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의 여행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16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문학 작품을, 예를 들어 한 편의 소설을 읽어내고 이해함에 있어, 쓰여져 있는 줄거리 그대로 straight로 이해할 것인가, 아니면 그 안에 담겨 있는 사회적·정치적·문화적 맥락의 렌즈로 한 번 걸러 이해해야 하는가는 물론 당연히 작품에 따라 다르겠지요. 하지만 --- '이것은 소설이고, 그것은 논문이다'와 같은 명백한 구분까지 가능한 것은 아니고, 예의 그 구분은 독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것이기에,   


그저 줄거리 그대로 읽혀지고, 쓰여져 있는 바 그대로 이해되어지길 바랐었을 작가의 의도1완 달리, 그 작품에 작가가 실어놓지 않은, (때로는 과도한 두께의) 사회적·정치적·문화적 맥락의 렌즈를 통해 이해해내는 독자들도, 또는 그 반대 경우의 독자들도 존재하게 되겠지요. 이러한 상황에서 대부분은, 어느 한 쪽이 틀렸다/잘못 짚은 거다란 판단마저 쉽지 않습니다. 속된 말로 '지 꼴리는 대로 읽으면 되잖아!'란 말을 압도할 별다른 반박의 문장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까지 제가 읽어본'이란 범위내에서) 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작품들에 관해서는, 최소한 「눈먼 자들의 도시」를 제외하고는, 딱히 특별하게 주목할 만한 줄거리/의미 있는 이야기의 흐름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저의 생각엔 '거의 대부분의 누구나 다!' 그렇게 동의할 것이라 믿게 됩니다. 좀 극단적으로 말해, 주제 사라마구의 작품은 그냥 '읽는다라는 노동으로부터 얻어지는 재미'만 있다고 해도 무방할 수도 있겠는, 뭐 그렇지 않나 싶지요. 이 작품 「코끼리의 여행」에도 역시나, 줄거리/이야기의 뼈대라 쓸만한 거라곤, 'A가 B에게 결혼 축하 선물로 보낸 코끼리의 이동 과정' 이외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게 과거의 실화였건 아니건은 딱히 영향을 미치지 못하기도 하지요. 하지만 작가 주제 사라마구는 그 속에,

…………………………………………………………………………………


아득한 옛날부터 이 땅에 살아 온 사람들은 모든 사물의 언저리에 신을 창조했다. 하늘과 땅과 바다에서부터 집안의 부엌과 곳간에 이르기까지, 사람의 눈길과 손길이 닿는 곳이면 어디든지 신이 있었다. 이 신들은 사람의 뜻으로 창조되었지만, 크고 작은 권능을 가지고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그들의 삶을 지배해 왔다.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은 신의 권능에 기대어 소원을 빌고 하소연하고 때로는 두려워하면고 삼가면서 살아 왔다. 그러는 동안 사람들은 갖가지 아기자기한 신의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이것이 우리 신화이다.

- 서정오 著,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신화」 중, 현암사 刊, 2003.

우리의 소원을 대신 이루어줄 수 있는 (그야말로) 신적인 존재를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종종 우리는 위안을 받아었다란, 신화(神話)의 역할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저야 당연히 그러하지 않지만 --- 주제 사라마구에게 기독교란 종교는 예의 그 '신화'의 하나에 불과할 뿐2이지요. 하지만!


기독교란 신화는 그 영향력이 너무도 강하여, 인간을 위로하는 신(神)의 범위를 벗어나, 종국엔 '인간 스스로의 욕망을 이루어내는 것에 사용되는 유용한 도구'로까지 신(神)의 역할을 확장시켜 놓습니다.  

 

기사들은 신과 크리스트교를 위해 싸우는 것을 주요한 사명이라 여겼다. 때마침 아주 좋은 기회가 왔다. 예루살렘에 있는 그리스도의 무덤은 팔레스타인 전역이 그렇듯 이교도인 아랍 인의 손아귀에 있었다. 이 사실을 아주 과격한 어느 프랑스 설교자가 기사들에게 상기시켜 주었으며, … 크리스트교 세계의 강력한 지배자로 부상한 교환 역시 성지 해방을 위해 나서라고 호소했다. 그러자 수천, 수만 명의 기사들이 열광적인 호응을 보내왔다. "신께서 원하신다! 신께서 원하신다!"

- 에른스트 H. 곰브리치 著, 「곰브리치 세계사」 중 pp239-240, 비룡소 刊, 2010.

·

·

·

포르투갈의 왕 동 주안 3세와 그의 부인 도나 카나리나 왕비는 막시밀리안 대공의 결혼을 축하하는 선물로 '솔로몬'이란 이름의 코끼리를 보내기로 합니다. 하지만, 솔로몬을 오스트리아까지 보내기 위해선 그의 조련사인 수브흐로, 그리고 이동 중 솔로몬의 먹이를 싣고 가야 하는 짐꾼들과 그들을 호위할 군인들도 필요하지요. 여기서! --- 일단, 솔로몬을 결혼 축하 선물로 보내기로 한 결정 자체가 순수하지 못합니다. 한 마디로 귀찮은 짐 하나3를 그럴듯한 명분4을 내세워 이 참에 폐기 처분해 버리겠다란 거였으니까요.


"이해할 수 없는 일은 그저 경멸의 대상이 될 뿐이지만, 그걸 구실로 다른 일을 꾸밀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요."

- 주제 사라마구 作, 「눈뜬 자들의 도시」중 p332, 해냄 刊, 2007. 

십자군 전쟁도 이러한 맥락에서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발단의 외양은 기독교와 이슬람교 간의 배타적 싸움을 띠고 있으나, 그 속에는 각 계층들의 현실적 욕망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죠.5 바로 이 점, 즉 자신의 본래 의도를 감추기 위한 수단으로 종교가 이용되고 있듯이,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코끼리 솔로몬과 그와 함께 먼 길을 (단지 왕의 명령에 따라!) 이동해야 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겪어야 했던 고초들 자체는 결코 부각되어서는 안되는 부차적인 것도 안되는 사항이 되고 마는 겁니다. 그저,


"목적이 거룩하면,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도 거룩한 거야."(p17)6

 

란 왕의 선언에 의해, 실제론 왕의 성가심을 해소하기 위한 '거룩한 수단'이 될 뿐이지요. 이러한 왕의 선언 앞에서, "코끼리가 쥐색이 아니라, 쥐가 코끼리 색이다"(p284)와 같은 항변은 의미를 지니지 못하게 됩니다. 이러한 심각한 (신을 앞세운) 속임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결국에는!


"이른바 '신의 심리적 또는 정서적 필요성이다'란 주장에 대해서도 "종교가 위로하는 힘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 '신을 믿는 것과 믿음을 믿는 것을 구분'하여야 한다는 데닛의 말처럼 …… 'X는 참이다'와 'X가 참임을 믿는 것이 바람직하다'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는 듯한 사람들이 놀라울 정도로 많다. …… 감정이냐,진리냐, 둘 다 중요하겠지만, 둘은 같은 것이 아니다."

- 리처드 도킨스 著, 「만들어진 신」중, 김영사 刊, 2012.

'X가 참이다'란 왕/종교 지도자의 선언은 이의 제기를 허용치 않는 진실로 둔갑되는 것이며, 따라서 'X가 참임을 믿는 것이 바람직하다'가 지니고 있는 다른 선택의 여지를 말살시켜 버리게 되는 겁니다. 물론, 왕/종교 지도자들이 자신들이 지닌 권위에 의해서만 'X가 참이다'를 선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예의 'X가 참임'을 보여주는 (당연히 조작된!) 증거들을 민중들에게 제시하지요.


"증거란 필요하면 나타나게 마련'7이란 작가의 현실에의 비판은 이 작품 속에도 예의 등장합니다. "코끼리라는 종에 관해 들어본 적도 없고, 코끼리가 무엇인지 알지도 못"(p76)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진 "솔로몬이 바실리카 성당 앞에서 무릎을 꿇는 기적"(p217)은 종교 지도자들에 의해 이내 "복음의 메시지가 동물의 왕국 전체에도 전해지고 있다"(p225)로 윤색되어지고, 결국엔 "믿음은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소, 그리고 하느님은 필요한 일을 하실 거요"(p221)라는 선동으로 귀결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초기 선동은 그것이 전해지는 사람들의 입과 귀의 수가 많아질수록8 "자신보다 더 고등한 전능자가 자신 운명을 지배한다는 망상"9을, 일종의 반박할 수 없는 진실로 확정되지요. 이제, 그 전능자의 대리인인 종교 지도나나 왕은 민중들의 운명까지를 '신의 이름으로' 지배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이 과정에서 코끼리 솔로몬은, 그리고 솔로몬의 이동에 동원된 수많은 사람들은 그저 ---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들의 그 목적을 위해 사용되는 수단에 불과할 뿐인 겁니다. "빈으로 보내버려요."(p12)란 말로 시작된 솔로몬과 그 일행들의 고난스런 여정이란 게 결국엔 '신이 원하신다!'란 한 마디로 시작되었던 십자군 전쟁과 동일하다라는 것이죠.   




·

·

·

 



"전쟁이 구경거리인 한은 좋다. 그러나 우리를 선수로 끌어들이여고 할 때, 특히 우리가 아무런 준비나 경험이 없을 때 문제가 시작된다."(p155)

선물의 수취인인 막시밀리안 대공 역시, 코끼리 솔로몬과 그 일행을 철저하게 자신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합니다. 그 목적을 알지 못하는 민중들은 그저 그 '전쟁'에 동원되기만 하면 되는 것이죠. ​이건 마치, --- "하나님이 이러한 시련을 아무 뜻도 없이 내리셨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주께서 이루시는 일은 모두 선한 일이므로, 때가 되면 이 박해와 고난이 왜 저희의 운명에 주어지게 되었는지를 분명히 이해할 날이 올 테지요"10란 성직자들의 설교와 다름 없습니다. 예의, 'X가 참임을 믿는 것이 바람직하다'의 조언의 수준이 아닌, 'X가 참이다'란 주장을 진실로 받아들이라는 강요에, 그 어떠한 근거도 제시되지 못하는 그 강요에, 그저 "신께서 원하신다"란 한 마디에 대해 "아멘!"이란 복종만을 요구하는 겁니다.

…………………………………………………………………………………

"당신이 종교를 가지고 있다면, 그 종교는 부모님의 종교와 같을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다. … 당신은 자신이 아칸소 주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기독교가 옳고 이슬람교가 틀렸다고 생각할 뿐이고, 만일 아프가니스탄에서 태어났다면 반대로 생각했을 것"11이란 리처드 도킨스의 지적을, 주제 사라마구는 "한 청년은 할아버지한테 왜 코끼리를 코끼리라고 부르냐고 물었을 때 이런 대답을 들었다. 코가 길기 때문이지."(p290)이라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두 거장의 지적은 결국,


"이리는 인간의 타고난 적이라고 할 수는 없어, 정직하게 살아가는 이리에게 세상이 제공하는 모든 것을 그들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하게 우리가 방해를 할 때만 가끔 나타나는 거니까."(p120)

​'정직하게 살아가는 이리'인 우리에게, '모든 것을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신(神)의 역할에의 비판으로 귀결되지 않나 싶습니다. --- "우리는 점점 장점은 사라지고 결점만 남는 것 같다"(p168)란 작가의 지적이 어쩌면, 이처럼 결점이 더 많아진 저의 신앙에 대한 묘사인 듯 느껴지기도 합니다만, 어쨌든!

"맹장을 떼어내는 것과 목숨을 제거하는 것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는가? 사실 없다. 즉 당신이 어차피 죽게 되어 있다면 차이가 없다. 그리고 사후의 삶을 믿는 진정한 종교 신앙을 갖고 있다해도 차이가 없다. 당신이 그런 신앙을 갖고 있다면, 죽음은 단지 하나의 삶에서 다른 삶으로의 전이일 뿐이다."


- 리처드 도킨스, 위의 책 중.​

무신론자의 발언으론 뭔가 뜬금 없는 듯도 보여지는 위의 발언에 화답이라도 하듯, 주제 사라마구는 --- 이 세상의 삶에서 단 한 번도, 존재 자체로는 인정/대우 받지 못했던 솔로몬에게, "코끼리는 이 년이 안 되어, 다시 찾아온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p295)라는, '다른 삶으로의 전이'를 안겨주는 것으로 소설을 마무리 합니다.


·

·

·


이 작품, 「코끼리의 여행」에 대한 저의 이해가, 종교적 맥락만을 지나치게 강조한 오역(誤譯)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제까지의 경험에 한정해 본다면 --- 어지간한 반박이 있지 않다면, 이러한 저의 이해가 변치 않을 꺼란 건 확실합니다. 


"인간들이 하는 전쟁이었죠. 글쎄요, 뭐 다른 종류의 전쟁이 있겠습니까."(p249)


이 두 마디에 담겨 있는 허탈함을 과연 누가 이겨낼 수 있겠습니까. 허나 역설적으로 --- '읽는다라는 노동으로부터 얻어지는 재미'에 더해, 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이런 지적이 끝내 향하고 있는 지점은, 그런 허탈함을 이겨내어야 한다라는 것임을 알기에, 그의 작품들이 (겉으로 보여지는 부분을 뛰어넘는, 심지어 "노벨문학상과 「눈먼 자들의 도시」의 세계적인 거장"과 같은 형용구가 오히려 방해가 된다라 느껴질 정도의) 위대함을 지니고 있는 게 아닐까 싶네요. 

자! 설 연휴가 시작되었습니다. 전 화요일까지 쉬어요. 이 연휴 동안, 평소라면 정복(?)하려는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한 권의 책 읽기와 독후감 쓰기를 해내려 하는데, 글쎄요, 그 결과는 과연 어떨지...


 


※ 읽어본 노벨 문학상 수상자들의 작품 (수상연도 순)

- 크누트 함순(1920) : 「굶주림

- 펄 벅(1938) : 「대지

- 헤밍 웨이(1954) : 노인과 바다

- 알베르 카뮈 (1957) : 이방인」 · 「페스트

- 존 스타인벡 (1962) : 분노의 포도

-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1970) :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 윌리엄 골딩 (1983) : 파리대왕

- 주제 사라마구 (1998) : 눈먼 자들의 도시· 죽음의 중지· 도플갱어· 예수복음· 카인」 · 「눈뜬 자들의 도시

-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2010) :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

- 모옌 (2012) : 사부님은 갈수록 유머러스해진다

 

 



 

  1. 저의 경우, 작년 <올해의 딱 한 권>으로 꼽았던 신경숙 작가의 「외딴방」이 이러한 작가의 의도를 지니고 있는 책이라 생각합니다.
  2. ⁠"죽었다가 사흘만에 살아난 사람에 관한 동화"(p82)
  3. "그게 선물이 될 수 있잖아요. … 솔로몬이 적당한 결혼 선물이라고 할 수는 없지. 그건 상관없잖아요. … 코끼리는 이 년 전에 인도에서 왔는데, 왔을 때부터 먹고 자는 것 외에는 아무 하는 일이 없어요, 그래도 물통에는 늘 물을 채워두고 먹을 것을 꾸준히 갖다 줘야 해요, 우리가 짐승을 부양하는 셈인데, 이 짐승은 사료 값도 못하는 셈이에요, … 그러니까 빈으로 보내버려요."(p12)
  4. "그의 왕국 전체에서 코끼리 솔로몬보다 귀중한 것은 없다고 … 솔로몬은 신의 창조에서 드러난 통합의 힘, 즉 모든 종을 연결시켜 그들 사이의 친족 관계를 확립하는 힘을 대표 … 코끼리는 그 몸에 상징적이고 본질적이고 세속적인 가치들을 재현하고 있"(p14)
  5. "십자군의 태동이 종교적 요인에 의한 것이라는 점은 명확하고 또한 유일신을 믿는 그리스도교도와 이슬람교도와의 배타적 싸움이라는 점에서도 종교전쟁으로 인정된다. 그러나 이것을 간단히 종교운동이라고 성격지을 수는 없는 복합적인 이해가 요구된다. 봉건영주와 하급 기사들은 새로운 영토지배의 야망에서, 상인들은 경제적 이익에 대한 욕망에서, 또한 농민들은 봉건사회의 중압으로부터 벗어나려는 희망에서 저마다 원정에 가담하였다. 그 밖에 여기에는 호기심 ·모험심 ·약탈욕구 등 잡다한 동기가 신앙적 광기과 합쳐져 있었다. 대체로 십자군시대의 서유럽은 봉건사회의 기초가 다져지고 상업과 도시의 발달도 어느 정도 이루어져 있어서 노르만인의 남(南)이탈리아 및 시칠리아 정복, 에스파냐의 국토회복운동, 동부 독일의 대식민활동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주변 세계와의 경계를 전진시키고 있었다. 따라서 이런 배경에서 십자군도 정치적 ·식민적 운동의 일환이 될 수밖에 없었고, 종교는 이 운동을 성화(聖化)시키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 것이다." - 네이버 지식백과, '십자군 전쟁' 중.
  6.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단다" - 주제 사라마구 作, 「예수복음」중, 해냄 刊, 2010.
  7. 주제 사라마구, 위의 책 p325.
  8. "이런 왜곡은 진실이건 가정된 것이건, 진짜이건 순전히 상상에서 나온 것이건, 사실들이 계속 사람을 거치며 전달이 된 결과였다. 이런 사실들은 눈으로 직접 본 사람들의 대체로 단편적인 이야이게서부터 그냥 자기 목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전하는 말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기초를 두고 있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다시피,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누구도 완전한 마침표, 아니면 쉼표라도 덧붙이고 싶은 유혹에 저항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p227)
  9. 리처드 도킨스, 위의 책.
  10. 엔도 슈사쿠 作,「침묵」중, 홍성사 刊, 2003.
  11. 리처드 도킨스, 위의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