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션 - 어느 괴짜 과학자의 화성판 어드벤처 생존기
앤디 위어 지음, 박아람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아무래도 좆됐다. 그것이 내가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론이다. 나는 좆됐다.(p14)

​「롤리타」나 「이방인」 등의 작품들이 '매력적인 첫 문장/문단'으로 유명하다지만, (이 두 작품들을 포함하여) 이제까지 제가 읽어 본 그 어떤 소설도 이 작품 「마션」의, 이 소설을 읽고 감상문을 쓰시는 분들의 아마도 거의 전부 다!가 빼놓지 않고 인용할 듯 싶은, 이 첫 문장/문단을 접했을 때의 놀라움과 쾌감을 따라가지는 못했습니다. 암튼!!! --- "I'm pretty much fucked1. That's my considered opinion. Fucked."2 지극히 평범한 원문에 '좆됐다'라는 특별한! 단어를 선택해 준 역자의 용기와 센스에 한 사람의 독자로서 (게다가 '좆'이란 단어의 정확한 철자도 배울 수 있었음데 대한 ^^;;) 감사함마저 느끼고 있다라는 인사를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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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마크 와트니는 '일련의 기막힌 사건들로 인해 죽을 뻔했다가 그보다 훨씬 더 기막힌 사건들로 인해 살아'3날 수 있었습니다. 다른 곳도 아닌 화성(Mars)에서 말이죠.4 바로 앞에 읽었던 두 '로빈슨 크루소'들이 처한 상황과는 이처럼 아예 차원이 다른겁니다. 이처럼 --- '구출을 통한 생존'을 어렴풋하게나마 처음부터 기대했었던 두 로빈슨 크루소들과는 달리, 마크 와트니는 그 '구출을 통한 생존'이란 걸 전혀 기대할 수 없는, 그저 자신이 살아 있다라는 걸 지구의 그 누구도 알지 못하며, 다음 화성탐사선이 오기까지는 (두 '로빈슨 크루소'들이 섬에서 보냈던 시간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매우 짧은?) 4년이라는 시간이 남았으며, 그 탐사선마저도 화성의 어느 곳에 착륙할지 마크 와트니 자신은 알지 못하고 있다라는 것 뿐.

'마크 와트니는 화성에서 사망한 유일한 인간이다.' 그리고 십중팔구 그것이 현실이 될 것이다. 나는 이곳에서 죽을 게 확실하니까.(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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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하게 생각할 것 전혀 없는, 아예 처음부터 전체적인 왁꾸가 딱 보여지는 소설입니다. 뻔하잖아요. '죽을 게 확실'하다라 생각하는 주인공이 결국 '좆된 채' 끝맺음되는 것이 아닌, 이래저래, 물론 이겨내지 못할 것 같은 위기들이 닥치겠지만 그것들 역시 이래저래 다 이겨내고 결국엔 지구로 살아돌아올 꺼라는 결말은, (미국의 영화들에서 보여졌었듯) 심지어 '권장 결말'쯤으로 불릴 만큼 당연할 것이니까요. 그렇게 --- '화성에 홀로 남겨진 인간이 긴 세월을 살아남아 결국엔 지구로 귀환한다'라는, 뭔가 복잡한 설정들이 동원되어야만 말이 되게 이어지게 될 것 같은 스토리를, 작가는/소설은 주인공 마크 와트니에게 '식물학자 겸 기계공학자'5라는 아이덴티티를 부여함으로써 사뭇 허망하리만큼 간단!하게6전개해나가고 있습니다. (이처럼 주인공에게 특정 아이덴티티를 부여하여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이 극대화되어 보여지는 소설이 바로 「창문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입니다. --- 작가 요나스 요나손은 주인공 알란 옹에게 '정치와 종교에 대해 이야기하길 극도로 꺼려한다''술을 즐겨한다'라는, 지극히 평범한 두 개의 아이덴티티를 부여해놓음으로써 정치와 종교를 빼고는 이야기할 수 없는 시대를 교묘/무사히 통과해가면서, 또한 ②'술을 즐겨한다'라는 설정을 이용해 역사적 사실들의 허구적 연결을 만들어내고 있었었지요.7)


일단! 화성에 홀로 남겨진 마크 와트니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은 우선 지구와의 교신, 그리고 산소와 물, 식량과 거주할 공간의 확보등입니다. 뭐 이러한 것들이 해결된다 해서 그의 생존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러니까 --- 예상되는 4년이라는 시간을 주인공 마크 와트니가 어케든 반드시 살아내야겠다!라 결심한 것도, 그것을 기대한 것도 아니었지만.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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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다'가 아닌, '살아야 한다!'라는 의지를 불러일으키는 무언가가, 앞서 읽었었던 두 버젼의 '로빈슨 크루소'들에게 있었었던가가 뚜렷이 떠오르지가 않습니다. 이 소설 속 마크 와트니  또한 '이제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8라 결심은 하지만, 그 결심이 딱히 특정한 '살아야 한다!'라는 이유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요.9 --- '자식이 뭐라고, 이게 다 자식 때문에'는 흔히 대한민국 남자들의 생존이유로 거론되곤 합니다. 이게 '터무니없는 변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렇다면 대한민국 남자의 인생에서 '자식 (혹은 부모)'이란 변수를 제거해낸다면 과연 그들/우리는 어떠한 '살아야 한다!'의 이유를 가지게 될까요? 그런게 있기는 할까요? 그저 관성적으로 '살아가는' 것 말고, 반드시 이 삶을 '살아야 한다!'로 만들어주는/줄 수 있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기는 한가요? (다니엘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는 미혼이었지만, 미셸 투르니에의 '로빈슨M'은 기혼에 자식까지 있는 설정이었었지요. 이 소설의 마크 와트니는 미혼남입니다.) 닥치고!!!


야자수의 나무껍질을 떼어낸 다음 나무 막대 두 개를 비벼 마찰을 일으키려고 …… 그런 것은 아니다. 그게 아니라, 가늘게 쪼갠 막대에 순산소를 흘려보내고 스파크를 일으켰다.(p63) 

앞서의 두 '로빈슨 크루소들'이 각각 회전숫돌과 유칼리나무를 이용했었던 것과는 비교되게, 21세기 초반의 '로빈슨 크루소'는 이렇게 불을 만들어내는 겁니다. 네! 세월이 흘렀고, 시대가 바뀌었으며 그리하여 세상은 변해있는거니까요. 게다가 이 소설은 다니엘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와 미셸 투르니에의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에서 보여졌던 신학적·철학적 고민들 같은 걸로 독자를 괴롭히고 있지도 않습니다. 제 생각에 이 소설 전체에서 유일하게 보여지는 철학적 고민(이라 불리울 수있는 것)은 단지 (「정의란 무엇인가?」의 1장에도 등장했었던) '하나는 한 사람의 목숨이 달려 있지만 목숨을 잃을 확률이 놓고, 다른 하나는 여섯 사람의 목숨이 걸려 있지만 목숨을 잃을 확률이 낮은 거군요. 이걸 어떻게 선택합니까?'10 뿐이지요. 그나마 주인공의 고민마저도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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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렇게, 그런 상황에 처한 마크 와트니에게 철학적 고민이 보여지지 않는다는 점이 이 소설에 대한 저의 만족도를 낮춰준 것은 절대 아닙니다. 세상을... 맨날 철학만 하며 사는 것엔 저도 반대하니까요. 이 책은 그냥... 한 마디로! '식물학자 겸 기계공학자' 한 사람이 자신의 공돌이 지식을 극대로 활용11하여 '좆 된 상황들을 심하게 좆 된 건 아니도록'12 만들어 끝내 화성에서 살아남았고, 거기에 예의 '동료애 · 인류애'가 더해지는 미국 영화의 '권장 결말'이 더해져 결국엔 그를 구출해 지구로 귀환시킨다라는, 마지막 장면엔 서로 부둥켜 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나사(NASA) 직원들과 그들 뒤에 서있는 미국 대통령의 모습이 자동적으로 떠올려지는 그런 소설이고, 딱! 그런 소설로만 이해하는 것이 '권장 독서법'이라 생각합니다. 고로!!! --- 이런 건, 제 아무리 깨알같은 유머 드립들이 나온다 하더라도 글로 되어 있는 소설을 읽는 것보다는 팝콘 씹으며 영화로 보는 것이 훨 낫겠다라는 거지요. 맥가이버의 눈부신 활약상을 글로 읽어봐야 큰 재미가 있겠습니까. 이런 건... 시각으로 즐겨야 제 맛 아니겠습니까.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곧 개봉된다는데, '꼭 봐아겠어!'까지는 아니기에 보게될지는 모르겠네요.) '유머 드립' 이야기가 나왔으니...


미국 영화들을 보면, 무지하게 위급한 상황에서도 주인공들이 꼭 '유머 드립'을 몇 개씩 내지르곤 하더만 그게... 저런 상황에서 과연 가능할까?하는 의문을, 저 개인적으론 매번 가지게 되더군요. 이 소설에도 그런 류의 '유머 드립'들이 꽤나 등장하는데, 그 중 마크 와트니를 구하러 다시 화성으로 되돌아간 동료 두 명 (남자 하나, 여자 하나임. 남자 둘 절대 아님!!!)이 마크 와트니와의 도킹을 앞두고, 그러니까 상당히 중요하고 위험할 수 있는 상황에서 나누는 다음의 대화는, '과연 가능할까?'가 아니라, 사뭇 '아! 저걸 저렇게 받아치다니!!!'라는 감탄어린 부러움을 불러일으켜주더군요. 딴 건 몰라도... 이 대화만큼은 영화 속에서도 꼭 살려내면 좋겠는데 과연. (아무래도... 영화를 보게될 듯.) 


 "나 미쳤나 봐. 내가 키스한 거 아무한테도 말하지마." "내가 그 키스 좋아한 거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p580) 

 

▶ Make a long story short !!! : 무인도에서 살아가는 신학도나 철학도의 이야기보다는, 화성에 홀로 남겨진 공학도의 생존기가 훨 잼나다. 내 아이에게 공과대학을 심하게 권장하고 싶어질만큼.



※ 두 가지 버젼의 '로빈슨 크루소' :

- 다니엘 디포 作, ​로빈슨 크루소

- 미셸 투르니에 作,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1. 'F-word'라고, 차마 그 본모습으로 불려지지도 못하던 fuck이라는 단어가 요즘 우리 가요엔 심심치않게 쓰여지더군요. 김예림의 '먼저 말해'를 듣다 후반부에 느닷없이, 그녀의 목소리로 fuck you라는 가사가 나와 정말 깜짝 놀랐었었었.
  2. 「The Martian」, Amazon Kindle edition, Broadway Books.
  3. 본문 p18.
  4. Martian : an inhabitant of Mars (화성에 살고 있는 생명체)
  5. 본문 p28.
  6. 이 과정 속엔 '복잡한 부분은 생략하고 결론만 얘기하자면'이란 문구 역시 적잖은 역할을 담당해주고 있지요.
  7. "주인공 알란이란 사람이 정치와 종교에 대해 이야기하길 극도로 꺼려한다라는 설정을 통해 소설은 애초부터 영화 <300>에서와 같이 역사에 대한 편향적 시각을 (무의식중에라도) 나타내게 될 우를 범할지도 모르는 상황을 미리 제거해놓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가 또한 술을 즐겨한다라는 설정으로 하여금 주인공의 행동이 만들어낸 결과물들에 대해 혹여라도 제기될 지 모를 사상적·정치적 편향성까지도 모두 excuse되도록 해놓고 있습니다. 생각하기에 따라선 무척이나 정교/교묘한 소설이지요." - 「창문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읽고 쓴 감상문 중.
  8. 본문 p112.
  9. 물론 "지금쯤 두 분(부모님)은 인간이 견딜 수 있는 최악의 고통을 경험하고 계실 텐데.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릴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 끝까지 살아남아 갚아드리는 수밖에.(p38)"라는 구절이 있기는 합니다만, 이것이 '자신 자체가 생존해야한다라는 독립적 이유'는 아니라 생각합니다.
  10. 본문 p335.
  11. 그 정도는 '나의 항문은 나의 두뇌 못지않게 나의 생존을 돕고 있다.'(p34)일 만큼, 정말로 '극대화'되어 있지요.
  12. '생각만큼 나쁘진 않은 것 같다. 뭐랄까. 좆 된 건 맞다. 심하게 좆 된 건 아니라는 얘기다.' - 본문 p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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