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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영휴
사토 쇼고 지음, 서혜영 옮김 / 해냄 / 2017년 11월
평점 :
품절
얼마 전, 알리오님 댁과 함께 저녁을 먹다가(라 쓰지만 실은 술을 마시다가), 다시 태어나도 핸드폰 번호는 바꾸지 말자,란 약속을 저의 그녀에게 권유해 보았습니다만, 그녀는 '반드시 바꾸겠다!'라 대답해주더군요. 그 말을 들은 알리오님께선, 자신의 그녀는 다시 태어난다면 어찌하여서라도 자기를 찾아오게 되어있기에, 자신만 핸드폰 번호를 바꾸지 않으면 된다라, 아주 자신있게 말씀하시더군요. (그 단호함, 정말 멋있었었었!!!) --- 기독교 신자의 저희 부부와, 카톨릭 신자인 알리오님 댁 부부가 실제, '환생'이란 걸 믿어서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던 건 물론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또 뭐,
"사람이 하늘이 정한 운명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믿는 것을 숙명론(宿命論)이라 한다면, 정성과 의지로써 타고난 운명조차 바꾸어갈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조명론(造命論)이라 할 수 있다."
- 방민호,「연인 심청」중 p399, 다산북스, 2015.
위와 같은 의미로서의 '조명론'을 선택했다고도 할 수 없는, 심각함이나 진중함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그냥 술자리에서의 가벼운 이야기였었었던 거죠. 그런데 말입니다!
하느님이 이 세상에 태어난 최초의 남녀에게 죽을 때 둘 중 하나의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고 했어. 하나는 나무처럼 죽어서 씨앗을 남기는, 자신은 죽지만 뒤에 자손을 남기는 방법. 또 하나는 달처럼 죽었다가도 몇 번이나 다시 태어나는 방법. 그런 전설이 있어. …… 나한테 선택권이 있다면, 난 달처럼 죽는 쪽을 택할 거야. … 달이 차고 기울 듯이, 삶과 죽음을 반복하는 거야. 그래서 아키히코 군 앞에 계속 나타나는 거야.(pp181~182)
누군가가 나에게, 죽어서도 다시 너의 앞에 나타나겠노라고, 그게 한 번도 아닌, "생명의 릴레이"(p294)라는 표현까지 동원하여야 할 만큼 계속 반복해서 그럴 거라 말한다라면, 야~ 이거 정말 오싹하겠죠? 핸드폰 번호를 바꾸네 마네의 수준이 아닌, 뭐가 경찰서에 접근금지신청이라도 내야겠다란 마음이 혹시 들지나 않을까 싶을 정도의 두려움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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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지금 현실이라고 부르는 게 어제는 상상에 불과했다는 걸 잊지 마."
- 주제 사라마구,「도플갱어」중 p14, 해냄, 2006.
아내와 딸이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뭔가가 작동되어, 아내의 영혼이 딸의 육신으로 들어간 일이 발생된 거야. 그러니까 남자는 딸의 육신을 하고 있는 아내와 살게된 거지. --- 히가시노 게이고가 쓴「비밀」에 대하여, 이런 나레이션으로 조교수에게 그 내용을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만... '혼자 나가서 그런 책 읽고 있었던 거야?"란 투의 힐난 어린 대답을 들었어야 했더랬었죠. 허나!
있을 수 없는 현실을 다시 꿈꾸기 시작한 거다.(p205)
'있을 수 없는/이루어질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옛 사람들의 상상은 '신화'라 불리웁니다. 그리고 --- '지금'의, 그리고 '나'의 이루어질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상상을 가능케해 준다라는 기능, 그리하여, 우리의 사고 지평을 넓혀준다라거나 혹은 이전까지는 그 존재조차 알지 못했었던 새로운 사고(思考)의 방향을 보여준다라는 것, 더 나아가,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는 것을 향해 작동되는 '유혹'이란 감정에 대한 정신 승리와, 하고 싶으나 할 수 없는 것에 작동 시키곤 하는 '상상'이라는 메커니즘까지를 통틀어 우리는 --- 바로 '소설'(의 순기능)이라 부르고 있지요. 그러하기에,
남녀의 사랑이 얼마나 제멋대로일 수 있는가, 그 궁극의 모습, 그 부당함을 그리려고 했다면「달의 영휴」는 성공했다. (P402)
이 작품에 대한 어느 심사위원의 위와 같은 평가는, 작가가 이 작품의 마지막 문장으로 선택해 놓은 "계속 기다리고 있었어,하고 그는 말했다"(p396)이란 문장에 대한,
"그 자리에 털석 주저앉아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목이 쉴 정도로 소리내어 울었다."
- 히가시노 게이고,「비밀」중 p474, 창해, 2008.
유사한 구조의 스토리를 지니고 있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위 작품의 마지막 문장이 지니고 있는 처절한 슬픔에의 격한 공감을, "계속 기다리고 있었어,하고 그는 말했다"(p396)란 문장은 왜 지니고 있지 못한가에 대한, 거의 완벽한 설명이자 평가라 생각합니다. 따라서!
웬지 인물의 관계도같은 거라도 그려가며 읽어가야할 듯도 한 이 작품, 여타 현대 일본소설들처럼 줄줄줄 잘 읽혀가는 이 작품을 향해, 스토리의 허망함을 들어 폄하하는 건, 제 생각에는 정당하지 않아 보입니다. 이 소설은 어쩌면,
누군가는 생각하느라 내려야 할 전철역을 그냥 지나갈 정도로 그리운 마음을 안고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p171)
언젠가 한 번쯤은 당신 또한 가져보았었을, 어쩌면 지금도 가지고 있겠는, 사랑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다시금 떠올려 보게 해주는, 그런 역할만큼은 꽤나 잘 수행해주었다라, - 비록 두 개 뿐이지만, 읽어 본 역대 나오키상 수상작들에 비하자면, 어딘가 허전하다라는 느낌은 지워낼 수가 없다라는 아쉬움과 함께 - 흔쾌히 보내는 독자의 박수에, 작가 또한 충분히 만족해하는, 그런 의미의 작품이 아닐까... 싶네요.
※ 읽어 본, 나오키상 수상작들 (수상연도 순)
- 히가시노 게이고,「용의자 X의 헌신」(2005년 하반기)
- 니시 가나코,「사라바」(2014년 하반기)
...금연 278일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