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 전2권 (한글판 + 영문판) 더클래식 세계문학 컬렉션 (한글판 + 영문판) 13
오스카 와일드 지음, 베스트트랜스 옮김 / 더클래식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 사실 모든 기쁨에는 쾌락과 마찬가지로 잔인함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p175)

●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천국과 지옥을 함께 갖고 있어요.(p209)

1886년에 발표되었던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통해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은 '한 개인 속에 내재되어 있는 선과 악의 성향'을 분리해 냈었었지요. 제가 그 작품을 읽고 대단하다!라 느꼈었던 이유는 전적으로! --- '개인'이 가분(可分)의 존재라는 개념 자체가 아예 없었던 당시에 처음으로, 한 인간의 본성과 하비투스를 분리해 보려는 시도를 했었었다라는 것 때문이었더랬습니다. 이후 1897년, 허버트 조지 웰스는 「투명 인간」을 통해 한 개인을 아예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분리해낸다는 발상을 선보여주었었으나, 아쉽게도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커다란 우산을 벗어나지는 못했다라는 느낌만을 저에게 주었었지요.


역시나 이들과 같은 영국 작가인 오스카 와일드1는, (그 두 작품의 중간 시기인) 1891년에 발표한 이 작품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통해, 한 개인의 영혼과 육체를 분리한다라는, 또 다른 새로운 시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작품의 주제 자체가 새롭다거나, 놀랍다거나 하는 느낌을 받을 수는 없겠습니다만!2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특징을 '스토리 텔링에의 집중'으로 잡을 수 있다라면, 「투명 인간」은 (스토리 텔링 보다는) 뭔가 철학적 함의를 독자들에게 안겨주려 한 듯 싶으나, (최소한 저의 독해로는) 매우 설익은 내용일 뿐이었었다라면 --- 이 작품은 (위 두 소설의 중간 시점에 발표되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두 작품의 특징을 적절하게 잘 조합해 내고 있다라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 두 작품들에 비해 이 소설에는 작가의 개입이 너무도 많다는 단점이 있다는 생각도 지울 수는 없더군요. ('헨리 워튼'이라는 등장 인물을 앞세워, 자신의 지식을 담아내리라 아주 작정이라도 한 듯한 현란한 서술과 묘사들은3 이 작품의 <서문>에서부터 정말로 무시무시한(!) 전조를 보여주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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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보아 세 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소설입니다. --- 주인공 도리언 그레이는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인 외모의 소유자였었습니다. 그런 그를 본 화가 바질 홀워드는 사뭇 '숭배'의 경지로까지 도리언에게 매혹되어 그의 전신 초상화를 그려냈지요. 바질은 자신의 친구인 헨리 워튼에게는 도리언을 소개해주고 싶지 않아했는데, 그 이유는 헨리의 독특한 사고가 도리언의 맑고 깨끗한 정신에 때를 묻여 자칫 그의 외모에까지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해서였었습니다...만!!! '슬픈 예감은 항상 틀리지 않는다'라는 노랫말처럼 헨리와 도리언은 서로를 알게 되었고 심지어 도리언은 헨리를 매우 좋아하게까지 되버립니다.

헨리 역시 도리언의 매력적인 외모와 젊음에 감탄을 하며 부러움을 표합니다만, 도리언의 젊음 역시 유한한 것이며 젋었을 때 그 젊음을 한껏 즐기라, 순진하기만한 도리언에게 충고해줍니다. 그리고는... 훗날 도리언의 인생 전체를 완전히 뒤바꿔놓은 결정적 두 마디를 건네 주지요.


​유혹을 없애는 유일한 방법은 그 유혹에 굴복하는 거예요. 유혹에 저항하려 들면, 당신 영혼은 스스로 금지한 것에 대한 갈망과 기이하고 비합법적인 것들에 대한 욕망으로 병이 들 겁니다.(p32)

지킬 박사는 하비투스로부터의 유혹에 굴복하지 않았었지요. 그러했기에 스스로 금지한 것들에 대한 갈망과 욕망에 괴로워하다가 결국엔 '하이드'로의 변신을 꾀하게 되었던 겁니다. 「투명 인간」의 주인공 그리핀 역시 자신이 투명 인간이 되어 얻게 되는 불가시성(不可視性)으로부터 얻게 될 '비밀, 힘, 자유'로 인해 자신이 어떤 죄악을 저지른다 해도 벌 받을 염려가 없다라는 점에 뿅갔었었지요.

도리언 역시 세월이 흐르면 인간의 외모는 추하게 변할 수 밖에 없다는 헨리의 말을 듣고는, 자신의 아름다움이 사라진다라는 것에, 단순한 아쉬움의 차원이 아닌 사뭇 두려움까지를 느끼게 됩니다. 이 과정은 매우 흥미롭고도, 작품 전반에 걸쳐 매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 바질 홀워드가 도리언과 헨리 워튼이 서로 알게 되지 않기를 바랬었다라 했지요. 바질 홀워드는 "그에게 어떤 영향도 주지 말게. 자네가 끼는 영향은 좋은 게 없거든"(p26)이라며 헨리 워튼에게 부탁까지 했었습니다만, 이에 대한 헨리 워튼의 대답이야말로 그의 독특한 사고 방식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 "좋은 영향이란 없는 거예요. 영향이란 게 모두 부도덕한 것이지. ……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자기의 영혼을 주는 것과 비슷하단 말이거든요. 그렇게 되면 영향을 받은 사람은 자기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게 되고, 자신의 열정으로 불타오르는 것도 못 한다는 겁니다. 선함이라는 것도 사실은 자신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게 아닌 것이고 죄도 역시 마찬가지일 거예요. 혹시 죄라는 게 있다면요."(pp30-31)


​헨리 워튼의 그 몇 마디의 말에 도리언 그레이는 '늙어간다'라는 것에 전에 없던 충격을 받게 되고4, 무심결에 다음과 같은 기원을 뱉어버리게 됩니다. 뭐 그냥... '아 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수준의 그런 바램 말이죠.


"오직 젊음만이 간직할 만한 가치가 있는 거예요. 나는 내가 늙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바로 그 순간에 스스로 목숨을 끊을 거예요.(p42) …… 저는 아름다움이 사라지지 않는 모든 것에 질투를 느껴요. 당신이 그린 내 초상화에도 질투를 느껴요. 내가 잃어버릴 수 밖에 없는 것을 이 초상화는 간직하고 있잖아요.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나는 내가 가진 것을 점점 잃어버릴 텐데 이 초상화는 계속 가지고 있겠죠. 아, 반대로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만을 나는 항상 그대로 젊음을 간직하고 이 그림이 변한다면!"(p43)

예의 소설은 도리언 그레이의 그러한 바램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 그러한 비현실적인 일이 일어났다라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소설이라는 장르가 독자에게 선사할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라 생각하는 '만약 그런 일이 내게 생긴다면!'이라는 간접적 경험의 맥락으로 보아) 그러한 일이 일어났고, 그 이후 도리언 그레이가 (그리고 어쩌면 우리들 모두가!!!) 그 일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가, 그럼으로 하여 어떻게 변화하여 가는가를 보는 것이 이 작품의 진정한 메세지가 아닐까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실 이러한 '반응과 변화'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나 「투명 인간」에서도 모두 볼 수 있었던 내용들입니다만, 두 작품들은 그 '반응과 변화'에 보다는 '원상 회복의 가능성'에 더 큰 강조점을 둠으로써, 애초 그러한 '바램' 자체가 잘못된 것이었었다라는 메세지5​ 보여주고 있었다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서는 주인공 도리언 그레이는 '원상 회복'을 원치 않지요.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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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젊음을 소유할 수 있게 되었다!'라는 설정이 비록 이 작품의 이야기를 이어가주는 핵심적 모멘텀 중 하나이기는 하지만, 사실 이는 우리들 마음 속에 있는 수많은 '비현실적 소망들' 중 하나를 대변하고 있을 뿐이라 생각합니다. 누구나 '나의 외모가 젊음을 ('영원히'까지는 아니더라도) 오랜 시간 동안 유지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바램은 한 번쯤 다 가져보는 거니까요. 고로, 이 작품에서 정말 중요한 점은 (세월의 흐름을 거스르는) '젊음의 유지'가 아니라!!! 

나이가 들어가며, 그러하기에 세상과 점점 더 많이/오랫동안 접촉을 하게되면서 변화해가는 나 자신의 변화 과정을 마치! 제 3자인것처럼 지켜볼 수 있게 되었다라는 것이 바로 핵심이 아닐까 싶은 겁니다. 예를 들어, '나'는 매일 '나의 얼굴/모습'을 거울을 통해 바라보기에 하루 상관에 일어난 미세한 변화를 알아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처럼 알아채지 못하는 미세한 변화들이 쌓여 '결정적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기도 하지요. 이 때! 정작 '나 스스로'는 나의 (미세한 변화 뿐 아니라 결정적) 변화마저 알아채지 못하거늘, 오랫만에 만나 본 나의 친구는 그러한 나의 변화를 쉽게 알아보곤 합니다. 바로 이 점! --- 단순한 의미에서의 외모 뿐 아니라, 나의 변화된 내면과 그 내면을 반영하는 외모를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제 3자적 거울'을 도리언 그레이는 획득하였다는 겁니다.7 물론, 현실의 도리언 그레이의 외모는 전혀 변하지 않으면서 말이죠. 즉!!! 도리언 그레이의 내면과 외모는 분명 변화하고 있는데, 더욱이 그 내면의 변화는 쾌락을 추구하는 방향으로만 향하고 있는데! 그런 변화를 반영하는 외모의 두 가지 변화, 즉 죄악의 흔적과 노화의 흔적들은 전적으로 현실의 도리언 그레이가 아닌 초상화 속 도리언 그레이에게로만 반영되어 나타난다라는 겁니다. --- 이거... 꽤나 구미를 당기게 하는 설정 아닙니까?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다'라는 경제학의 대명제는 경제학 교과서에서만 위세를 떨치는 것이 아니라, 이 작품에서도 그 결론을 이끌어내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헨리 경이 처음으로 도리언의 마음 속에 불어넣었던 인생에 대한 호기심은 채우면 채울수록 점점 더 커져 가는 것만 같았다. 알면 알수록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은 욕망에 괴로웠으며 채우면 채울수록 허기는 커져 갔다.(p176)

​위와 같은 도리언 그레이의 심리는 사실 지금의 우리들 모두도 다 가지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다만! 이 현실에서는 경제적인, 도덕적인 제약들이 우리의 무한히 뻗어가고 싶어하는 욕망을 붙잡고 있을 뿐이죠. 하지만 소설 속의 도리언 그레이에게는 그러한 제약들이 전혀 없었습니다. 물려받은 엄청난 재산과 자신의 초상화! --- 이 두 가지로 인해 그의 욕망은 그야말로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속도를 점점 더 높여만 가게 되었고, 예의 더 많은/강한 쾌락을 원하게 되었지요. 여기서 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이러한 '쾌락주의'에 단지 하나의 제약을 얹어놓음으로써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쾌락주의의 오명을 간단히 벗겨 주고 있습니다. : '새로운 쾌락주의가 있어야 한다. 지금 우리 시대에 부활하고 있는 시대착오적인 청교도주의로부터 삶을 구해 내야 한다. …… 쾌락주의는 인간에게, 그 자체가 한 순간에 불과한 우리 인생의 매 순간순간에 전념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p178) ---  즉! 일시적 쾌락을 그저 아무 생각없이 즐기겠다다라 생각하지만 말고, 그 순간의 쾌락마저도 '최선을 다해' 즐겨야 한다라는 책무를 가져야 한다라는 거지요.

이러한 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서술이 직설화법인 것인지, 혹은 (제가 이해하고 있는 바로의 「롤리타」에서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보여주었던) 역설과 같은 것인지에 대해 판단을 내릴 능력은 없습니다만 --- i) '성공한 불륜'같은, 뭔가 인간의 본성에 힘을 실어주는(?) 투의 스토리를 원하는 저에게는 부디! 이것이 작가의 직설화법이었으면 좋겠다라는 바램을 가져보기는 하지만, ii) 당시의 시대를 고려해 본다면 역설적인 서술, 그러니까 '인간은 도덕적이어야 함'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라는 방향을 결론내릴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싶기는 합니다. 어쨌든!!!


 

"스스로가 주인인 사람은 기쁨을 만들어 내는 것만큼 슬픔도 금방 끝내는 거라고요. 나는 감정에 휘둘리기보다 감정을 이용하고, 즐기고, 지배할 것입니다!"(p151)

도리언 그레이는 아편의 도움까지 마다하지 않으며 자신의 감정을 '이용하고, 즐기고, 지배'하려 했었으나, 오랫만에 들춰 본 초상화 속 자신의 일그러지고 흉측해진 얼굴을 보고는 극적인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게 되지요. 단! 지킬 박사나 그리핀이 다시 자신의 본 모습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이유가 '현재의 모습에 대한 불안/불만' 때문이었다라면, 도리언 그레이에게 일어난 심경의 변화는 여기에 '현재의 모습에 대한 반성'이 더해져 있다라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기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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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박사와 하이드」와 「투명 인간」, 그리고 이 작품에서 보여지고 있는 각기 다른 '분리'의 모습들을 곰곰이 되짚어 보면 --- 2015년을 살아가고/내고 있는 '박OO'라는 실제의 인물과, 네이버 상에서만 존재하고 있는 '가살가죽'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캐릭터 간의 간격이 바로!!! '저의 본성과 하비투스의 분리'를 보여주고 있기도 하며, '타인의 시선으로부터의 분리' 역시, 실제의 제 모습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현실의 저와 네이버 상의 저를 거의 완벽하게 분리시켜놓았기도 할 뿐 아니라, (비록 그것이 의도된 것은 아니라는 변명을 앞세워 보기는 하겠지만) 결과적으론! 부지불식간에 조금씩 만들어진/만들어낸, 일종의 '이런 사람이, 이런 남편이, 이런 아빠가 되고싶다!'라는 저의 바람(願)들을 이 블로그에 조금씩 쌓아왔던, 그리하여! 어느덧 만 11년을 넘긴 현재엔 사뭇, '가살가죽'이란 캐릭터를 이제와 '실제의 제 모습'으로 돌려놓고 싶다한들, 이미 엄청나게 쌓여진 퇴적들이 그것을 더 이상은 가능하지 않을 일로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은근 심각하게 해보게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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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마지막 결말은 지금의 시대적 상상력에 비추어 본다면 사뭇 허망하다 말해질 수도, 뭔가 끝장을 보아주길 항상 기대하고 있는 저에겐 적잖이 아쉬웠기도 했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 '가능하지 않은 무언가를 바라고, 그것이 가능해졌음으로 얻어졌을 때, 결국엔 인생이 불행으로 끝맺음될 수 밖에 없다'라는 19세기적 교훈을, 왜 신께서 우리 인간들에게 그러한 삶을 허락하지 않으시고 그저 지금처럼 '마음 속에 이루어질 수 없는/이루어지지 않는 각자의 바람(願)들을 간직하고 살아가게 만드신건지에 대해, 그처럼 '채워질 수 없는 부족함'이야말로 삶을 '행복'이라 느끼게 만들어주는 원천임을, 21세기의 우리들이 여전히 배워야 함을 깨닫게 해주는 작품이었다라 생각됩니다.


(각자의 생각에 따라서는 매우 유치한 내용일 수도 있겠으나) 그러한 의미에서 다음의 문장이 어쩌면! 작가 오스카 와일드가 (헨리 워튼을 통해서 보여지고 있는) 말하고자 했던 '그 자체가 한 순간에 불과한 우리 인생의 매 순간순간에 전념'해야 한다는 '새로운 쾌락주의'의 참 의미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언젠가 헨리 경이 흰 장미와 같다고 했던 자신의 소년 시절 그 때묻지 않은 순수함이 너무나 그리웠다. 도리언은 스스로를 더럽혔고 마음을 타락으로 채우고 공상에는 공포감만을 심어 주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나쁜 영향만 주었고, 그렇게 하면서도 소름 끼치는 쾌락을 경험했음을 깨달았다. …… 그 모든 일은 돌이킬 수없는 것일까? 그에게는 희망이 없는 것일까? …… 차라리 살아가면서 죄지을 때마다 확실한 처벌을 바로바로 받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처벌은 영혼을 정화해 주기 때문이다. 대단히 공정한 신에게 바치는 인간의 기도는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고'가 아니라 '우리 죄악을 벌하여 주시고'가 되어야 했다.(p293)

※ 동일한 설정의 작품들 : 지킬박사와 하이드」 · 「투명 인간


 

 


 

 

 

 

 

 



 

  1. 정확하게는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 태어났습니다.
  2. 오스카 와일드 스스로 이 작품이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주제를 따르고 있다라 밝히고, 하지만 자신이 (그 주제에) 새로운 형태를 부여했다라 말했다고 합니다.
  3. 이러한 서술과 묘사는 <11장>에서 절정의 보여주고 있는데, 2015년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저에게는 매우 지겨운 부분이기만 했었습니다.
  4. 물론! 헨리 워튼이 어떠한 의도를 갖고 도리언 그레이에게 그러한 말을 했던 것은 아니라 생각합니다만, 어쨌든 결과적으로 이러한 도리언 그레이의 변화와 충격을 지켜본 헨리 워튼은 '영향이란 게 모두 부도덕한 것이지'라는 자신의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게 됩니다. : '넓은 의미에서는 이 젊은이가 자신의 피조물인 셈이었다. 헨리 경이 그를 조숙하게 만든 것이었다. 그게 중요한 점이었다.'(p84)

  5. 이는 결국 인간을 창조한 신이 옳았다!라는 것이겠지요.
  6. 물론 순간순간 애초의 바램을 후회하기도 하나 모두 일시적인 것들이었지요.
  7. 사실 현실의 우리에게도 그러한 '제 3자적 거울'이 있기는 합니다. 예를 들어, 가족이라든가 종종 만나는 친구들, 직장의 동료들 모두 '나의 언행들' 그리고 그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나의 변화'들에 대해 (거울처럼 즉각적이지는 못할지라도) 반응을 표현해주곤 하니까요. 이처럼 작가는 '우리도 타인의 반응들을 통해 스스로를 깨닫게 된다'라는 메세지를 전해주고 있는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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