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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 프랑스 남자와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기
목수정 글, 희완 트호뫼흐 사진 / 레디앙 / 2008년 8월
평점 :
나이가 들어가면서, '현재 나의 삶'에 만족감을 느끼는 순간보다는 뭔가 아쉽고, 안타깝다라 생각하게 되는 시간들이 점점 더 많아집니다. 더 속상한 건 --- 이제까지 제가 가져왔던, 지켜왔던 사고(思考)와 생활방식이란 게 혹 잘못 선택되었던 건 아닌가하는 의심마저 들고 있다라는 점이죠. 이렇게 많이 살아왔고,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일들 - 결혼을 했고, 한 아이를 이 세상에 탄생시킨 - 도 적지않은 나이가 되었건만, '현재 나의 삶'을 만들어 준, 그 모든 과거를 지탱했었던 저의 사고와 생활방식이란 것에 이제와서야 의심어린 의문이 든다라는, 그리하여 어쩌면 저의 삶에 대한 근본적인 후회를 하게될지도 모르겠단 불안감이 점점 커져가고 있는 요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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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은 왜 어느 한순간도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살지 못하고, 왜 늘 다른 곳에서 보상받기를 원하는지 가슴치며 물었다.(p112)
그냥...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저 역시 (정말!) 가슴치며 울고싶어지더군요. --- 원하는 대학의 원하는 학과에 들어가기 위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그 이전의 모든 생활들을 단순화해가며 지낼 수 있었더랬습니다. 별로 힘들지도 않았었어요. 그 목표를 이루고 나니, 근데 또 다른 바램이 생기더군요. 뭐, 또 그 바램을 얻어내기 위해 희생시킬 수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은 다 희생시키는 생활을 했더랬지요. 그 바램마저 이루어냈거늘, 그냥 한 순간의 무언가가 그 모든 것들을 다 사라지게 해버리더군요.
지금 이 순간까지도 계속 진행형이기만 한 이 모든 것들이 이젠 저를 심히 초조하게 만들어줍니다. 제 앞에 있는 '선택의 여지'는 예전처럼 그렇게 넓지가 않기 때문이죠. 어쩌면 아예 없는 걸지도 모릅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란 말은 예의, 나이 먹어가는 이에게 그의 초라함을 잊게 해주려는 미사여구에 불과할 뿐이죠. --- 일하다가, 주말에 쉬고, 아이와 복닥거리며 공부시키고, 그렇게 대학엘 보내고, 그리고도 끊나지 않을 '양육'의 과정이, 제 미래가 가질 수 있는 (아마도!) 유일한 선택지가 아닐까라 생각했더랬습니다. 그리하여 결국!!
이루어내지 못했던, 이루어낼 수 없었었던, 그리하여 지금도 여태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절반 이상의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아빠'완 달리, '너만큼은 너의 바램을 이루어낼 수 있으면 좋겠다'란 말을 자꾸만 아이에게 건네어주는 겁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내 곧 '강요'로 변해버렸으며, 그 순간 이후 아이에게 왜? 지금 학원엘 다녀야하고 게임할 수 있는 시간을 줄여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마저 사라지게 만들어 주었지요. 저의 삶 자체가, 아이의 삶 자체가 목적이 되지 못한, 제가 이루지 못했던 것을 아이라도 이루어내게 함으로써 '나의 보상'을 받고자 했었었음을 도저히 부인할 수가 없는 겁니다.
그 어떤 세월도 또 다른 세월을 위한 볼모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나의 20대, 30대, 40개는 모두 똑같이 소중하고, 나의 모든 시간들에 적당한 노동과 적당한 즐거움을 배분해야 할 의무가 내게 있다.(p110)
왜 그리 일찍 남아있는 미래의 선택지가 별로 없다라 생각하느냐라 스스로에게 물어보기도 했었습니다만, 그 이외의 선택지를 상상해낼 수 없었었기에, 결국 나에게 남아있는 건 별로 없다라 결론내릴 수 밖엔 없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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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만은 터뜨리고 욕망은 충족시키면서 사는 것이 건강한 삶이다. 그러나 내가 충족시키고자 하는 욕망이 진정한 나의 욕망인지 아니면 모두가 욕망해야 하는 것이라고 정해진 일반적 욕망의 리스트일 뿐인지를 가늠해 보는 과정이 필요하다.(p100)
이 책,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이 --- '이제까지 제가 가져왔던, 지켜왔던 사고(思考)와 생활방식'이란 것에조차 변화될 수 있는 선택의 여지란 것이 거의 없는 것일까하는 부분을 다시금 생각해보도록 만들어 주는겁니다. 이제와서야 어렴풋하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게 되었다라는 거죠. 저로 하여금 옳다가 옳지않다의 판단을 내리게 해왔던 기준을 과연 나 스스로가 만들었던 것인가하는 의문 말입니다.
보수주의자는 기존의 지배적 사유습성과 생활양식을 그대로 따르려고 한다. 이것은 인간의 삶에서 보수주의가 기본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환경의 변화에 의해 강요당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모두 영원이 보수주의자로 살아갈 것이다. 보수주의는 특정한 계급의 독점적 특성이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 속성이다.
- 유시민 著, 『국가란 무엇인가』, 돌배게 刊, 2011. p189
그것이 '인간의 보편적 속성'이라 하더라도, 이제까지 제가 지켜왔던 '보수성'이란 것을, 저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취했었었다 할지라도, 그것이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이었던가에 대해서까지는 '그렇다'란 자신있는 대답을 못하겠는 겁니다. 이 책의 저자 목수정이 정의한 바 --- '주어진 길을 가는 사람'(p289)의 우파적 사고가 이제까지의 저를 지배해왔다면, 그렇게 해 살아온 이제까지의 삶이 이처럼 결국엔 '아쉽고, 안타까운 것'으로 밖엔 설명되지 못한다라면!!!
이젠 '현상을 까뒤집어보고 다른 각도에서 삐딱하게 바라보는 사람'(pp289-290)이란 의미로서의 '좌파'로 살아보는 것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 겁니다. '주어진 길'을 가야겠다라 살펴보니, 남아있는 선택의 여지가 뻔한 이 상황에서 '좌파로의 변신'은 매력적이지 않을까? 막 이러면서 말이죠.
대의를 위해 자아를 희생하거나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본질적인 지향과 욕망에 충실한 선택으로서의 좌파, 자유롭고 당당한 생활좌파가 많을수록 미래가 밝다는 게 내 생각이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투쟁의 깃발을 높이 올리는 모습만이 좌파의 전부는 아니며, 그런 자세가 좌파의 승리를 앞당긴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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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구절들을 이 책으로부터 인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저의 이 감상문이 이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오로지 저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부분에 대한, 저의 이야기만을 담고 있지요. 이 책, 정말로 매력적입니다. 그러하기에, 이 책에 대한 내용을 쓰고 싶지 않았으며, 사실 이 책에 담겨있는 내용을 요약한다는 게 별 의미가 없다고도 생각했습니다. 그저 --- "저자 목수정의 글을 읽어가는 것 자체가 이 책의 매력이며, 그러다보면, 저완 또 다른 곳에서 각자 자신에게 필요한 깨달음/발상의 단초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란 한 문장으로 이 책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자신의 주장에 대해 읽는 이로 하여금 '틀렸다'라 반감을 가지게 하기 보다는, '나와는 조금 다르기 한데, 관심이 가네!'의 호기심을 이끌어내는 능력이 정말로 뛰어난 작가라 생각합니다. 여러모로... 정말 매력적!인 캐릭터의 저자이고, 그만큼 매력적인 내용의 책입니다. 그녀와 젊은 시절, 소개팅을 했었더라면 어떤 일이 있었을까?하는 '바지속까지 정치적인' 상상을 해보게 되었을만큼 말이죠. ^^;;
※ 번역가로서의 목수정 : 에티엔 드 라 보에시 著, 심영길·목수정 共譯 『자발적 복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