정이 쓴 <역자 서문> pp10~11, 생각정원, 2015.
  4. "나에게 페미니즘은 단순히 지식만이 아닌 '삶 자체' … 페미니즘은 지식으로 '아는 것' 이상의 다른 감각이 필요한 영역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pp161~162) …… "내가 마땅히 누려왔던 권리, 평범한 인식을 돌아봐야 한다.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건 지식을 쌓으며 '확인하는' 과정이 아니라 기존의 관념을 '의심하는' 과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p164)
  5. 보고있나, 82년생 김지영C?
  6. 흐른, <Global Citizen>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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