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의 품격 - 조선의 문장가에게 배우는 치밀하고 섬세하게 일상을 쓰는 법
안대회 지음 / 휴머니스트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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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등장시킨/하는 '허균, 이용휴, 박지원, 이덕무, 박제가, 이옥, 그리고 정약용' 등 일곱 명의 조선 문장가들을 가리켜 저자 안대회는 (어딘가 모르게, 격 떨어져 보인다싶은 표현인) "지금의 파워블로거에 비유할 수 있다"(P6)라 비유하며, "형식적으로는 짧은 길이의 글에 개별적이고 작은 가치, 현실 세계의 구체적 진실을 생생한 언어로 표현했"(P6)기 때문이라 그 이유를 적고 있습니다. 여기에 (아마도) 출판사가 더해놓은듯한 문장인 "조선의 문장가에게 배우는 치밀하고 섬세하게 일상을 쓰는 법"이 책의 제목인 「문장의 품격」을 한껏 치장하고 있지요. 하지만! 

이 책은 결코 '쓰는 법(how to)'에 관한 무엇을 말하고 있는 책이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 '무엇을(what)' 써야하는 지에 관해 이야기해주고 있는 책은 더더욱 아니지요. 이 책 속 문장가들에게 글쓰기란 그저 "먹 형님, 붓 동생과 함께 말없이 수작을 나누는 일"(p255)이었을 뿐이며, 그들이 글로 표현해 낸 수작이란 것 역시 즉흥적으로 떠오른 문장들이 아닌, "하루가 쌓여 열흘이 되고 한 달이 되고 한 계절이 되고 한 해가"(p73)되듯, "하루하루 행동을 닦은 뒤에야 크게 바뀐 사람에 이르"(p73)른 자연스러운 결과물들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하루하루 행동을 닦은' 방식이란 게 무려!

 "《서경(書經)》은 겨우 사백 번을 읽었고, 《시경(詩經)》은 백 독(讀)을 했는데 … 《주역》은 삼십 독을 했고, 공자·맹자·증자·자사가 지은 《사서(四書)》는 그보다 이십 독을 더했다. 내 성품이 <離騷>를 가장 사랑하여 입에서 읽기를 그만둔 적이 없었으나 그조차도 천 독을 채우지 못했다. … 눈으로 섭렵한 책을 … 통계를 내보면, 서책이 수레 한 대를 채우지 못할뿐더러 … (pp248-249)

​25세의 이옥이 겸손하게 이 정도라 표현했으니, 그런 분들 일곱의 몇몇 글들을 모아놓은 이 책을 읽는다하여 '치밀하고 섬세하게 일상을 쓰는 법'이 즉각적으로 깨우쳐질 꺼란 기대는 당췌, 애초부터 말이 되지 않는 바람(願)일 뿐인 거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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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이 온 것을 알려주는 학이 없어서1 문설주에 봉자(鳳字, 凡鳥)를 써놓고 가시게 하다니!2 유감입니다. 송구하고 송구합니다. 이후로는 달이 환한 밤에는 절대로 외출하지 않으렵니다."(PP123-124)​

벗 홍대용이 자신이 출타 중에 자신의 집에 찾아왔었다는 걸 알고, 박지원이 홍대용에게 써보낸 사과(謝過)의 편지 중 일부입니다. 이게 --- 사과의 표현을 이토록 멋지게 할 수 있다라는 건 바로! 그의 일생이 '하루가 쌓여 열흘이 되고 한 달이 되고 한 계절이 되고 한 해'가 되듯 이루어져 왔었었기에, 그 과정 속에서 체화(體化)된 지식과 품격이 자연스레 발현되었기 때문일 테고, 상대방 역시 이 편지를 받아 읽고 본 뜻을 이해할 수 있을만큼의 같은 지식과 품격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한 대화였었던 것이겠지요. 그러하기에,

삐삐도, 핸드폰도 없던 시절의 연애사(史)엔 급작한 이유로 그 시각, 그 장소에 나타나지 않는 여/남자친구를 그야말로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던 일도 적잖게 들어 있으며, 그로 인해 헤어졌던 경우마저 다반사였었던 저의 세대조차, '사과의 편지'란 걸 써본 기억이 딱히 부재하거늘 --- 말대신 문자로 대화하는 요즘의 청춘들은, 그리하여 ('미안'이란 두 글자도 아닌) "먄~"이란 한 글자에 자신의 온전한 감정을 담아 보내(었다라 생각하)는 요즘의 청춘들이, 그리고 그들과 한 시대를 공유하는 (어느덧 --;;) 40대 후반의 저 역시!

과연 이 책 한 번 읽는다 하여, "글을 짓기 위해 갉아벅은 자기 정신에게 사죄하는 의미로 제(祭)"(p253)까지 올렸던 선조들이 써내었던 것 같은 '품격 깃든 문장'을 써낼 수 없음이란 너무도 허황된 바람(願)임을 잘 알고 있습/있어야 합니다. 그저 단지!!! --- 아름다운 내용을 지닌, 거기에 더해 정녕 '품격깃든 문장'이 무엇이며, 어떠하여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이 멋진 글들을 읽어볼 수 있었음이란 즐거운 경험을 통해, 그들의 여유로웠던 일상을 부러워하고, 그들의 부단했던 노력을 우러러보는, 또한 잊지않아야하겠는, 신분제로부터의 억압에 아파했던 그들의 아픈 가슴에 조금이나마 공감하여 보는 것만이, 지금의 우리가, 이 책을 읽고 표현해낼 수 있는 그 전부가 아닐까 어림하여 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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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銘)에 말한다. 여름 이후로는 점차 음(陰)에 이르고, 오시(午時) 이후로는 점차 저녁에 속하며, 중년 이후로는 점차 죽음에 속하는 법. 연객이 이를 알아 미리 준비를 하는구나. 내 연객에게 고하니, 달관한 듯 달관하지 못하여, 아직도 아는 것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고. 먼 과거로부터 현재까지가 자네의 나이요, 아름다운 산 아름다운 물이 그대의 거쳐요, 빠지지 않은 치아와 머리털이 그대의 권속(眷屬)이요, 애환(哀歡)과 행불행(幸不幸)이 그대의 이력이라. 이용휴가 명을 짓고 강세황(姜世晃)이 글씨를 썼으니 이것이 죽지 않은 자네일세."(pp76-77)

이용휴의 벗인 연객(煙客)3이 그의 나이 쉰 셋에, 자신의 묘비에 적혀질 글을 미리! 이용휴에게 부탁하였고, 이에 이용휴가 흔쾌히 써내어 준 생지명(生誌銘)4입니다. 멋있죠, 저에겐 너무나 멋있게 그리고 한없는 부러움으로 읽혔더랬습니다. 허나 이는 분명!

"다른 글쓰기는 다른 삶을 만든다"라는, 단언컨데! 출판사의 오류일 수 밖에 없는 문구가 아닌 "다른 삶이었기에 그들은 다른 글쓰기를 해내었노라"가 되어야 함을 깨달을 수 있다면, --- 한문으로 되어 있는 구절들을 한글로 옮긴 것은 분명 이 책의 저자 안대희 교수이기에, 이 책이 '문장 자체의 품격'을 논할 수 있다라기 보다는, '글의 내용'이 만들어 낸, 그리하여 그것이 후대 한문학자의 손에 의해 현재의 언어로 변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감추어지지 않아 발(發)하여질 수 밖에 없는, 선조들의 '인간적 품격'이, 또한 그들이 살았던 '시대의 품격'이야말로 진정 우리가 느끼고, 부러워하고, 배워야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위에 인용한 이용휴(李用休)의 글 이외에도, 박제가(朴齊家)가 쓴 글인 <궁핍한 날의 벗>5<광인의 인생, 장인의 인생>6역시 예의, '문장의 품격'을 뛰어넘는, '인간적 품격'의 진면모를 보여주는 글들이라 생각합니다. 무튼! --- 글재주(라는 하나의 기술)보다는 사람됨(이란 본질)이 더 중요!함을 깨닫는 좋은 기회였었었네요.

※ 역시나 멋진 선조의 옛 문장들을 만나볼 수 있는, 아련하고 아늑한 느낌의 책 : 안소영 著, 「책만 보는 바보」, 보림출판사 刊, 2005.

 

 

 

  1. "송나라의 임포는 학을 자식처럼 길렀는데, 그 학은 손님이 찾아오면 임포에게 알렸다고 한다."(P123, 각주 11)
  2. "중국의 삼국시대 여안은 혜강과 친하여, 보고 싶을 때마다 천 리 길을 멀다않고 찾아갔다. 어으 날 여안이 혜강을 찾아갓을 때 혜강을 출타하고 그의 형 혜희가 문을 나와 반갑게 맞이했다. 여안은 집에는 들어가지 않고 문설주에 '봉(鳳)'자를 써놓고 그냥 돌아갔다. 혜희는 자신을 봉황이라 여겼다고 좋아했으나, 혜강이 돌아와서 '범조(凡鳥)' 곧 '평범한 새'를 합자(合字)한 것으로 읽었다. 여안이 '너 같은 평범한 사람과는 어울리지 않겠다'는 뜻으로 써놓은 것이다. 여기서는 사람을 찾아갔다가 만나지 못하고 돌아가는 상황을 비유했다."(P123, 각주 12)
  3. ​"허필은 독특한 예술가였다. 담배를 너무 좋아하여 호를 연객(煙客)이라 했다."(p78)
  4. "생지명이란 살아 있는 사람을 위한 묘지명이다. 망자를 위한 묘지명을 살아 있는 사람을 위해 쓴다는 것 자체가 특별한 일인데, 18세기 이후 작가들은 살아 있는 벗의 생지명을 서로 써주는 것을 풍류운사(風流韻事)로 생각했다."(p78)
  5. pp194-200.
  6. pp20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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