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나 사이를 걷다 - 망우리 비명(碑銘)으로 읽는 근현대 인물사
김영식 지음 / 골든에이지 / 200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망우리공원이라는 작은 공간은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를 살다 간 인물들의 비명(碑銘)을 통해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작지만 크고, 유일한 공간이다.(p11)

소파 방정환, 만해 한용운, 도산 안창호 등의 무덤이 망우리공원에 있었었고, 지금도 있다라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서야 처음 알게되었습니다. 그들의 이름과 대표적인 업적 등은 알고 있지만, 그들의 묘가 어디에 있는지까지는 알고 있지 못했다라는 것이 창피해하여야 한다거나, 최소한 가책 정도는 느껴야 하는 일일까요? --- 이 책의 저자는 이에 대해 "아는 것만큼 보이고 느낀 만큼 발걸음이 닿게 마련이다."(p211)이라 답하고 있네요. 그러게요. 저 역시 우리의 근현대사에 대해 '몰라서 잊었고, 알고도 잊었었던' 한 사람이었었고, 저의 지식과 가치관을 통해 우리의 과거와 그 과거를 만들어내었던 앞서 살았던 분들의 행적을 판단했었었지요. 그저 "우리는 근대 민족사 또는 근대 문화사에 관련된 인간론이 늘 변절과 고절의 극단으로 분류해서 민족의 편에 서 있는 자를 신격화하고 그렇지 못한 자를 폄하하는 경향이 농후한 사회에서 살아왔다."(p128)라는 시인 고은의 주장에 지독히 공감하며, 제가 살고 있는 사회가 그러하다라는 것이 너무도 싫다라는 견해만을 가지고 살아왔을 뿐입니다. 이러하 사회의 분위기를 싫어하기만 했을 뿐, 우리 사회가 왜 이렇게 되어왔는가에 대해서는 알아보려 하지 않았었지요. 반만년 어쩌구의 유구한 역사를 지녔다 자랑하는 나라가, 자신 역사에 있어 최후의 황비인 명성황후의 사진조차 분간해 내지 못하고 있는 수준이란 게 대체 말이나 되냐, 뭐 이러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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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개인이 단순히 관심이 유난하다라는 것만으로 이러한 책을 펴냈다라는 게 더더욱 쪽팔려지는 대한민국 사회입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묘가 이 곳 망우리공원에 있었다가 현재의 도산공원으로 이장된 내막은 정녕 이것이 대한민국의 수준일까?라는 한심함마저 느껴지게 하더군요.


"유상규군이 눕어있는 그겻 공동묘지에다가 무더주오."(p209)


도산 안창호 선생은 유언은 이러했다 합니다. 자신의 비서이자 아들 역할까지 했었던 유상규의 무덤 옆에 자신을 묻어달라는 것이었지요. 실제, 안창호 선생은 그의 유언대로 유상규의 무덤 옆에 안장되었었습니다. 그리고...


도산이 망우리에 묻힌 후 수주일간 양주경찰서는 묘지 입구에서 방문객을 일일이 심문했고, 그 후 1년간이나 묘지기에게 도산의 묘를 묻는 자의 주소오 이름을 적게 했다고 한다. 일제는 죽은 도산을 무서워했고, 도산을 찾는 국민의 마음을 두려워했다. …… 도산의 묘를 지키던 일제는 이미 알고 있었다. 묘를 찾는 사람들의 마음이 합해지면 무서운 힘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pp210-211)

하지만! --- "1973년 정부는 서울 강남에 새로 닦은 큰 길에 도산의 이름을 붙이고, 도산공원도 만들어 도산의 묘를 망우리묘지에서 이장"(p209)해버립니다. 이에 대해 쏟아놓고 있는 저자의 다음 글은,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 사회의 수준을 그야말로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지요. 지금 우리는... 이러했었던 정부의 통치하에서,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느냐 마느냐로 다투는 수준의 정치를 보여주고 있는 사회에서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는 겁니다.  


도산은 그가 원해서 망우리묘지에 묻힌 후 30년 만에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장됐다. 그러나 그의 넋만은 강남으로 이장되지 않았으리라. 죽은 도산이 말을 할 수 있었다면 이장을 거부했거나 사랑했던 유상규도 함께 데려갔을 것이다. 하지만 후세인은 도산대로를 장식할 도산의 유해가 중요했지, 도산의 말은 중요하지 않았다. 도산은 민중과 같이, 독립운동의 동지와 함께, 평범한 국민들과 함께하는 공동묘지에 묻히기를 원했다. 세상은 산 자들의 것, 고인의 말은 세인의 필요에 따라 인용되고 때로는 묵살된다.(p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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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독립운동을 할 때 돈이 준비되어서 한 것도 아니고 가능성이 있어서 한 것도 아니다. 옳은 일이기에, 또 아니하고는 안 될 일이기에 목숨을 걸고 싸웠지 아니하나."1(p221)


앞서 읽었던 두 권의 책에 대한 감상문에 적었었던, 일제하 친일 행적을 보였던 인물들에 대한 저의 이제까지 생각을 다시 한 번 곰곰이 살펴보도록 만들어준 구절이었습니다. 역사란 것이, 그리고 현재란 것이 오로지 교과서에 등장하는 위인들에 의해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자명한 사실이야말로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각인시켜주어야 할 진짜 '역사'가 아닐까 생각됩니다만, 이처럼 --- 우리보다 앞서 살다 돌아가신 분들이 목숨을 걸고 싸워 만들어 낸 대한민국  현실이란 그저...


"역사는 단지 지나간 것이 아니다. 현재의 권력은 언제나 기억을 독점하고자 하며, 그래서 기억을 둘러싼 현재의 투쟁은 계속된다."2



▶ 짧은 한두 마디 : "기억되지 못한 기억엔 기억해선 안 되는 ‘역사적인’ 이유가 숨겨져 있다."3


※ 함께 읽어보면 좋을 듯한 책들

김형민 著, 「그들이 살았던 오늘

- 역사채널e 著, 「역사e 


덧> 사놓은지 정확히 2년만에 읽어보았거늘, 얼마 전 개정판이 나왔더군요. 이젠... 책 사놓고 빨랑빨랑 좀 읽어야 할 듯. --;;



 

  1. 죽산 조봉암 선생의 연보비에 쓰여있는 글귀.
  2. 김연철 외 共著, 「만약에 한국사」, p5, 페이퍼로드 刊, 2011.
  3. 김진혁, 前 EBS 《지식채널ⓔ》PD가 쓴 「역사e」의 추천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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