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반
폴 비티 지음, 이나경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10월
평점 :
절판




​나는 흑인 여자들을 항상 피부색으로 묘사하는 게 지겨워요! 꿀색이 어떻고! 다크 초콜릿색이 어떻고! 내 친할머니는 모카색이 감도는 카페오레, 망할 그레이엄 크래커 갈색이었다고 하다니! 대체 백인 여자들을 음식이나 뜨거운 액체의 색으로 묘사하지 않는 이유는 뭐죠? 어째서 이 인종 차별적이고 결말도 없는 책에 요구르트색, 달걀 껍질색, 스트링 치즈 피부, 저지방 우윳빛 백인 주인공은 안 나오는 거죠? 그래서 흑인 문학이 후지다는 거예요! (p197)

주인공 Me은, 소설 속 두 등장인물들1로부터 'sellout'이라 불리웁니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sellout'은, "헐값에 팔아버리는 것, 또는 배신자라는 뜻"(p135)이란 역자의 설명보다, 'someone who forgets their roots'라는 영어사전2의 설명이, 이 소설의 내용에 비추어 훨씬 더 명확하게 받아들여집니다. 무의식 중에 자신들을 스스로 피부색으로 특징지워버리는 흑인들에 대한 Me의 실망/비판이, 다른 흑인들의 눈엔 영 거슬렸던 거지요. 


이웃의 누가 목을 매려고 하면 아버지는 절대 당황하지 않았 … 다. "내 장담하는데, 흑인들은 매듭을 제대로 묶지 못하거든"(p108)

이 작품 속의 이러한 사고를 전 '자기 비하'라고 절대 생각하지 않습니다.3 "가난한 사람들이 운전을 잘하는 것은 자동차 보험을 들 돈이 없어서, 인생을 사는 것처럼 방어적으로 운전할 수밖게 없기 때문"(p121)이라는 일반론적인 (매우 슬픈) 인식이, 특정 케이스에까지 확장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까요. 중요한 것은! 


대체 왜! --- 이와 같은, 일종의 자기 비하, 또는 가해자가 보이지 않는 상황의 피해 의식과 같은 것들이 대체 왜! 흑인들의 사고에 깊숙이 뿌리박혀있게 되었나하는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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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들이 이 토지를 개척한 거야. 할아버지들은 인디언을 쫓아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고. 아버지는 여기서 태어났어. 아버지는 잡초나 독사들과 싸웠단 말이야. … 다음에 우리가 태어난 거야. … 애들도 여기서 태어나고. … 이런 우리 땅이야. 우리가 측량을 해 우리 손으로 부친 땅이야. 우리는 이 땅에서 태어나서 이 땅에서 죽어갔어. 쓸모없는 땅이라 하더라도 역시 우리들 것이요. 그게 정말 소유권이지, 숫자를 적은 종이 따위가 소유권이 아니란 말이요. 


- 존 스타인벡, 「분노의 포도」중, 홍신문화사, 2012.

1930년 대공황 시기를 그린 '사회주의 리얼리즘 문학'이라 불리우는 「분노의 포도」가 보여주고 있는, 미국 백인이 가지고 있는 인식의 실체입니다. --- "인디언을 쫓아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란 한 구절로, 백인들의 잔혹한 인디언 말살은 역시나 '자랑스런 서부개척'의 역사로 정의되고 있지요.4 미국이란 땅이 이처럼, 자신들의 소유라 생각하는 백인들은, 그 땅에 처음으로 건너왔던 영국 청교도인들, 그리고 그 후 뒤를 이었던 폴란드와 이탈리언들, 그리고 유태인들, 이 모든 백인들은 예의 그들만의 '용광로'속에서 한데 어울어져 살아 왔거늘, 피부색이 검은 흑인들만큼은 결코 자신들의 그 '용광로' 속에 받아들여주지 않았던 이유 역시 "인디언을 쫓아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와 동일하게, 앞뒤의 논리라고는 전혀 없는, 그저 피부색이 다르다라는, 일종의 폭력적 당위 뿐입니다. 그리하여, 


"흑인은 … 교수, 의사, 변호사, 정치가 따위의 전문직은 물론이요, 공무원이나 사무직 노동자가 되는 것도 거의 불가능했다. 흑인들이 일할 수 있는 곳이라고는 육체노동, 청소부, 점원, 구두닦이, 호텔 종업원, 하인 따위의 하찮은 직업뿐이었다."


- 유시민, 「거꾸로 읽는 세계사」중 p312, 푸른나무, 1995.

소설은, 흑인으로 태어났다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무 껍질의 총알구멍을 만져 보면서, 열 개째 나이테 부근에 파묻힌 달팽이처럼 나는 이곳을 떠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p61)와 같은 체념이 또한, 그가 흑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당연시 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흑인 학교에서 시행되는 직업 설명회, <진로의 날>에 그들 앞에 펼쳐지는 선택지들이란 게,


광부, 골프공 주워오는 사람, 바구니 제작자, 도랑 파기 기술가, 제책가 (p212) …… 쓰레기 수거인, 가석방 담당관, 디제이, 백업 래퍼5(p214)

물론, 이러한 직업을 가진다라는 것 자체를 차별이라 말하는 건 아닙니다. 허나! 이러한 보잘것 없는 직업들로만 선택지가 구성되어 있다라는 건6, 명백히 부인할 수 없는 차별이지요. 그냥 흑인들은 'destined to do'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라는 사회적 강요는, 뭐라 변명을 하더라도 '폭력'임을 벗어날 수 없는 겁니다. 그리고 또한,


"모든 백인은 흑인이 백인보다 '열등한' 인종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 문화생활의 혜택을 누릴 어떠한 기회도 가져 보지 못한 흑인노예들은 모든 면에서 '확실히' 백인보다 열등했다. 따라서 흑인 자신들도 스스로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게끔 세뇌되었다. 


- 유시민, 위의 책 p310

백인들 또한, 그처럼 세뇌되어있는 흑인들까지도 증오하는 건 아니다라는, 일종의 친절7을 베풀기도 합니다. 우리 백인들은 흑인을 '평등'하게 생각한다, 이것 봐라, 드라마 속에서 드디어 백인 남자가 흑인 여자와 데이트도 하지 않냐,라 말하면서 말이죠. 하지만! --- 백인들이 흑인들에게 허용한 소위 '평등'이란 건 그저, 


백인 남성이 흑인 여성과 데이트를 할 때면 늘 출연진 중 가장 못생긴 백인 남자가 우리 자매들의 사랑을 받는다는 사실 (p376)

의 수준일 뿐이고, 이 소설은 --- 이와 같은, "우리가 미국인으로서 평등을 바라보는 시각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지적했습니다"(p363)란 한 마디를 말하기 위해 짧지 않은, 게다가 저에겐 심히 낯설기만 한 과정을 밟아오지요.8


"당신이 까맣든, 하얗든, 갈색이든, 노란색이든, 붉은색이든, 초록색이든, 자주색이든 상관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말하죠. 그리고 그것을 우리의 편견 없는 태도의 증거로 삼습니다. 하지만 우리 중 누군가를 자주색이나 초록색으로 칠한다면, 엄청 화를 낼 겁니다. 그리고 그것이 피고가 하고 있는 일입니다. 피고는 모두의 색을 다시 칠하고, 이 지역 사회를 자주색과 초록색으로 칠하며 누가 평등의 존재를 아직도 믿는지 확인했습니다. (p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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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의 평등은 이루어졌습니까? 흑인 대통령이 취임한 사실을 과연, "미국이 마침내 빚을 청산한 것 같다"(p395)라 생각해도 되는 걸까요? --- 'sellout'이라 불리우는, 그러나 결코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고 있는, 주인공 Me의 생각은 그러하지 않습니다.

 

나의 상대적 행복이 여러 세대가 고통받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만큼 이기적이지는 않다. 노예선을 타고 온 어느 조상님이 강간을 당하고 구타당하는 사이, 자기 똥물에 다리를 무릎까지 담그고 잠시 쉬는 사이, 언젠가 손자의 손자의 손자의 손자가 와이파이를 쓸 수 있을 테니 숱한 세대를 걸쳐 살인과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정신적 괴로움과 극심한 질병을 겪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을 것 같지는 않다. 더군다가 그 와이파이가 속도도 늦고, 신호도 불안정하다면. (pp297~298)

주인공이 표현하고 있는 '늦은 속도와 불안정한 신호의 와이파이'란 것이 의미하는 바는 결국, --- "백인처럼 옷을 입고, 백인처럼 말하며, 백인처럼 생각하고 백인 중산층 문화의 가치를 표현"9해가며 이루어 낸 약간의 성공이며, 하지만 그 약간의 성공이란 것 마저 기실 "자신이 흑인에게 '양보할' 뭔가가 있는 듯한, 또는 흑인이 그들의 흑인 특성을 '극복하도록' 도와줘야 할 것 같은"10 백인들이 가지고 있는 일종의 의무감스런 동정으로부터 결과된 것이란 거죠. 그리하여 결국 이 책은, 


"백인은 다른 사람의 증오를 비난할 도덕적 자격이 없다. 우리의 선조들이 못된 뱀에게 물렸고, 나 자신도 사악한 뱀에게 물려서 내 아이들에게 뱀을 피하라고 주의를 주는데, 바로 그 뱀이란 놈이 나더러 증오를 가르치는 자라고 비난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 말콤 X  


- 유시민, 위의 책 p308

소설 속에 등장하는, 흑인 전용 코미디 클럽의 무대에 선 흑인 코미디언의, 백인 관객을 향한 "어서 꺼져! 이건 우리 거라고!"(p392)란 호통이 상징하고 있는 바, 그러니까 --- 흑과 백의 '통합'11이 아닌, 각자의 '분리'12를 주장합니다.13 그리고, 


오래 전 유시민의 책으로부터 배웠던 바, 「블랙 라이크 미」가 보여주었던 백인들의 뿌리깊은 편견, 얼마 전 읽었던 「빌러비드」, 그리고 이 소설 「배반」, 이들 책으로부터 저 또한, --- 상처의 치유가 없는 반성은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상처의 치유에 대한 의지가 없다면, 결국엔 '분리'가 옳은 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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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노예 폭동이 수요일에 일어난 건 전통적으로 목요일이 채찍질하는 날이기 때문 … 이 나라에 첫 발을 디딘 후로 계속 그랬어요. 누가 잘하든 잘못하든, 누군가는 채찍질을 당하거나 심문을 당하거나 무기가 있는지 검문을 당했어요. 그러니 목요일에 어차피 맞을 거면 수요일에 얼간이 짓을 하는 게 낫겠지요. (p111)

이 소설에서 가장 마음 아팠던 부분입니다. --- "나는 노예예요. 그게 나예요. 그게 내가 타고난 역할이에요. 어쩌다 배우가 된 노예. 하지만 흑인으로 사는 건 메소드 연기가 아니예요"(p112)라 말하는, 늙은 흑인 호미니를 바라보며 주인공 Me가 하게 되는 다음의 생각은, (흑인이 아닌, 흑인의 피가 섞여 있는) 혼혈 대통령을 선출해 '준' 것으로는 치유될 수 없는, 참으로 오래되어, 어찌 지워낼 수 있을까 싶은, 「빌러비드」의 주인공, 세서의 등에 각인되어 있는 한 그루의 오래된 나무와 같은 상처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지요.


내가 살아 있는 한, … 잊을 수 없을 것이다. … 수 세기 동안 억압된 분노, 수십 년 동안 드러내지 못한 비굴함에 종지부를 찍으며, 내 무릎을 끌어안으면서도 더 세게 때려 달라고 사정하던 것을. 그의 검은 몸이 환희의 신음과 함께 내 채찍의 무게와 소리를 반기던 것을. 호미니가 거리에서 피를 흘리며, 역사 속의 모든 노예들이 그랬듯이 나를 기소하지 않겠다고 버티던 것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pp114~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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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든 가는 곳마다 온통 '민권운동의 진전'이란 말을 떠들고 있다.  … 4백 년 동안이나 백인은 우리의 등에 긴 칼을 꽂아 두었다가 이제 그 칼을 반쯤 뽑기 위해 흔들어 대고 있다. 우리더러 감지덕지하라고? 어림없는 말이다! 만약 그 칼을 다 뽑아 낸다 해도 상처가 남을 판이 아닌가!" - 말콤 X


- 유시민, 위의 책 p323

호미니에게 뿌리내리고 있는, 그때 그시절에 대한 일종의 향수는 분명 --- 역사가 남겨놓은, 어지간해서는 지워지지 않으며, 지워낼 수도 없을, 너무도 아픈 상처인 것이죠. 역사가 무엇일까요? 오로지 '미국의 흑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닐, 뭔가, 이 시대의 일본 정치인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은, 이 책이 말해주고 있는 '역사의 정의', 이 하나만으로도, 


읽어내기에 참으로 난해한 이 소설은, 이 소설을 읽어낸 것에 대해 적어도,

후회는 하지 않게 해주네요.


우리는 역사를 책이라고 생각한다. 페이지를 넘겨 버리면 과거를 잊을 수 있다고. 하지만 역사는 그것이 적힌 종이가 아니다. 역사는 기억이며, 기억은 시간과 감정이자 노래다. 역사는 우리와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p159) 

 ...금연 214일째



 미국 역사 속 흑과 백 : 「블랙 라이크 미」, 「빌러비드



  1. 포이와 마페사.
  2. Urban dictionary.
  3. 또한 이런 것을 가리켜 '블랙유머'라 하는 것에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4. "미국은 여러 가지 면에서 독특한 나라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할 만한 일은 백인들이 원주민을 철저히 말살하고 세운 나라라는 점이다. … 미국 건국사는 뒤집어 말하면 인디언 말살사 그 자체다. 원주민의 평화로운 삶을 송두리째 파괴하고 그들을 황량한 '보호구역'에 몰아넣었으며, 그들의 필사적인 저항을 참혹하게 쳐부순 학살의 역사를 백인들은 자랑스런 '서부개척'의 역사로 기록하였다. 미국은 출발부터 전례 없는 인종차별주의 위에서 건설되었다. 그것은 유색인의 인간적 존엄을 부인하는 백인지상주의 사상이었다." - 유시민, 「거꾸로 읽는 세계사」중 pp308~309, 푸른나무, 1995.
  5. "모든 흑인 남성은 자신이 세상 누구보다 이 셋 중에 하나는 잘한다고 내심 생각한다. 농구, 랩, 농담."(p278)
  6. 그리고 그 결과는, 다음과 같이 은연중에 그들에게 하나의 일상이 되어가지요. --- "흑인으로서의 삶에 존재하는 여러 서글픈 아이러니 중 하나는, 온갖 시시하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모임을 모두 <행사>라고 부르는 것이다."(p131)
  7. "사실 대부분의 백인들은 자기가 흑인을 증오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흑인이 자기 '분수'를 알고, 그에 걸맞는 요구를 고분고분하게 내놓는 경우에는 그것을 환영하고 격려하기까지 했다. 그들이 증오한 것은 흑인 일반이 아니라 만인이 평등하게 태어났다고 믿고 그렇게 행동하는 '분수 모르는 흑인들'뿐이었다. 따라서 백인들은 이같이 '불순한 흑인'들이 발호하지 못하도록 흑인 민권운동의 요구들을 일부 수락했다. 이것이 이른바 '상징정책(tekenism)'이다." (유시민, 위의 책 pp 320~321)
  8. "운 좋은 소수의 사람들에게 삶이란 하루 24시간 컨버터블 자동차의 앞자리에 앉아 있는 느낌" (p309) --- "하루에 스키장과 해변, 사막에 모두 갈 수 있는 곳"(p165)인 로스엔젤레스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에, 저에게도 몇몇 낯익은 지명, 도로번호, 식당 이름 등이 등장하고 있는 소설입니다만 아무래도, 컨버터블 자동차의 앞자리에 앉아보지 못한 저이기에, '운 좋은 소수의 사람들'의 삶이 머리 속에 그려지지 않는 것처럼, 이 작품은 제게, 그러니까, 미국인이 아니고, 캘리포니아에 살지도 않으며, 결정적으로 흑인이 아니기에, 역자의 각주로도 채워지지 않는/채워질 수 없는 부분들이 너무도 많았더랬습니다. 심지어! "난무하는 블랙 유머"가 있다는 인터넷 서점 MD의 소개에마저도 전혀 동의할 수가 없어요. 뭐, 이 소설을 가리켜 "노예 제도와 인종 분리 정책이 현대에 다시 도입되는 이야기를 담았다"란 소개글엔 그저 어이가 없을 뿐.
  9. 존 하워드 그리핀, 「블랙 라이크 미」중, 살림, 2009.
  10. 존 하워드 그리핀, 위의 책.
  11. "통합은 강제할 수 없다. 통합하고 싶은 사람들이 통합하는 거지. … 이곳 미국에서 '통합'은 은폐일 수 있다. … 문제는 통합이 자연스러운 상태인지 부자연스러운 상태인지 우리가 모른다는 것이다." (p229)
  12. "우리는 … 단호하게 '격리'를 거부한다. '분리'는 '격리'와는 명백히 다르다. '격리'는 강한 자가 약한 자에게 억지로 강요하는 것이다. 그러나 '분리'는 평등한 둘이 서로의 이익을 위해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다. 우리 미국 흑인들이 백인에 종속되어 있는 한 우리는 언제가 백인에게 일자리와 의식주를 구걸해야 할 것이며, 백인은 우리의 생활을 규제하면서 언제든지 우리를 '격리'시킬 힘을 가지게 될 것이다." - 유시민, 위의 책 p322.
  13. 「블랙 라이크 미」를 통해 저자 존 하워드 그리핀 역시, "진정한 의사소통에 이르기 위한 가장 빠른 지름길이 될지도 모른다"라며, 흑과 백의 분리를 주장하고 있지요. 헌데 그 책의 출판사는 어처구니 없게도, --- "2009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꿈꾸는 통합과 평등"란 문구의 띠지를 붙여 그 끝모를 무지함을 선전하기도 했었다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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