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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없는 나라 - 제5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이광재 지음 / 다산책방 / 2015년 10월
평점 :
"참으로 억울한 일을 당하여 말과 힘으로도 어쩔 수 없을 때 조선일들이 하는 말이 있소. 무엇인지 아시오?"(p276)
1894년 전봉준 등이 앞장 서 일으켰던 '동학농민운동'에 대한 이야기입니다만, 엄연히 소설이란 외형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의 역사적 사건을 다루고 있다라는 점에서, 2016년 11월의 대한민국은 이 작품을 '소설'이란 문학의 장르로서가 아닌, '역사적 사건'으로부터의 교훈이라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해줍니다. (비록 '동학농민운동'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지도 않으며, 전봉준이란 개인이 어떠한 인물인가 역시 이 소설이 가리키고 있는 지향은 아니지만) --- 2016년 11월 12일, 지금이 광화문이 애초부터 이러했던 것이 아니었었듯, '고부'란 특정 지역을 다스리고 있었던 군수 조병갑의 개인적 만행이 직접적 원인이 되어 시작되었던 일종의 민란이 결국 청일전쟁의 근원이 되었었던 이유인, "호미로 막을 수 있는 사건을 가래로도 막지 못할 만큼 키운 것은 정부의 태도"였었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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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이 세상을 이룰 것이다."(p43)
1894년, 동학농민운동의 시작은 동학이라는 특정 종교만의 봉기도 아니었으며, 그러하기에 특정 세력이 주도하는 난(亂)도 아니었습니다. 소설 속 한 인물의 말을 빌자면 이는 "좌절과 분노"(p151)"가 한계선을 넘어 "뜻이 차오른 데"(p45)로부터 기인된 것이었었으며, (소설 속에서) 대원군으로 상징되는 지배 세력의 판단 역시 "조선은 지금 끓는 물이나 다름없소. 언젠가 솥뚜껑은 솟구칠 게니 안에서는 백성이 쏟아져 나오겠지요"(p21)로, 이와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남경태는 「종횡무지 한국사 하권」에서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농민군과 접선을 시도하기도 했다"(p385)라 간단하게 대원군과 전봉준의 접점을 서술해놓고 있습니다. 작가 이광재는 이를 "나라의 명운이 그대들의 손에 달렸음을 명심하라. 조선의 마지막 기회니라.(p25)라는 대원군의 말이나, "우리는 대원위 대감을 존중하는 무리들"(p76)이란 전봉준의 말로 작화(作話)하고 있지요. 하지만 --- 대원군과 전봉준 모두 상대를 완전한 협력의 대상이 아닌, 지금 당장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일종의 단기적 도구로서만 여겼었다라는 점을 볼 때, 두 사람의 만남과 이후의 협력에 설득력이 갖추어지지 못하다라는 아쉬움이 남기도 합니다.) 여기서!
민중들의 저항은 그 품은 뜻에서는 옳았었으나, 그 뜻을 실제의 행동에 옮겨가는 과정에서 생겨났던 "의지와 힘으로는 안 되는 일에 대한 두려움"(p171)에 대한 작가의 주시(注視)는, 이 책이 문학작품임을 여실히 일깨워 주기도 합니다만, --- 관군을 이끄는 인물이 가지는 "비록 적도를 소탕하더라도 예전 세상으로 돌아가지 못하리란 예감"(p294)은 "단언컨데, 세상은 지금 안전하지 않다"(p352)라 표현될 수 있을 2016년 11월 대한민국의 현재를 단지 문학작품이라고만 간주하기에는 너무나 현실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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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세상을 불신하고 두려워하게 하면 승산이 없습니다. 우리가 서슬 푸른 날을 준비한 것은 베기 위함보다도 짓기 위함에 있소."(p157)
"사람들은 묻습니다. 그대가 꿈꾸는 세상은 무엇이며 보국안민은 대체 무엇이냐고"(p157) ---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전봉준은 소설의 마지막에 내놓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재(嶺)를 넘었느니라. 게서 보고 겪은 모든 것이 재 너머에 있던 것들이다. … 재는 또 있다. … 뒷날의 사람들이 다시 넘을 것이다. 우린 우리의 재를 넘었을 뿐."(pp345-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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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 12일의 대한민국. 공식적으로는 여전히 '대한민국 18대 대통령'으로 불리우고 있는 그녀는, 2016년 11월을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 민중들이 이 언덕을 넘어서내었을 때 과연 어떠한 이름으로 불리우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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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벌을 받을 것이다! 너희는 반드시 천벌을 받는다!"(p276)
이 감상문의 맨 처음에 인용되어 있는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 추측이 아닌, 심지어 예정의 수준도 아닌, "반드시 천벌을 받는다!"란 필연을 선고받은 그녀에게, 훗날 불리워질 이름 따위가 뭐 중요한 것이 아닐 지도 모릅니다. 그보다는!
"오늘 끝낸다!"(p169)
2016년 11월 12일, 광화문이 아닌 그 어느 곳에 있던, 거의 모든 대한민국 국민의 바람(願)이자 주권자로서의 요청이 실현되는 순간이 머지 않았다라는, 바로 이 점이 그녀에겐 지금 당장 더 두렵겠지요. (어차피 맞아야하는 매입니다. 당신에게 아직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걱정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서로 피곤치 않게 맞을 건 빨리 맞읍시다.)
※ 읽어본 역대 '혼불문학상' 수상작 : 「고요한 밤의 눈」
- 제 5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 "1894년이 갑오년이기에 갑오농민전쟁이라도고 부르는데, 명칭은 중요하지 않다." - 남경태 著 「종횡무진 한국사 下」 p380, 그린비 刊, 2009.
- "「나라 없는 나라」는 … 동학농민혁명을 재구성"(p350)
- "조병갑은 군수로 부임하던 이튿날부터 호방과 한통속이 되어 만만한 사람 골라내기를 가장 서둘러 할 일인 양 재촉하였다. 호방이 양안(量案)을 놓고 부요한 농민을 골라내면 조병갑은 불효와 불목, 음행이며 잡기 등의 죄목으로 사람들의 재산을 늑탈하였다."(p41)
- 남경태 著 위의 책 p380.
- "안핵사로 파견된 이용태는 안핵하기는커녕 봉기 농민들을 동학교도로 몰아붙였다. 동학은 실정법상 금지되어 있으니까 일단 처벌의 근거를 말현하려는 의도다." - 남경태 著, 위의 책 p380.
- "-대원위는 외방에 나라를 팔 사람이 아니요, 민씨 무리를 심히 증오하는 인물이요, 권력을 취하려 하며 백성이 안돈하기를 원하는 사람이오. 여기까지가 우리와 같소. … 그는 구래의 선치로 돌아가려는 사람입니다. 우리와는 나아갈 궁극이 다를 수 있지요. 김덕명이 머리를 주억거렸다. -그거야 민씨 도당을 쓸어낸 뒤의 일이니 그 전에야 무슨 문제가 있겠소. 같음에 주목하여 손을 잡고 차후 경쟁이든 다툼이든 하겠지요."(p32)
- "이 길이 가장 옳았다고 확신하십니까?… 백성들은 장하였소."(p308)
- "전투의 패배란 어느 한쪽의 피해에 의해서도 결정되지만 실상은 사람들의 마음으로부터 정해지는 것 같았다. 체계를 잃고 군사가 오에서 일탈하는 순간이 전투의 패배라면 그것을 회복하지 못하는 순간 전쟁의 패배는 찾아오는 것이다."(p303)
- "항차 백성의 가슴에 새겨지고 그네들이 불러주는 이름이 참 이름이 될 것"(p13)
- 전봉준이 전투 중 부하에게 한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