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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
오이시 에이지 지음, 오현숙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458'의 숫자를 끝으로 마무리 되어지고 있는, 꽤나 두꺼운 소설입니다... 만! --- 도무지 현실에서는 일어날 법하지 않아보이는, 그렇다고 이 이야기를 '황당무계'란 단어로 수식하고 싶지도 않은, 어찌보자면 히가시노 게이고 作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과도 일맥상통하는 내용과 메세지를 지닌 이 작품 자체에 대해 쓸 수 있는 건 그다지 많지/길지 않습니다. 이 책의 뒷표지에 실려 있는 다음의 구절이 줄거리의 시작이자, 거의 모든 것일 뿐.
"10년 전 실종되었던 비행기가 돌아왔다! 탑승했던 사람들 역시 10년 전 모습 그대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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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란 구절이 암시하고 있듯, 그 결론은 소설의 초반부에 제시되고 있는 그대로, 아무런 반전 없이 마무리 되어집니다. --- 10년 전 사라졌던, 하지만 실제로는 (저로서는 뭐가 뭔지 이해조차 할 수 없는) "양자의 에어포켓에 빠진"(p151) 거라는 한 대의 비행기와 그 비행기에 타고 있던 사람들 모두가 느닷없이 예전 모습 그대로 되돌아왔고, 이를 예측했던 물리학자의 또 다른 예측대로 그들 모두는 사흘 후 다시 사라져버리게 된다라는 내용이지요. 이처럼!
독자들에게 이야기의 결론을 스스럼 없이 미리 알려주고 (혹은 독자가 충분히 예견할 수 있도록 만들어놓고) 전개해나가는 작품에서 작가가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 문학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 독자의 수준인 제가 추측해볼 수 있는 '흥미, 감동, 적당한 자기반성' 등의 그 '무엇'을 이 작품은 (최소한 저의 기대에는) 무엇 하나 모자람 없이 충족해주었습니다. 덜하지만 않았을 뿐 아니라 절대 과하지도 않은 딱! 그만큼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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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그 주어진 3일이라는 시간 동안, 비행기에 타고 있었던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그때로 되돌아갈 수만 있다면'의 바램들이 어쨌든 이루어졌다는 상황에서 그 바램들을 지니고 있었던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들이 나오지요. 이 지점에서 작가는 10년이란 시간이 흘렀다라는 게 적용되지 않는, 문제의 비행기에 타고 있던 사람들과, 10년의 흐름이 적용되는 가족 혹은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각각 나누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치! --- 우리가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볼 때, 후회되는 부분이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이 있는 것처럼 말이죠.
① (문제의 비행기에 홀로 태워보냈던 6살 짜리 아들을 다시 만난) 회사일에 바빠, 게다가 바람까지 피웠었기에 가정에 충실하지 못했던 아버지로부터는 "생각해보면 아들과 놀아준 기억이 거의 없어요. 어느 날 문득 봤더니 기엄기엄 기고 있고, 또, 어느 날 문득 봤더니 걷고 있고, 기저귀를 빼고 유치원에 들어가 있었죠"(p244)란 후회를, ② 꿈을 이루지 못한 채 10년을 살아온 누군가에게선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왜 그렇게 바보 같은 생각을 했을까란 생각도 들지만, 만약 시간을 거슬러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또 한 번 같은 짓을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p212)란 후회없음을 보여주기도, 거기에 더해 ③ "그게 말이지 … 딱히 할 말도 없더라고. 아들이 돌아오기 전까지는 말이지 아들한테 해야 할 말이 너무 많았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후회를 했었지. 하지만 막상 본인을 앞에 두니, 뭐 왔으니 됐다는 생각이 드는 거야"(p252)라는, 어쩌면 가장 현실적이지 않을까 싶은 토로까지, 상정가능한 일 개인의 있음직한 일반적 반응들의 거의 모든 모습들이 이 소설 속엔 담겨져 있습니다. 그렇게!
이 작품은 "만약 이 작품이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였다면, 분명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 있던 어떤 생각과 감정을 일깨웠기 때문일 것이다" 란 중국 작가 위화의 말을 다시 한 번 보여주고 있는 작품입니다...만! 이 작품에서 문제의 비행기와 탑승객들이 '양자의 에어포켓'에 빠졌던 시간을 왜 하필 10년으로 설정해놓았을까란 의문은 아마도 --- 일본인이 아니고서는 위에서 제가 '일 개인의 있음직한 일반적 반응'이라 표현했던 것 이상의 무언가를 온전하게 전부 이해할 수는 없을지 않을까란 생각을 가지게만 해줍니다. 작가 오이시 에이지는 소위 일컬어지는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지요.
지난 10년 동안은 차라리 겨울잠이라도 잘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라는 생각이 여실히 들 정도로 일본 전체가 힘든 시기였다.(p138)
그 10년여간, 일본에선 6천 명이 사망했던 고베 대지진이 있었으며, 여전히 그 사회적·개인적 후유증을 심각하게 남기고 있는 마쓰모토 사린 가스 사건이 있었었지요. 그뿐 아니라! --- "쇼팽을 정열적으로 치던 친구가 애들을 상대로 피아노로 호빵맨을 치고 있다는 현실"(p215)은 여전히 일본인들에게는 어찌해서든 잊고 싶은 기억만 남겨놓은 시간이란 걸, 그리하여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10년이란 시간이 결코 '잃어버린' 것들만 있는 시간이 아니라는 위로를 일본인들에게 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이 소설을 읽으며 해봤더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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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는 '직관'이란 것이 있기에, 알파고는 이세돌 9단을 이길 수 없다라 말해졌었었지요. 바둑의 룰을 전혀 알지 못하기에, 그 직관이란 것이 바둑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역시 알 수 없었습니다... 만! 일반적 예측관 달리 --- 'Game Theory'(상대의 반응에 대응한다라는 점)와 '확률'에 기초하고 있는 알파고의 작동원리는 예의 이 두 가지 분야에서만큼은 인간의 두뇌가 컴퓨터의 계산능력을 이길 수는 없다란 점이 여실히 보여진 결과를 낳았더군요. 그렇담 이세돌 9단은 한 판의 승리라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요? (아는 것이 없기에 해볼 수조차 없는) 공학적 추론이 아닌, 지극히 단순한 논리로 추측을 해보자면 그건 아마도 '확률'이란 개념이 가지고 있는 빈틈이 아닐까하는 대답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하기에!!!
알파고에 '알파신(神)'이란 호칭을 붙이는 건 (물론 이것이 일종의 '유행어'스런 단어임을 알고는 있습니다만 어쨌든) 지나친 비약임에 틀림 없습니다. 신은 '확률적 계산'이 아닌 '수학적 계산'을 하기 때문이죠. 둘 사이에 뭔 차이가 있는 걸까요?
여전히! --- 전 이 작품을 쓴 작가의 의도는 아마도 '잃어버린 10년'에 아파하고 있는 일본인들에게 어떤 형태로든 위로의 메세지를 전해주고 싶었던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그에 더해 A라는 원인으로 인해 B라는 결과가 나타난 것이라는, 즉! 일본에게 '잃어버린 10년'이란 B의 결과가 있었던 것은 그 어떤 A라는 결과가 있었기 때문(수학적 전개)인 것이지, 어쩌다보니 재수가 없어서/의도하지 않았거늘 (확률적 전개) 그렇게 된 게 아니라는, 일종의 자기반성까지를 요구하고 있다라 보게 됩니다. 그러하여!
p430부터 시작되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결말이 등장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찌릿!한 감정이 저절로 생겨날 수밖에 없는 장면들을 읽어가면서조차 --- 일본인이 아닌 사람에게 이 소설에 대한 만족도가 최고가 되기는 어렵지 않을까,란 생각을 버릴 수가 없더군요. 이건 마치, 아우슈비츠 수용소나 5월의 광주를 당사자 이외의 사람들이 인류적 차원 이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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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렇고!
알파고의 다음 종목으로 스타크래프트가 거론되었고, 유명 게이머가 바둑은 이겼지만 스타크래프트는 안될 것이다라 장담했다는 기사가 있더군요. 정말 그럴까요? 물리적 한계만 극복한다면 예의 스타크래프트 역시 알파고의 승리가 되지 않을까, (역시나 스타크래프트를 전혀 알지 못하면서도 --;;) 란 쪽에 손을 들고 싶습니다. 하지만!!! --- 이제까지 제가 배웠던 그 모든 지식들과 수치화/문자화할 수 있는 그 모든 경험들을 알파고에게 입력해준 후, 이 소설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의 감상문을 출력해보라 한다면 과연... 이 글과 같은 글을 출력해 낼 수 있을까요?설마 그건 아니겠지요? --;;
▶ 짧은 한두 마디 : '잃어버린 10년' --- 누구나 다 가지고 있지 않을까?
※ (읽어본) 비슷한 내용/메세지의 소설들
- 오기와라 히로시 作, 「타임 슬립」
- 히가시노 게이고 作, 「비밀」 ·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라는 말은 양자의 위치는 확률로밖에는 판단할 수 없다는 양자론을 부정하기 위해 아인슈타인이 한 말이다. - <역자후기> 중, p459.
- 「허삼관 매혈기」 한국어판 개정판 서문 중 작가 위화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