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눈부신 친구 나폴리 4부작 1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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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그런 친구가 있다. 「나의 눈부신 친구」는 그런 친구에 대한 이야기다.(p443)

- <옮긴이의 말> 중

'그런 친구'에 대한 옮긴이의 서술1에는 절반만의 동의를 보일 수 밖에 없습니다. 나머지 절반은 그럼 무어라 표현하겠느냐,란 질문에 어떠한 대답을 하여야할지/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절반만의 동의'란 것을 거둬들이지는 못하겠네요. 아마도! --- "살아온 세월이 길지 않을 때에는 혼란스러운 감정의 바탕에 있는 혼란의 실체를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해야 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할 것이다"(p27)란 작품 속 구절이, 표지마저 눈부신 이 작품, (4부작 중 1부작인) 「나의 눈부신 친구」를 읽고 난 후, 그 감상문을 쓰기 시작하는 이 시점의 제 느낌을 가장 잘 표현해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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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하지만 빛나는(p54) …… 릴라는 너무나 뛰어나서 우리 같은 평범한 아이들은 아무리 애를 써도 그녀의 경쟁 상대가 될 수 없었다.(p55)   

 

릴라와 레누라는 이름의 두 '소녀'가 '여자'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는 빼박할 수 없는 성장소설2입니다. 성격도 나쁘고, 외모도 별로인, 하지만 (이야기의 화자이자 소설 속 두 주인공 중 한 명인 '레누'라는 이름의)나보다 공부를 잘하는 릴라. 그러나 --- 어릴 적에는 그 차이가 모든 면에서 그리 큰 격차를 보였던 건 아니었습니다. 그저 "언제나 2등이었던 나는 언제나 1등인 릴라라면 가는 법과 오가는 데 걸리는 시간, 바다까지 가는 길에 대한 모든 정보를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p95)라는 정도였으며, 고작 그런 수준의 실체에 대한 기대와 기댐이 있는 믿음이었을 뿐이었죠. 그리고!!!

레누가 느끼는 릴라에 대한 '2등 의식'은 면면에 따라선 '자신이 더 우월함'의 모습을 띠기도 했습니다. 첫 생리를 경험한 자신에 비해, 아직 생리를 하지 않은 릴라를 향해 화자(話者)인 레누가 가지는 (남자들은 결코 경험해볼 수 없는!) 우월감 - "갑자기 그녀가 작게 느껴졌다. 이제까지 보아온 모습보다 더 작게 느껴졌다. … 생리가 뭔지도 몰랐고 사내아이에게 고백을 받은 적도 없다."(p120) - 은, 그 나이의 소녀에게 다음과 같은 잠시동안의 만족을 선사해주기도 하였죠.


그녀의 약한 면을 감지함으로써 생긴 불편한 감정은 나의 우월함을 과시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비밀스럽게 변질되었다.(p102) ……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릴라는 갈 수 없게 된 학교에 나는 가게 됐다는 사실에 대한 기쁨을 은밀히 만끽하고 있었다.(p116)

이러한 '비밀스런 욕망과 은밀한 기쁨'이 서로를 '나의 눈부신 친구'라 부르게 되는 훗날로 가는 과정 중의 하나라 볼 수도 있겠으나 결국! --- (릴라는 진학하지 못한 중학교에서 얻은) 자신의 성취를 "진정한 1등이 없는 상태에서 1등을 했다는 생각"(p154)라는3, 일종의 '역전시켜낼 수 없는 열패감'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레누에겐 그나마의 위안이었었죠.4 그러나 그것도 잠시 뿐, "보티첼리의 그림에 나오는 비너스보다 더 아름다워질 여인"(p189)이란 어느 50대 신사의 말처럼, 레누 스스로 "나폴리 전체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그 묘한 얼굴"(p193)이라 인정할 수 밖에 없었던 시기를 거쳐, 릴라는 실제로 "역광에서조차 빛이 나는 범접할 수 없는 존재"(p349)가 되어갑니다. 그 과정들 중의 결정적 순간은 바로 다음의 장면이었죠.

  

릴라에게 고백을 한 사람은 다름 아닌 마르첼로였다. 그 이름을 듣자 나는 명치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파스콸레의 사랑은 릴라가 남자들이 좋아할 만한 아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마르첼로는 잘생기고 부유하고 자가용이 있는 데다 무뚝뚝하고 거칠고 마피아와 연관이 있고 원하는 여자는 언제라도 취할 수 있었다. 그런 마르첼로의 사랑을 얻는다는 것은 그가 악명 높은 악당인데도 또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비쩍 마른 소녀에서 어떤 남성도 사로잡을 수 있는 여인으로 승격되는 것을 의미했다.(p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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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는 이 작품이 큰 성공을 거둔 비결을 "시간과 장소를 떠나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을 띠고 있기 때문일 것"(p444)라 적고 있습니다만, 시대와 장소도 익숙치 않은, 더군다나 '첫 생리의 시기'로 우월감을 느끼는 소녀들의 성장기가, 적어도 2016년을 만 47세의 대한민국 남성인 저에게, '첫 자위의 시기'로 우월감을 내보였던 중삐리 시절을 보내지는 않았/못했던 저에게, (그리고/어쩌면 당신들에게도) 과연 '보편적으로' 보편성을 느끼게 해주었다라 말해내도 되는가란 점은 솔직히 의심스럽기만 합니다. 게다가 이 작품에 대한 '만족하지 못했음'이 단지 이러한 '보편적이지 않은 보편성'으로부터만 기인되는 것이 아닌, --- 적어도 60대 초중반임에 틀림없는 화자5가 털어놓은 자신의 성장기인 이 작품을, 이어지는 이야기들인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등으로 이루어져 있는 <나폴리 4부작> 중 1부라는 이 작품을, 게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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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못난 구두네. … 머리에서 태어난 꿈이 발밑으로 추락했잖아."(p418) 

​아마도 이 4부작의 최종 결론이 아니지 않을까 싶은 릴라의 중요한 위의 말을 담고 있는 이 작품만을, 굳이 따로 이렇게 먼저 출간했었었야 했는가하는, 차라리! 4부작 모두가 번역된 후 한 번에 출간했었더라면 --- "마르첼로는"으로 시작되어 "바로 그 신발이었다"라는 이 작품의 마지막 구절이 자아내는 궁금증을 훨씬 더 극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 훨씬 더 아름다운 잔향을 선사해줄 수 있지 않았었을까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습니다. 언제 2부가 출간될지 알 수 없으나, 그 전까지 이 작품의 마지막 구절을 그저 다음 회를 꼭 보게 만들기 위해 억지로 장면을 정지시키는 주말 드라마의 마지막과 다름 없는 수준으로 격하시켰을 뿐인, 출판사의 조급함아 자아낸 아쉬움 말이죠. 어쨌든!!! 

​"최악인 것은 릴라의 삶이 내 삶보다 우월할 것이라는 확신이었다."(p366)

​레누의 이 확신이 2,3부를 통해 어떻게 변화되어 갈 것이며, 4부의 마지막에선 어떻게 마무리지어질까야말로 - 시리즈의 4부작인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가 2016년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최종 후보에도 올랐었다니, 소녀들의 성장과 더불어 진행될 2·3·4부엔 뭔가 '결정적 한방'이 들어있겠을 꺼란 (「채식주의자」가 가져왔던 2016년版 '한강의 기적'스런) 기대와 함께 - 독자들로 하여금 이 연작을 읽어보게 하는 주 원동력으로 작용할 것 같습니다. 암튼!

드라마는 다 끝나고 난 후, IPTV로 한꺼번에 돌려보는 게 정신건강에 좋듯, 연작소설은 자고로 시작하여 끝을 봐야 그 진짜 재미를 즐기게 되는 것인듯.

 

  1. "별로 노력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성적은 언제나 상위권을 차지하고, 아무런 옷이나 걸쳐도 맵시 있게 보이고, 가만히 있어도 모든 사람의 시선을 독차지하는 친구. 언제나 한 걸음 앞서서 모든 것을 이루어내는 친구. 따라잡으려고 아무리 열심히 뒤쫒아도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친구. 추구해야 할 인생 목표에 언제나 기준이 되는 존재. 인생의 동반자이자 경쟁자이고 애정의 대상이자 증오의 대상이기도 한 그런 존재."(p443)
  2. 옮긴이는 이를 "시스터후드(sisterhood)에 가까운 우정 이야기"(p443)이라 묘사하고 있지요.
  3. 심지어는 --- "싸늘한 새벽에 일어나 주방에서 복습을 하다보면 내가 귀족들이 다니는 학교 선생님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평생 그래왔던 것처럼 구둣방 딸내미에게 잘 보이려고 달콤한 잠을 포기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p202)
  4. 레누에게 릴라는 심지어 '두려움을 안겨주는 존재'로까지 인식되기도 했지요. - "이것은 오래전부터 가슴에 품어온, 살면서 단 한 순간도 사라지지 않은 두려움이었다. 나는 릴라의 삶의 일부분을 놓침으로써 내 삶의 밀도와 중요성까지 희석될 것 같아 두려웠다."(p277) : 이 두려움이, 4부작을 통해 내내 레누에게 지속되었던것인지, 혹은 1부작의 시기에서만 그러했었던 건지를 확실하지 않습니다. 4부작 중 고작 1부만 읽어낼 수 밖엔 없다라는 것이 주는 아쉬움이겠죠. --;;
  5. "지난 60년 동안 내게 그녀는 '릴라'였다. 만약 내가 그녀를 갑자기 리나나 라파엘라라고 부른다면 그녀는 우리의 우정이 끝났다고 생각했을 것이다."(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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