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 짓는 사람
누쿠이 도쿠로 지음, 김은모 옮김 / 엘릭시르 / 2013년 5월
평점 :
품절



"피의자 니토는 책이 늘어나 집이 비좁아지는 바람에 아내와 딸을 죽였다고 진술했습니다. … 니토의 말로는 아내와 딸이 사라지면 그만큼 집에 공간이 생기므로 책을 둘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답니다."(p28) 

아예 시작부터, 살인범살인 동기 심지어 살인 방법까지 모조리 알려주며 시작되는 소설입니다. 따라서 --- 제가 이해하는 바 '추리 소설의 세 요소'인 '누가, 왜, 어떻게'는 이제 더 이상, 최소한 이 사건의 진행에는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하지요. 그래서일까요? 작가는 살인범 니토라는 인간 자체라는 새로운 관점에 대해 보여줍니다. 한 마디로 "일반인의 상식을 뛰어넘는"(p27) 이 살인의 동기에 대해, 살인범이 왜 그러한 동기를 가지게 되었을까를 파헤쳐 보자라는 거지요. 이처럼,


'이제 남은 건 이것 뿐!'이라 말하듯, 이 소설이 지닐 수 있는 마지막 패를 까보이는 것으로 작가 누쿠이 도쿠로는 한 편의 소설을 만들어 냅니다. 그렇다면, 이 소설은 새로운 형식의 추리 소설이 될 수 있을까요?  


아무리 골치 아픈 일이라도 의외로 척척 해결되는 경우가 있다.(p279) 

​이 작품 「미소짓는 사람」에는, 위와 같은 '의외로 척척 해결되는 경우'가 너무 많이 등장합니다. 그러하기에, 이 작품을 추리 소설로 분류하기는 좀 민망하죠. 심지어, '추리'의 결론도 일찌감치 느껴집니다.1 게다가! --- p339에서 끝나는 본문이거늘, 거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선 "이것이야말로 니토의 원점이었던 것이다. 보통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동기로 사람을 죽이는 남자는 이렇게 탄생한 것이다."(p318)와 같은, 읽으면서 '짜장같은 논리의 비약'이란 comment를 작성해 놓았을 만큼 허술한 단정적 결론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작가는 세상 욕이란 욕은 다 들어보겠다,란 심경인 듯 무려!"쇼코 씨는 남자거든요"(p329)와 같은, 드라마 <인어 공주>식 막장 무리수까지도 서슴치 않고 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번 째 끓인 차가 더 맛있다라든가, 오래 삭힌 홍어가 제 맛이라든가, 뭐 암튼 그런 류의 모든 비유를 모두 끌어다 쓰고 싶을 만큼, 작가 누쿠이 도쿠로는 이 소설의 마지막 두세 페이지에 가서야,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아주 짧은, 하지만 무거운/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터뜨려 놓고 있습니다. 책을 덮고 몇 대의 담배를 피웠어야할만큼, 상당한 시간 후에라야 겨우 손에 잡혔던 이 작품의 주제는 --- 그리하여, 책의 뒷표지에 쓰여 있는, "르포르타주 미스터리의 새 경지"란 표현에 대해, 최소한 이 작품을 추리 소설이 아닌 '허구가 아닌 사실에 관한 보고(報告)2'라는 뜻을 지닌 '르포르타주'로 이해하는 것에, 이의 없는 독자의 동의를 무리 없이 이끌어 내기도 하지요. 그렇다면, 이 작품 속 사건들이 실제로 존재했었다라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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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에 더는 꽂을 곳이 없어서 일시적으로 바닥에 쌓아 올렸습니다만, 그런 건 제 미의식에 반하는 짓입니다. 책장에 저자와 출판사별로 책을 깔끔하에 꽂아야 비로소 완벽하게 만족할 수 있는 법이죠."(p154)

삭힐대로 삭힌 홍어는 그렇게나 좋아하면서 치즈는 먹지 못하는 저의 입맛을 타인에게 어찌 설명해야 하는건지 알지 못합니다. 그 반대의 누군가 - 와인매냐님! - 가 지닌 식성을 그저 그렇구나,정도로 이해하듯 타인들도 저의 설명 없이도 그저 그렇구나라 이해해주길 바랄 뿐이죠. 이처럼, ---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니토의 미의식에 공감하게 될 겁니다. 책을 가로로 쌓고, 그것도 모자라 책장의 꼭대기에, 심지어 바닥에까지 쌓아놓아야 한다는 건 참으로 마음 아프고 마음에 안드는 일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세상에는 살인이라는 금기에 대한 관념이 완전히 결여된 인간이 있다. 그러한 인간에게 살인은 사태를 해결하는 한 가지 수단에 불과하다. 죄악감이라는 억제 장치가 없으면 인간은 얼마든지 쉽게 결단을 내리는 법니다.(154)

책 놓을 곳이 없다 해, 가족을 죽여버려야겠어란 생각을 하는 사람은, 그 미의식을 제 아무리 극단까지 연장해 본다 한들 도저히 상상되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 이 작품은 니토는 책 놓을 곳이 없다는 것 뿐만이 아니라, 1년 빨리 승진을 하고 싶어서라든가 친구의 게임기를 가지고 싶어서, 또는 "이웃집에서 개를 쫒아내기 위해 개 주인을 죽였다"(p263)와 같은, '살인'이라는 행동을 설명해 내기엔 심히 부족한 이유들로 '살인'을 저지른 것이 아닐까하는, 니토에 대한 서술자의 (일반적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추측을 보여주고 있지요. 설...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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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그녀가 왜 그런 행동을 한 것인지 그녀 자신 이외의 누구도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그저, 그녀의 성장 과정 등을 보며 추측해볼 수 있을 뿐이죠. 게다가 그녀가 지난 몇 년간 저질렀던 말도 안되는 행동들로 그녀를 재단(裁斷)하는 건 2016년 10월이 되서야 가능해진 일입니다. 2012년 12월 19일 당시의 대한민국의 51.6%는 그저,


상대의 마음속 깊은 곳까지 꿰뚫어 보지 못하기 때문에 인간은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 남을 본다. 어떤 사람은 니토를 선한 사람으로 보았고, 어떤 사람은 이상한 살인귀로 보았다. 나는 니토를 이해하지 못할 가치관의 소유자로 보았다. 전부 나라는 필터를 거친 허상이다. 허상은 허상일 뿐 진실은 아니다.(p338)

진실이 아닌 허상의 그녀를 선택했었던 것이고, 이전/이후 그녀가 보여주었던 예상치 못한 선택들에 대해서조차도 "그렇게 이상한 사람이라 해도 이해하기 쉬운 트라우마가 존재하면 받아들일 수 있어요"(p325)란 식의 이해를 근근이 이어왔던 것이었다라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결국 --- "그게 진실이든 거짓이든 이해하기 쉬운 스토리가 있으면 다들 안심할 수 있어요"(p327)라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지요.3 바로 이 지점이!


"니토는 좋은 사람이라는 가면을 쓴 극악한 놈입니다."(p219)


우리가 이 작품을 '허구가 아닌 사실에 관한 보고(報告)'라는 뜻의 '르포르타주'로 이해하여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줍니다. 니토가 저지른 일련의 사건들이 실제로 일본에 존재하지는 않았었음에도 이를 '르포르타주'라 말할 수 있는 건 !!! --- '가면'이란 없다라는, 즉 우리의 잘못된 시선과 잘못된 판단만 존재할 뿐4보여지는 현상(現像)에는 (자신 스스로 누군가에게는 이렇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저렇게 보여질 수 있는) 변신이란 것이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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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결말이 나는 건 픽션뿐이에요."(p326)

무지의 산물로서의 호감5이 그녀에게 부여한 '대한민국 대통령'이란 그녀의 직함은 픽션이 아니었으나,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의 그녀가 했던 역할은 픽션이었다라는, 이 기가 막힌 2016년 대한민국의 현실에 대해, "「미소짓는 사람」을 다 읽고 나면, 우리는 다만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p349)란 어느 기자6의 소설에 대한 해설이, 단지 소설에 대한 해설만이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됩니다. 어쩌면! --- 이런 게 바로 그녀가 원했던 '창조경제'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네요. 이거 참... --;; 

 

 

 



 

  1. pp184-190의 부분은, 만약 니토가 진범이라면 그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장면이지요.
  2. "프랑스어로 탐방 · 보도 · 보고를 의미하며, 소위 ‘르포’로 줄여 쓰는 르포르타주는 사전적인 의미로는 허구가 아닌 사실에 관한 보고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르포르타주는 창작 소설과는 달리 실제의 사건을 보고하는 문학을 의미한다. 보고문학이나 기록문학 그리고 논픽션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르포르타주는 어떤 특정한 사건에 관해 직접 체험하거나 조사한 것을 토대로 구성한다. 르포르타주는 다른 문학 장르에 비해 현실감은 물론 생동감을 준다. 르포르타주는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문학형식이 되고 있으며, 심지어 미국 내 일부 대학에서는 이에 관한 강좌까지 개설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경향은 일반적인 소설이 이상적인 것을 소재로 허구적으로 구성되는 것과는 달리 르포르타주는 실제적인 사실을 통한 문학적인 욕구가 증가되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르포르타주는 물론 방송에서도 주목받고 있는 장르이다. 특히 방송은 사실의 전달을 중요시하는 매체인 만큼 르포르타주 형식의 프로그램이 최근 들어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방송되고 있는 프로그램 가운데 MBC의 『PD수첩』이나 KBS의 『추적 60분』과 『르포 60』등이 대표적인 르포르타주 형식에 해당된다." - <네이버 지식백과 : 드라마사전>
  3. 어린 나이에 부모 잃은 그녀를 우리가 이해하고 보살펴줘야 하지 않겠느냐,란 특정 지역 특정 세대의 생각이 바로 그 실례이겠죠.
  4. ​"쇼코 씨는 남자거든요"(p329) --- 이런 설정이 뜬금 없이 등장하는 것 역시, 어쩌면 작가가 '가면'에 대해 보충해주기 위한 장치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5. ​"당신은 '싫은 사람'과 '이해하지 못할 사람'을 동급으로 둘 수 있는가? '호감'이 '무지'의 살물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생각해본 적 있는가?"(p349)
  6. "김용언(「범죄소설 - 그 기원과 매혹」의 저자, <프레시안> 기자)" - p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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