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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쇠 ㅣ 창비세계문학 16
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 이한정 옮김 / 창비 / 2013년 6월
평점 :
예전에도 한 번 적었었지만 --- C를 이야기하기 위해 친구를 만났는데 (혹은, 친구를 만났는데 C를 이야기하고 싶어졌거늘) , C를 이야기하기 위해선 B를 먼저 이야기해야한다라는 생각을 하게되고, B를 설명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A로 그날의 이야기를 시작하다보면, (이건 일방적 독백이 아닌 둘 사이의 대화가 주메뉴인 술자리이기에, 친구로부터의 반응을 곁들이다보면) 그 A에 관한 이야기는 어느덧 A'으로, 또 A"로 곁가지를 치게되어 결국! C근처에는 이르러보지도 못하고 그날의 술자리가 끝맺음되는 경우가 대부분인게 저의 화법입니다. 그러한! 저이기에, 이 독특하기 짝이 없는 작품 「열쇠」에 대한 감상문을 어찌, 옆길로 새지 않고 적어내야할 지 꽤나 난감하네요. 암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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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타의 사회과학들도 그러하겠지만) 경제학 교과서의 시작은 매우매우 전형적(typical)인 설정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많이 갖고 싶고, 많이 먹으면 배불러지고, 아픈 건 싫어하고 등등의 매우 일반적(standard)인 인물이 분석의 대상이지요. 이런 설정은 사실 학부의 과정 내내 유지되고 있으며, 대학원에서도 딱히 큰 이탈(deviation)을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닐 때 존재 이유가 있다'라는, ('사회학'에게만 지워진 짐이 아닌) 전체 사회과학의 존재 이유는 그처럼 전형적이고 일반적인 대상들(만)을 설명해냈다하여 너의 임무가 끝났노라!라 절대 말해주지 않습니다. 고로, 이제 경제학은 '전형적이고 일반적'이라는 표현의 반대말로서인 '특별한/독특한/이상한/이해되지 않는/변종·변태'의 대상들까지도 경제학의 렌즈로 설명해내야 하는 역할 (내지는 의무/임무)까지도 가지게 되는겁니다. 물론, 그들 중 특정 대상에 대해서는 굳이 경제학이 이런 것까지 설명할 수 있어야하느냐 (혹은 설명해야하느냐)라는 불만이 생겨날 수도 있겠으나, 어디까지나 그건 연구자가/만이 가지고 있는 선택의 자유이듯! --- 이 독특한 작품, 「열쇠」에 대해, 뭐 이렇게 하고싶은 말이 많냐?라는 (어처구니 없다는 뉘앙스의) 의문이 있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독자로서 전, 이 작품을 읽고 쓰게 될 감상문을 통해, 이 소설로부터도 (저같은) 누군가는 어처구니스러운 것을 찾아낼 수 있다라는 걸 뭔가 좀 설득력있게 보여내고 싶다라는 욕심이 생기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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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의 기본 관심/숙제는 간단합니다. ①주어진 제약조건하에서 ②효용함수를 최대화하는 것이지요. ①개인마다 처해있는/지니고 있는 제약조건은 (각 개인의 통장잔고가 그러하듯 거의) 모두 다 다릅니다. 그러하기에 이 '최대화' 문제는 (우리들 삶의 모습이 다 다른 것처럼) 개인마다 각기 다른 해답을 내놓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해답의 상이(相異)함은 예의 ②효용함수의 차이로부터도 기인되기도 합니다. 똑같은 조건을 제시받은 두 사람의 선택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 바로 이 효용함수의 차이 때문인 경우이지요. --- 이 작품에 등장하는 네 사람의 주요인물들 - 남편, 부인, 딸, 그리고 사윗감(키무라) - 의 효용함수는 '우리들'의 효용함수와는 많이 다를 뿐 아니라, (아무리 '일반적'의 범위를 넓게 잡는다해도) '일반적'이지도 않습니다. 위에서 사용했던 '일반적'의 반대말들인 '특별한/독특한/이상한/이해되지 않는/변종·변태'들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주저없이 (가장 극단에 위치하고 있는) '변태'를 꼽게 될 정도로 말이죠. (이 감상문에서는 작품의 줄거리를 가급적 보여내지 않겠습니다. 모든 등장인물과 설정들이 독특해서이지만, 특히!나 맨 마지막 문장의 설정은 「롤리타」를 우습게 능가할만큼 '변태'이기 때문입니다.)
【 게임이론 】
"나라는 사람의 마음은 단지 한 사람 나 이외에는 아는 사람이 없다." (p194)
이 작품의 작가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그의 말년에 쓴 어느 수필에 실려있는 문구라고 합니다. 이 말을 '사실이 아니다'라 말할 수는 없겠으나, <게임이론>에서는 (최소한 모형 내에서는) 사실이 아닌 것이 됩니다. <게임이론>은 '나는 너의 다음 선택을 알고 있고(A), 너도 A를 또한 알고 있으며(B), 나 역시 B를 알고 있는데(C), 너는 C도 알고 있고 ……'라는, 사뭇 현실적이지 않은 듯한, 하지만 실제로는 지극히 현실에서 보여지고 있는 '완전한 지식(perfect knowledge)'을 가정하고 있기에 '나의 마음은 나만이 알고 있는 것이다'라는 위의 문장은 (예의 '이론적으로는') 틀린 것이 된다라는 거지요.
"결혼이 가진 매력 중에 하나는 서로를 속이는 생활이 부부 사이에 필요하다는 거야."(p13)
-오스카 와일드 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더클래식 刊, 2012.
5년만 지나면 배우자의 모든 것을 알게 된다는 결혼 생활에서, 정녕 '나의 마음은 나만 알고있지'라 자신할 수 있을까요? 전 그럴 수 없다라 생각합니다만 --- 이 소설은 위 두 인용문장들이 절묘하게 결합된 한 부부 사이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 '나는 내 배우자를 속이는 데 성공함으로써 내 속내를 들키지 않을 수 있다'라는 거지요.
이 작품 「열쇠」는 남편과 아내의 일기장이 번갈아 나오는 형식을 띠고 있습니다. 헌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서로가 서로에게 보여주기 위한 속내를 가지고 일기를 쓰고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각자의 일기장에는 '내 배우자가 나의 이 일기장을 몰래 훔쳐보지는 않을 것이라 믿는다'라는 표면적 선언이 들어있기는 합니다만, 둘의 속내는 '부디 읽어달라!'라는 것이며, 실제로 '읽고 있을 것이다'라 확신하고 있기도 합니다. <게임이론>에서의 '완전한 지식'이 완벽하게 가미된 일기장이라는 거지요. --- 이런 속내를 지닌 채 기록되어지는 각자의 일기장에 담겨져 있는 속마음이란 것이!!!
【 성공하는 불륜 】
'나는 여러 번 오르가슴에 이른다.'(p44)
- 파울료 코엘료 作, 「불륜」, 문학동네 刊, 2014.
「불륜」의 여주인공 린다가 고등학교 동창이었던 야코프와 첫 신체적 유희를 즐긴 날 저녁, 남편과의 섹스를 한 후 느꼈던 감정을 적어낸 부분입니다. 이후 그녀는 아코프와 잠자리를 하는 것이 향후 자신의 결혼생활에 도움이 될 지도 모르겠다라고까지 생각하게 되지요. 솔직히 말해, 여기까지는 '뭐, 그럴 수도 있겠!'이라 받아들일 수 있다라 생각합니다... 만!
「열쇠」의 주인공 중 한 명인 남편은 여기서 더 나아가 본인이 아닌, 자신의 아내가 다른 남자와 연애감정을 가지고 있다라는 상상으로부터 성적 쾌락을 느끼는 사람입니다. 당연히 이런 취향을 '일반적'이라고는 말할 수 없으며, 예의 '변태'라는 수준의 '일반적임의 반대말'이 선택되어야 하지요. 하지만 --- 다음의 문구를 잘 읽어보면, 이러한 남편의 성적 취향 덕분(?)에, 제가 꽤나 찾아 읽고 싶어했던 '성공하는 불륜'의 이야기가 펼쳐질 가능성이 엿보인다라는 게 저를 확!!! 하고 끄집어 당기는 겁니다.
나는 질투를 남몰래 즐기고 있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원래 나는 질투를 느끼면 그 방면의 충동이 일어난다. …… 그날 밤 나는 키무라에 대한 질투를 이용해서 아내를 즐겁게 하는 데 성공했다. 나는 앞으로 우리 부부의 성생활을 계속 만족스럽게 하기 위해 키무라라는 자극제의 존재가 없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아내에게 주의를 주고 싶은 점은, …… 자극제로서의 이용범위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아내가 상당히 아슬아슬한 지경까지 가도 좋다. 아슬아슬하면 할수록 좋다.(p25)
남편은 (비록 자신의 주인공은 아니었지만) '성공하는 불륜'의 조건을 완벽하게 알고 있었던 겁니다.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실제 그것을 현실에 적용시켰었지요. 결혼한 사람으로서의 feasible set을 절대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라는 점말이죠. 그 조건만 지켜진다면 아내의 (육체적이건 혹은 정신적인 것만이건) 외도는 자신이 일 당사자인 이 '부부라는 관계'를 깨뜨리지도 않으며, 오히려 자신의 효용함수에 (+)의 영향을 미치니, 굳이 그것을 막거나 화를 낼 필요조차 없다는 이 설정은 사실 --- 제가 그토록 읽어보고싶었던 '성공하는 불륜'의 소설이었기에, 그러나! 제가 어렴풋이라도 그려보았던 '성공하는 불륜'의 방식은 아니었다라는, 이 두 가지의 상반된 전개로 인해 이 소설에 대해 제가 구구절절 하고픈 말이 많아진 겁니다. (「불륜」에서 린다의 남편 역시 아내의 불륜을 알고 있는 듯 보였지만 끝내 모른척하며 린다를 품어냄으로써 그녀를 불륜으로부터 벗어나게 도와주었죠. 하지만 그 소설에선 린다와 야코프가 결국 헤어지게 되므로 제 기준에서의 '성공한 불륜'은 되지못했습니다.) 과연 그의 아내는 (그녀의 불륜을 적극적으로 즐기는 이 특이한) 남편이 용인한 한계를 벗어나지 않았을까요? 혹 벗어났었다 하더라도 벗어나지 않은 것처럼 남편을 믿게 만들 수 있었을까요? 그리하여 이 사랑은 결국 '성공하는 불륜'이 되었을까요?
「불륜」에서 작가 파울로 코엘료는 불륜을 '마약'에 비유했더랬습니다. 이 소설 「열쇠」 역시, 이와같은 '성공하는 불륜'에 알맞는 설정에도 불구하고 예의 '불륜'에는 마약의 부작용과 똑같은 후유증이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 남편 --- 나는 처음에는 상당한 간격을 두고 키무라를 아내와 접촉하게 했다. 그런데 차츰 두 사람에게서 받는 자극에 익숙해지면서 만족을 얻지 못하게 되자 키무라와 아내의 관계를 더욱 밀접하도록 만들었다.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나의 질투는 증가했고 질투가 증가할수록 쾌감을 느껴 마지막 목표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아내도 그것을 바라고 있고 나 자신도 그것을 희망해서 멈출 수가 없다.(p94)
● 아내 --- 남편이 질투를 느끼도록 만드는 것은 남편을 행복하게 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남편을 자극하는 일이 나의 유일한 목적이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 나는 키무라 씨를 사랑하는 그런 경지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좋아하는 것만은 사실이다. 마음만 먹으면 사랑할 수도 있다. …… 지금까지는 여기에 엄중한 선을 긋고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 않도록 노력해왔지만, 이제부터는 자칫 발을 헛디뎌서 관계가 깊어질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pp83-84)
【 수단과 목적의 전이(轉移)와 변질 】
저자들은 전통경제학이 경제성장을 오로지 물질적 가치로만 평가하고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문제가 시작된다 말하고 있습니다. …… 예를 들어 '일 년에 한 국가에서 생산되고 교환되는 재화와 서비스를 돈으로 환산한 수치'인 국내총생산(GDP)는 분명 국가 경제의 활동 수준을 측정하는 수단으로 고안된 것인데, 현재에는 이 <수단>이 국가 경제활동의 <목표>가 되어 버렸다는 것이지요. (매년 '목표 경제성장률'이라는 게 발표되지요. 심지어 대통령 선거의 공약으로도 등장하는. --;; ) 이러한 수단과 목적의 전이는 열대우림의 파괴, 공해, 범죄 등을 경제성장의 대가로 치러야하는 부작용들을 (그 이름으로부터도 알 수 있듯이) '외부효과'라는 이름으로 간단히 제외시켜버리는 반면, 이러한 부작용들을 교정하기 위한 경제활동들 - 예를 들어 농약, 총기류 등의 제조 - 은 오히려 경제성장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요인으로 상정하게 되는 역설적 상황을 낳게합니다. 이런 기준의 '경제성장'은 결코 발전이 아니며, 오히려 (전통경제학자들이 변화 혹은 진보라 칭하는) 경제성장으로 인해 삶의 질은 ,어떤 면에서는 실질적 소득마저도, 더 저하되었다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입니다.
- 데이비드 보일 · 앤드류 심스 共著, 「이기적 경제학 이타적 경제학」의 감상문 중.
'일기장을 작성한다'의 목표는, 일기장의 사전(事典)적 정의가 어찌되었건, 나의 속마음을 솔직하게 활자로 표현하고 정리해보는 행위이거늘, 이 소설 속 남편과 아내는 모두! 상대방이 '나의 일기를 몰래 읽어주기를 바라고 있었'(p178)고, 그럼으로써 자신이 하고픈 말을 간접적으로 상대에게 전달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삐뚤어진 '일기장의 목표'는 결국 다음과 같은 기이한 상황마저 초래하게 되지요. 하지만!
남편이나 나는 서로가 일기를 훔쳐본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도중에 몇 개의 장애물을 설치하고 장벽을 만드는 등 가능한 한 번거롭게 만들었다. 그리고 상대가 과연 표적에 도달할 수 있을지 모호하게 만들었다. 그것이 우리의 취미였다.(p179)
이 소설이 보여주고 있는 더 큰 '수단과 목적의 전이'는 바로! --- '부부라는 관계(relation)'와 '부부관계(sex)'사이에 발생되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결혼 적령기의 두 남녀는 '이 여자/남자와의 섹스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결혼이란 걸 선택하지는 않습니다. (적어도 제 가치관에서의) '부부관계'는 그저 '부부라는 관계'로부터 파생되는 (일정 기간동안만큼은 '가장 커다란'으로 작용하는) 부수적 효용이지요. 헌데! --- 이 작품 속 남편은 '부부라는 관계'가 지니고 있는 feasible set의 가장 바깥쪽 경계로까지 자신의 아내를 밀어냄으로써 (아내가 아닌) 자신의 효용, 즉 자기 만족/행복의 증대를 추구하고 있으며, 아내 역시 그러한 남편의 기질을 충족시켜주기 위해 시작된 이 (기혼자인 자신이 지니고 있는 feasible set을 넘나드는) 불륜의 관계를 끝까지 'feasible set을 넘지는 않았으나, 여전히 진행중'으로 보여지게 하는데 성공합니다. 다시 말해!!!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각자가 상대를 향해 설정해놓고 있는 '수단과 목적'이란 것이, 서로가 보여지기 위해 쓰는 일기장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완벽한 지식'을 교묘히 이용해낸 결과 어느덧 --- 서로의 '수단과 목적'이 애초의 자리를 이탈하여, 뒤엉키고 서로 뒤바뀌게 되어 끝내는 완전히 다른 성질의 '수단이자 목적'이 되어버렸다라는 거지요. 여기서!!!
이 소설이 설정해 놓고 있는 '애초의 수단과 목적'이라는 것이 놀라웠던 것 이상으로, '변질된 수단과 목적'의 모습은 더더욱 충격적입니다. 그 와중에 독자는 (비록 이 작품 속에서 쓰여진 구절은 아니나) "나라는 사람의 마음은 단지 한 사람 나 이외에는 아는 사람이 없다"라는 작가의 말이 이 작품에서 어떻게 작동되고 있는가가 예의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제 생각엔 바로 이 점이 --- 작가가 이 작품의 제목을 왜! '열쇠'로 하였을까의 의문에 대한 해답이다라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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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일듯 말듯한 반투명의 유리로 만들어져있는, 그래서 더더욱 열어보고 싶어 죽겠는 상자가 내 앞에 있는데, 내겐 열쇠가 없어 안타깝기만 합니다. 이때 만약! 아예 이 상자 자체가 사라진다면, 그 궁금증은 더욱 커지는 걸까요? 아님 사라지게 될까요? --- 당사자인 나의 궁금증은 더욱 커지겠지만, 열쇠가 없어 발을 동동구르던 나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제3자의 궁금증은 이내 곧 사라지게 되겠죠. 단!!!
일반적 예상과는 달리, '수단과 목적의 전이'라는 설정처럼, 독자가 '나'가 되며, '제3자'는 소설 속 등장인물 중 한 명이라 표현될 수 있는 이 소설! 그 불륜은 과연... 성공했을까요? --- 제가 생각했었던 개념의 '성공'은 아니지만, 이 소설 속 불륜은 당연히 '성공하였다'라 말해져야한다라 생각합니다. 이 소설의 마지막이 그걸 말해주고 있지요. 정!말!로! 이해되지 않는, 매우매우 충격적인 방식으로 말입니다.
▶ 짧은 한두 마디 : 하지만... 이런 방식의 '성공'은 너무도 당황스럽. --;;
※ 읽어본, '불륜'에 관한 소설
- 이문열 作, 「레테의 연가」
- 옌렌 커 作,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 히가시노 게이고 作, 「새벽 거리에서」
- 파울로 코엘료 作, 「불륜」
- <창비>에서 출판된 이 책에는 '타니자끼 준이찌로오'라 저자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습니다만, 이 포스트에선 알라딘 서점의 표기를 사용했습니다.
- 제 술자리의 99%는 두 명 정원이에요.
- 노명우 著, 「세상물정의 사회학」, 사계절刊, 2013. 의 <머리말>중.
- 사실, 요즘 세상은 경제학에게 '세상을 구해내야하는 임무'같은 걸 요구하지만, 저 개인적으로 경제학의 참 매력은 '세상을 분석하는 도구'로 사용되어질 때 가장 빛을 발한다라 생각합니다.
- 상상 밖의 엄청나게 큰 사람이나 사물. - 출처 : 네이버 국어사전
- 쉽게 말해 '행복'이라 생각하면 될 듯.
- 가장 흔한 예가 바로, '당신이 무인도에 가야할 때 가져가고 싶은 것 다섯 가지를 꼽는다면?'류의 질문이지요.
- 가위바위보를 할 때 상대방이 먼저 '나는 가위를 낼께!'라 선언하는 순간, 나의 머리속에는 '진짜 상대방이 가위를 낸다면 나는 바위를, 그걸 상대방이 아니까 보를 낼 것이고, 그럼 나는 가위를?'과 같은, 혹은 바둑이나 장기에서의 수싸움 등은 예의 위 '완전한 지식'의 현실적 예이므로, 이를 '현실적이지 않은 가정'이라 말할 수는 없겠지요.
- "One charm of marriage is that it makes a life of deception absolutely necessary for both parties." - 영문판 p12.
- 혹은 '내 진짜 속내를 감춘 채 다른 가상의 속내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여질 수 있게 배우자를 속일 수 있다.'
- ●남편 - '앞으로 나는 그녀가 이것을 실제로 훔쳐보든 그러지 않든 개의치 않고 일기를 읽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간접적으로 그녀에게 말을 건넨다는 느낌으로 이 일기를 쓰겠다.'(p10)
●아내 - '내가 일기를 쓰려고 마음먹은 첫번째 이유는, 나는 남편의 일기장이 있는 곳을 알고 있는 반면, 남편은 내가 일기를 쓰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모른다는 그 우월감이 더할나위 없이 즐겁기 때문이다.(p15) …… 지금부터는 이런 방법으로 남편에게 간접적으로 말을 하려고 한다. 직접적으로는 부끄러워서 이야기하지 못할 것도 이런 방식으로라면 할 수 있다.'(p59) - 이 범위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는 정확히 나와있지 않습니다만, 「새벽 거리에서」의 '개방적 정의'가 말하고 있는 '섹스를 하느냐의 여부'가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