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탈로니아 찬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6
조지 오웰 지음, 정영목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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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nburgh castle에 올라섰을 때, 영국사(史)에 대한 특별한 지식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스코틀랜드 사람들(Scottish)이 왜 자신들을 영국인(English)라 부르는 것에 그토록 질색을 했던가에 대한, 차마 저의 언어로는 표현해내지 못하겠는, 하지만 너무도 뚜렷하게 느껴지기는 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더랬습니다. 그러하기에, ---  지난 2014년, 세간의 주목을 받았었던 스코틀랜드 독립 투표에서 (완전한 제3 자적 입장에서의 기대로는) 찬성의 결과가 나오길 기대했었었거늘, 예의 "영국에서 분리·독립할 경우 경제적 대재앙을 맞게 될 거라는 경고"1와 같은 (일단 막 던져놓고 보는) '현실'과 관련되어져 표현되는 위협은,

"무지하게 겁이 났다. … 총알에 맞는 것 자체가 무섭다기보다는, 어디에 맞을지 모르기 때문에 무서운 것이다."(p62)


와 같은,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부추켰었고 결국/이내, 그들의 독립을 이루어내지 못하게 만들어/막아 주었었지요. 암튼! --- 그때 만약 스코틀랜드의 독립이 결정된다면, 그 다음 차례는 무조건 여기!라 예상되었던 곳이 바로 스페인의 카탈로니아 지역이었던 걸 기억합니다.   


언어·문화에도 독자적인 카탈루냐어()2와 전통을 가지고 있다. 왕정시대와 프랑코 독재정권 때는 마드리드를 중심으로 하는 지방과 대립하였으며 지금도 카탈루냐 사람들은 여전히 '카탈루냐는 스페인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독립과 자치를 요구한다. …… 19세기 후반에 이르면서 카탈루냐 지방은 노동 운동과 자치·독립 운동의 중심지가 되었고, 20세기에 이르러 1932∼1934년, 1936년에 자치권을 획득하였으나 스페인 내전 후 프랑코 정권이 확립된 후에는 다시 자치권을 상실하고 카탈루냐어의 공식 사용도 금지되었다.


- 카탈루냐(Catalonia) : 네이버 백과사전

이 작품 「카탈로니아 찬가」는 스페인 전쟁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작품을 '소설'3이라 해야할 지, 아니면 일종의 '기록(문학)'4으로 보아야할 지, 혹은 다른 이름의 장르이어야 할지, 저로서는 판단할 수 없습니다만, "스페인 전쟁5 … 은 무엇보다도 정치적 전쟁6이었다"(p66)라는 조지 오웰의 표현은, (역설적이게도?) 이 작품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전장(戰場)과 관련된 묘사가 아닌, "스페인에서 벌어진 일은 사실 단순한 내전이 아니라 혁명의 시작이었다"(p71)에서 보여지는 것과 같은 정치적 측면, 그러니까 다름 아닌 '사상/이념'에 대해 생각해볼 것을 독자에게 요구/강요/권유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가져보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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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의 군대에서 규율은 자발적인 것이다. 이들의 규율은 계급7에 대한 충성에 기초한다. …… '혁명적' 규율은 정치적 의식이 달려 있다. 왜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지 이해하는 것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pp41-42) 

아나키스트들이 한 축을 이루고 있었던 당시 스페인의 '인민전선(People's front)' 의용군들은 예의, 위와 같은 아나키즘적 사고8에 의해 운용되고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의 군대에 대해,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 존재하는 조직임에도, 민주주의가 결코 적용될 수 없는 조직'이란 역설적 표현9이 존재/가능하다라는 걸 감안할 때, (국방의 의무를 다한 저에게 ^^;;) 내전/혁명에 대처하는 조직의 운용이 위와 같은 자발적 충성에 의해 이루어졌었다라는 점은 결코 가벼이 보이지 않았었습니다. 그리하여,


이 작품, 「카탈로니아 찬가」를 읽어냄에 있어, 스페인 내전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필요한 건 아니라는/아닐 수도 있겠다라는, 다시 말해 --- 우리가 주목해서 보아야 할 일면(aspect)이란 게 어쩌면, 1930년대 초반의 스페인에서 일어났었던, "공산주의자들과 무정부주의자들 사이의 갈등10"(p194)으로부터 기인된 '혁명의 실패11'와 같은 결과로서의 일 현상(phenomenon)이 아닌, (그것이 반드시 '아나키즘'과 같은 특정의 것이 아닐 지라도) '이념', '사상' 혹 넓게는 '신념'으로도 표현되어질 수 있겠는 정신적 가치에 대한 일 개인/집단의 확신(이 지니는 숭고함)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하는 생각을/까지를 해보기도 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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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의 전쟁이 벌어졌을 때, 과연 나는 대한민국의 무엇을 지켜내기 위해 전쟁터에 기꺼이 나갈 수 있겠느냐란 자문에 아무런 답변을 할 수 없는 이유가 비단 저의 용기 없음 뿐만은 아닐 수도 있을 꺼란 생각, 어쩌면? 아니 거의 확실하게! --- "내가 싸워서 지킬 만한 어떤 가치가 있다"(p13)는 확신을, 대한민국의 교육은 국민들에게 가르쳐준 적이 없기 때문이라 생각해/믿어 보게도 됩니다. 그러하기에!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만 알았지, 어떤 종류의 전쟁인지도 몰랐다. 그런데도 왜 의용군에 입대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파시즘과 싸우기 위해서'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무엇을 위하여 싸우느냐고 묻는다면 '공동의 품위를 위해서'라고 대답했을 것이다."(p66)

대한민국이 제공하는, 대한민국에서 누릴 수 있는 보통 수준 (이상)의 교육을 받은 제게, 그 속에 '북한 체제'와의 상대적 비교가 아닌, '대한민국' 자체를 향한 절대적 가치로서 존중하고 싶다란 믿음을 배워본 적 없는 제게 --- "그것이 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유일한 일이었기 때문"(p11)이란 조지 오웰의 (위와 같은) 사고(思考)는 그저 놀랍고 낯설고, 사실은/심지어는 뭉클했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조국도 아닌, 남의 나라 내전에 참가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자본주의 기계의 톱니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행동하려고 노력"(p13)하는 그들의 모습에 감동 받았기 때문이란 조지 오웰의 고백은, (1969~2017에 이르르는) 저의 삶에선 도무지/도대체 대입되어질 수조차 없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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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는 귀하고 아름답지만, 자유의 역사는 인간의 피와 눈물로 얼룩져 있다."


- 유시민 著, 「후불제 민주주의」 중 p37,  돌베개 刊, 2009.

먼 과거로부터, 여전히 '남의 일'로 보여지기만 했었던 1987년의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지금 제가 누리고 있는 '자유' 안에 담겨 있는 '인간의 피와 눈물'을, 전 완벽하게 알고 있지는 못합니다. 더군다나, 그 완벽하지도 못한/약간의 알고 있음에마저 예의 '느낄 수 있음'은 완벽하게 배제되어 있기도 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분투는 … 자신들이 현재의 상태보다 더 나은 어떤 것을 위해 싸운다고 믿는 인민만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이었다."(p70)


이 책 제목의 일부이기도 한, homage란 단어의 대상이 되기에 차고도 넘치는 2017년의 대한민국과, 더 나아가 ---  이제부터라도 하나씩 하나씩 정상의 모습을 갖추어가는 대한민국을 나의 아들이 살아갈 나라로 건네어 주는 것엔 굳이, '우리의 피와 눈물'까지는 요구되지 않는다라는 다행스러움마저 지니고 있는 우리들에게, 2017년의 5월 9일은, "모든 사람에게 각자의 권리를 보장하려는 영속적인 의지"12서의 정의(justice)를 내 손으로 실현하는 첫 단계가, 


되어야 하지 않겠나/될 수 있지 않겠냐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아~ 물론! --- 대한민국에 뿌리내려주길 바라는 '정의(justice)'의 모습/수준은 세대마다, 계층마다, 또한 개인마다 다르겠지요. (다시 한 번 더) 럼에도 불구하고, 그 다름이란 것이 단지/오로지 범위의 차이로부터 기인되는 것이기만을, 그것이 정녕 '개념(definition)'의 차이로부터 생겨난 것은 부디 아니길13, 함께/부디 바래어(願)도 봅니다. 


※ 스페인 내전과 관련된 안토니오 아타리바 · 킴 共著,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 길찾기 刊, 2013.

※ 아나키즘이란? - 하승우 著 「아나키즘」, 책세상刊, 2008. 


 

  1. "스코틀랜드 독립 무산" - 한겨레 2014.9.19.
  2. 스코틀랜드에서 듣게 되는 영어 역시, 그걸 'English'라 칭하기엔 심히 애매하다라 생각합니다. 차라리 독일어라 하는 게 오히려 고개를
    더 끄덕여지게 해줄...
  3. "「카탈로니아 찬가」는 조지 오웰의 소설 가운데 가장 위대하다" - 노암 촘스키
  4. 책의 본문에서 작가는 이 기록의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 "전쟁의 가장 끔찍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모든 전쟁 선전물, 모든 악다구니와 거짓말과 증오가 언제나 싸우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나온다는 점이다. …… 모든 전쟁이 똑같다. 병사들은 전투를 하고, 기자들은 소리를 지르고, 진정한 애국자라는 사람은 잠깐의 선전 여행을 제외하면 전선 참호 근처에도 가지 않는다."(p88-90)
  5. 'Battle for Spain' 또는 'Spanish Civil War'
  6. 저자 조지 오웰 스스로도 이 작품에 대해 "공공연하게 정치적인 책"(p297)이라 표현했었다 합니다.
  7. 이 때의 '계급'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 의미의 그것과는 다른 내용입니다. 다음 두 구절을 통해, 제가 한 단어로 표현해내지 못하는, 이 문장 속 '계급'의 의미를 알아낼 수 있으실 듯 싶네요.
    ① "의용군 체제의 핵심은 장교와 사병 간의 사회적 평등이었다. …… 모든 의용군이 위계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원칙으로 삼았다. 물론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은 알았다. 그러나 명령도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내리는 것이 아니라, 동지가 동지에게 하는 것임을 인식했다. 장교도 있고 하사관도 있었으나,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군사적 계급은 없었다. … 의용군 내에서 일시적이나마, 계급 없는 사회의 산 표본을 만들어보려 했던 것이다. 물론 완전한 평등은 없었다. 그러나 평등의 수준은 내가 그때까지 보아온 모든 것 이상이었고, 또 내가 전시에 가능하리라고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pp40-41)
    ② "보통 사람들이 사회주의에 매력을 느끼고 사회주의를 위해 목숨을 거는 이유, 즉 사회주의의 '비결'은 평등 사상에 있다. 대다수 사람들에게 사회주의란 계급 없는 사회일 뿐이다. 그것말고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의용군에서 보낸 몇 달이 나에게 귀중했던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이다. 스페인 의용군은 그것이 지속되는 동안에는 일종의 계급 없는 사회의 축소판이었다. 아무도 자기 이익에 급급해하지 않는 공동체, 모든 것이 부족하지만 특권이나 아첨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공동체 속에서 우리는 사회주의의 서막을 막연하게나마 감지했던 것 같다."(pp140-141)
  8. "스스로 복종하기로 마음먹었다면 그 질서는 나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뜻을 완성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아나키스트는 모든 권위를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강압적이고 억압적인 권력을 거부한다. 아나키스트는 스스로 동의한 권위라면 전체의 결정이라도 자신이 결정한 것처럼 따르려 한다." - 하승우 著, 「아나키즘」 p12, 책세상 刊, 2008.
  9. "당신은 민주주의를 위해 무엇을 했습니까" 나는 그 질문에 이렇게 답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식량만 축냈습니다."(p96)
  10. 그 갈등의 이념적 원인은 어쩌면 다음의 것이 아니었을까요?--- "공산주의자는 늘 중앙 집권과 효율을 강조한다 . 무정부주의자는 자유와 평등을 강조한다."(p84)
  11. "흔히 제창되는 구호 가운데 '전쟁이 먼저고, 혁명은 나중이다'라는 것이 있었다. … 그러나 그 구호는 눈속임이었다. 공산주의자들은 좀더 적당한 때가 올 때까지 스페인 혁명을 미루자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혁명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다. … 노동자들은 점점 권력을 빼앗겼다. 온갖 부류의 혁명가들이 점점 더 많이 투옥되었다. 모든 행동이 군사적 필요라는 명목하에 이루어졌다. … 그 결과 노동자들은 우월한 지위로부터 점차 물러나게 되었다. 그들은 전쟁이 끝났을 때, 자본주의의 재도입에 저항할 수 없는 위치에 놓이게 될 터였다."(p92)
  12. 마이클 리프 · 미첼 콜드웰 共著, 「세상을 바꾼 법정」중 p143, 궁리 刊, 2006.
  13. 우리나라가 정말, 대통령이 되겠다는 다섯 명의 유력 후보가 나와,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할만큼, 다양한 견해까지가 필요한 나라일까요? 목수정은 "사회적 정의를 실천하는 데 노력하는 사람들"(「파리의 생활좌파들」중 p215, 생각정원 刊, 2015.)을 좌파의 정의 중 하나로 상정하고 있습니다만, 태극기를 둘러멘 꼴보수들 역시, 자신들을 과연 '사회적 정의를 실천하는 데 노력하는 사람들'의 범주에서 제외시킬 것인가에 대해선 긍정이 되질 않습니다. 즉! --- 우리나라에서 외쳐지는 '진보'와 '보수'란 구분은 다 가짜고 말 뿐인, 기실은 본질로부터는 거리가 먼, 그런 것들이란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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