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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토텀
찰스 부코우스키 지음, 석기용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9월
평점 :
품절
"고독한 인간 · 소외된 인간 · 떠돌이 인간 · 섹스에 탐닉한 인간 · 남성 중심적인 사고방식에 빠져 있는 인간 · 고상한 인간 · 모순된 인간 · 패륜아 · 의협심 강한 인간 · 불합리한 인간 · 이중적인 인간 … 고달픈 백인 잡역부."(pp316-317)
옮긴이가 작품 속 주인공 헨리 치나스키를 표현하고 있는 열두 가지의 문구들입니다. '좋게 봐줘서'라고는 할 수 있을지언정, 위의 표현들 중 어느 하나 헨리 치나스키를 묘사함에 있어 '과한 비난'이라고 차마 대들어 볼 수 조차 없겠는, ('남성 중심적인 사고방식에 빠져 있는 인간'이란 것에서만 개인적으로 약간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는 점을 제외하면) 반박불가능한 지적이라 생각합니다. 옮긴이의 묘사가 아니더라도, 소설 속 주인공 헨리 치나스키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에 동의할 수 없음은, (물론, 제가 생각하는 '평균'과 당신이 상정하고 있는 '평균'이 다를 수 있겠으나) 평균적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에나 적용될 듯한 이 소설은 이러한 괴짜 주인공을 등장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뭔가 줄거리라 할 만한 것마저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그저 직장 찾아 전전하고, 그 와중에 술 마시고 섹스하고, 갈 데까지 가보자는 듯 경마에도 잠시 빠지고 음주운전에 절도 장면도 나오는, 말 그대로 '막장'이라 일컬어질 수 있겠는 거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 "언제나 곧 관두거나 잘리겠지 하는 기분으로 일을 시작했"(p195)고, "어딘가로 떠나기 위한 버스 요금과 도착한 후에 몸을 건사하는 데 들 몇 달러 정도를 마련할 수 있을만큼만 더 일"(p53)하다가, "그냥 잠깐 들른 것과 별다른 차이가 없"(p281)이 직장을 관두거나 해고되는 주인공 치나스키 인생의 젊은 시절을 적어내고 있을 뿐이죠. 한 마디로!
"그 차는 스프링이 다 나갔고 라디에이터가 줄줄 샜지만, 어쨌든 달렸다"(p98)
'어쨌든 달렸다'로 표현될 수 있는, (어찌보면) 막무가내식이기도 한 청춘을 그려내고 있는 작품입니다. 헌데 재미난 건 --- 뭔가 하고싶은 말을 자꾸만 만들어내게되는, 독후감을 쓰고 있는 지금에도 뭔가를 자꾸만 튀어나오게 만드는, 그러나 그것들을 써내는 걸 또 주저하게 만드는 신기한 소설이기도 하다라는 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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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부러움 】
이 소설의 시대적·공간적 배경은 2차 세계 대전 종전 직전의 미국입니다. "일손이 부족하리라 생각될 법한 2차대전 중에서 일자리마다 네댓 명의 지원자가 몰렸"(p78)었으며, 전쟁이 끝나자 "언제나 잡기 어려웠던 일자리를 더욱더 잡기 어려워졌"(p148)던 시대였지요. 그 와중에도 --- "어딘가로 떠나기 위한 버스 요금과 도착한 후에 몸을 건사하는 데 들 몇 달러 정도를 마련할 수 있을만큼만 더 일"(p53)하기만을 원했던 치나스키는, (크게 보아 다음과 같이 한 단어로 표현되어질 수 있겠는) "사적·공적 사회 시스템"에 의해, "내게 별다른 야망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야망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자리도 있어야 한다"(pp189-190)란 언뜻 뻔뻔스럽게 들릴 수도 있는 생각을 하고 있는 그였음에도! 어찌되었든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돈을 안겨주는 일자리를 계속 찾을 수는 있었습니다. (크누트 함순의 「굶주림」에서와 같은 경험을 적어도 치나스키는 하지 않지요.) 여기서!
'고용의 유연성'이란 결국 '피고용인이 발휘할 수 있는 유연성'이 아닌, '고용인만이 발휘할 수 있는 유연성'이란 부인불가(否認不可)의 2016년 대한민국 노동시장은 과연 헨리 치나스키와 같은 '야망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자리'를 제공하고 있는가,하는 의문이 등장합니다. 누군가는 그런 사람에게까지 사회의 책임을 부담시켜야 하느냐라 반발할 수 있겠으나, 그러한 반발은 고작/기껏해야 --- '야망'이라는 것이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 아닐진데, 우리 사회는 일 개인에게 '야망'을 키워/길러낼 수 있는 최소한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느냐라는 문제, 그리하여 결국!
러시아 목각 인형 마트로시카처럼 다양한 경험을 하며 살기를 갈망했던 그는 유럽을 종횡무진 누비며 DJ, 작곡가, 어학 교사, 통·번역가, 항공기 승무원, 서커스단 소속 마술가, 슬롯머신 청소원 등 여러 직업에 종사했다. 현재는 국경 담당 경찰로 근무하며 문서 위조를 가려내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 로맹 피에르톨라 作, 「이케아 옷장에 갇힌 인도 고행자의 신기한 여행」, 밝은 세상 刊, 2015. <작가 소개> 중
위와 같은 이력의 '누군가'를, 2016년의 대한민국은 만들어낼 수 없음을 승인하는 것일 뿐이며, 이는 곧 --- 「이케아 옷장에 갇힌 인도 고행자의 신기한 여행」의 결말에서와 같은 '새로운 삶의 시작'이라든가, 헨리 치나스키가 보여주고 있는 "아무 일도 안 하고 술이나 마십니다. 그 두 가지 일을 하죠"(p68)와 같은, 자신의 삶에 대해 타인/사회의 평가와는 독립적으로, 스스로의 판단에 의한 자신감있는 삶의 표현을 절대로 가능치 못하게 만드는 것을 정당화시켜줍니다. 그러나,
그러한 삶에 '옳다/그르다'라는 주관적 판단을 내리기 이전에, 그처럼 다양한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부러워하는 감정이 먼저 생겨야 하는 게 맞다라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도 같았다,고. 우리는 그 전쟁에서 맨날 지기만 했다,고" 고백할 수 밖에 없었던 과거를 지나, 지금의 고삐리들이 품고 있는 장래 희망마저 '부(富)'와 '변동없음'을 상징하는 의사와 공무원, 이 둘로 수렴되어가는 2016년의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인 저는, 내 아이가 헨리 치나스키와 같은 삶을 살기 바라는 것도 아님에도, 예의 ---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 스스로의 삶을 선택할 수 있다라는 (소설적 작위이건, 작가의 실제 경험이건) 전개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헨리 치나스키에게 <그래도 부러움>의 감정을 가질 수 밖엔 없기 때문이지요.
【 그래서 안타까움 】
닭이 먼저일지, 달걀이 먼저일지와 같은 의문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장자본주의'에도 내재되어 있습니다. 경제원론의 서막을 장식하고 있는 '수요와 공급'이 바로 그것이지요. 경제원론은 수요와 공급은 즉각적(instantaneously)으로, 그리고 언제나 균형을 이룬다라 가르칩니다. 물론! 그것이 초보적인 단계에서의 설명이라는 것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나 문제는 --- 그저 그 단계에서 경제학을 마지막으로 만나게 되는 이들이 대부분이라는 거죠.
'시장(market)'의 가장 핵심적 구성 요소는 아무래도 수요와 공급일 수 밖에 없습니다. 헌데 말이죠, 수요가 있기에 공급이 생겨나게 된 것일까요? 아니면 그 반대로 공급이 있었기에 수요가 생성된 것일까요? --- 수요와 공급 사이에 그 어떤 (외부적) 권력의 작동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수요와 공급 역시 '동시적으로 ' 발생된다라 이해하여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러하질 못해요!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고 무엇이든 전념할 수 있는 그런 곳에 가고 싶"(p17)했던 주인공 헨리 치나스키는 --- "그 일자리를 얻기 위해 나는 품위가 떨어지는 짓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들에게 직장을 제2의 가정처럼 생각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 말이 그 사람들을 기분 좋게"(p151)해주어 취업에 성공한 이후엔 또, "나는 처음으로, 단지 시킨 일을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을 할 때는 그 일에 흥미를 가져야 하고, 어떤 열정까지고 내보여야 하는 것"(p20)을 알게 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놈의 삶이란, "세상에는 원치 않는 직업을 얻는 일보다 더 나쁜 것들이 존재한다는 사실"(p246)만을 뼈저리게 가르치기만 하는 이 놈의 삶으로부터,
도대체 어떤 빌어먹을 인간이 자명종 소리에 새벽 여섯시 반에 깨어나, 침대에서 뛰쳐나오고, 옷을 입고, 억지로 밥을 먹고, 똥을 싸고, 오줌을 누고, 이를 닦고, 머리를 빗고, 본질적으로 누군가에게 더 많은 돈을 벌게 해주는 장소로 가기 위해 교통지옥과 싸우고,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에 감사해야 하는, 그런 삶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단 말인가?(p190)
'그런 삶'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만이 수요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그러한 사람들만이 '공급'의 pool에 속할 수 있는 세상이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며, 이것이 바로 --- 헨리 치나스키가 가졌던 "도대체 나한테는 분명히 없는데 그 작자들은 갖고 있는 게 뭔지"(p241)이란 의문에 대한 해답이었었던 겁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서 헨리 치나스키가 체득한 자본주의란, 그리고 그가 배우게 된 '수요와 공급'이란 결국,
"한쪽에 잔 다르크가 있다면, 언제나 그 시소의 반대쪽에는 히틀러 같은 자가 자리를 잡고 있기 마련이다. 선과 악의 오래된 이야기처럼 말이다."(p193)
의 양극단(extreme)으로만 이루어진 도식(圖式)으로 정의내려집니다. 그리고 그 역시 (삶에서 배운 바 대로) 스스로 때로는 잔 다르크가, 한 때는 (작은 틀 안에서나마) 히틀러가 되기도 하지요. 어쩔 수 없습니다. '시장자본주의'란 당시에도 그러한 것이었으며, 2016년 현재에도 여전히 그러한 것이니까요. '고용의 유연성'이란 것이 고용인만이 누릴 수 있는 권리이듯, '수요와 공급'이란 결코 동시적으로 발생되고 균형을 이루는 것이 될 수 없는, 그런 '자본주의' 체제를 우리는 벗어나지 못했으며, 또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라는 예감을 그저 안타까워만 할 뿐, 그리고 그러다가/그러면서 '현명'해질 우리도 역시 언젠간/결국...
인간의 영혼은 위장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어찌 됐든 인간은 동전 한 푼짜리 막대사탕보다는 고급 비프스테이크를 먹고 0.5리터들이 위스키를 마신 다음에야 훨씬 더 글을 잘 쓸 수 있다. 궁핍한 예술가라는 신화를 새빨간 거짓말이다. 모든 것이 다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것을 깨닫고 난 뒤에야 사람은 더 현명해지고 동료 인간의 피를 짜내고 그를 태워 없애기 시작한다.(p91)
【 그리하여 】
남자에게 필요한 것은 그게 전부다. 희망. 사람을 낙담시키는 것은 바로 희망의 결핍이다.(p91)
'희망의 결핍'을, 이 소설 속에서 헨리 치나스키가 내내 마시는 술과 탐닉하는 섹스에의 이유라 할 수는 없다라 생각합니다. --- (물론 어느 정도는 '희망의 결핍'이 그로 하여금 술과 섹스를 찾게 하였겠으나) "길 건너편에 술집이 있었다"(p63)라는 단순한 사실도 치나스키가 술을 마셨던 이유가 되었기도 했으며, "인간은 단지 먹고, 자고, 자기에게 맞는 옷을 챙겨 입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사실이 두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침대에 틀어박혀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실 때, 세상은 여전히 저만치 떨어져 온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만큼은 세상이 당신을 목구멍 속으로 집어 삼키지 않는다"(p96)와 같은 안식처로서의 효용이 이유가 되기도 했지요. 저에게도 진짜, 위의 두 가지 이유로 술을 마셨던 적이 적잖이 있었/많았었었으나, 그래 무릎을 탁 치며 공감을 했었으나, 아쉽게도(?)
내 자지를 거의 절반쯤은 물어뜯고, 불알을 무지막지하게 잡아당기던 그녀는 나를 바닥에 넘어뜨렸다. 라디오에서는 말러가 연주되고 그녀의 빨아대는 소리가 온 방안을 가득 채웠다.(p50)
와 같은, 뭔가 강압적/몽환적/막장스런 분위기는 아쉽게도 경험해보지 못했었기에, (그저 '섹시하다, 야하게 생겼다' 수준이 아닐듯한) "섹스를 뚝뚝 흘리고 다"(p82)니는 여자를 만나보지 못한 저이기에, 소설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섹스 장면에는 딱히 뭔가 반응이 되지는 않더군요. (뭐래) 어쨌든! --- 헨리 치나스키가 경험했던 여자들과의 섹스는 그저 육체적 유희였을 뿐이었다라 생각합니다. 그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을 그로 하여금 사랑이 결부된 섹스란 단지 (승자들만이 등장하는) 로맨스 소설에서나 해볼 수 있는 것이었으니까요.
"사랑은 진짜 인간들이나 하는 겁니다."(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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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 '이런 미친 놈의 방랑과 방탕을 내가 왜 읽어야 하지?'란 의문을 가진 독자들도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20대 초반 혹은 60살이 넘어 만약 이 소설을 읽었다라면 저 역시 아마도 그리 생각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의 제 나이는!
"그 차는 스프링이 다 나갔고 라디에이터가 줄줄 샜지만, 어쨌든 달렸다"(p98)
'내일엔 내일의 태양은 뜬다'류의 대책없는 희망 강요에 기대는 삶보다는, '어쨌든 달렸다'란 헨리 치나스키의 삶이, '좆까! 내일 뜨는 태양도 어차피 진다고!'라 말한 것만 같은 헨리 치나스키의 가치관이 훨씬 더 매력적이다,라 (다행히도?) 아직은 생각하게 해줍니다. 그러하기에,
위에 써놓은 저의 독후감이 '매우 매우 잘못된 이 소설의 감상'이다란 확신을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것이고, 작가 찰스 부코스키의 묘비명이라는 "Don't Try!"가 이에 대한 가장 적절한 채점일 겁니다,란 스스로의 변명을 반드시 명기한 후에라야 마지막 <확인>을 클릭해낼 수 있을 듯 합니다. 암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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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리고 나는 내 그걸 세울 수 없었다"(p31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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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끝맺음되는 이 소설의 다음 이야기, 「우체국」은 또 어떠한 삶을 살아가는 헨리 치나스키를 보여줄 지 무지무지 궁금하네요. 2016년의 여름휴가는 이렇게, 헨리 치나스키와 함께 쭈욱 보내게 될 듯.
- <미스터 버티고> 사장님께서는 이 소설을 'beat generation'과 관련있다 소개해주셨습니다.
- "노동자가 기업에서 받은 소득을 '시장임금'이라고 한다면, 사회에서 받는 보육료 지원금, 기초노령연금 등은 '사회임금'이라고 부를 수 있다.(p223) …… 2000년대 중반 한국의 사회임금은 7.9퍼센트이다. 우리나라 가구들은 자신에게 필요한 가계 지출의 92.1퍼센트를 직접 시장에서 벌어야 한다는 이야기다.(p226) …… 한국에서는 왜 구조조정을 둘러싸고 격렬하게 갈등하는가? 다양한 사회,정치적 요인이 있지만, 사회임금이 전체 가구 운영비에서 10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 원인 중 하나이다. 한국에서 구조조정은 '가계 파탄'을 의미한다. … 최근 쌍용자동차 사태는 시장임금에만 의존해 사는 한국 사회가 얼마나 구조조정에 취약한지, 이에 따른 사회적 갈등 비용이 얼마나 큰지를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낮은 사회임금은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왜 초과 노동에 얽매이는지도 설명해 준다. 한국의 노동자들은 노동시장의 위기를 완화해 줄 수 있는 사회임금에 대한 기대가 없다. 일감이 있을 때 언제 닥칠지 모르는 어려움에 대비해 조금이라도 더 시장임금을 모아 두어야 한다. 종종 언론들이 한국의 노동자들이 지나치게 임금 올리기에 몰두한다고 비판하지만, 노동자들이 시장임금에 목숨을 거는 건 척박한 현실에서 살아남으려는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하다.(p227) ……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과도한 초과 노동, 격렬한 구조조정 비용은 역설적으로 낮은 사회임금에 대응해 노동자가 선택할 수 밖에 없는 '합리적' 경제 행위일 수 있다. 노동자 개인에게 이것을 탓할 수는 없다."(p228) - 강수돌 외 著, 「리얼 진보」, 레디앙 刊, 2010.
- 헨리 치나스키가 명명한 '훌륭한 추가 볼베어링형 인간'에 관한 다음의 묘사는, 여전히 2016년의 대한민국에서도 유효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할아버지 덕에 유학도 다녀올 수 있었고, 떵떵거리며 살아올 수 있었던 정일선C 같은 사람이 원했던 인재상이 바로 다음이었던 듯) - "추가 볼베어링이란 별다른 의무 조항 없이 언제든 그냥 내보낼 수 있는 그런 사람을 말한다. … 그 사람은 무엇이 세상사를 계속 순조롭게 흘러가게 만드는지를, 무엇이 어머니처럼 우리를 돌봐주는 회사를 최선의 상태로 유지하게 만드는지를, 그리고 어떻게 해야 회사의 불합리하고, 지속적이고, 쩨쩨하고, 사소한 모든 요구 사항을 만족시킬 수 있는지를 본능적으로 잘 알고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훌륭한 추가 볼베어링형 인간은 얼굴도 없고, 성(性)도 없이, 그저 희생적인 사람이다. 그는 항상 열쇠를 가진 첫 출근자가 도착할 때까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그는 곧이어 호스로 물을 뿌려가며 가게 앞 인도를 청소한다. 그리고 그는 직원들이 속속 도착할 때마다 그 사람 이름을 불러주며 기쁘게 인사한다. 얼굴에는 언제나 밝은 미소를 띠고 듬직한 태도를 선보이면서 말이다. 공손한 사람, 그것이 끔찍한 노역의 시작을 앞둔 모든 사람의 기분을 조금 낫게 만든다. 그는 화장실 휴지가 충분한지 확인한다. 특히 여자 화장실에서는 더 철저히 확인한다. 여자 화장실의 휴지통들은 절대로 넘쳐나서는 안 된다. 유리창에 찌든 때가 있어서는 안 된다. 책상이나 사무실 의지가 조금이라도 망가졌을 때는 즉시 수선해야 한다. 문들은 쉽게 여닫을 수 있어야 한다. 시계는 잘 맞춰져 있어야 한다. 카펫은 바닥에 잘 고정된 채로 있어야 한다. 너무 먹어서 힘이 넘치는 여자들이 가벼운 짐 하나라도 직접 옮기게 해서는 안 된다."(pp193-195)
- 신경숙 作, 「외딴방」 p209, 문학동네 刊, 2014.
- 좋게 표현하면, '예측가능성'이겠죠만, 공무원을 직업으로 선택하는 솔직한 이유가 '예측가능성'이라기보다는 '변동없이 살 수 있음'임을 부인할 수 없다라 생각하기에.
- 다른 표현으로는 "동시적으로(simultaneously)".
- "난 다리라면 사족을 못 쓰죠'(p48)라는 헨리 치나스키의 성적 취향은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소설 「열쇠」를 떠올려줍니다. : "나는 어떻게든 저 멋지고 아름다운 발을 나의 혀로 마음껏 애무하고 싶은,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어온 염원을 이제야 풀 수가 있었다" - 다니자키 준이치로 作, 「열쇠」 p36, 창비 刊,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