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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ㅣ 비룡소 걸작선 13
미하엘 엔데 지음, 한미희 옮김 / 비룡소 / 1999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1973년에 발표되었으며 <독일 청소년 문학상>을 받은 이 작품에 대해, 네이버 지식백과는 '동화 소설'이라는 장르를 부여해 주고 있더군요. '동화(童話) 소설'이라는 단어가 정확히 뭔지 이해되진 않습니다만, ('동화'라니까) 이 소설을 내 아이에게 선뜻 읽어보라 권할 수 있을만큼, 그리하여 이 작품을 다 읽고난 후 내 아이가 묻게될 질문들에 대해 솔직히 대답해줄 수 있을까하는 스스로의 (진짜!) 의문, 그리하여 이 책을 자신있게 자녀에게 권해줄 수 있는 부모님들이 지금의 대한민국에 과연 얼마나 있을까 싶기에 --- 사뭇 주저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종원군의 책상에 놓아주었더랬습니다. 인공 모모가 던져주는 그 간단한 의문에 대해 대답해줄 수 있는 자신이 전... 전혀 없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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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일들은 해결하려면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p25)
어느 날 갑자기 한 마을에 나타난 어린 소녀 모모. 그녀는 자신의 나이도, 사는 곳도 모릅니다. 오로지 자신의 이름이 '모모'라는 것만 알고 있지요. 모모를 불쌍하게 여긴 마을 사람들은 모모에게 거처할 공간을 지어주었고, 자신들의 음식을 조금씩 나누어 주었습니다. 마을 사람들로부터 모모에게로 향하는 일방적인 동정이 시작되었던 거지요. 하지만 이내 곧! 마을 사람들 모두가 모모에게 의지하고 모모를 필요로 하게 됩니다. 왜였을까요?
꼬마 모모는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주는 재주였다.(p22) …… 모모는 가만히 앉아서 따뜻한 관심을 갖고 온 마음으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사람을 커다랗고 까만 눈으로 말끄러미 바라보았을 뿐이다. 그러면 그 사람은 자신도 깜짝 놀랄 만큼 지혜로운 생각을 떠올리는 것이었다.(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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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들의 계산에 의하면 중세 시대 때 공동토지에서 일했던 평범한 농부 한 사람이 연간 15주 정도 일하면 1년 동안 생활하는 데 필요한 돈을 벌 수 있었다. 그런데 지난 200년 동안 유래없는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중세시대의 소작농들보다도 더 죽어라고 일을 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가?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다.
- 데이비드 보일 & 앤드류 심스 共著, 「이기적 경제학 이타적 경제학」중. 사군자 刊, 2012.
이발사 푸지 씨 역시 이 불가사의한 의문을 갖고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제대로 된 인생을 살려면 시간이 있어야 하겠거늘, 일에 매달리다 보면 제대로 된 인생을 누릴 시간이란 언제나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었죠. 이게 뭐 서양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일은 아닌겁니다. 저도,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역시 '시간'이란 것이 '나에게 풍족하다!'라 말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모모가 얼마든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재산, 그것은 바로 시간이었다."(p25)
모모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다거나, 혹은 그녀가 타임머신이라도 가지고 있어서였을까요? --- 「이기적 경제학 이타적 경제학」의 두 저자가 경제학적으로 설명해주었던 내용을 작가 미하엘 엔데는 '동화 소설'이라는 장르의 이 작품을 통해 그 핵심을 콕! 집어주고 있습니다. 대체 왜? 우리에겐 항상 시간이 부족하며, 더욱 더 열심히 일을 해도 삶은 그리 쉽게 좋아지지 않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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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장소에 나타나지 않는 여자 친구를 향해 할 수 있는 거라곤, 무작정 기다리는 것밖엔 없던 시절이 저의 20대였었습니다. 하지만 이젠 제 시간이 되기도 전부터 어디쯤 왔느냐라 묻는 문자와 전화를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지요. --- 20대 때의 하염없는 기다림을 '설레임' 혹은 '아릿함'이라 표현했던 제 여자 동창의 글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당시에도 그건 당황스러움과 불편함이었었으며, 지금의 기준엔 매우 불합리한 행동이라 여겨질 뿐인거죠. (연애감정이란 게 원래 비합리적인 거다라 하면 할 말이 없지만서도. --;;)
세상은 이처럼 빠르게 변했고, 또 실제로 빨라졌습니다. 3G완 비할 수 없이 빨라졌던 LET도 모자라 LTE-A라는 것이 이내 등장했고, 저 역시 네비게이션에게 짧은 길보다는 빨리 갈 수 있는 길을 안내해내라 요구하고 있지요. 이러한 빠름에의 갈구 혹은 조급함은 대체 어디서부터 생겨난 것일까요? 우리 민족 고유의 특성인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이 모든 것을 교육의 힘/탓으로 돌리는 것도 뭔가 무책임해보입니다. 대체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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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서 '회색 신사'는 '시간을 빼앗아가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는 그럴 듯한 논리를 펼치며 사람들에게 시간을 아끼라!라 요구하지요. 그 회색 신사들의 요구를 거절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들의 논리는 너무도 완벽하거든요.
인생에서 중요한 건 딱 한 가지야. 뭔가를 이루고, 뭔가 중요한 인물이 되고, 뭔가를 손에 쥐는 거지. 남보다 더 많은 걸 이룬 사람, 더 중요한 인물이 된 사람, 더 많은 걸 가진 사람한테 다른 모든 것은 저절로 주어지는 거야. 이를테면 우정, 사랑, 명예 따위가 다 그렇지.(p130)
회색 신사는 바로 '자본주의'를 상징하고 있다 생각합니다. 좀 더 범위를 좁히자면, (어느 상황에서건 항상 욕을 먹기에 일견 불쌍한 생각마저 갖게도 되는) '신자유주의'이지요. --- '자신의 일을 기쁜 마음을 갖고 또는 애정을 갖고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p96)으며, '가능한 한 짧은 시간 안에 가능한 한 많은 일을 하는 것, 그것 만이 중요'(p96)하다라 우리는 가르치는 그 무엇! 경제학을 공부한 저로서는 그 무엇이 다름아닌 '자본주의의 안좋은/불편한 속성'이라고 밖엔 생각되질 않습니다.
자! 이 작품 속에서 회색 신사들이 나쁜 인물로 그려지고 있기에, (위에 인용해 놓은) 그들의 말 역시 당연히 틀린 말일 것이라 간주하고 싶지만, 그렇게 간주하고 싶어도 차마 할 수 없었습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그대들은 어떠할 지 모르겠으나) 아빠라는 지위를 이용하여 전, 이제까지 제 아이에게 바로 위의 말들을 해왔었기 때문이지요. 시간을 아껴라, 허투르 쓰지 마라,라고만 말해주었지, 왜 시간을 아껴야 하는지, 그렇게 아낀 시간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말해주지 않았던, 그런 아빠였었기 때문입니다. 아이에게 왜 그랬었느냐?란 질문에 하나의 변명을 꺼내어 보자면
저 역시... 몰랐었기 때문이었노라 대답할 수 밖엔 없습니다. 아낀다고 아꼈음에도 시간은 항상 저에게 모자랐었고, 행여 시간이 좀 남았다 하는 경우가 있었더라도, 그것을 위해 행했던 노력의 강도에 비해, 그 '좀 남는 시간'들은 항상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곤 하더군요. 저도 몰랐던 겁니다. 왜 시간을 아껴야 하며, 그 아낀 시간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를 말이죠.
결국!!!
이 모든 건 예의 '수단과 목적의 전이(轉移)'때문이 아닐까하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 인간 생활을 편리하게 해줄 목적으로 탄생된 화폐라는 '수단'이 어느 순간부터 (축적해야하는) '목적'이 되어버렸고, 더 나아가 (단지 삶의 수준을 측정하는 수단으로 고안된) GDP라는 것이 만인의 최종 목표가 되어버렸기에 우리는!!! --- '심지어 여가 시간까지도 알차게 이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주 빠른 시간 내에 가능한 한 많은 즐거움과 휴식을 줄 수 있는 오락을 찾았다. 그랬기에 그들은 축제도 제대로 즐길 수 없었다. …… 꿈을 꾸는 것은 죄악처럼 여겨졌다"(p96)의 삶을 살게 된 거죠. 그리하여 예의 내 아이를 위해서조차 시간을 낼 수 없게 된 겁니다. 함께 놀아주고 함께 고민하는 것보다는 아이에게 핸드폰 게임할 수 있는 시간을 늘려주는 식의 간편한 방식을 선호하게 된 거지요. 그렇게! '나는 시간을 아꼈다'라 위로를 받고 싶은 거니까요.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부모와 함께 하는 시간을 더 많은 용돈과 최신식 장난감으로 대치받은 아이들은 '모두들 버림받은 느낌'(p107)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하여 결국!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들의 얼굴은 점차 시간을 아끼는 꼬마 어른처럼 되어 갔다. 아이들은 짜증스럽게, 지루해하며, 적의를 품고서, 어른들이 요구하는 것을 했다. 하지만 막상 혼자 있게 되면 무엇을 해야 할지 도무지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 모든 일을 겪은 후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소란을 떠는 것뿐이었다. 물론 그것은 즐거운 소란이 아니라 미쳐 날뛰는 듯한 고약한 것이었다.(p253)
이렇게 변할 수 밖에 없는 아이들을 향해 우리 어른들이 내린 결론이란 건 고작 --- '중2병'이라는, 명확하게 질병으로 표현해 버리는 것 뿐이었죠. 어른들의 잘못이 아니라, 순전히 그건 육체적 성장과 정신적 성장간의 불균형이 초래한 '과도기적 질병'이라고 말입니다. (물론 이 진단이 전적으로 틀렸다라 생각하는 건 아닙니다. 그러한 과도기를 지날 수 밖에 없는 아이들에게 대체 어른들이 아무 것도 해주질 않으면서 걱정만 하고 있다라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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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무조건! 그리고 당연히 중학 시절과 고교 시절은 희생되어야 하는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좋은 대학엘 들어가서도 예의 좋은 직장을 위해 대학 생활은 변질될 수 밖에 없지요. 좋은 직장엘 들어가면 승진이, 조금이라도 더 오래동안 남아 있고싶다란 것이 스리슬쩍 하나의 목표가 되어버리게 됩니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있는 청춘들은 그리하여! --- 이도저도 아닌, '한 10억쯤 모으는 것'을 그들의 (꿈의) 목표로 가지게 되는 겁니다. 물론! 그 10억으로 뭘 하려고?란 질문엔 그 누구도 대답할 수 없더라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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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가장 위험한 건 꿈이 이루어지는 거야. …… 나는 더 이상 꿈꿀 게 없거든."(p281)
적어도! 나의 아이가 이런 생각을 갖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나의 아이 뿐만이 아니라, 그대들의 아이들, 그대들의 조카 모두가 이런 생각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아이들이 이런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있을까요? --- 저자 미하엘 엔데가 알려 주고 있는 해답은 예상외로 간단합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이기도 하지요. 단지 실천에 옮기지 못해왔을 뿐.
"자신의 시간을 가지고 무엇을 하느냐는 전적으로 스스로 결정해야 할 문제니까. 또 자기 시간을 지키는 것도 사람들 몫이지."(p217)
'시간'이란 것 역시 일종의 수단일 뿐입니다. 하루는 24시간으로 나누고, 다시 한 시간을 60분으로 나누는 것도, 1년을 12달로 나누는 것 모두 우리의 생활에 편리함을 더해주기 위한 수단적 장치들일 뿐이죠.
우리가 70세까지 살게 된다면, 우리에게 주어진/우리가 소유하게 되는 총 시간은 2,207,520,000초입니다. 책에 나와있는 표현 그대로 이 어마어마한 시간은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나의 재산'이지요. 이 어마어마한 재산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똑같이 주어집니다. 작가 미하엔 엔데는 이 어마어마하고 공평한 각자의 재산을 다음과 같이 사용하라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가능한 한 짧은 시간 내에 가능한 한 많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저마다 무슨 일을 하든 자기가 필요한 만큼, 자기가 원하는 만큼의 시간을 낼 수 있었다. 시간이 다시 풍부해진 것이다.(p360)
시간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며, 모든 사람에게서 공평하게 칼처럼 사라져가기도 합니다. 자! --- 그런 '시간'이란 놈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시간이 없는지 정말 이상해!'(P109)라 묻는, 단순하지만 답하기 어려운 질문에 대한 작가 미하엘 엔데의 조언이 궁금하시다면 바로 이 책!
▶ 짧은 한두 마디 : 바꾸어야 하고, 바뀌고 싶거늘, 과연 난 바뀔/바꿀 수 있을까?
※ 함께 읽으면 좋을 듯한 책들
- 데이비드 보일& 앤드류 심스 共著, 「이기적 경제학 이타적 경제학」
- 와타나베 이타루 著,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 마이클 센델 著,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 엄기호 著,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