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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라이의 나라
이케가미 에이코 지음, 남명수 옮김 / 지식노마드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무가(武家)의 첫째가는 도리는 스스로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이다. 군인이자 행정관이었던 그들은 무사무욕(無私無慾)을 무사도의 으뜸 덕목으로 마음에 새겼다. 뒤집어 말하면 그것은 자기 존재 자체에 대한 회의다. 무사(無私)이기 위해 자신의 존재를 계속해서 회의하는 자, 그것이 무사(武士)였다."
- 아사다 지로 作, 「고로지 할아버지의 뒷마무리」중 pp248-249, 문학동네 刊, 2013.
'알아야 좋아할 수 있다'라는 말에는 '경우에 따라서'란 전제가 있어야 동의할 수 있습니다만, '좋아하면 알고싶어진다'란 말에는 (글자 그대로) 무조건적 동의를 표하는 저이기에 --- '올해의 딱 한 권 : 2015'이었던 「고로지 할아버지의 뒷마무리」 속 무사도(武士道), 그러니까 소위 '사무라이의 정신'이란 것에 깃들어 있는, 그들이 지녔던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키려 했던 그 사소한 무엇"이 정녕 어떤 것이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 뭔가, 쉽게 감당 안될 것 같은 뭉클한 무언가를 제게 건네줄 듯 싶은 예감 가득한, 아사다 지로의 「칼에 지다」를 읽기 전에 먼저 - 알고자, 이케가미 에이코의 이 책 「사무라이의 나라 The taming of the Samurai」를 펼쳤더랬습니다...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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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에게 무엇보다도 집단주의적 사고방식과 현상유지의 태도를 중시하고, 개인주의와 대담한 혁신은 저평가하도록 장려하는 사회가 공업화와 기업경영에서 어떻게 현재와 같은 성공을 거둘 수 있었는가?"(p26)
시작은 좋았습니다. 제가 궁금해 하는 사무라이 정신 자체 뿐 아니라, "집단 순응성, 수치의 회피 그리고 경쟁을 통한 명예와 위신의 추구"(p48)로 요약되어지는 현대 일본 기업의 조직문화가 그것으로부터 어떠한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는가에 대해, 더 크게는 '현재의 일본'을 만들어 감에 있어 어떻게 작동되었었는가,까지를 살펴보겠노라는 저자의 일갈은 엄청난 기대를 제게 안겨주었었지요. 저자는 일단,
"내가 분석의 초점을 사무라이의 명예문화로 선택한 것은 그들의 명예 관념이야말로 집단주의적 사고와 개인주의적 사고 사이의 대립적인 긴장관계와 상호관계를 가장 잘 보여 주기 때문이다."(p30)
'명예문화'라는 단어를 이 책의 핵심 키워드로 선정하고 있습니다. --- "계급문화의 중심적 가치(p92)"이자, "사무라이의 존재 이유"(p93)라고까지 일컬어지는 '명예'란 것이 어떠한 이유로 그들에게 하나의 '문화'로까지 각인되었었느냐, 이후 어떠한 과정을 거쳐 현재의 일본에까지 이식되었느냐/될 수 있었으냐를 담고 있는 이 책을, 그러한 관점의 frame 하에서 요약해 보자면,
"어떤 문화적 자원이 한 사회에서 주요한 상징이 되는 것은 ⓐ지배적 집단 혹은 유력한 소수집단이 그 자원을 유지하며 성장시킬 때이고, 한 문화가 제도로서 확립되는 것은 ⓑ그것을 지지하는 사회기반이 존재할 때이다."(p93)
크게 보아 이 책은, 이처럼 사무라이 계급의 ⓐ형성 및 성장과정, 그리고 ⓑ문화로의 확립이라는 두 가지 단계를 담고 있다 할 수 있습니다.
【 사무라이란? 】
"'사무라이'라는 말은 '사부라이 侍(모실 시)'가 변한 것으로 귀족을 시중드는 남자들을 가리킨다."(p89) …… "'사부라이'라는 말은 또한 지방 정청의 관할 아래 있는 '활과 화살의 남자들'로서 지방 장관에 봉사하는 현지의 군인들도 가리키고 있었다."(p557) …… "사무라이란 원래 전문가 즉, 그들이 가지고 있는 군사적 기능으로 지배계급에 봉사하는 직능집단이었다. … 그들은 군사전문가로서 명확한 자기정체성을 갖는 일본 최초의 사회 집단이었다."(p89)
저자는 "사무라이 출현의 수수께끼는 완전하게 풀리지 않았고 여전히 역사가들 사이에서 논의되고 있다"(p99)정도로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 일 개인에게 취미로서의 독서라는 것이, 게다가 제가 이 책에 부여한 의의는 단지, 「칼에 지다」를 만나기 전, 준비 운동의 수준이었으므로, 저 역시 더 이상의 관심은 그만!
【 사무라이의 성장 】
"사무라이 계급 출현 이후의 일본역사는 집단으로서 사무라이가 다른 사람들에게 평화적인 행동을 강제할 수 있는 우월적 입장을 합법화하는 과정이었다고 요약할 수 있다. … 사무라이는 서로 끊임 없이 싸워 상하관계를 바꾸는 과정을 반복했고 이를 통해 최강의 지도자들은 스스로 지위의 정당성을 획득했다. … 최강의 개인은 통상 왕실로부터 쇼군의 칭호를 받아 자동적으로 사실상 국가의 지배자로서 공인되었다. 합법적 승인의 기제가 이러한 특징을 가지기 때문에 사무라이의 폭력을 '명예로운 것'이라고 여기는 문화의 재편성과 개념의 재구성 즉, 사무라이 명예문화의 창조와 유지가 정치적으로 중요하게 되었다."(p72)
즉, 2017년의 대한민국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 지니고 있는 '명예'라는 개념과는 많이 다른 명예인 겁니다. '집단으로서의 사무라이'가 "싸움을 해결하고 평화를 유지하는 힘을 가지는 사람들로 이해"(p91)되는 수준이라면, 이제 '계급으로서의 사무라이'는 그러한 명예가 안겨준 권력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이죠.
【 명예 개념의 변화 】
"힘이 있다는 평판이야말로 진정한 힘이다"(p57)란 「리바이어던」 속 구절은, 평판에 취하게 되는 순간, (기존) 힘의 유지는 더 이상 불가능해진다라는 의미를 (거의) 필연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겁니다. 오랜 역사의 흐름을 지나면서 결국 "명예에 집착하는 일은 … 일본역사에서 사무라이가 폭력사태를 일으키는 동기가 되었고, 모욕에 대해 극단적인 민감함을 과시하는 것이 사무라이의 사회적 자격으로 지속"(pp300-301)되어버렸고, 그렇게 권력을 안겨주는 도구(mechanism)로 시작되었던 '명예'가 이젠 스스로 하나의 주체가 되어버린 것이지요. 여기에,
"중세 사무라이의 명예를 평가할 때는 개인의 의사가 항상 중요한 요소이다. 대장과 함께 자결을 감행하는 행위는 극한적이고 이타적인 자기희생처럼 보이지만 사무라이의 자율성에 대한 정서의 핵심을 상징한다. …… 거기에는 무사란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인간이라는 확고한 인식이 있다."(pp180-181)
"자신의 죽음을 지배하기 때문에 자신의 생(生)도 지배한다"(p185)는 인식이 '명예'에 가미되는 순간, "순수하게 자기성찰적인 폭력의 형태인 할복자살은 명예폭력을 스스로를 향해 표명한 것"(p379)이 되어 버리는 겁니다. 다시,
사무라이의 형성 및 사회적 인정을 획득했던 과정으로 되돌아가 보면, "폭력을 효과적으로 행사하는 것이나 싸움을 자신의 손으로 해결하는 능력을 갖는 것이 중요한 것은 폭력이 명예의 유일하고 정당한 표현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사무라이의 통치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불가결한 수단이었기 때문"(p72)란 것이 결국 --- (사랑하기 때문에 떠나간다는, 쌍팔년도 가요의 가사 마냥) '유지하기 위한 불가결한 수단'이 (계급이 아닌) 개인으로서의 사무라이에게 죽음만을 선택지로 내보이게 되는 아이러니를 만들어 버린 것 아닌가라 이해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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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형성은 원래 무력행사의 특권을 독점해 가는 과정과 연결되어 있다. 국가형성의 초기단계에서는 많은 집단이 폭력행사의 권리를 두고 다툰다. 국가가 성장함에 따라 그 영향이 미치는 범위가 넓어져 기구는 집권화되고 하위의 구성 그룹으로부터 권력을 몰수한다."(p71)
메이지 유신은 사무라이들로부터 칼을 빼앗습니다. 이는 그들, 사무라이의 존재를 부정하는 조치로 받아들여졌지요. 이후의 일본 역사에 대해, 작가 아사다 지로와 학자인 이케가미 에이코의 해석은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것이 작가 아사다 지로의 참뜻이었는지 알 수 없으나) 「고로지 할아버지의 뒷마무리」에 실려 있는 여섯 편의 소설들을 통해 제가 느꼈었던 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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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행이란 말이다, 결코 왔던 길을 되돌아가서는 안 되는 거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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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표현될 수 있겠는, '사무라이 계급'의 퇴장에 진한 아쉬움이었다라면, --- 학자 이케가미 에이코는, 이 책의 서두에서 던졌던 질문, "국민에게 무엇보다도 집단주의적 사고방식과 현상유지의 태도를 중시하고, 개인주의와 대담한 혁신은 저평가하도록 장려하는 사회가 공업화와 기업경영에서 어떻게 현재와 같은 성공을 거둘 수 있었는가?"(p26) 에 대해 다음과 같은 답을 내놓는 것으로 '메이지 유신의 의의' - 어쩌면 '사무라이 계급의 퇴장'과의 동치(equivqlent) - 를 적어놓고 있습니다.
"메이지 체제는 지금까지의 명예문화의 구성에서 세습적 요소를 제거함으로서 보다 순수한 능력사회를 향한 길을 개척했다. 도쿠가와 시대 평민의 아들들에게는 명예공동체에 참가하는 형태로 진정한 사회적 신분상승을 이룰 가능성이 거의 없었던 것을 생각해 보라. …… 새로운 유행 이데올로기 즉, 평민의 아들이라도 근면하게 일해 경제적인 성공을 거두면 세상에 '이름'을 떨칠 수 있다는 확신은 이 명예지향 사회의 기업가적 활동에 엄청난 탄력을 주었다. 즉, 메이지 유신은 일본 민중의 잠자고 있는 능력주의적이고 실적본위적인 욕구를 불러일으켰고 이런 야심은 시장에서의 성공과 명예를 목표로 하는 새로운 정렬로 나타났다."(pp528-530)
너무도 확연하게 다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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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 멀지않은 옛날, 갑자기 눈앞을 막아선 근대의 울타리 앞에서 주저하고 당황하면서도 어쨌든 그것을 넘어섰던 사람들의 고생담'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세상'으로의 마지막 문턱으로 여겨졌었을, 허나 다른 누군가에게는 '주저하고 당황하면서도 어쨌든' 넘어서야 했던 힘겨운 언덕이었을, 그 시기에 대한 해석 중, 아무래도 전... 후자의 편에 서게 됩니다.
읽고 이해해내기에 너무도 어려운 책이었습니다. 사무라이에 대해 기본적 맥락만을 얻으려 했던, 단순한 목적을 지닌 저에게 '역사사회학, 사회이론, 문화사회학' 전공자라는 저자가, 역사, 사회학, 정치학, 경제사, 심지어 막스 베버까지 동원해 가며 설명해주는 사무라이는 아무래도, 용량 초과 벨을 너무도 여러 번 울리게 해주더군요. 아쉽게도, 여기에 더해 --- 번역 또한 '빌빌하다' 소리 들어도, 별 대꾸 못하지 않을까 싶을 수준이기도 합니다. 제가 원했던 수준의 지식은 그저,
네이버 지식백과의 이 시리즈가 딱!이었던 듯.
암튼!
아사다 지로의 「칼에 지다」를 읽으며, 또한 읽고 나서,
왠지 다시금 이 책을 뒤적여보게 되지 않을까... 도 싶네요.
※ 아사다 지로 作, 「고로지 할아버지의 뒷마무리」
꾸역꾸역... 금연 35일째.
- "일본에서 사무라이란 정확히는 상류 무사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므로 무사라는 말은 엄밀히 말하면 ‘사무라이’보다 넓은 개념 … 그러나 무사도라고 할 때는 모든 무인들이 상급 무사인 사무라이가 되기 위해 따라야 하는 규범을 가리키는 말이다." - 유정래 著, 「일본 무사 이야기」중 p26, 어문학사 刊, 2016.
- 허태균 著, 「어쩌다 한국인」중 p289, 중앙books 刊, 2015.
- 이 서술을 통해 저자는, 이 책이 위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될 것임을 명확하게 선언하고 있다 생각합니다.
- 이케가미 에이코 교수는 사무라이 출현에 대한 몇몇 가설들을 소개해주고 있기는 합니다. 이를 "재지영주론(在地領主論), 직능론(職能論) 및 국아군제론(國衙軍制論)"의 명칭으로 소개하고 있는 책도 있더군요. (유정래, 위의 책, p14.)
- "명예문화는 사무라이들이 신분집단 status group으로서 집단적 우월성을 나타내는 문화적 표현 … "(p68)
- "명예가 권력을 가져온다"(p57)
- "A mechanism is a special way of getting something done within a particular system." - 네이버 영어사전
- "정의 없는 힘은 폭력이고 힘없는 정의는 무능이다." - 극진 가라테의 창시자 최배달의 말입니다. 얼핏 멋있게 보일지 모르겠으나, 이와 같은 사무라이 정신이 혼돈된 결과가 아닐까,란 생각이 드네요.
- "자신(들)의 존재마저 부정하는" - 아사다 지로, 위의 책 p100.
- 아사다 지로, 위의 책 p226.
- 아사다 지로의 「고로지 할아버지의 뒷마무리」를 읽고 쓴, 감상문의 마지막은 이러했었었네요. --- "'백성이 안심하게 살게 해주는 기구야말로 국가라고'(p112) 믿고 있었기에 사무라이들은 "우리의 목숨, 이 나라에 바치지 않겠나"(p77)라 외쳐댔었던 것이었다라 작가는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 사무라이의 국가는 그들에게 '세상의 변화'에 대해 설명해주지도 않았으며, 그들이 적응할 시간적 여유를 허락하지도 않았더랬지요. 바로!!! 이 환경, 즉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무라이들을 구태(舊態)라 탓할 것이 아니라, 갑자기 나타난 변화 앞에 무방비 상태로 서있는 그들을 전혀! 배려해주지 않았던 메이지 유신의 막무가내를 탓해야 한다는 것으로 전 이 (너무나도 슬픈) 여섯 편의 소설들을 읽었다라는 겁니다."
- 저의 과도한 편파적 감정일 수 있겠지만, 전 이 책의 제목 'The taming of the Samurai'가 이미! 이러한 투의 결론을 보여주고 있다라 생각합니다.
- 아사다 지로, 위의 책 p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