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라노 게이치로 作, 「나란 무엇인가」는 다 읽고나서도 여전히, 그리고 종종 이처럼 그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책을 읽을 때면 여지없이 항상 그 중심에 자리를 잡고서는 제게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책이 되어주었습니다. 그의 주장을 단순하게 표현해보자면 --- '나'란 사람 A는 수많은 분인(dividual)들로 이루어져 있는, 즉 그저 A ={A1, A2, A3, … An}의 집합개념일 뿐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상대방이 누구냐에 따라, 혹은 장소나 시간에 따라 나(A)의 수많은 분인들 중 한 모습(Ai)이 보여진다라는, 그러하기에 '진정한 나'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것이 그 책의 핵심적인 주장이었지요. 하지만!!!
그 책을 읽을 당시엔 '아!'하며 무릎을 탁 치는 공감을 했었더랬습니다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그의 주장에 자꾸만 의문이 생겨나는 겁니다. --- '진정한 나'는 없고 단지 수많은 Ai들 모두가 다 '진정한 나'이다!라하지만, 그 수많은 Ai들을 A라는 하나의 집합 안에 묶여져 있도록 만드는 무언가!는 (수학적 개념으로 보아도) 반드시 있어야 할텐데, 그렇다면 그 A란 건, 그것을 '진정한 나'라 지칭하지 않는다해도, 그 A란 것이 과연 무엇일까?하는 의문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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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마지막 눈을 감는 순간까지 무수한 감정에 시달리는 게 인간이다. 작은 상처에도 좌절하고 분노하며, 까닭 모를 우울함과 외로움으로 누군가에게 집착하고 의존하다가도 순간적으로 욱하는 마음에 후회할 말과 행동을 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절로 콧노래를 흥얼거릴 만큼 기분이 좋다가도 갑자기 눈시울을 붉히며 슬퍼하기도 하고 무기력한 마음을 어쩌지 못해 좌절하기도 한다. 내 속에 나도 모르는 내가 많기에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미스터리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이 다름 아닌 나 자신인 경우가 많다. 이는 누구나 경험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상황이다. 문제는 감정이라는 녀석이 정상의 궤도를 벗어나 경계를 넘어설 때 일어난다.(p6)
히라노 게이치로의 주장과 비슷한 이야기인, '내 속에는 나도 모르는 내가 많다'로 시작되는 책이었습니다. 정신의학과 교수와 심리 전문 기자가 함께 쓴 이 책은 그러했기에, 비전문가라 할 수 있겠는 히라노 게이치로의 '경험으로부터의 인식'이 아닌, '사실에 기인한 인식'을 보여주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저에게 주었었었죠.
이 책의 저자들은 예전에 비해 각 개인들이 롤러코스터처럼 요동치는 감정의 변화를 겪게 되는 것이 '개인의 탓'이 아닌 '사회의 변화'때문이라 주장합니다. --- "과거에 비해 사람들 사이의 접촉면은 넓어졌지만 그 뿌리는 약한 시대에 사고 있다.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질 수 있지만, 사랑이든 우정이든 신뢰든 오래가는 관계는 얻기 어려워졌다. 우리의 감정만 롤러코스터에 매달려 있는 게 아니라 우리의 인생 전체가 언제 돌변할지 모를 롤러코스터 위에 있는 형국이다."(pp9-10) : 온라인 서점의 미리보기로 이 부분을 읽어 본 순간, 이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유혹을 도저히 뿌리칠 수가 없는 겁니다. 게다가!!!
우리는 자기를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모르는 경우가 많다. 나를 모르니 이상화시킨 내 모습이나 남이 제시한 기준에 자신을 맞추려 한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는 반대다. 우리는 누구나 넘어지고, 실수하고, 상처를 주고받으며 산다. 그것이 인간이다. 장점은 장점대로, 단점은 단점대로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드릴 때 행복은 찾아온다. 내 안의 나를 온전히 직시해야 세상에 휘둘리지 않고 중심을 잡을 수 있다. 모순되고 변덕스러운 감정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여기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p11)
'이상화시킨 내 모습이나 남이 제시한 기준에 자신을 맞추려 한다'라는 표현은 그야말로 제 가슴을 확!하고 후벼팠었고, '맞아! 내가 이제까지 이렇게 살아왔던 거야!!!'란 인식을 부인할 수 없게 해주었으며, 이는 예의 히라노 게이치로가 말했던 '분인의 상대성'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지적이었기 때문이었던 겁니다. 헌데 말이죠... --- 이 책의 저자들은 곧이어 '내 안의 나를 온전히 직시해야 한다'라는 말을 해주고 있습니다. 즉, '진정한 나'라는 것이 존재한다라는 거지요. 뭔가... 이제까지 제가 가지고 있던 생각들과는 많이 다른 이야기가 담겨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이후의 논지가 과연 어떻게 전개가 될까하는 궁금증이 마구마구 샘솟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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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소위 말하는 '정상인'에 대한 책은 아니었습니다. '경계성 장애(BPD : Borderline Personaliy Disorder)'라는 정신적 질환을 앓고 있는 '경계인'에 대한 책입니다. 그러하기에 최소한 지금 저의 판단으로는 저이건 제 주위의 누구이건 그러한 장애를 가지고 있는 이가 없기에, 이 책에 나오는, 예를 들어 '경계인'을 대할 때는 이렇게 해야한다라는 등의 부분에서는 전혀 몰입 할 수가 없었다라는 아쉬움이 있었지요. 다만!!! 이 책의 일부 설명들 중에는 「나란 무엇인가」와 비교해가며 읽어가기엔 매우 유용한 것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경계인에게 분리는 불안감에서 벗어나게 하는 비상구 구실을 한다. 이들은 친한 친구나 친밀한 관계에 있는 한 사람을 각기 다른 시간대에 놓인 두 명의 개별 인물로 인식한다. 예를 들어 조라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BPD 환자는 완전히 선한 사람으로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착한 조'를 꼽는다. 온갖 나쁜 점들은 모두 '나쁜 조'에게만 있으므로 '착한 조'가 존재하지 않으니 이런 반응이 당연한 것이다.(pp33-34)
정상적인 사람을 대상으로 했던 히라노 게이치로의 분인 개념은 '타인과의 상대성'을 매우 중시합니다. 즉! 내가 조를 대할 때 A(조)라는 모습(의 분인)을 보이게 되는 것은 조와의 양방향에 걸친 feedback의 결과이기 때문인 것이지, 결코 미리 '조를 만날 때에는 수많은 Ai들 중 A(조)의 모습을 드러내보이겠다'라 (나 혼자서) 결정했기 때문이 아니라는 겁니다. 하지만!!! --- (감정 기복이 아주 빠르고 폭발적이며, 그로 인해 자신의 감정을 적절하게 분출하도록 해주는 응고 체계가 결여되어 있는) 경계인은 타인 뿐 아니라 자신의 성격마저도 조각조각 나누어 재배열 시킴으로써, 히라노 게이치로가 말했던 '상대성'이라는 것이 전혀 작동하지 않는, 즉! 타인과의 상대성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임의의 분인을 (상대방인) 조 앞에서 내어보이며, 한 발 더 나아가 (상대방인) 조의 분인 마저도 예의 자신과의 상대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채 자신의 임의대로 자신 앞에 등장시켜놓는다라는 거지요. 그러하기에 저자들은 '경계인과 소통하는 일은 모두에게 힘든 일이다'(p103)라 말하고 있으며, 바로 이 점으로 인해!!! 이 책의 제목이 <I Hate You, Don't Leave Me>라는, 책의 내용을 알기 전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반된 두 개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유를 추측하게 해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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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란 것이 새로운 지식의 배움 또는 감정의 공유, 아니면 잠시간의 유쾌함 등 무언가의 습득을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노동일진데, 사실 이 책의 독서는 그 어떤 특별한 습득을 저에게 남겨주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제가 포복절도하며 보는 '웃찾사'의 <서울의 달> 코너에서 보여지는, 남자의 그 어떠한 대답에 대해서도 만족하지 못하는 여자들의 반응들이 혹!.. 다음의 설명으로 이해되어질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매우 생뚱맞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라는 점이, 하지만!!! --- 사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경계인'이 아닌 (혹 어쩌면 적게나마 경계인의 특성을 조금씩은 가지고 있을지도 모를) 우리들에게도 때로는 다음에 등장하는 글로리아와 같은 면이, 또 다른 때에는 알렉스와 같은 상황에 놓여지는 삶의 모습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지 않을까 싶네요. (다음의 내용은 본문 pp110-112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이럴 때 알렉스는 과연 글로리아에게 어떠한 대답을 해주어야 할지, 좀 더 확장시켜본다면, <서울의 달>에서 '영재 선배'가 던지는 질문에 대해 '수락이'가 어떠한 대답을 해야할지에 대한 해답은 pp112-116에 쓰여져 있습니다. 궁금... 하시죠? ^^)
글로리아는 남편 알렉스에게 자신이 쓸쓸하고 우울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살한 계획이지만 자신을 절대 도와줘서는 안 된다고 못 박았다. 이 상황에서 알렉스는 두 가지 모순되는 메시지를 받았다.
1. 글로리아의 공공연한 메시지는 필연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날 걱정한다면 내 소원을 들어주고 내 운명을 내가 만들 수 있는 자율성에 도전하지 말아요. 그 선택이 심지어 죽음일지라도."
2. 이와 반대되는 메시지로 실질적으로 자신의 의도를 말한다. "세상아, 날 걱정한다면 도와줘. 날 죽게 내버려두지 마."
왜 글로리아는 이렇게 행동하는 것일까?
그녀는 자신의 삶을 책임질 만큼 강하지 못하기 때문에 알렉스에게 이 짐을 대신 짊어지게 한 것이다. 글로리아는 알렉스를 자신의 딜레마 속으로 끌어들여 그를 자신의 각본에 따라 움직이는 꼭두각시로 만들려고 한다. 그리고 알렉스가 자기 대신 불확실한 마무리를 해결해주기 바란다. 결국 글로리아는 자살에 대한 자신의 양면적인 태도를 알렉스에게 떠넘겨 그녀의 운명을 책임지게 했다.
게다가 글로리아는 선택이 지닌 부정적인 부분을 분리한 뒤 알렉스에게 투영해 자신은 모호함의 긍정적인 측면을 유지한다. 알렉스가 어떻게 반응하든 간게 그는 비난받을 것이다. 알렉스가 적극적으로 글로리아의 고통에 반응하지 않는다면 그는 무심하고 무자비한 사람이 되고 그녀는 '비극적으로 이해받지 못한' 인물이 되는 것이다. 반대로 알렉스가 글로리아의 자살 시도를 멈추려고하면 그는 지배적이고 둔감한 사람이 되고 그녀는 자신을 존중하는 인물이 된다. 어느 쪽이든 글로리아는 자신을 무력하고 독선적인 순교자로 투영해 스스로를 희생자로 둔답시켜버린다. 알렉스의 경우에는 어떤 조치를 취해도 큰일이고 안 해도 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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