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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목가 1 (양장)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7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사실 주류란 말이 있을 뿐이지 실제로 주류에 속한 사람, 적어도 자신이 주류에 속했다고 느끼는 사람은 별로 없다는 것이 주류의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대다수는 주변부에서 아슬아슬하게 버티며 삶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류라는 것은 많은 경우 환상으로만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르는데... (2권, <해설>중, p293)
'주류(mainstream)'에 대한 정의(definition)가 어찌되느냐란 문제에 우선 답해야하겠지만, 그저 누구나 직관적으로도 상정할 수 있을, "큰 흐름의 바깥, 스포트라이트의 바깥, … 세(勢)에 쫓겨 변두리로 밀려난 주변인"의 반대 개념 정도로서의, 그런 '주류'를 가정한다 하여도, '자신이 주류에 속했다고 느끼는 사람은 별로 없다'란 역자 정영목의 지적은, 예의 '일반적으로' (라는 전제 하에) 옳다라 생각되어집니다. 그러했었고, 여전히 지금도 그러하기에, 단지 현재뿐만이 아니라 적어도 몇십 년 이전부터, 이 땅 대한민국에서는, '주류'로의 편입을 가장 확실하게 보장해주는 명문대학에의 입학이란 것이, 거의 모든 사람들의 바라는 바에 속해있어왔겠죠. 그러나!
"시골 아이는 혼자 대학을 가지만, 외고 출신 애들은 부모의 배경과 재력 등을 모두 가지고 간다"라는, 이건 당췌 어찌 나의 노력만으로는 넘어설 수 없는 '벽'이 또 다시, '주류'가 되고자 하는 '비주류'의 욕망/노력을 가로막고 있는 겁니다. 뭐, 그러하기에, 당신이 이내 '헬조선'이란 단어를 떠올릴 수도 있겠으나, 이 때의 '헬'이란 접두어가 딱히 '조선'이란 명사의 앞에서만 사용되어야 하는 것도 아닌 게,
"학생 선발의 주요 근거 중 하나인 SAT 점수는 학부모의 경제적 능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지만 "열심히 공부하면 합격한다"는 환상을 심어주는 사기극일 뿐." (미시간 대학 닐 게이블러 교수)
- 강준만, 「미국은 세계를 어떻게 훔쳤는가」중 p103, 인물과사상사, 2013.
사람 사는 건, 사람들이 모여 살아간다라는 건 이처럼, '인생, 거기서 거기!'란 일곱 글자를, 딱히 부정해낼 수 없어보이기도 한 겁니다. 그리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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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드'는 미국의 꿈을 내면화하면서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과 결혼까지 한 인물로, 유대인 사회의 우상이었던 사람이다. 그런 그의 삶이 파국을 맞이하기까지의 이야기가 「미국의 목가」의 중심 부분을 이룬다. …… 결국 스위드의 비극은 한 고결하고 성실한 인간이 곡진한 선의에도 불구하고 좌절하고 마는 이야기로, 유대인의 비극이자 미국인의 비극이자 인간의 비극이 된다." (<해설>중, pp294~296)
명백한, "미국 역사 수업"(2권, p114)과도 같은 문학 작품입니다. 그러하기에 (여러 민족으로 이루어져 있는) 미국이란 나라에 태어나지도 않았고, (미국에 살고 있는) 유대인도 아닌 저로서는 단지/그저, 이 작품이 담고 있는 '인간의 비극'에만 공감할 수 있다라는, 단순한 산술적 계산으론, 작가 필립 로스가 이 작품을 통해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그 무언가의 2/3를 일단 제껴놓고 들어가고 나와야 한다라는, 여하히 극복해낼 수 없는 태생적 한계가 주어져 있다 볼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제목에서부터도 어쩌면, 그러한 '배제(exclusion)'를 전제하고 있어 보이기도 하는 이 작품 「미국의 목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 작가 필립 로스의 페르소나(persona)로 볼 수도 있겠는, 네이선 주커먼이라는 작가의, "미국 사회의 핵심을 이루고 있으면서도 결코 '주류'에 끼지는 못하는 유대인"(2권, p291)인 주인공 스위드의 한 삶에 대한, 짧지 않은 기록을 통해 결국엔.
누가 비극에, 그리고 도무지 파악할 수 없는 고난에 대비가 되어 있겠는가? 아무도 그렇지 않다. 비극에 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의 비극 - 그것이 모든 사람의 비극이다. (1권, p140)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았어도, 유대인이 아니어도 느낄 수 있는 그런, 그저 '(모든) 사람'에 관한 이야기, 그 많은 이야기들 중에서도 '비극'에 관한, 또한 그 중에서도 '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의 비극'을 이야기를 해주고 있으며, 그러하기에 이 작품이 지니고 있는 '보편성'이란 것이, 대한민국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저란 독자에게도 예의, 감탄어린 공감이란 결과물을 안겨주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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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 보니, 나의 부모가 '주류'의 일원인 거고, 그리하여 거의 당연히/자연스레 나 역시 그 '주류'로 교육받고 자라난 사람에겐 딱히, 그 '주류'란 개념에 대한 집착이 존재하질 않습니다. 제가 은근 자주 쓰는 표현인, '세상이란 게, 그리고 삶이란 게 원래 그런 것'이기에, 그냥 그렇게 살아가면 되는 거니까요. 허나!
우리, 어린 우리가 가난, 무지, 질병, 사회적 불의, 위협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무엇보다도 하찮은 존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공동체적 결의가 있었습니다. 무가치한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뭔가가 되어라! … 공동체 전체가 우리에게 무절제한 행동으로 인생을 망치지 말라고 끊임없이 호소했으며, 기회를 잡고, 유리한 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잊지 말라고 호소했습니다. (1권, pp70~71)
'주류가 아님'이라 하는 주어진 조건, 태어나진 조건대로 계속 살아가서는 안된다란 가치관을 주입/강요받으며 자라난 이들에게 '주류의 일원 되기'란 하나의 목표이며, 반드시 이뤄내야 할 일생의 과업 같은 것이 됩니다. 여기에 더해진, 유대인이라고 하는, 진정한 의미의 주류 '미국인'인 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가 아닌 이가, 자신의 부모 세대로부터 요구받았던 바인, "끼고 싶어사는 동시에 밖에 있고 싶어하는, 다르다고 주장하면서 동시에 다르지 않다고 주장하는"(1권, p38), 도저히 회피할 수 없는 시대적 모순까지를 --- 작품 속 주인공 스위드는, 거의 완벽하게 성취해 냅니다. 그렇게, 그것을 성취해 내었기에 또 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