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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한국인 - 대한민국 사춘기 심리학
허태균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5년 12월
평점 :
한국 사회를 행복한 지옥으로 만든 사람은 바로 우리 한국 사람들 스스로다. 결코 누군가가 몰래 만들어놓은 함정에 우리가 억지로 빠져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의 모든 것은 바로 우리가 만들었다는 사실을 넘어서, 그냥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p28)
간단하게 혹은 좀 쎄게 말해서 --- (이 표현에 동의하건 하지 않건) '헬조선'이라 불리우(기도 하)는 현재의 대한민국을 만든 건 바로 대한민국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더 나아가!!! 우리가 '헬조선'에 살고 있는 까닭은 우리 스스로가 '헬조선인'이기 때문이라는 거지요. (현재의 대한민국이 '헬조선'이라는 것이 아니라, 이 책의 논리에) 100% 동의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을 다 읽고나면 당신도 역시 100% 동의하게 될 것이라고도 생각합니다. 400여 페이지를 읽어가는 동안, 저자가 주장하고 있는 내용들에 단 한 마디의 반박도 할 수 없었었던, (1+1=2라는 수식이) 단지 '진실이기 때문에 진실이라 말하는 것'을 넘어 '이러하기 때문에 그것은 진실이다'라 말해주는 내용들이었기 때문이지요. 「어쩌다 한국인」이란 제목을 가지고 있지만, 실은 <이래서 한국인은>이라 말해주고있다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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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에 일어난 변화는 인류가 이 지구상에 출현한 이후 몇백만 년 동안 겪은 변화를 능가한다. …… 그러한 변화가 가져다 주는 충격과 혼란은 한국 사회처럼 아무런 준비 없이 산업화의 대열에 갑자기 뛰어든 사회일수록 훨씬 증폭되어 나타난다. 우리 사회의 노인들의 체험 속에는 보릿고개의 처절한 기억과 공업화의 힘찬 약진, 그리고 그 다음 단계로 지금 우리가 맞고 있는 정보화와 세계화의 물결이 공존하고 있다. …… (이러한) '비동시적인 것들의 동시성'은 우리 삶의 뚜렷한 발자국이다.
- 김찬호 著 「사회를 보는 논리」 중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여기서 정보사회로. 한국에서는 이 과정이 유난히 짧은 시간에 이루어졌다. 서구에서는 전근대와 근대와 탈근대 사이에 비교적 큰 시간차가 있지만, 한국에서는 이 세 가지 시간대가 공존한다. 근대화의 급속함은 과거와 현재 사이의 거리를 좁혀 한국인 몸속에 강한 전근대성을 남겼고, 뒤처졌던 과거에 대한 기억에서 오는 특유의 성급함은 현재와 미래 사이의 거리를 좁혀 한국을 그 어느 곳보다 미래주의적인 나라로 만들었다.
- 진중권 著, 「호모코레아니쿠스」 중
사회학자인 김찬호의 「사회를 보는 논리」, 역시 사회학자인 노명우의 「세상물정의 사회학」 그리고 미학 전공의 진중권이 쓴 「호모코레아니쿠스」 --- 이 세 권의 책이 견지했던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과 이 책의 저자인 사회심리학자가 바라보는 시선은 정확히 일치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차이점이라면, 위 세 권의 책들이 현상을 '설명'하는 데 주안점을 가졌었다면, 「어쩌다 한국인」은 사회심리학의 도구로 (발가벗겼다라 말하고 싶을 정도로) 현상을 '분석'하고 있다라는 것일 뿐.
저자는 현재의 한국 사회를 '사춘기'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사회 역시 사춘기의 시기에 접어들게 되면 당연히 가치관의 혼란이 생겨날 수 밖에 없다는 거지요.
심리학적으로 보면 현재의 한국 사회는 한국 전쟁 이후에 새로 시작되었다고 보는 게 더 합당하다. … 이것은 다시 말해 현재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정치 제도, 교육 제도, 사회 시스템에서 전통의 그것과 유사한 것은 거의 없다는 의미다.(pp7-8) …… 한국인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던 수많은 가치들은 더 이상 그들의 심리와 행동을 지배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한국인의 심리는 극심한 진통을 겪으며 그때 다시 탄생되었다. 이전까지 한국인의 문화와 정신 깊숙이 자리해 잊히지 않았던 가치들은 아마도 아이가 원래부터 가지고 태어나는 유전자와 같은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신생아기를 거쳐 폭풍같이 성장하는 유아기를 지나면서 한국 사회는 70년 동안 엄청난 성장을 해왔다. 그 폭풍성장기를 막 끝낸 한국 사회의 심리는 지금 사춘기에 접어들고 있다. … 한국 사회가 그런 무서운 질풍노도의 시기에 들어서고 있고 앞으로 거쳐 갈 것이니, 어찌 이 사회가 혼란스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pp9-11)
여기서 필자는 한국인의 유전자, 즉 한국 사회를 한국 사회답게 만드는 동력을 다음의 6가지로 분류합니다. 다른 사회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 특성들이기는 하지만, 한국 사람들이 특히 강하게 가지고 있는 그 6가지의 특성들은 --- ①주체성, ②가족확장성, ③관계주의, ④심정중심주의, ⑤복합유연성, ⑥불확실성 회피
사실 이처럼 특정 렌즈로 모든 것을 분석해내려는 시도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많은 부분'을 설명하는 것에는 유용하지만 '전부'를 설명하려다보면 예의 어거지스러운 무리수가 등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요. 헌데 이 책은!!! ---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에서 장하준 교수가, 현재의 세계 경제 문제들을 풀어내기 위해선 각 학파들의 주장을 사안별로 조합해낼 수 있어야 한다라 했던 것처럼, 이 책은 한국 사회를 분석해감에 있어서 위 6가지의 특성들을 때로는 단독으로, 때로는 절묘하게 조합하여 설명해가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갑질 논란, 세월호 사건,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사과 거부, 사교육의 문제점 그리고 인문학 열풍등까지, 최근 한국 사회를 뒤덮고 있는 거의 모든 문제점들에 대해 더 이상 명쾌할 수 없을만큼 정확히 진단해주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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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상식 속 나라 사이의 관계는 …… 수직적이기만 하다. 수직적 관계만을 머릿속에 담고 있는 사람은 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나라 앞에선 필요 이상으로 당당하지 못하고, 뒤에 있다고 생각하면 근거 없이 깔보기 일쑤다. …… 그래서 입만 열면 어떤 주제든 상관없이 "미국에서는…"이나 "선진국에서는요"를 들먹여야만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할 수 있는 유아적인 사고방식이 전문가의 식견으로 둔갑하고, 미디어는 정체불명의 유령 기호인 '선진국'을 들먹이며 외국에 대한 열패감을 조장하느라 바쁘다.
- 노명우 著, 「세상물정의 사회학」 중
이 책의 저자 역시, 우리 사회가 수직적 집단주의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여기에 한국인의 <관계주의>와 <주체성>이라는 특질이 더해져 단순한 갑을관계를 고약한 갑질로 전환시켜 버린다는 것이죠.
해방과 전쟁을 겪으며 자라난 한국 기성세대들은 …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정체감과 존재감을 확인할 충분한 기회 없이 지난 60년을 달려왔다. 그래서 사실 한국의 많은 기성세대들의 존재감은 독립적으로 존재하기보다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누구의 아버지, 누구의 자식, 누구의 친구 등과 같은 수많은 관계 속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들에게 이런 관계적 존재감이 충분히 느껴지지 않는 상황은 너무나도 불안하고 동시에 좌절스러운 상황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한국 사회에 수없이 일어나고 있는 갑질은 바로 그런 존재감의 상실에서 비롯된 분노가 원인이었다.(p79)
이처럼 <관계주의>의 특성으로 인해 발생된 한국인의 분노는 예의 그것의 해소를 위해 항상 '나쁜 놈' 하나를 찾아내 그 '나쁜 놈'을 때려잡아야만 풀립니다. 현실에서 발생되는 수많은 사고들이 거의 예외 없이 '인재(人災)'라 불리우는 것 역시, '나쁜 놈'을 기어코 찾아냈기에 만들어지는 조어(造語)라는 거지요. 심지어! --- '설사 기계나 시스템의 잘못이라고 밝혀져도, 그렇게 만든 '사람'을 찾는 데 더 집중한다. 만약 인간이 어쩌지 못하는 날씨가 불가항력적인 천재지변이 문제를 일으켰다면, 그것을 예측하고 대비하지 못한 사람을 찾는다.'(p178)
철저히 가치 중립적 입장에서 그저 '한국인은 이렇다'라 분석하고 있는 저자는 이 자체를 문제라 말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정작 문제는 '책임자를 때려잡았으니 문제가 해결됐다고 생각하는 것까지 연결'(p182)되는 데에 있다라는 거지요.
"우리의 분노는 나쁜 놈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그놈이 충분히 처벌받는 것을 보면 정의가 실현됐다고 생각하는 것이다."(p183)
이처럼, 자신들의 분노를 시스템이나 제도로 해결하기 보다는 나쁜 놈을 찾는데에만 집중하는 한국인의 특성은 새로운 죽일 놈이 등장하게 되면 예의 그 전철을 고스란히 반복할 수 밖에 없게된다라는 데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다고 저자는 지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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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6가지 한국인의 특성들 중 가장 흥미로웠던 것이 바로 <복합유연성>이었습니다. '자신이 믿거나 생각하는 바와 일치하지 않는 행동을 해도, 그리 크게 불편해하지 않는다'(p281)로 정의되는 <복합유연성>이, 현재 한국인들에게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켜내려는 무엇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크게 한국 사회에 (부정적인 측면으로) 작동하고 있다라는 겁니다.
한국인의 <복합유연성>은 급속한 경제 발전 과정에 있어서, 우리가 지켜냈어야 했던 인간의 존엄성이라든가 정의와 같은 추상적 가치들을 너무도 쉽게 효율성과 생산성이라는 눈앞의 과제들을 위해 포기하도록 작용했습니다. 과거에 그랬을 뿐만 아니라 --- (저자 역시 '유연성'이라는, 사뭇 긍정적인 단어로 이를 표현하고 있기는 하나) 결국 '일관성이 결여된 선택'으로 현시(顯示)되곤 하는 이 <복합유연성>으로 말미암은, 현재 한국 정치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위 '발목잡기' 현상이야말로 한국인들 스스로가 만들어내었다라 저자는 말하고 있지요.
한국인들은 일관성이나 정책의 효율성보다는 조화를 원했다. …… 그래서 우리는 과거에 진보 대통령에 보수 다수당 또는 보수 대통령에 진보 다수당을 가지는 조화로운 비극을 경험해왔다. …… 한국 사람들은 한마디로 패자가 없는 승자를 원한다.(p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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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책을 통해 저의 기존 사고방식을 가장 크게 흔들어주었던 문구는 '세상에서 가장 옳은 명제는 어쩌면 가장 잔인한 명제인지도 모른다'라는 말이었더랬습니다. 의문의 여지조차 없이 받아들였던 것에 대한 엄청난 충격이었었지요. 이제 또 하나의 문구가 기억되기 시작합니다. 그건 바로 ---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표현에 대한 저자의 다음과 같은 지적입니다.
이런 제목은 칭찬 때문에 춤을 추는 고래는 원래 춤추고 싶지 않았다는 진실과, 고래의 의도와 상관없이 어떻게든 그 고래를 춤추게 하려 한다는 강제성을 전제로 하고 있다. 사실 원래 춤추고 싶어 하는 고래에게는 칭찬이 필요 없다. 춤추고 싶지 않거나 춤출 이유가 없는 고래를 춤추게 할 때만, 칭찬과 같은 외재적 동기가 필요하다. …… 바다의 고래는 그냥 춤추고 싶어서 춤춘다. 이들에게는 칭찬이 아니라 아마 그들만의 음악이 필요할 거다. 그럼 알아서 춤춘다.(p324)
아이의 교육에 있어서 금과옥조스럽게 사용하여 왔었던 이 말에, 내 아이가 진정 춤을 추고 싶어하는가에 대한 본질적 의문 없이 그저 칭찬이면 그를 춤출 수 있게 할 것이라 생각했었던 저에게 저자의 지적은 정말로 가슴 뜨끔하게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게 저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행해지고 있다라는 게 아니라는 거지요.
이 세상에는 춤추고 싶은 고래와 춤추고 싶지 않은 고래가 있는데, 이 모든 고래를 춤추게 하려고 칭찬과 채찍을 휘두르는 것이다. 학생들은 하고 싶은 것과 하기 싫은 것,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에서 너무나도 다양한데, 한국의 교육은 모든 학생이 비슷한 것을 해야한다고 강요한다.(p324) …… 한국은 대부분의 청년들에게 똑같은 세속적인 성공을 위한 삶을 권하고, 강요하고, 칭찬한다. 한귝의 교육체계에서는 세속적 성공과 그것을 위한 학업만이 거의 유일한 가치다. 그래서 한국 청년들은 세속적인 것 외에 다른 가치를 모른다. 그들의 포기는 진짜 포기다. 가진 것도 없이, 아무 의미도 없이, 그냥 실패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회에서는 여전히 … 마치 그들 때문에 한국 사회가 어려운 것처럼 얘기한다.(p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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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한국은?"이란 질문에 더 이상 명쾌할 수 없을만큼 정확하게 "이래서 한국은!"이란 해답을 제시해주고 있는 책이었습니다. 너무도 명쾌하기에 사뭇 슬프다,라는 감정까지도 느껴졌었었지요. 이런 멋진 책에 대한 감상문으로는 너무도 형편없다라는 생각이 (결코 겸손의 립서비스로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들기만 하기에, 한국 사회가 '헬조선'이라 불리우는 것에 공감을 하든, 반감을 가지고 있든 현재의 한국 사회에서 어쩔 수 없이 두 발을 딛고 살아가야 할 모두에게 반드시 읽어보시라 권해드리고 싶은 책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는 대체 왜 이런거야?'라는 질문이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무책임한 질문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선 '우리 사회를 이루고 있는 우리'에 대해 '우리 모두'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겁니다. 그리고 이 책을 --- 바로 그 질문에 대한 해답으로선 정점(頂點)에 서 있는 책이라 감히 꼽아봅니다.
▶ 짧은 한두 마디 : 한국인이라면 닥치고 부디 필독!!!
※ 한국, 그리고 한국인에 대해 알려주고 있는 책들
- 김찬호 著, 「사회를 보는 논리」 · 「문화의 발견」
- 노명우 著, 「세상물정의 사회학」
- 진중권 著, 「호모 코레아니쿠스」
- 김두식 著, 「불편해도 괜찮아」
- 하지만, 이명박 정권 이후부터 한국인들의 정치적 선택은 대통령과 다수당을 한나라당/새누리당으로 일관되게(!) 선택하고 있지요. 이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현재의 야당들이 깊이 새겨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 이제까지는 난 짜장면, 너에게는 짬뽕을 선택해주어왔지만, 짬짜면이 새롭게 등장하였기에 더 이상 그런 구분된 선택 자체가 필요 없어졌다는 겁니다. 한 마디로 극보수로부터 중도좌파스런 이미지의 인물들이 한 정당에 속해 있는, '짬짜면'스런 구성원을 지니고 있는 현재의 새누리당이야말로 한국인들의 기호에 딱 들어맞는다라는 거지요.
- 김형민 著, 「그들이 살았던 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